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S의 천재 스파이 (190)
런드월과 수잔은 뭐라 말하지 못했다.
자신들의 뉴욕행 합류를 하비에가 결코 하락하지 않을 심산이다.
그 때문에 난감해진 런드월과 수잔이 은연중에 낭패의 눈빛을 띠더니 급히 서로 돌아보았다.
―어떻게 하지?
런드월과 수잔이 무언의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시빌라, 휴고, 하비에가 서둘러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며칠 후 뉴욕 리버에지.
고급 빌라 하네스 최상층은 펜트하우스답게 매우 넓고 화려했다.
널찍한 3인용 가죽 소파에 앉은 차은성은 앞에 있는 테이블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다양한 서류와 파일. 그리고 사진들.
차은성은 왼손을 뻗어 노트북을 쥐었다. 그리고 자신의 앞으로 노트북을 끌어당기더니 재빨리 키보드를 치기 시작했다.
타타타탁.
* * *
잠시 뒤.
한 인물의 사진과 관련 프로필이 노트북 화면에 나타났다.
텍사스 서부 정유의 최고 경영 책임자 맥코이.
쉰 중반의 중후한 외모의 그가 AOA의 최고위층 중 한 명인 스페이드라는 것을 아는 이는 극소수 중의 극소수다.
“흠.”
차은성은 침음을 흘리며 잠시 동안 노트북 화면에 뜬 맥코이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어떻게 죽여야 할까?
살해 방법을 고심하는 차은성을 두 쌍의 눈동자가 지켜보았다.
차은성의 전면.
수 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미니바를 등지고 서 있는 고든.
차은성의 오른쪽.
커튼이 쳐진 창가에 서서 살며시 밖을 내다보는 매건.
월터 부국장이 차은성에게 붙인 감시자이자 조력자다.
* * *
수십여 분 후.
차은성은 바의 의자에 앉아 얼음이 든 잔을 쥐었다.
천천히.
차은성은 와일드 터키를 음미하듯이 느긋하게 마시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담뱃갑과 라이터를 꺼내,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라이터로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였다.
흡연하며 맥코이를 어떻게 죽일지 고심하는 차은성의 얼굴에서 답답하다는 심정이 살며시 배어 나왔다.
LA와 시카고에서의 일에 경각심을 가진 걸까?
맥코이가 좀처럼 틈을 보이지 않았다.
자택과 맨해튼에 있는 사무실을 헬기로만 오갔다. 그것도 정해진 시간대가 아닌 매우 불규칙한 출퇴근이었다.
그 때문에 이동할 때를 노려도, 언제 맥코이가 헬기로 이동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정해진 동선이 아닌 불규칙한 동선이 암살에 뜻하지 않은 장애로 작용했다.
* * *
잠깐이란 시간이 지나고.
차은성이 빈 잔을 내려놓더니 왼쪽을 돌아보았다.
눈에 보이는, 무심히 앉아 폰을 만지작거리는 고든.
“고든.”
차은성이 그를 불렀다. 그러자 고든이 멈칫하더니 돌아보았다.
천천히.
차은성은 고든에게 무엇인가를 말하기 시작했다.
고든은 어리둥절했다. 차은성이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한편.
소파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는 매건은 차은성과 고든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매건은 궁금한 눈빛을 띠었다.
차은성이 뭐라고 말하기에 고든이 저런 표정을 지을까?
월터 부국장이 차은성을 백업해 주는 한편으로 철저히 감시하라고 말했다.
“절대 마음을 놓아서는 안 돼!”
월터 부국장이 그렇게 신신당부했다.
그와 조나단 대통령이 차은성을 이용하려는 것처럼.
차은성 역시 월터 부국장과 조나단 대통령을 이용하려 했다.
중요한 것은 각자의 이익 추구이고, 원하는 이익의 확실한 충족이다.
각자 최선이라는 결과만 얻으면 된다.
* * *
FBI 뉴욕 지국.
천천히 위에서 내려온 스크롤이 전면 벽을 가렸다.
이내.
하얀 롤을 향해 빛이 조사되고, 일순간 롤은 하나의 대형 화면이 되었다.
화면에는 열두 명의 얼굴이 떠 있었고.
테이블 왼쪽 끝에 앉은 휴고가 화면을 보며 말했다.
“현재 차은성이 노릴 확률이 가장 높은 이들입니다.”
휴고의 말에 테이블 중앙에 앉은 하비에가 오른손 검지로 테이블을 툭툭 건드렸다.
“열두 명이라…….”
테이블 오른쪽 중앙에 앉은 시빌라가 하비에를 돌아보았다.
“많아요. 팀장.”
하비에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
시빌라가 말했다.
“지국의 모든 요원을 총동원할 수는 없어요. 저희가 동원 가능한 지국의 요원들 수는 겨우 서른 명 안팎이에요.”
시빌라가 동원 가능한 인적자원이 한정되어 있음을 언급했다.
“흠.”
하비에는 휴고를 바라보았다.
“휴고.”
하비에가 무엇을 물을지 모를 수 없는 휴고가 돌아보았다.
“무립니다. 더 이상 줄일 수 없는, 최대치의 이들입니다.”
“줄여!”
하비에가 단호하게 말하자.
“팀장!”
휴고가 목청을 높이며 답답하다는 눈빛을 띠었다. 그러자 시빌라가 휴고를 바라보았다.
“서른 명의 요원으로 열두 명을 커버할 수는 없어요. 휴고, 세 명으로 줄여 줘요.”
휴고가 시빌라를 돌아보았다.
“무립니다. 무리라고요. 아시겠습니까?”
“해야 해!”
하비에가 인정사정없이 휴고를 몰아붙였다.
“팀장!”
휴고가 소리쳐 부르며 하비에를 돌아보았다.
“세 명!”
하비에가 찍어 누르듯이 말하며 형형한 눈으로 휴고를 마주 보았다.
“정말!”
휴고가 짜증 내며 의자에 앉아 왼쪽으로 빙글 돌았다. 그 모습에 시빌라가 말했다.
“저 열두 명을 확률 퍼센트로 나누어 가장 확률적으로 가능성이 높은 세 명을 골라 줘요, 휴고.”
휴고가 슬쩍 화면을 보았다.
“첫 번째는 찰리 발레리오. 뉴욕주 공화당 상원 의원…… 두 번째는 매니 바레다. US 뱅코프 맨해튼 지점장…… 세 번째는 텍사스 서부 정유의 최고 경영 책임자 맥코이 오라마스.”
휴고의 말에 하비에가 중얼거렸다.
“정계, 금융계, 재계.”
휴고는 언급한 세 사람이 각기 랜디 아로자레, 제런 듀런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말했다.
“대학 동기이자 정치 파트너이며 재정적인 도움을 주는 이들로…….”
시빌라가 하비에를 돌아보았다.
“팀장님.”
“요원들 붙여. 하루 24시간 내내 교대로 감시하라고 해. 아주 작은 것이라도 이상한 것이 있으면 그 즉시 보고하라고 단단히 일러둬.”
“네.”
시빌라가 대답하며 앉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뒤돌아서는 사이.
휴고가 하비에를 비라보았다.
“어디까지나 짐작일 뿐입니다.”
“난 자네의 분석력을 믿어.”
하비에의 말에 휴고가 멈칫했다.
“정말 사람 할 말 없게 만드시는군요.”
하비에는 항변하는 듯이 말하는 휴고를 보며 부드럽게 작은 미소를 지었다.
씨익.
믿지 못하면 함께 일하기 어렵다!
런드월과 수잔이 그 예시일 것이다.
* * *
이틀 후.
투투투투.
대당 가격이 무려 1천3백만 달러에 달하는 SIKORSKY S―76C 헬기가 유유히 하늘을 비행 중이었다.
넓은 기내 덕분에 탑승 인원이 열둘에서 열네 명에 이른다.
두 명의 조종사가 조종석에 앉아 있었고.
그들의 뒤로 텍사스 서부 정유의 최고 경영 책임자인 맥코이 오라마스가 좌석에 앉아 있었다.
맥코이는 전면에 있는 테이블에 놓여 있는 서류 파일들을 이리저리 뒤적였다.
헬기로 이동 중에도 손에서 업무를 놓지 않았다.
남다른 부를 가지는 대신, 맥코이가 지불해야 하는 대가 중 하나다.
돌연.
헬기가 휘청거리듯이 좌우로 크게 흔들렸다.
맥코이가 움찔하더니 기장을 바라보았다. 뭐라 말하려고 하는데.
“로, 로터가 돌아가지 않습니다.”
부기장이 기겁하듯이 놀라며 오른쪽에 앉은 기장을 돌아보았다.
“침착해!”
기장이 소리치며 급히 왼손을 앞에 있는 계기판으로 뻗으려 했다.
그 순간.
슈우우우우.
헬기가 아래로 뚝 떨어졌다.
동시에 헬기가 빙글빙글 매우 빠르게 원을 그리며 돌기 시작했다.
“우아아아아!”
겁에 질린 부기장이 목이 터져라 고성을 질렀다. 죽음의 공포에 짓눌린 모습이었다.
“정신 차려! 엔진! 엔진! 재가동해! 빨리! 재가동하라고!”
기장이 고래고래 소리치며 왼쪽에 앉은 부기장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기장의 외침은 부기장의 귀에 들리지 않았다.
공포에 짓눌린 부기장은 어쩔 줄 몰랐다.
이성을 잃고 있었다.
죽는다!
죽음이 목전에 와 있다는 자각에 부기장은 공포에 질려 엄청 허둥지둥거렸다.
기장은 악착같이 상황을 바꿔 보려 했다.
“정신 차려!”
고함치며 부기장을 침착하게 만들려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 * *
헬기는 급강하하며 계속 빠르게 뱅글뱅글 원을 그리며 허공을 맴돌았다.
회전하던 로터가 정지하는 바람에 양력을 잃은 헬기는 매우 빠른 속도로 추락하고 있었다.
단순한 추락이 아니었다. 균형을 잃고 헬기 동체가 마구 돌고 있었다. 그 바람에 뒤에 앉은 맥코이는 자세를 바로잡을 수가 없었다. 그는 뭐라 말할 수 없는 두려움에 가득 찼다.
“기장! 기장! 기장!”
쉴 새 없이 기장을 소리쳐 불렀지만 기장의 귀에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기장은 부기장을 침착하게 만들려던 것을 포기하고 직접 몇몇 레버와 계기판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경황이 없는 와중에도 고도계를 보았다. 고도계의 바늘이 요동치며 무서운 속도로 고도가 떨어지고 있었다.
기장은 뭐라 말할 수 없이 절박했다.
틱…… 투욱.
엔진을 껐다 켜기를 수여 회 반복하며 조종간을 힘껏 잡아당겼다.
기장은 빙글빙글 도는 헬기의 회전을 멈추는 한편으로 균형을 잡으려 하였다. 또한 로터가 다시 돌아가도록 만들려 애썼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엔진과 이어진 구동축에 의해 돌아가는 로터는 어떻게 된 일인지 작동을 멈췄다. 그 바람에 헬기는 허공에서 이리저리 나부끼는 나뭇잎처럼 빙글빙글 계속 맴돌았다. 그리고 하염없이 매우 빠르게 추락하고 있다.
“안 돼에에!”
기장은 목이 터져라 외쳤다.
헬기는 일반 전투기와 달리 조종석 사출장치가 없다.
전투기의 경우 비상 탈출 레버를 당기면 위로 치솟으며 이내 낙하산이 펴지지만. 불행히도 헬기는 로터 때문에 그와 같은 사출이 불가능하다.
러시아의 몇몇 헬기의 경우. 사출장치가 설치되어 있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헬기에 사출장치가 설치되어 있지 않다.
헬기는 한없이 아래로 추락하더니 뭘 어떻게 할 겨를도 없이 순식간에 지면에 부딪치고 말았다.
콰아아아앙!
폭음과 함께 폭발의 화염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그런 한편으로 폭발로 인한 파편이 역시 사방팔방으로 날아갔다.
* * *
멀리서 망원경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며 서 있는 차은성.
씨익.
미소 지으며 망원경을 내렸다.
만족스러웠다.
의도한 대로 맥코이를 암살하는 데 성공했다.
차은성의 왼쪽에 서 있는 고든이 망원경을 내리며 차은성을 돌아보았다.
“완벽한 항공사고로군요.”
경탄의 목소리였다.
놀랍다!
고든이 은연중에 무언으로 그렇게 말하는 듯하다.
차은성이 고든을 돌아보더니 소리 없이 부드럽게 웃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고든이 물었다.
차은성은 말없이 뒤돌아섰다.
“Mr 차!”
고든이 따라 돌아서며 차은성을 소리쳐 불렀다.
“…….”
차은성은 고든을 돌아보지도, 뭐라 말하지도 않았다.
“어떻게 한 겁니까?”
고든이 뒤에서 소리쳐 재차 물었다.
차은성의 대답은 없었다.
천천히.
말없이 앞으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