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S의 천재 스파이 (185)
17 위원회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리더니.
“틀린 말은 아니야.”
하비에가 시빌라를 바라보았다.
“시빌라.”
“네.”
“지금 당장 시카고로 갈 준비를 하라고 팀원들에게 통보해.”
“…….”
“난 비즈니스 제트기의 사용 승인을 국장님께 받아 낼 테니깐.”
“네.”
시빌라의 대답을 뒤로하고 하비에가 급히 문으로 걸어갔다.
미국은 넓다.
달리 대륙이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다.
긴급을 요하는 경우. 가장 빠른 교통수단은 항공이다.
그런 이유로 FBI는 다수의 비즈니스 제트기를 보유하고 있다.
걸프스트림, 세스나 사이테이션, 봄바디어 글로벌 시리즈 등 최다 대당 가격이 거의 1천만 달러에 이르는 고가의 기체들이다.
달리 보면.
FBI의 연간 예산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그 일면을 미루어 짐작하게 하는 기종들이기도 하다.
휴고는 문으로 걸어가는 하비에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내 생각이 틀렸나?’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긴가민가하는 눈빛을 띠었다.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
휴고는 방금 전까지 주의하며 은근슬쩍 하비에를 떠봤다.
한편.
시빌라가 휴고를 돌아보았다.
“휴고.”
휴고가 시빌라를 돌아보았다.
의아한 빛을 띤 휴고의 두 눈동자.
왜 자신을 부르냐고?
휴고의 눈동자가 시빌라에게 무언의 물음을 던졌다.
그사이.
시빌라가 주저하더니 휴고에게 말했다.
“사용한 총기가 달라요.”
휴고가 일순 흠칫했다.
“달라요?”
반문에 시빌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전에는 M24 저격 소총이었는데, 이번에 시카고에서 사용된 소총은 뜻밖에도 L42A1 저격 소총이었어요. 영국군의 제식 스나이퍼 소총으로…….”
시빌라가 간략하게 L42A1 저격 소총에 관해 설명했다.
그러자 휴고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끝을 흐렸다.
“내가 총기에 좀 약해서…….”
은근 보다 자세한 설명을 시빌라에게 요청했다.
알아챈 시빌라가 수십여 초 동안 설명해 주었다.
“……90년대에 퇴출된…… 총기 연한이 30년이 넘은 구형 저격 소총이에요.”
시빌라는 의문을 감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 훤히 드러냈다.
한편.
시빌라의 말에 휴고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30년 전의 총기를…….”
휴고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해가 안 된다!
저격 소총은 여타의 다른 총기와 다르다. 높은 안정성과 정확성을 요구한다.
또한.
그 어떤 악조건에서도 사격이 가능해야 한다.
보통 저격수라면.
누구나 돈이 얼마가 들든 최고 성능의 저격 소총을 소유하기를 원한다.
그런데 30년 전의 저격 소총이라니.
휴고가 진한 의문을 내비치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동안.
타다닥.
시빌라가 서둘러 문으로 뛰어갔다.
CIA에서 차출, 파견 나온 런드월과 수잔에게 시카고 출장을 급히 알려야 한다.
* * *
캐나다 온타리오 주사비나 출입국 사무소.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정복을 입은 두 직원이 좌우에 서서 사람들의 여권을 체크 중이다.
차은성은 사람들 사이에 서서 자신의 차례가 오기를 기다렸다.
* * *
얼마 후.
차은성은 오른쪽에 서 있는 직원에게 걸어가 서며 여권을 건넸다.
직원이 여권을 받아 들며 차은성의 얼굴을 유심히 관찰하듯 살펴보았다.
“제 얼굴에 뭐가 묻었습니까?”
차은성이 태연하게 물었다.
직원이 피식 웃더니.
“아닙니다. 며칠 전에 시카고에서 테러로 의심되는 사건이 있어서…… 우리 캐나다의 입국이 강화되었습니다.”
라고 말했다.
겉으로 보기에 차은성은 태연했지만, 내심 놀랐다.
‘의외로 빠른데.’
미국과 캐나다의 정보 공유가 생각 외로 빠른 것 같다. 그리고 시카고에서의 일에 대한 캐나다의 대응이 의외로 신속하다.
캐나다가 시카고에서의 일에 관심이 없거나 모를 줄 알았는데…….
‘흣. 그래도 좋은 정보를 건졌어.’
차은성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런 한편으로.
자신의 감정을 추슬렀다.
캐나다 출입국 사무소 소속 직원이 이상하게 느끼지 않도록 얼굴 표정과 눈빛에 신경 썼다.
조금이라도 티를 내면 직원이 이상하게 여길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입국을 매우 깐깐하게 밟으려 할 것이다.
그러니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자신과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무언으로 말하듯.
관심이 없다는 인상을 직원에게 주어야 한다.
차은성은 이렇다 할 얼굴 표정을 짓지 않았다.
무심하고 무표정했다.
빨리 끝났으면…….
의도적으로 지루하다는 속내를 내비쳤다.
한편.
직원이 여권을 살폈다. 별 이상한 점은 없었다.
이내.
직원이 차은성에게 여권을 돌려주었다.
“즐거운 여행 되십시오.”
직원의 말에.
“탱큐.”
차은성이 간결하게 대꾸하며 여권을 받아 들었다.
옆으로 돌아서며 빠른 걸음으로 출입국 심사대를 통과했다.
캐나다 입국은 별문제 없이 이루어졌지만, 리샤오와 만나기로 한 몬트리올까지의 이동이 문제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할 경우 흔적이 남을 수밖에 없다.
차량을 렌트할 경우도 마찬가지다.
불가피하게 렌터카 업체 직원을 대면해야 한다. 하면 직원이 자신을 기억할 것이다.
그렇다고 차량을 훔쳐 몬트리올까지 갈 수도 없다.
필히 차량 도난 신고에 이어 해당 도난 차량이 즉각 수배될 테니깐 말이다.
쥐도 새도 모르게 감쪽같이 몬트리올로 이동해야 하는데. 어떻게 이동해야 할지 모르겠다.
차은성은 천천히 걸으며 CIA를 생각했다.
힐긋.
차은성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대기권 밖.
위성 감시 시스템이 작동 중일지도 모른다.
9.11 이후, CIA의 감시 시스템이 대폭 강화되었다.
지금은 자신이 캐나다에 있지만.
미 본토에서 CIA의 감시 시스템은 가히 맹위를 떨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강력한 위력을 발휘한다.
* * *
둥근 원탁에 열일곱 명의 남녀가 둘러앉았다. 그들의 연령대와 성별은 각기 달랐다.
원탁에서 멀찍이 떨어진 뒤.
벽을 등지고 일단의 사내들이 서 있었다. 그들 모두 검은 정장 차림이었다.
원탁 중앙에 앉은 장년인이 매서운 눈초리로 오른쪽 세 번째 의자에 앉은 중년인을 돌아보았다.
“다들 시카고에서 우리 멤버들이 차은성이라는 자에게 죽은 것을 들어 알 것입니다.”
장년인이 격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의 발단은…… 분별없이 독단으로 하트가 차은성을 제거하려고 하였기 때문에…….”
장년인이 노골적으로 중년인 하트를 비난했다.
원탁에 앉은 이들은 장년인의 말에 놀라는 한편, 당황하여 몸을 움찔거렸다.
보란 듯이.
의장인 킹이 중년인 하트를 비난할 줄은 미처 몰랐다.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다.
그간 수면 아래에 있던 위원회 내부 갈등이 표면화되는 것은 아닌지.
원탁에 둘러앉은 이들.
각 위원들은 은연중에 우려라는 감정을 얼굴과 눈동자에 띄웠다.
장년인.
의장인 킹이 차은성의 일을 빌미로 그간 눈에 거슬렸던 하트를 아무래도 제거하려고 하는 듯하다.
한편.
중년인 하트는 당황했다.
“킹!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서둘러 항의했다.
졸지에 조직의 멤버들이 죽은 것에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그만 몰리고 말았다.
중년인 하트의 입장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위기에 처한 상황이다. 그 때문에 중년인 하트는 매우 마음이 급했다.
위기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중년인 하트가 장년인을 향해 언성을 높였다.
“킹!”
“…….”
“차은성을 제거하려고 한 것은 그자가 너무 깊숙이 조직을 파고들어…….”
중년인 하트의 변명을 장년인 킹이 말없이 듣고만 있었다.
장년인 킹은 천천히 원탁에 둘러앉은 위원들을 돌아보았다.
위원들 중에는 자신의 사람도 있지만 적대적인 다른 파벌에 속한 위원도 있다.
장년인 킹은 그 점을 염두에 두었다.
이윽고.
중년인 하트의 말이 끝나자마자 장년인 킹이 위원들에게 말했다.
“애초 조직은 와히브의 유전에 깊은 관심이 있었으나…… 제1왕위 계승권자인 무샤드 왕자에 대한 암살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원탁에 앉은 위원들이 침묵했다.
“…….”
그 누구도 입을 떼지 않았다.
한편.
중년인 하트는 장년인 킹의 말에 급격히 당황하며 서둘러 위원들에게 뭐라 말하려 하였다.
하지만 장년인 킹이 멈추지 않고 계속 말하고 있어, 그의 말을 자를 수 없었다.
자른다면…….
위원회의 내부 규약 위반이다. 그에 대한 견책이 만만치 않다.
그사이.
킹이 계속 말했다.
“그런데 하트가 조직의 행사를 이용하여 무샤드 왕자를 제거하고 친분이 있는 마제드 왕자를 와히브의 왕으로 만들려 하였습니다.”
“…….”
“이는 명백히!”
“…….”
“조직을 이용해 자신의 개인적인 이익을 도모하는 행위입니다.”
“…….”
“차은성을 제거하고자 하였다면!”
“…….”
“뒤탈 없이 깔끔하게 처리했어야 합니다.”
“…….”
“한데 하트는 그렇게 하지 못하였고. 그 때문에 조직의 멤버들이 차은성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
“그로 인한 조직의 피해가 예상 밖으로 큽니다. 무시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장년인 킹이 매우 적대적인 눈으로 중년인 하트를 흘겨보았다.
“하트는 명백히 관련 책임을 져야 합니다!”
장년인 킹이 힘주어 말했다.
중년인 하트를 이번 기회에 반드시 죽여 없애 버리겠다고.
단단히 결심한 눈치다.
중년인 하트가 장년인을 소리쳐 불렀다.
“킹!”
장년인 킹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다시금 원탁에 앉은 위원들을 한 명씩 바라보았다.
“제게 부여된 권한으로…… 하트의 처리를 위원회의 공식 안건으로 지금 올리고자 합니다.”
일사천리였다.
장년인 킹이 말하기가 무섭게 중년인 하트가 앉은 의자를 박차고 벌떡 일어났다.
“킹!”
주위가 떠나가라 크게 소리쳤다. 그 때문에 원탁에 앉은 위원들이 놀라 흠칫거렸다.
장년인 킹은 태연했다.
흔들림이 없었다.
중년인 하트가 어떻게 나올지 훤히 예상한 눈치다.
장년인 킹이 살의 충만한 눈으로 일어나 선 중년인 하트를 바라보았다.
지독히도 차가웠다!
중년인 하트가 항변하듯이 크게 소리쳤다.
“나는 조직의 이익을 위해서 그랬던 겁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차은성이 계속 조직의 이익을 침해하고 조직의 행사를 방해한 것을 말입니다.”
장년인 킹은 침묵했다.
“…….”
일절 말하지 않았다.
이미 중년인 하트의 제거를 기정사실화한 듯.
장년인 킹은 그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에게 아무리 말해 봤자 소용이 없다는 것을 인지한 중년인 하트가 급히 원탁에 앉은 위원들을 돌아보았다.
“난!”
“…….”
“조직의 이익을 극대화하고자 하였을 뿐!”
“…….”
“조직의 행사를 이용해 내 개인 이익을 챙긴 적이 없다는 것을 다들 믿어 주시오!”
중년인 하트가 흥분한 목소리로 목청이 터져라 크게 말했다.
한데.
원탁에 둘러앉은 위원들은 하나같이 장년인 킹처럼 차가웠다.
사전에 장년인 킹과 모종의 교감이 있었는지.
아니면.
무슨 약속이라도 한 듯이.
장년인 킹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태도로 중년인 하트를 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