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S의 천재 스파이 (184)
“산토스와 돈 파블리코는 차은성을 죽이려고 한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얀톤은 이유가 불명확합니다.”
휴고의 연이은 물음에.
“…….”
하비에는 침묵하며 진한 의문의 눈빛을 띠었다.
“그리고 시빌라 요원이 말한 랄프라는 자를 차은성은 왜 죽였을까요?”
“…….”
“죽인 후에 뒤처리를 확실히 하지 않고 왜 그냥 내버려 두었을까요?”
“…….”
“당시 브라운이라는 식당 주인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차은성은 브라운을 죽이지 않고 살려 두었습니다. 왜 브라운을 죽이지 않았을까요?”
“…….”
“차은성은 어디서 JK. 시먼스 국장이 마크트웨인 주립공원에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을까요?”
“…….”
“그리고 JK. 시먼스 국장을 호위하던 중무장한 용병들.”
“…….”
“분명 누군가가 고용했을 겁니다. 그런데 대관절 무슨 이유로, 왜 시먼스에게 그들을 붙였을까요?”
휴고는 하비에에게 계속 의문을 던졌다.
“JK. 시먼스 전 CIA 부국장은 이미 적색 수배가 내려진 잡니다.”
“…….”
“잡혀도 오래전에 잡혔어야 하는데. 죽기 직전까지 그는 잡히지 않았죠.”
“…….”
“대체 누가, 왜, 무엇 때문에 뒤에서 JK. 시먼스를 케어해 주었을까요?”
“…….”
휴고는 느낀 의문점들을 남김없이 과감하게 하비에에게 쏟아 냈다.
의문점이 하나둘이 아니다.
휴고가 쏟아 내는 의문점들에 하비에가 부지불식간에 미간을 찡그렸다.
이내.
살이 접히고 몇몇 주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나둘이 아닌 다수의 의문점에 하비에의 머릿속이 삽시간에 매우 복잡해졌다.
그런 하비에의 심중을 알아챘을까?
휴고가 답답하다는 어조로 말했다.
“시원하게 풀리지 않는 의문이 하나둘이 아닙니다.”
“…….”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 봐야 합니다만.”
“…….”
“모든 의문의 답은 차은성에 관한 파일들과 저희가 확보한 관련 정보에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때문에 지금 이렇게 파일들과 정보를 다시 재검토하는 중입니다. 그런데…….”
휴고가 말끝을 흐리며 의미심장한 눈빛을 띠었다.
“그런데? 뭔가?”
급히 반문하는 하비에의 눈동자에서 알아보기 힘든 기대라는 작은 빛이 어른거렸다.
혹.
휴고가 뭔가 아주 중요한 단서라도 찾아낸 것이 아닐까?
휴고는 기대에 찬 하비에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CIA에서 보내온 정보를 살펴봤는데,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이상하다고?”
하비에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네.”
휴고가 거침없이 대답하더니 이내 빠르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알맹이가 하나도 없는 빈껍데기 같은 정보들을 일부러 추려서 저희에게 보낸 것이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로 정보로서의 질과 양이 현저하게 떨어집니다.”
휴고가 의혹의 눈빛을 띠었다.
CIA가 의심스럽다!
휴고가 그런 심중을 넌지시 밝혔다.
“자타가 세계 최고의 정보기관으로 인정하는 CIA입니다. 그런데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CIA의 정보가 너무 부실합니다.”
“…….”
“일부러 쓸모없는 정보만 취합하여 우리에게 보낸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정보가 형편없습니다.”
휴고가 말하며 은근슬쩍 의심이란 감정을 내비쳤다.
‘흠.’
하비에는 내심 침음을 흘렸다.
“굳이 CIA가 아니더라도 주한 미군이나 국무성 정보국 DIA 등을 통해 얼마든지 입수할 수 있는 정보들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명백하다!
CIA가 의심스럽다!
휴고는 마주 보며 앉은 하비에에게 그런 자신의 속내를 거리낌 없이 밝혔다.
휴고가 하비에를 신뢰하는 것인지.
아니면.
지금 이 순간.
자신의 말에 하비에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살피려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휴고가 내심 무엇인가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휴고의 말에 하비에가 상당히 당황하고 있었다.
얼굴 표정과 눈빛이 은연중에 심중 당황하고 있음을 무언으로 나타냈다.
휴고는 그것을 못 본 척하며 쉬지 않고 계속 말했다.
“무엇보다도 차은성이 NIS에서 퇴직한 지 며칠 되지 않아 출국했는데.”
“…….”
“위조 여권으로 LA 국제공항을 통해 미국으로 입국하기까지 상당한 시일의 갭이 있습니다.”
“…….”
“그런데 CIA가 보내온 정보에는 그 갭에 관한 정보가 극히 소량입니다. 게다가 별로 중요한 정보로 여기지도 않습니다.”
“…….”
“한국을 떠난 차은성이 LA 국제공항으로 미국에 입국하기까지.”
휴고가 진한 의문의 눈빛을 띠었다.
“보내온 관련 정보들을 보면 CIA가 차은성을 계속 감시, 추적한 듯한 느낌이 듭니다.”
“…….”
“그렇다면 관련 정보의 질과 양이 상당한 수준이어야 합니다.”
“…….”
“CIA가 어떤 곳인데, 그런 질 낮고 극히 소량의 정보만 수집했을까요?”
하비에는 묵묵히 의문을 제기하는 휴고의 말을 듣기만 했다. 일절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을 말하지 않았다.
* * *
수십여 초 후.
휴고가 느낀 의문을 모두 다 말하자 하비에가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자네, 혹시 차은성의 살인 행보에 CIA가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하나?”
“글쎄요.”
하비에의 물음에 휴고가 뜻밖에도 말을 흐렸다.
그러자 하비에가 흠칫했다.
‘이 자식이!’
휴고가 은연중에 자신을 상대로 뭔가 하려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비에는 휴고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았다.
‘혹시 날 의심하고 있는 건가?’
하비에는 어이가 없었다.
자신이 무슨 얼토당토않은 생각을 지금 하고 있는 건지.
휴고는 관련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자신이 너무 앞서 나갔다.
하비에가 천천히 휴고에게 말했다.
“휴고.”
“네.”
휴고가 대답하자 하비에가 말했다.
“좀 더 자세하게 말해 보게.”
하비에의 말에 휴고가 말없이 테이블을 돌아보았다.
“차은성이 죽인 미구엘, 산토스, 돈 파블리코, 얀톤, 랄프.”
“…….”
“그들과 CIA 사이에 혹시 뭔가 접점이 없나, 살펴보고 또 살펴보았습니다만. 아직 이렇다 할 성과가 없습니다.”
휴고의 말에 하비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해가 안 되는군. 자네, CIA를 지금 의심하고 있지 않나? 하면, 그런 의심의 근거가 명확해야지, 단순히 보내온 정보의 질과 양만으로 판단하여 CIA를 의심하는 것은 억측이야!”
하비에는 정보분석관 휴고에게 오류가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너무 주관적이다!
하비에의 속마음을 읽은 것일까?
휴고가 하비에를 보더니 빙긋 웃었다.
“팀장님.”
“…….”
“만약 차은성이 우리가 모르는 모종의 목적을 가지고 지금 움직이고 있고. 일련의 살인 행각이 해당 목적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말이죠.”
휴고의 말에 하비에가 눈을 반짝였다.
“자네 말은?”
“네. 차은성이 정보 요원이라는 점을 기본 바탕에 깔고. 입국한 이후의 행적을 얹어 생각해 보면.”
“…….”
“차은성은 지금 모종의 임무를 수행 중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너무 오버네. 자네 말대로라면.”
“…….”
“한국 NIS가 차은성이 퇴직한 것처럼 위장하여 우리 미국을 속이고. 알 수 없는 모종의 임무를 차은성에게 부여했다는 말이 되는데.”
하비에가 은연중에 말도 안 된다고 돌려 말했다.
휴고는 하비에를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조금 전에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입니다.”
휴고는 정보분석관이다.
정보분석관은 특정 한 관점이나 시점에서 상황이나 사안을 보지 않는다.
다양한 관점과 시점으로 상황과 사안을 보며 여러 경우의 수를 도출한다.
그리고 도출한 경우의 수 중 가장 확률적으로 높은 경우의 수를 제시한다.
지금 하비에에게 말하는 휴고 역시 그와 다르지 않다.
하비에는 눈을 깜빡이며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려 하였다. 그런 한편으로 휴고가 말한 의문점들을 되짚어 보았다.
휴고가 그런 하비에를 지켜보며 입가에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씨익.
휴고는 상체를 옆으로 돌렸다.
손을 뻗어 콜라 캔 하나를 집더니 천천히 마시기 시작했다.
* * *
수여초 후.
돌연.
시빌라가 급히 문을 열더니 안으로 들어오며 고함쳤다.
“팀장님!”
그러자 휴고와 하비에가 시빌라를 돌아보았다.
두 사람의 눈에 들어오는 시빌라의 얼굴 표정.
―여기에 계셨네요. 한참 찾았어요.
무언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 * *
잠깐이란 시간이 지나고.
“뭐라고?”
하비에가 소리치며 앉은 의자를 박차고 벌떡 일어났다.
매우 놀란 모습이었다.
시카고.
테러가 일어났다.
―시카고 트리뷴지의 대주주이자 언론계 유명 인사인 랜디 아로자레.
―시카고 시장 제런 듀런.
―시카고 문단을 대표하는 유명 작가 카사스.
―일리노이 대학 물리학자인 에드윈 엘링 교수.
네 사람이 죽었다.
그런데 살해 방법이 각기 다르다.
랜디 아로자레는 폭발물로 인한 폭사.
제런 듀런은 로켓탄에 의한 동일한 폭사.
유명 작가 카사스와 에드윈 엘링 교수는 저격.
그런 시빌라의 보고에 하비에는 냉철한 눈으로 앞에 서 있는 시빌라를 보았다.
“차은성의 짓이라고 단정 짓는 이유는?”
하비에의 물음에.
“그, 그건…….”
당황한 시빌라가 말을 더듬었다.
차은성의 짓임을 입증할 수 있는 것이 현재로서는 없기 때문이다.
그저 심증만 있을 뿐.
시빌라가 당황한 모습을 본 휴고가 재빨리 나섰다.
“차은성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니 일단 시카고로 가서 현장을 면밀하게 살피며 시카고 경찰의 수사 보고서 및 현지 상황을 살펴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흠.”
휴고의 말에 하비에가 침음을 흘렸다.
틀린 말은 아니다.
워싱턴 DC에서 현지 돌아가는 상황을 알기란 매우 어렵다.
갈까?
말까?
하비에가 내심 망설였다.
휴고가 하비에의 모습에 재차 말했다.
“만약 차은성의 짓이라면 차은성을 뒤쫓을 수 있는 다시없는 단서와 기회를 잃게 됩니다.”
휴고는 은근 차은성의 짓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에둘러 말했다.
하비에는 침묵하며 내심 고심하고 있었다.
“…….”
휴고는 하비에를 바라보며 빠르게 말을 이었다.
“반대로 차은성이 아니라면.”
“…….”
“우리로서는 헛수고겠지만. 그래도 시카고에서 그런 테러를 저지른 자를 잡는 데 일조를 하는 셈이니 헛수고는 아닐 겁니다.”
“…….”
“이대로 가만히 내버려 둘 수는 없잖습니까? 팀장님.”
“…….”
“나 몰라라 할 사안이 아닙니다. 범인은 로켓탄을 사용하였습니다.”
“…….”
“어디서 어떻게 로켓탄을 구했는지. 그 입수 경로를 알아봐야 하지 않습니까?”
휴고의 말에 하비에의 눈빛이 흔들렸다.
“어쩌면 저희가 모르는, 차은성의 총기 입수 경로를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휴고의 유혹이라고 할까?
그의 말에 그만 고심하던 하비에가 넘어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