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S의 천재 스파이 (202)
응징은 가혹하게
황급히.
운전기사와 새뮤얼 흄즈를 번갈아 보는 캐서린 랭포드 하원 부의장의 눈에서 진한 의문, 놀람, 당황 등 몇몇 감정이 순식간에 나타났다.
그때.
퍽!
그녀의 왼쪽.
12.7×99mm 나토 탄이 차창을 단숨에 꿰뚫었다.
삽시간에 앉아 있던 캐서린 랭포드의 왼쪽 관자놀이에 12.7×99mm 나토 탄이 깊이 박혔다.
퍽!
그녀는 두 눈을 뜬 채 힘없이 오른쪽으로 몸을 뉘었다.
털썩.
* * *
조준 망원경으로 리무진 내를 보던 차은성이 천천히 입가에 차디찬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씨익.
잠시 뒤.
TAC 50을 분해한 차은성이 케이스를 왼손에 들고 급히 자리를 떴다.
* * *
다음 날.
책상 앞쪽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은 하비에.
그는 매우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왼쪽 의자에 앉아 있는 휴고를 바라보았다.
“누구라고?”
“하원 부의장 캐서린 랭포드의 보좌관 새뮤얼 흄즙니다. 그자가 시타델에 자금을 입금하고 며칠 전에 바하마, 벨기에 등지로 자금을 빼돌렸습니다.”
“…….”
“그런데 입금했던 금액보다 더 많은 자금을 빼냈더군요. 마치 시타델의 주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휴고의 말에 하비에는 침묵했다.
“…….”
점입가경이다.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 막 전개되는 듯한 기분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하원 부의장의 보좌관이 루이 고머트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최악의 경우.
하원 부의장이 연관된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하비에는 자신의 손이 미치지 않는 영역으로 수사가 확대되는 것에 내심 적잖은 부담을 느꼈다.
휴고가 그런 하비에를 바라보았다.
“국장님께 보고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FBI 국장을 언급했다.
“뻔하지 않나?”
하비에의 반문에 휴고가 몸을 움칫했다.
“손 떼라고 한다고 진짜 손을 뗄 건 아니죠?”
휴고는 FBI 국장이 하비에에게 수사 중단을 지시할지도 모른다고 내심 생각했다.
“국장이 손을 떼라고 하는데 내가 무슨 힘으로 버텨?”
“팀장님.”
휴고가 부르자 하비에가 왼손을 가슴 높이로 들었다. 그렇게 휴고의 말을 막은 하비에가 곧 손을 내렸다.
“휴우우.”
하비에가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쉬는데.
콰앙!
시빌라가 부서져라 문을 급히 열어젖혔다.
“팀장님!”
그녀는 사무실로 뛰어 들어오며 목청이 터져라 소리쳤다.
매우 다급한 모습이었다.
그동안.
하비에와 휴고가 시빌라를 돌아보았다.
두 사람은 어안이 벙벙했다. 시빌라가 왜 저러는지 이유를 알 수 없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하비에와 휴고가 진한 의문의 눈빛을 띠었다.
“하원 부의장님이 저격당해 죽었어요.”
시빌라가 하비에에게 다가가며 외쳤다.
그녀의 말에.
순간.
하비에와 휴고는 큰 충격을 받았다.
두 사람은 아연실색한 표정을 지으며 몸을 흠칫거렸다. 그러면서 찢어져라 두 눈을 크게 치켜떴다.
하원 부의장이 저격당해 죽다니!
하비에, 휴고는 믿을 수 없다는 심정을 온몸으로 드러냈다.
가감 없이!
* * *
워싱턴 정가가 재난 상황에 처한 것처럼 엄청 들썩였다. 이만저만 소란스러운 것이 아니다.
마치 국가 위기 상황이 발생한 것처럼 다들 난리였다.
보좌관과 함께 저격당해 죽은 캐서린 랭포드 하원 부의장.
그녀의 죽음은 무슨 폭풍처럼 워싱턴 정가를 휩쓸었다.
경찰도 경찰이지만, 연방수사국인 FBI 등 전 국가기관에 1급 비상이 걸렸다.
그런 한편으로.
워싱턴 포스트, 뉴욕 타임스, CNN, 폭스 뉴스 등등.
미국 유수의 언론 매체들이 일제히 속보로 캐서린 랭포드 하원 부의장의 저격과 죽음을 보도하며 당일 밤늦도록 크게 다뤘다.
백악관 역시 충격을 받은 건 마찬가지였다.
다들 뭘 어떻게 할 수 없는 혼란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일부 고위 인사들이 관련 방송 인터뷰에서 뜬금없이 테러리스트를 언급했다.
혹시라도 워싱턴 DC에 무슨 테러 조직이 숨어든 것이 아니냐, 라는 식으로 활활 타오르는 불에 기름을 잔뜩 들이부었다.
그들 모두 마음 한구석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캐서린 랭포드 하원 부의장이 저격당해 죽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사람 일이라는 게,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가 알겠는가?
두려움을 느낀 이들은 혹 자신들도 캐서린 랭포드 하원 부의장처럼 저격당해 죽는 것은 아닐까?
잔뜩 겁을 집어먹었다.
그 때문에 속칭 DC 경찰이라 불리는 워싱턴 경찰과 미 연방수사국 FBI. 그리고 국토 안보부 등.
관련 기관들이 상, 하원의 강력한 추궁과 범인 색출 및 체포 요구에 엄청 시달렸다.
“당장! ……잡아아아!”
상, 하원 의원들의 극렬한 요구가 DC 경찰과 FBI에 빗발쳤다.
* * *
이틀 후.
언제나처럼 야외 테라스의 원탁에 앉아 식사 중인 장년인 벤턴 체니.
유력 정치 가문인 체니가를 대표하는 재계 거물이다.
또한.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의 이사들 중 한 명이자 뱅크 오브 뉴욕의 최고 경영 책임자이기도 하다.
우물우물.
포크와 나이트를 양손에 쥐고 소시지를 썰어 입에 넣고 씹는 벤턴 체니.
그의 왼쪽.
두 걸음 어림의 거리를 두고 깔끔한 슈트를 입은 남자.
리어닉이 서 있었다.
수여 초 후.
벤턴 체니가 양손에 쥔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더니 오른쪽에 있는 잔을 집었다.
천천히.
커피를 마시는 여유를 음미하듯이 즐기는 벤턴 체니.
그의 시선이 왼쪽 앞으로 향했다.
월스트리트저널.
주로 경제 기사를 다루는 매체인데, 뜻밖에도 캐서린 랭포드의 사망 기사를 1면에 실었다.
―하원 부의장. 저격 & 사망!
벤턴 체니가 잔을 내려놓았다.
“아침부터 전화가 쇄도하더군.”
대단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감정을 내색하며 격노의 눈빛을 띠었다.
리어닉이 서둘러 고개를 깊이 숙였다 들었다.
“죄송합니다, 킹. 설마 퀸이 당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흠.”
벤턴 체니가 낮게 침음을 흘리며 다시 포크와 나이프를 양손에 쥐었다.
“차은성이 날 알고 있을 가능성은?”
벤턴 체니의 물음에 리어닉이 움찔했다.
벤턴 체니가 캐서린 랭포드처럼 자신도 죽을까 봐 내심 겁먹은 것 같다.
벤턴 체니의 물음에 리어닉은 즉답하지 못했다. 머뭇거리며 벤턴 체니의 눈치를 보았다.
“리어닉.”
벤턴 체니가 그를 부르며 써니사이드업을 천천히 잘랐다.
“80%로 봅니다.”
리어닉의 말에 벤턴 체니가 일순 멈칫했다.
차은성이 그를 알고 있을 확률!
벤턴 체니는 양손에 쥔 포크와 나이프를 멈추고 크게 당황한 기색을 지었다.
“80%라…….”
진한 긴장이 묻어나는 중얼거림이었다.
자신도 차은성에게 저격당해 죽을 수도 있다!
벤턴 체니는 죽음의 위기감에 뭐라 말할 수 없었다.
벤턴 체니가 죽음을 느낀다는 것을 알아챈 리어닉이 급히 말했다.
“하지만 안심하셔도 됩니다. 킹.”
“안심?”
벤턴 체니가 의아한 눈빛을 띠더니 리어닉을 돌아보았다.
―안심해도 되는 이유?
무언으로 물었다.
리어닉이 서둘러 말했다.
“보통 저격 사정거리는 600~800미터입니다. 그 이상의 거리는 저격 명중률이 매우 떨어집니다.”
“…….”
“표적이 특정 사람일 경우.”
“…….”
“800미터의 거리가 넘어가면, 아무리 조준 망원경의 배율을 늘려도, 사람의 실루엣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벤턴 체니는 말없이 리어닉의 말을 귀담아들었다.
“……현재 신원이 확실한 이들을 선별…… 경호원들을 배로 늘렸습니다. 그리고 외곽을 경계하는 용병들 수 역시 배로 늘렸습니다.”
“…….”
“……경계 지역을 저택을 기점으로 1,600미터까지 넓혔습니다, 킹.”
“…….”
“저격에 관해서는 안심하셔도 됩니다.”
리어닉의 말에, 벤턴 체니가 소리 없이 부드럽게 웃더니.
다시 포크와 나이프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단순히 저격만 신경 쓰면 곤란해. 차은성이 이제까지 없었던 대단히 과격한 방법으로 멤버들을 죽인 것을 설마 모르는 건 아니겠지? 리어닉.”
벤턴 체니의 말에 리어닉이 즉각 대답했다.
“이미 고용한 용병들에게 휴대용 미사일과 미니 개틀링 건 등…… 관련 무기와 장비를 충분히 지급하였습니다.”
“…….”
“그리고 차은성이 이제까지 멤버들을 죽이면서 사용한 모든 수법에 대응할 매뉴얼을 용병들에게…… 차은성은 절대 킹을 어떻게 하지 못합니다.”
리어닉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자신만만했다.
그새.
벤턴 체니가 써니사이드업 한 조각을 입에 넣고 오물거리기 시작했다.
적이 마음이 놓이는지, 그의 얼굴이 한결 밝아지며 은근 안심하는 눈빛을 띠었다.
벤턴 체니는 천천히 양손에 쥔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시럽이 들어 있는 도자기 병을 들었다.
주룩…… 주르르.
벤턴 체니는 그릇에 있는 서너 개의 팬케이크가 덮일 정도로 시럽을 넉넉히 부었다.
그런 다음.
도자기 병을 내려놓고 다시 포크와 나이프를 양손에 들었다.
“리어…….”
벤턴 체니가 막 리어닉을 부르려는데.
돌연.
퍽!
벤턴 체니의 오른쪽 관자놀이에서 선명한 선홍빛의 핏방울이 몇 튀었다.
쿠당탕.
헤드 샷에 즉사한 벤턴 체니가 앉은 의자에서 왼쪽 바닥으로 쓰러졌다.
순간이라고 말해도 될 정도로 삽시간에 일어난 상황에, 리어닉이 무의식적으로 몸을 움칫거렸다.
그때.
퍽!
99mm 나토 탄이 리어닉의 이마를 관통했다.
털퍼덕.
바닥에 쓰러지는 리어닉.
덜덜.
그의 몸이 가늘게 경련하기 시작했다. 두 눈동자에는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을 담긴 빛이 한가득이었다.
분명 저격이 불가능할 텐데…….
소음기 탓에 총성은 울리지 않았다.
그 때문에 저택과 바깥에 흩어져 주변을 경계하는 경호원들과 용병들은 벤턴 체니와 리어닉이 저격당해 죽은 것을 까맣게 몰랐다.
리어닉은 차은성이 사용한 저격 소총이 맥밀란 TAC 50이란 것을 몰랐다.
―2017년 이라크에서 캐나다 특수부대의 저격수가 무려 3,540미터라는 저격 세계신기록을 세웠다.
해당 기록은 캐나다군이 공인하였고.
이후.
저격수들 사이에서.
캐나다 특수부대의 저격수가 사용한 맥밀란 TAC 50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이 일었었다.
* * *
차은성은 느긋하게 몸을 반쯤 일으켰다.
그리고 완만한 손동작으로 TAC 50을 분해하기 시작했다.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이유는 벤턴 체니의 경호원들과 외곽 경계를 맡은 용병들이 저격을 알아채지 못했기 때문이다.
1,600미터를 넘는 거리에서의 저격!
쉽지 않다.
무엇보다도 조준 망원경의 배율을 최대로 높인다고 해도 표적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저격수는 육감으로 저격해야 한다.
―한국 여자 양궁 선수들이 예전에 표적 정중앙에 삽입되어 있는 카메라를 정확하게 명중시켜 세계적인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와 똑같다.
저격수는 무서운 존재고, 그만큼 양성하기가 어렵다.
최정예 저격수 한 명은 1개 사단과 맞먹는 전력이다!
라고 말해도 하등 부족함이 없는 이유는 전장에서 저격수가 가지는 심리적 위력에 기인한다.
공포!
그에 다름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