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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S의 천재 스파이 (191)화 (191/208)

NIS의 천재 스파이 (191)

헬기 추락의 비밀은 피아노선이다.

눈에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느다란 피아노선은 과열되면 녹는다. 그리고 아교처럼 매우 끈적끈적해진다.

구동축에 둘둘 말아 둔 피아노선이 녹으며 순간접착제처럼 구동축에 달라붙어 굳어졌다.

그 바람에 구동축의 회전이 멈췄다.

그렇게 되자.

로터의 회전이 되지 않고, 눈 깜짝할 사이에 양력을 상실한 헬기는 곧장 지면으로 추락할 수밖에 없었다.

차은성은 걸어가며 FAA, 미 연방 항공국을 생각했다.

항공사고가 났으니 응당 미 연방 항공국에서 조사에 나설 것이다. 하지만 항공사고의 조사는 아무리 빨라야 2, 3년은 걸린다.

그 시간이면.

모든 것이 다 끝나 있을 것이다.

차은성은 걸어가며 매건을 생각했다.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군.’

별도의 임무를 맡겼다.

―뉴욕주 공화당 상원 의원 찰리 발레리오와 카부치 사모펀드의 최고 경영 책임자인 모레오 카부치.

두 사람의 처리를 매건에게 일임했다.

“후후.”

차은성은 나지막한 웃음을 흘리며 계속 걸어갔다.

*    *    *

몇 시간 후.

일반 수영장의 2, 3배는 됨 직한 규모의 야외 풀장.

얼핏 보아서는 작은 규모의 수영 대회를 열어도 될 듯하다.

“호호호.”

“깔깔깔.”

거의 벗다시피 한, 비키니를 입은 다양한 인종의 미녀들이 풀장 곳곳에서 서로 어울리며 웃고 떠들었다.

꽤 많은 수의 남자가 비키니 미녀들을 상대하며 환심을 사려 했다.

척 봐도 파티 중임을 알 수 있다.

영화나 미드에서 볼 법한 광경을 풀장 여기저기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다.

풀장이 한눈에 보이는 위치에 자리한 몇몇 선베드.

그중 하나에 느긋하게 드러누운 장년인.

뉴욕주 상원 의원 찰리 발레리오.

세월에는 어쩔 수 없는지. 똥배가 나온 찰리 발레리오.

가슴털이 무성하여 보기에 징그럽다. 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찰리 발레리오는 왼손을 뻗어 한 글라스 잔을 집어 들었다.

―Cooler.

술, 설탕, 레몬 등을 넣은 칵테일이다.

찰리 발레리오는 쿨러 잔을 천천히 입으로 가져갔다.

이내.

서너 모금 마시는 찰리 발레리오의 오른쪽으로 한 사내가 다가와 섰다.

기척에 입에서 잔을 떼며 돌아보는 찰리 발레리오.

눈에 들어오는 서 있는 이.

모레오 카부치.

그가 찰리 발레리오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의원님.”

“여어, 모레오. 끝내주는 파티야.”

찰리 발레리오가 말하며 웃자.

“하하하. 감사합니다.”

모레오가 말하며 찰리 발레리오의 왼쪽으로 걸어갔다.

이내.

한 선베드에 앉더니 손을 뻗어 글라스를 하나 집어 들었다.

―계란과 우유를 사용한, 미국 남부 스타일의 파티 칵테일 에그노그.

모레오 카부치가 에그노그를 천천히 마시며 찰리 발레리오를 보았다.

“일전에 말씀드린 아르헨티나…….”

“그 건은 나중에 얘기하자고. 지금은 파티를 즐기고 싶으니깐.”

찰리 발레리오가 모레오 카부치의 말을 중간에서 막아 버렸다.

어색해진 모레오 카부치가 웃었다.

“하하하.”

어색함을 떨치려는 의도적인 웃음이었다.

‘젠장.’

모레오 카부치는 내심 짜증이 났다.

찰리 발레리오의 도움이 필요하다.

아르헨티나 쪽에서 생긴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치적인 교섭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 정계 쪽에서 상황 반전이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찰리 발레리오 상원 의원이 움직여 줘야 한다.

미 상원에서 아르헨티나 정계 쪽에 메시지를 전해 주어야 하는데. 그걸 위해서는 찰리 발레리오 의원을 회유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때문에 지금 이 파티에 찰리 발레리오를 초대했다. 그런데 찰리 발레리오 상원 의원은 파티를 즐길 생각뿐이다.

모레오 카부치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찰리 발레리오 의원과 아르헨티나에 관해 심도 있는 대화를 아주 자연스럽게 나누고 싶은데…….

그의 뜻대로 되지 않아 은근 속상하다.

모레오 카부치는 다시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부드러운 에그노그를 마시며 모레오 카부치는 가만히 찰리 발레리오 상원 의원을 보았다.

어떻게 구워삶을까?

모레오 카부치가 그렇게 염두를 굴리는 동안.

찰리 발레리오 의원이 쿨러를 마시며 풀장을 보았다.

거의 벗다시피 한 비키니 미녀들.

찰리 발레리오 상원 의원의 두 눈동자가 이루 말할 수 없이 끈적끈적해졌다.

여자를 탐하는 전형적인 ×× 중독자 같은 모습이었다.

찰나.

“흑!”

정색하듯이.

찰리 발레리오 상원 의원의 얼굴이 확 변했다.

핏기가 빠르게 사라지고, 분을 바른 듯이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눈동자는 더할 나위 없이 크게 부릅떠지고 몸을 가늘게 떨기 시작했다.

부그르르.

찰리 발레리오 상원 의원이 입에 거품을 물기 시작했다.

척 봐도 몸에 문제가 생겼음을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의원님!”

모레오 카부치가 찰리 발레리오 상원 의원을 보고 놀라 벌떡 일어나려 했다.

그런데…….

“윽!”

일어나던 모레오 카부치가 돌연 얼굴을 찡그리더니 오른손을 들었다. 손으로 심장을 움켜쥐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심장마비를 연상케 한다.

“끄으으…….”

모레오 카부치가 돌연 신음을 흘리는가 싶더니 몸이 앞으로 기우뚱 숙여졌다.

순간.

쿠당탕.

모레오 카부치가 꼬꾸라졌다.

바닥에 쓰러져 몸을 떠는 모레오 카부치와 찰리 발레리오 상원 의원.

두 사람을 본 주위에 있는 이들이 일순간 비명을 지르는 한편, 고함을 치기 시작했다.

“꺄아아악!”

“상원 의원님!”

“911!”

“모레오!”

그들은 황급히 찰리 발레리오와 모레오 카부치에게 다가갔다.

대번에 파티가 중단되고 사람들이 모여들며 급격히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웅성웅성.

그런 사람들 사이에 서서 찰리 발레리오와 모레오 카부치를 바라보는 비키니 차림의 매건.

은연중에 의기양양한 눈빛을 띠었다.

*    *    *

오후 늦게.

텍사스 서부 정유의 최고 경영 책임자 맥코이 오라마스.

찰리 발레리오 상원 의원.

모레오 카부치.

세 사람의 죽음이 하비에에게 보고되었다.

“뭐라고?”

하비에는 고함치며 앉은 의자를 박차고 벌떡 일어났다.

책상 너머에 서 있는 시빌라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하비에를 보았다.

“현재 사고 헬기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이고, 찰리 발레리오 상원 의원의 사인에 관해서도 역시 조사 중입니다.”

“…….”

“한 가지 이해가 안 되는 것은 모레오 카부치의 죽음입니다. 그는 차은성과 이렇다 할 접점이 없는 이인데, 무엇 때문에 죽인 것인지…….”

시빌라가 모레오 카부치의 죽음에 의문을 내색했다.

휴고가 선별한 세 사람 중에 모레오 카부치는 없었다.

그런데 죽었다.

차은성이 노린다고 의심이 되던, 가장 확률이 높았던 세 명의 명사.

그들 중에는 찰리 발레리오 상원 의원, 맥코이 오라마스가 포함되어 있다.

그런 이유로 두 사람의 죽음에 의문을 느끼진 않았다.

“가만, 가만.”

하비에가 양손을 가슴 높이로 들며 고개를 숙였다.

생각하기 시작하는 하비에. 곧 머리를 바로 들며 양손을 내렸다.

뭔가…….

느낌 같은 것이 오는 것 같은데, 그것이 명확하지가 않다. 뿌옇게 흐린 안개 속을 바라보는 그런 기분이다.

한편.

시빌라가 유심히 하비에를 바라보았다.

*    *    *

잠깐이란 시간이 지나고.

하비에가 시빌라를 보았다.

“시빌라.”

“네.”

“이렇게 되면 지금 뉴욕에 차은성이 와 있다는 말이 되겠지?”

“네.”

시빌라가 대답하며 어리둥절해했다. 하비에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그녀는 알 수가 없어 어안이 벙벙했다.

한편.

하비에가 뚫어져라 시빌라를 보더니 천천히 물었다.

“어디에 있는지 알아낼 수 없을까?”

기대의 감정을 감추지 않는 하비에.

시빌라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팀장님.”

“…….”

“뉴욕의 상주인구만 가볍게 8백만 명이 넘어요. 수백만 명이 살아가는 대도시에서 단 한 명을 어떻게 찾아낼 수 있겠어요.”

“…….”

“뭔가 단서가 있어야 어디에 있는지 추적이라도 해 보죠. 현재 단서가 하나도 없어요.”

“혹, 휴고의 도움을 받으면?”

“팀장님. 휴고가 무슨 전지전능한 예언자는 아니잖아요?”

“그래도 분석력 하나는 끝내주잖아.”

“무리예요. 팀장님.”

“그래도 어떻게 수를 생각해 봐. 뉴욕에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찾아내지 못한다는 게 말이 돼?”

하비에가 언성을 높였다.

“잡긴 잡아야 하는데. 저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휴우우.”

시빌라가 한숨을 쉬며 답답하다는 기색을 지었다.

차은성이 뻔히 뉴욕에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뉴욕 경찰을 총동원한다고 해도, 현재로서는 차은성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알기 어려워요.”

시빌라가 안타까운 목소리로 하비에에게 말하자, 하비에는 온몸으로 진한 아쉬움을 피력했다.

“망할!”

차은성과 뉴욕이란 동일 공간에 지금 있다. 하지만 뉴욕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그것이 이만저만 화가 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달리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부아가 이만저만 치미는 것이 아니다.

하비에는 격한 표정을 지었다.

시빌라는 그런 하비에를 바라보며 답답하다는 속내를 훤히 드러냈다.

*    *    *

펜트하우스.

차은성은 직접 끓인 라면 냄비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이어.

총각김치를 왼쪽에, 스프라이트 플라스틱 병을 오른쪽에 내려놓았다.

그런 다음.

소파에 앉아 젓가락을 손에 쥐며 전면 유리벽을 바라보았다.

창밖 스카이라인이 한눈에 다 들어왔다.

차은성은 야참으로 끓인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젓가락으로 면을 끌어 올리고.

후후.

입김을 불어 뜨거운 면발을 식혔다.

‘세상 참 좋아졌어. 미국에서 한국처럼 야식으로 라면을 끓여 먹고 총각김치를 먹을 수 있다니.’

차은성은 입안 가득히 면을 넣고 천천히 씹기 시작했다.

늦은 시간에 끓여 먹는 라면 맛은 뭐라 말할 수 없이 좋았다.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맛이다.

야식 중 야식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거기에 아삭한 총각김치가 라면의 맛을 더 끌어올려 준다. 스프라이트는 소화를 도와주고.

차은성은 입안의 라면을 계속 씹으며 창밖을 보았다. 그런 한편으로 고든이 전해 준 정보들을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하비에…….’

자신을 체포하기 위해 조직된 그의 팀이 지금 뉴욕에 와 있다고 한다.

“조심을!”

고든이 주의를 주었다.

절대 FBI에게 꼬리를 밟혀서는, 체포되어서는 안 된다고 고든이 신신당부했었다.

‘음…….’

차은성은 내심 침음을 흘리며 젓가락으로 라면 면발을 다시 끌어 올렸다. 하얀 김을 모락모락 풍기는 면발이 은근 식욕을 자극한다.

후후후.

차은성이 입김을 수여 회 불어 뜨거운 면을 식혔다.

후루룩.

고개를 숙여 흔히 말하는 면치기를 한 후, 입안 가득히 면을 넣고 천천히 씹었다. 그리고 젓가락으로 총각김치를 하나 집어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러자 아삭한 무의 식감이 입안 가득히 퍼졌다.

차은성은 남은 총각김치를 그릇에 내려놓으며 창밖을 보았다.

하비에.

그와 자신의 인연이 어째 각별한 것 같다. 묘한 느낌에 차은성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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