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S의 천재 스파이 (196)
조수석에 앉은 보좌관 새뮤얼 흄즈가 뒤돌아보았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새뮤얼 흄즈의 물음에, 캐서린 하원 부의장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
그녀는 침묵했다.
새뮤얼은 입을 다물었다.
“…….”
캐서린 부의장이 말할 때까지 그는 묵묵히 기다렸다.
그사이.
운전하는 이는 캐서린 부의장과 새뮤얼의 대화가 귀에 들리지 않는다는 듯.
앞을 바라보고 좌우 바깥 미러를 번갈아 보는 등 운전에 집중하고 있었다.
* * *
몇 분 후.
캐서린 부의장이 말했다.
“일단 토미에게 뉴욕에서 철수하라고 해.”
“네.”
“놈은 틀림없이 워싱턴 DC로 올 테니깐 워싱턴에서!”
캐서린 부의장이 힘주어 말하며 결연한 눈빛을 띠었다.
다이아몬드인 루이 고머트가 죽었다. 하면 루이 고머트 위의 이를 노릴 것이다.
그 정도 위치의 이들은 모두 워싱턴에 있다. 그녀를 포함하여 겨우 서너 명.
말 그대로 AOA 최상층부의 고위 인사라고 할 수 있다.
캐서린 부의장이 싸늘한 눈빛을 번득였다.
“차은성은 조직에 관해 너무 잘 알고 있어!”
“조직에 관한 정보의 유출을 의심하십니까?”
“그래. 이미 그런 징후가 있었어.”
“그 정도의 정보를 모두 아는 이라면 겨우 세 명 정도일 텐데요.”
“아니, 한 명 더 있지.”
캐서린 부의장이 눈을 반짝였다.
그녀의 말에 새뮤얼이 몸을 움찔했다.
―킹, 퀸, 에이스. 그리고 이제까지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조커.
그들 4인이 AOA의 멤버들에 관한 모든 정보를 알고 있다.
“차은성의 뒤에…….”
새뮤얼의 말에 캐서린 부의장이 확신의 눈빛을 띠었다.
“틀림없어!”
그녀를 포함하여 4인 중 한 명이 차은성에게 AOA에 관한 모든 정보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차은성을 이용하여 조직의 핵심 멤버들과 최상층부의 인사들을 지금 제거하고 있다.
캐서린 부의장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결국 우려하던 대로 조직의 향후 향방을 두고 권력 쟁탈이 일어난 거야.”
캐서린 부의장이 진한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새뮤얼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캐서린 부의장이 말했다.
“루이 고머트가 운용하던 자금은?”
“약 70% 정도를 바하마와 룩셈부르크. 그리고 벨기에 등지로 빼돌렸습니다.”
“흠. 70%라…….”
“최선을 다했습니다.”
새뮤얼 흄즈의 말에, 캐서린 부의장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새뮤얼 흄즈는 침묵하며 생각하기 시작하는 캐서린 부의장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 * *
이제까지 AOA는 킹, 퀸, 에이스. 이렇게 3인의 삼두체제였다.
내부적으로 3인을 따르는 고위 멤버들이 일종의 파벌을 형성. 서로 경쟁하고 암투를 벌이며 이른바 파워 게임을 해 왔다.
그런데 그것이 본격화되었다.
AOA를 장악하기 위한, 멤버들의 죽음을 전제로 한 권력 다툼이 일어나고 말았다.
패배하면…….
죽는다!
중립은 없다.
살고자 한다면 차은성 뒤에 있는 존재에게 머리를 숙이고 수하가 되기를 자청해야 한다. 그리고 자비를 구해야 한다.
그와 같은 굴종이 싫다면.
죽음을 각오하고 차은성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입을 다문 새뮤얼이 캐서린 부의장을 보았다.
캐서린 부의장은 고개를 숙여 무엇인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머리가 매우 복잡할 것이다. 이제까지 그녀가 누리던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
반대로.
부의장에서 의장으로 올라서며 미국 정가의 차세대 주자로 발돋움할 수도 있다.
대통령은 다소 무리지만. 흑인 여성 부통령 정도는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운이 좋다면.
대통령이 임기 내에 사임하거니, 부득이하게 직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된다면!
부통령이 남은 대통령의 임기를 물려받으며 사실상 미합중국의 대통령이 된다.
―세계 최강대국의 대통령!
그것은 지구상 최고의 권력을 의미한다. 하여 캐서린 부의장은 아주 오래전부터 그 권력을 추종해 왔다. 오로지 그녀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 * *
며칠 후.
루이 고머트의 저택이 경찰들과 FBI라는 단어가 선명한 조끼를 입은 FBI 요원들로 매우 북적였다.
헤지펀드 시타델의 최선임 자금 운용 책임자 루이 고머트.
그의 죽음을 뒤늦게 인지한 경찰과 FBI였다.
그 때문에 서둘러 수사에 나섰지만, 이미 상당한 시일이 지나 이렇다 할 단서가 될 만한 것을 건지진 못했다.
* * *
붉으락푸르락하는 하비에.
“지금 뭐하자는 거야!”
버럭 고함쳤다.
폭탄이 사용되어 혹 차은성과 관련이 있지 않나 싶어 현장을 찾았다. 그런데 결과는…….
0!
아무것도 건지지 못했다.
시빌라는 한숨을 쉬더니.
“휴우.”
오른쪽에 서 있는 휴고를 돌아보았다.
시빌라는 말없이 무언의 눈으로 휴고에게 도움을 청했다.
―뭐, 건진 거 없어요?
시빌라의 무언의 물음을 알아챈 휴고는 할 말이 없어 침묵했다.
“…….”
하비에가 그런 휴고를 돌아봤다.
“휴고.”
휴고가 기다렸던 듯 재빨리 말했다.
“루이 고머트는 제 리스트에 없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번 사건이 차은성과 관련이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휴고의 말이 끝나자마자 시빌라가 말했다.
“폭탄이 사용되었어요.”
휴고가 시빌라를 돌아보았다.
“폭탄이 사용되었다고 해서 차은성이 그랬다고 단정 지을 순 없지 않습니까? 그런 결론을 내는 것은 일정 틀 안에 차은성을 끼워 맞춰 넣으려는 편견입니다. 그래서는 차은성을 찾을 수도, 체포할 수도 없습니다.”
휴고의 말에, 하비에가 목청을 높였다.
“휴고!”
휴고가 하비에를 돌아보았다.
“차은성이 루이 고머트 사건과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이 확실해?”
“그건 저도 아직 모르겠습니다.”
“뭐?”
하비에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가 있어야 분석이라도 하죠. 아무것도 없습니다.”
“…….”
“그나마 있는 거라고는 폭탄이 터지고 몰려든 몇몇 경호원들의 진술이 답니다. 그걸 가지고 저더러 뭘 분석하라는 겁니까?”
휴고가 하소연했다.
하비에가 엄청 답답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에이!”
짜증 내며 오른쪽으로 돌아섰다.
그 모습에 시빌라가 휴고를 돌아보았다.
“그 경호원들 진술에 따르면 하늘에서 폭탄이 떨어진 것 같다고…….”
시빌라의 말에 하비에가 흠칫하더니 돌아보았다.
그러자 휴고가 짧게 한숨을 쉬었다.
“휴.”
천천히.
휴고가 하비에와 시빌라를 번갈아 보았다.
“폭탄의 종류를 알아야 어떤 수법을 사용했는지 추측이라도 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폭탄이 터진 직후도 아니고, 폭탄이 터지고 한참 지난 지금. 폭탄의 종류를 알 수 있는 단서는 하나도 없습니다. 아닌 말로다가 파편이라도 몇 수거해서 분석해 보면…… 몇몇 폭탄으로 특정 범위를 한정지을 수도 있습니다만. 지금은 파편이……!”
휴고는 엄청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전 멀린 같은 마법사가 아닙니다. 팀장님.”
휴고가 하소연하듯이 말하며 하비에를 바라보았다.
멀쑥해진 하비에다.
그러자 시빌라가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말하며 왼쪽을 뒤돌아보았다.
“헤지펀드 최선임 자금 운용 책임자 연봉이 도대체 얼마나 되기에…….”
시빌라가 루이 고머트의 연봉을 언급했다.
그러자 휴고가 흠칫했다.
그사이.
시빌라가 의아한 목소리로 계속 말했다.
“듣자니, 경호원들에게 매달 기본급으로 5천 달러를 지급했다고 하던데…… 저택도 저택이지만…… 마치 마약 조직의 두목 같지 않아요?”
시빌라가 의문을 내비쳤다.
그녀의 말에 하비에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의심스러워.”
휴고는 천천히 오른쪽으로 돌아서더니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하비에와 시빌라가 그런 휴고를 보더니 영문 몰라 했다.
“휴고.”
“어디 가요?”
휴고가 걸어가며 대꾸했다.
“루이 고머트의 거래 은행이요. 지난 몇 년 동안의 루이 고머트의 금융거래 내역을 살펴보면 뭐라도 건질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자 하비에와 시빌라가 서로 돌아보더니 이내 휴고에게 돌아섰다.
하비에와 시빌라는 급히 휴고를 뒤쫓았다.
“휴고.”
“같이 가요.”
휴고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흠. 주거래은행이…….’
헤지펀드의 최선임 자금 운용 책임자인 루이 고머트.
그의 금융거래 내역에 휴고는 마음 한구석으로 들떴다.
‘틀림없이 장난을 쳐 놨을 거야.’
휴고는 자금 흐름을 염두에 뒀다.
사람들은 간혹 자금 흐름을 간과하는데, 자금 흐름만 확실히 파악할 수 있다면 의외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매달 규칙적으로 특정 상품을 구매한다면 구매자의 쇼핑 취향을 알 수 있다.
아마존과 같은 인터넷 쇼핑을 즐기는지, 아니면 TV 홈쇼핑을 즐기는지. 그도 아니면 각종 소셜 네트워크를 즐기는지 등.
많은 정보를 파악, 획득할 수 있다.
그와 같은 정보가 실제인지, 아니면 자금을 어딘가로 빼돌리기 위한 위장인지 등등.
이런저런 흥미로운 것들을 다수 알아낼 수 있다.
휴고는 루이 고머트의 금융거래 내역을 통해, 단서가 될 만한 정보를 찾으려 했다.
과연 휴고의 마음대로 될지…….
* * *
며칠 후, 워싱턴 DC.
스프링 밸리 에비뉴에 위치한 ×× 동양 푸드 마트.
매건이 쇼핑 카트를 밀며 천천히 진열대를 지나가고 있었다.
지나가는 진열대 좌우에 있는 것은 죄다 아시아 푸드였다.
통조림이나 박스. 그리고 파우치 형태로 단단히 밀봉 및 포장되어 있었다.
매건은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로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내가 아시아 음식을 사게 될 줄이야.”
차은성 때문에 부득불 아시아 푸드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라면, 진공포장 된 수제비, 3분 카레 등등.
지극히 한국적인 입맛을 가진 차은성이 햄버거에 질색팔색 했다. 심지어는 비프스테이크까지 강력하게 거부했다.
―더는 못 먹어! NO!
그 때문에 부득불 아시아 푸드를 구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메이드 인 코리아!
차은성이 아시아 푸드 중에서 한국산이 아니면 절대 사지 말라고 신신당부한 까닭에, 매건은 은근 쇼핑이 짜증 났다.
* * *
잠시 뒤.
아시아 푸드로 1/3쯤 찬 카트를 밀며 매건이 막 식품 코너를 지나칠 때였다.
우연히 진열창에 누군가가 비쳤다. 거울 역할을 하는 진열창을 무심코 본 매건이 일순 흠칫했다.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
매건은 긴장했다.
그녀의 얼굴이 이내 경직되고 경계의 눈빛을 번득였다.
고든의 경고가 있었다.
‘한국 ADD와 접촉하며…… 보안 유지가 어려워. 그러니 조심해. 나뿐만 아니라 너도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마!’
매건은 고든의 말을 상기하며 진열창의 제품을 보는 척하며 주위를 신중하게 살폈다.
‘이런!’
세 개의 시선이 느껴진다.
세 명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다.
‘감시?’
매건이 숨죽였다.
언제 자신에게 미행이 붙었는지 모르겠다. 이대로 쇼핑을 끝내고 안전 가옥으로 돌아간다면 자신이 지금 감시하는 이들을 안가로 안내하는 꼴이 된다.
매건은 고든에게 연락. 지금 감시당하고 있음을 알릴 필요를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