NIS의 천재 스파이 (201)
다시 고통을 참으며 입구를 향해 바닥을 기어가기 시작하는 토미 터버빌.
다른 것은 몰라도 살고 싶어 하는 마음.
생존 욕구 하나는 대단한 자였다.
그야말로 악착같이, 필사적으로 생존하려 했다.
* * *
망원 조준경으로 기어가는 토미 터버빌을 지켜보는 차은성.
‘이거야 원.’
토미 터버빌의 생존 욕구에 이만저만 어이가 없는 것이 아니다.
대단하다!
절로 그런 감정이 느껴진다.
* * *
해군 728부대.
그곳에서 참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익혔다.
아마도 북파 공작원이었던 것 같은, 지독하기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교관들에 의해 철저히 단련되었다.
“적에게 자비를 베풀지 마라!”
“니가 죽고 싶으면 적에게 자비를 베풀어도 된다!”
“철저히! 가혹하게! 응징해라!”
“꿈속에서도 널 두려워하게 하여 잠에서 벌떡 깨어날 정도로, 적에게 너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 주어라!”
교관들이 누누이 그렇게 말했다.
자신을 포함 몇몇 청소년이 그렇게 철저한 살인 병기로서 육성되었었다.
* * *
입구에 거의 다다른 토미 터버빌이 안도의 눈빛을 띠었다.
그런 한편으로 다급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저격수가 지금 자신을 노리고 있다. 그러니 서둘러 지금 있는 곳을 벗어나야 한다.
차가 있는 골목 밖까지만 가면.
자신은 살 수 있다!
삶의 희망에 찬 토미 터버빌은 양손에 AK74를 쥔 채 골목 밖을 향해 악착같이 다시금 기어갔다.
토미 터버빌은 간간이 경계와 주의가 번득이는 눈으로 주변을 살피고 또 살폈다.
진한 경각심이 한눈에 보이고, 그런 한편으로 두려움이 엿보이는 모습이기도 했다.
저벅저벅.
그런 토미 터버빌의 귀에 누군가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토미 터버빌은 즉시 움직임을 멈추고 멈칫거렸다.
도저히 감출 수 없는지, 얼굴에 두려움이란 감정을 띄웠다.
천천히 오른쪽을 돌아보는 토미 터버빌의 두 눈동자에서 설마라는 감정이 어른거렸다.
자신을 노리던 저격수!
토미 터버빌은 그가 생각나, 내심 매우 큰 두려움에 젖었다.
살고 싶어 하는 생존 욕구. 죽음을 거부하는 강력한 두려움.
두 감정에 토미 터버빌이 양손에 쥔 AK74의 총구를 오른쪽으로 돌려, 걸어가는 저격수를 겨누려 했다.
명백하다.
사격하려는 것이다.
순간.
타……앙!
총성이 울리고.
“왁!”
토미 터버빌이 비명을 지르며 AK74를 잡은 오른손을 놓았다.
관통당한 오른 손등.
피가 줄줄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절로 몸이 파르르 떨릴 것 같은 지독한 통증이 일었다.
“크흐으으.”
토미 터버빌은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왼손으로 AK74를 쥐며 재차 사격하려 하였다.
한 손 사격?
단 한 번의 기회밖에 없다.
사격하는 순간.
걷잡을 수 없는 사격 반동으로 왼손 손목이 나갈지도 모른다.
―영화를 보면.
주인공이 멋지게 한 손으로 총을 쥐고 사격하는 광경을 자주 볼 수 있다.
다 개뻥이다.
사격 반동을 한 손으로 감당할 수 있는 이는 극소수 중의 극소수다.
대다수 일반인들이 한 손 사격을 했다가는 눈 깜짝할 사이에 손목이 부러질지도 모른다.
토미 터버빌은 포기하지 않았다.
죽는 그 순간까지 악착을 떨 것 같은 그는 왼손으로 AK74를 쥐고 차은성을 쏘려 했다.
타……앙.
다시 총성이 울리고 99mm 나토 탄이 왼 손목에 박혔다.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작은 핏방울이 몇 튀고.
토미 터버빌이 총상으로 인한 고통에 다시금 비명을 질렀다.
“아아악!”
총상의 고통에.
토미 터버빌이 AK74를 놓았다.
툭.
AK74가 바닥에 떨어지고.
토미 터버빌은 총상을 입은 왼손을 힘없이 늘어뜨렸다.
마음 같아서는 오른손으로 잡고 싶었지만, 이미 오른 손등에 관통상을 입은 터라, 마음과 달리 오른손으로 잡을 수 없었다.
* * *
이윽고.
“흐으윽…….”
신음하는 토미 터버빌의 머리맡에 누군가가 다가와 섰다.
눈에 보이는 신발에.
토미 터버빌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올려다보는 그의 눈에 보이는 한 사람.
차은성!
오른손에 글록 17을 쥐고 바닥에 가로누운 토미 터버빌을 내려다보았다.
피식.
차은성이 가볍게 웃으며 글록 17로 토미 터버빌을 겨눴다.
거리가 바로 지척이었고 총기를 다루는 것에 있어 전문가인 차은성이기에, 한 손 사격은 충분히 가능하다.
차은성의 머릿속에서 일련의 사진들이 빠르게 나타났다 사라졌다.
―RQ―4 글로벌호크가 촬영한 사진들.
그중 몇 장의 사진을 본 고든이 차은성에게 말해 주었다.
사진에 찍힌 자들이 모두 전직 마린 레이더스 출신임을.
고든 덕분에.
사진에 찍힌 이들 중 한 사람이자 지휘관인 토미 터버빌의 얼굴을 기억하는 차은성이다.
천천히 말했다.
“토미 터버빌 중령.”
차은성이 자신의 이름과 전역 전의 계급을 언급하는 것에 토미 터버빌은 크게 놀랐다.
“헉!”
얼굴 가득 대경이란 감정을 담아내며 왕사탕처럼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차은성은 말없이 토미 터버빌을 내려다보며 글록 17로 겨냥했다.
“지금부터 내가 묻는 말에 성실하게, 있는 그대로 말하지 않으면!”
차은성이 말끝에 힘을 잔뜩 주었다.
동시에.
온몸으로 진한 살의를 물씬 풍겼다.
―여차하면 죽인다!
차은성이 토미 터버빌을 죽일 작정임을 감추지 않고 훤히 드러냈다.
토미 터버빌의 눈썹이 가늘게 떨렸다.
파르르.
차은성이 자신에게서 정보를 얻고자 한다.
한데.
묻는 대로 말하지 않으면 진짜 자신을 죽일 것 같다. 말장난을 하는 것이 아니다.
토미 터버빌은 두 눈을 내리감았다.
‘이렇게…….’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는 그의 귀에 차은성의 낮은 음성이 들렸다.
“어떻게 알았지?”
매건을 알게 된 경위를 물었다.
토미 터버빌은 침묵했다.
“…….”
차은성은 주저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총성이 울리며 토미 터버빌의 왼발 무릎에 총탄이 박혔다.
“으아아악!”
토미 터버빌이 총상의 고통에 자지러지듯이 비명을 질렀다.
무릎의 연골이 산산이 부서졌다.
동시에.
신경을 타고 뇌로 흘러드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지독했다.
“어떻게 알았지?”
차은성이 재차 물었다.
“……아아아악!”
토미 터버빌은 비명을 지를 뿐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차은성은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총성과 함께 토미 터버빌의 왼발 허벅지가 총탄에 관통당했다.
“끄아아아악!”
토미 터버빌이 총상으로 인한 고통에 다시 비명을 질렀다.
그러거나 말거나.
차은성이 글록 17로 토미 터버빌의 거시기를 겨눴다.
“두 번 다시 사내구실을 하지 못하게 만들어 줄 수도 있어. 말해!”
차은성이 대답을 재촉했다.
“아아아…….”
토미 터버빌은 계속 비명을 질렀다.
“말하기 싫다면!”
차은성이 말하며 다시 방아쇠를 당기려 했다.
“……아악! ……자, 잠깐!”
토미 터버빌이 말을 더듬으며 황급히 말했다.
“어떻게 알았지?”
감정이 없는 듯.
차은성이 무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C, CIA…….”
토미 터버빌이 급히 말하기 시작했다.
차은성은 그의 말을 묵묵히 들으며 차디찬 눈빛을 희번덕였다.
* * *
얼마 후.
차은성은 이마에 총탄이 박힌 토미 터버빌을 뒤로하고, 천천히 안으로 걸어갔다.
매건과 고든.
두 사람은 유탄을 피하려고 했지만 안타깝게도 피하지 못했다.
그 결과, 유탄으로 말미암아 사망하고 말았다.
“CIA…….”
차은성이 걸어가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소련 연방이 해체되고 KGB 역시 해체되며 세계 최고의 정보기관이 된 CIA.
계속 얽힌다.
JK. 시먼스.
CIA 부국장인 그를 시작점으로, 지금까지 계속 CIA가 자신과 엮인다.
그것이 우연일까?
걸어가는 차은성의 얼굴이 차츰 흐려지기 시작했다.
* * *
잠시 뒤.
차은성은 안에 있던 무기들을 모두 차에 싣고 골목을 빠져나왔다.
그 직후.
쿠아아아아앙!
차은성이 운전하는 차의 뒤에서 엄청난 폭발이 일었다.
하늘을 가린 먹구름처럼 흙먼지가 뭉클뭉클 크게 일었다. 그 모습이 마치 화산이 폭발한 것 같았다.
우르르.
모든 것이 무너지며 각종 파편이 사방팔방으로 날아갔다.
* * *
몇 시간 후.
멀리 포토맥강이 보이는 언덕배기에 우뚝 자리한 오래된 통나무집.
차은성은 창가에 서 있었다.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오른손에 쥔 머그잔의 커피를 간간이 마셨다.
차은성은 깊은 상념에 젖었다.
머릿속으로 현재의 상황을 검토하는 한편, 향후 무엇을 어떻게 할지 곰곰이 거듭 생각했다.
* * *
몇 분 후.
차은성이 예의 창가에 서서 담배를 피우며 월터 부국장과 통화했다.
“……퀸에 대한 보다 자세한 정보가 필요합니다.”
“휴우. 혼자서 괜찮겠나?”
“네.”
“다른 조력자를…….”
“그럴 필요도, 여유도, 시간도 없습니다. 최대한 빨리 퀸에 관한 상세한 모든 정보를 주셨으면 합니다.”
“움, 알겠네. 메일을 통해…….”
“그럼.”
차은성은 통화를 끝내고 하얀 담배 연기를 뿜었다.
후우우.
다시 혼자가 되었다.
“상관없어. 어차피 난 처음부터 혼자였어.”
차은성은 나직하게 중얼거리며 입에 담배를 물었다.
* * *
며칠 후.
의사당 인근 4번 도로.
교통신호에 걸린 차량들이 정지선에 서기 시작했다.
끼익, 끼익.
해당 차량들 사이에 끼듯 서 있는 리무진.
조수석에 앉은 새뮤얼 흄즈는 은근 짜증스러운 눈으로 정면과 오른쪽 차창 밖을 둘러보았다.
‘의사당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새뮤얼 흄즈가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짜증스러운 눈빛을 띠었다.
의사당에 거의 다 와서 그만 교통신호에 걸렸다. 리무진과 함께 서 있는 차량들이 의외로 많다.
아무래도 한 번에 지나갈 수 없을 것 같다. 적어도 한 번 정도는 신호에 걸릴 것 같다.
‘쯧!’
새뮤얼 흄즈가 내심 혀를 차며 힐긋 실내 미러를 보았다.
―뒷좌석에 앉아 있는 흑인 여성, 캐서린 랭포드 하원 부의장.
그녀는 워싱턴 타임스를 보고 있었다. 아직 신호에 걸린 것을 인지하지 못한 것 같다.
새뮤얼 흄즈는 불안했다.
캐서린 부의장이 신호에 걸린 것을 알면 적잖게 짜증 낼 것이다. 그 짜증을 어떻게 풀어 줘야 할지…….
새뮤얼 흄즈는 내심 걱정스러웠다.
그 순간.
퍽!
운전석 차창이 깨지며 작은 구멍이 생겼다. 구멍 주변으로 균열이 간 것처럼 삽시간에 작은 금들이 퍼져 나갔다.
툭.
운전기사가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12.7x99mm NATO 탄이 유리창을 뚫는 순간의 소리를 들은 새뮤얼 흄즈는 자신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몸을 흠칫거렸다.
그가 무의식적으로 운전석 차창을 돌아보는데.
퍽!
새뮤얼 흄즈의 이마를 예의 나토 탄이 눈 깜짝할 사이에 관통했다.
그 충격에 새뮤얼 흄즈는 조수석 차 문으로 밀리듯 일순 쓰러지고 말았다.
그사이.
캐서린 랭포드 하원 부의장이 깜짝 놀라며 손에 쥔 워싱턴 타임스를 놓았다.
툭.
캐서린 랭포드 하원 부의장은 매우 혼란스러워하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