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NIS의 천재 스파이 (183)화 (183/208)

NIS의 천재 스파이 (183)

“휴우우.”

리샤오가 한숨을 쉬었다.

‘건드릴 사람을 건드려야지. 지옥의 야차를 건드리면 대체 어쩌자는 거야.’

리샤오가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CIA를 상기했다.

차은성의 세 번째 접선자로서 결정되며 관련 정보를 전해 들었다. 하여 꽤 아는 바가 많다.

―친형제와 같은 부하들의 복수.

―자신을 죽이려고 한 것에 대한 응분의 대가를 지불하게끔 만드는 대응.

차은성이 하고자 하는 바는 그와 같다.

중국인들.

특히 삼합회의 이들은 암묵적으로 금과옥조처럼, 불문율처럼 여기는 율이 몇 있다.

그들 스스로 자신들이 살아가는 암흑가를 달리 ‘강호’라고 부른다.

그 세계에서 가장 최우선하는 덕목이자 율은 ‘의와 협’이다.

삼합회의 이들에게 의와 협이란…….

친형제와 같이 여기는 부하들이 억울하게 죽었으면 당연히 그 복수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의!’이다.

그리고 억울하게 죽은 형제들의 남은 가족을 자신의 가족처럼 돌봐 주는 것이 ‘협!’이다.

삼합회의 이들만이 공유하는 덕목이자 율에 차은성의 현 행보는 부합된다.

단 한 점의 흐트러짐도 없이 딱 맞아떨어진다.

그리고 대만 삼합회의 거두, 사자방주 양승조가 차은성의 신원보증인으로서 미국 화교 조직에 형제의 의로서 도움과 협조를 청했다.

그에 미국 화교 조직은 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생사재천!”

삶과 죽음은 하늘에 달려 있고.

“시종여일!”

처음부터 끝까지 그 어떤 변함도 없으며.

“사생유명!”

삶과 죽음은 운명이 결정하는 바. 인간이 그 운명을 어떻게 하겠는가?

“신심직행!”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주저 없이 밀고 나갈 뿐이다.

차은성의 각오에 리샤오가 착잡한 마음을 담아 말했다.

“자세한 것은 몬트리올에서 다시 얘기하는 것으로 하죠.”

차은성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리샤오는 난간에서 떨어지며 왼쪽으로 돌아섰다.

느긋하게.

낮은 발걸음 소리를 흘리며 리샤오가 걸어갔다.

차은성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하며 거리를 벌렸다.

차은성은 리샤오를 돌아보지 않았다. 무심히 수면을 바라보며 심중 지난 일들을 생각했다.

마담 화이트에게 죽은 팀원들.

노태준, 황민준, 김아름, 우형광.

그들의 죽음을 차은성은 외면할 수 없었다. 마음 한편에 그들을 묻고 보복의 순간을 기다렸다.

그런데 서울 한복판에서 CIA가 SOG를 움직여 자신을 암살하려 하였다.

참을 수 있는 선을 넘어 버린 도발에.

때마침 강제로 퇴직도 당했겠다.

때가 되었다 생각하고, 작정하고 나선 길이다.

차은성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처음부터 살 생각 따윈 하지도 않았어.”

혼자서 AOA를 상대한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무모하다!

그 끝은 아마 자신의 죽음일 것이다.

한 가지 위안이 될 만한 일이라면.

자신이 죽는 대신 AOA가 와해 직전의 위기에 몰릴 정도로 엄청난 피해를 안겨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만의 알 하르비와 FSB의 세르게이가 거의 엇비슷한 시기에 서로 연관성이 매우 높은 정보를 보내왔다.

거기에 더해 와히브 빈 무샤드 압둘라 왕자가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해 주었다.

그를 죽이고 이복형 마제드 왕자를 와히브의 왕으로 만들고. 와히브의 모든 유전을 먹어 치우려고 한 AOA.

무샤드 왕자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은 불 보듯 뻔하다.

한 가지 의외라면 무샤드 왕자가 자신을 끌어들였다는 것이다.

“어쩌면 내가 모르는…….”

차은성이 중얼거리며 형형한 안광을 번득였다.

모르는 일이다.

지금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그림!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

무샤드 왕자가 자신을 끌어들인 충분한 이유가 된다.

그런 한편으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가능성이 무척 낮지만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차은성이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세상에 믿을 놈 없고. 자고로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법이지.”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

정보 요원들의 세계에서 과연 누구를 100% 믿을 수 있을까?

차은성은 실소했다.

피식.

“사람들은 호랑이나 사자를 맹수라고 생각하지만. 진짜 무서운 것은 방울뱀처럼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독사지.”

차은성은 고개를 바로 하며 바다처럼 넓은 미시간호를 바라보았다.

눈에 훤히 보이는 적의 공격은 전혀 무섭지 않다.

하지만 등 뒤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저격. 죽이려는 것은 솔직히 무섭다.

눈에 전혀 보이지 않기에.

차은성이 중얼거림을 이었다.

“일단 물리기만 하면 그것이 호랑이가 되었건 사자가 되었건, 죽는 것은 불변이야!”

차은성은 결연한 눈빛을 번득이며 이를 악물었다.

으득!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주워 담을 수 없다.

죽든!

살든!

끝까지 가 볼 수밖에!

*    *    *

좌우에 각기 독립된 사무실이 있는 통로.

하비에 스와레즈가 통로를 걸어가며 좌우의 사무실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그러던 중.

한 사무실 안이 눈에 들어오자 하비에가 걸음을 멈추고 섰다.

안이 훤히 보이는 유리벽 너머.

사무실 안. 정중앙에 있는 널찍한 테이블에 휴고 건스백이 가로 앉았다.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이었다.

테이블에는 각종 서류 파일이 어지럽게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고.

그런 테이블 한쪽에는 먹다 남은 피자 박스와 콜라, 환타 캔들이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머릿속 상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휴고.

왼손 팔꿈치로 테이블을 괴고, 오른손에 쥔 펜을 빙글빙글 돌렸다.

가끔 천장을 힐금거리는 휴고의 눈동자에서 의문이 쉴 새 없이 물결쳤다.

―이해가 안 돼!

휴고가 그런 감정을 내색하고 있었다.

“흠.”

낮은 침음을 막 흘리는데.

끼익.

하비에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휴고가 돌아봤다.

“어?”

하비에를 본 휴고가 급히 일어났다.

“팀장님!”

하비에는 휴고에게 걸어가며 테이블을 힐금거렸다.

먹다 남은 피자 박스와 캔들.

아마도 피자로 저녁을 대신한 것 같다.

하비에가 걸어가며 휴고에게 말했다.

“퇴근. 안 하나?”

휴고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신경에 거슬리는 것이 있어서…….”

찝찝하다!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는데. 도통 풀리지 않는다.

그 때문에 지금 퇴근하지 않고 계속 서류를 보며 마음에 걸리는 것을 풀려는 중이다.

휴고가 그런 뉘앙스로 대답했다.

하비에가 의아한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휴고에게 이르러 섰다.

그는 휴고의 옆에 있는 의자를 당겨 앉으며 휴고에게 물었다.

“뭐가 그렇게 신경에 거슬리는 건가?”

관심이 생긴 듯한 하비에의 물음에.

휴고가 방금 전에 앉아 있던 의자에 다시 앉으며 심중의 의문점들을 말하기 시작했다.

“차은성은 정보 요원이었습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수행하던 임무 도중에 돈 파블리코와 얽혀, 미구엘이라는 살인 청부업자가 차은성을 죽이려고 했다가 실패했습니다.”

하비에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수긍이란 감정을 나타냈다.

“정보 요원이 현직에서 활동할 당시에는 자신을 죽이려던 킬러를 죽이고. 킬러를 누가 사주했는지 알게 되는 경우, 보통은 보복합니다.”

“…….”

하지만 보복은 임무 완수보다 우선순위에서 밀립니다. 임무 완수가 최우선이죠.”

하비에는 휴고의 말에 맞장구를 치듯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다.

정보 요원에게 있어 가장 중요하고 우선시되는 것은 다름 아닌 주어진 임무의 완수다.

휴고가 계속 말했다.

“정보 요원이 퇴직할 경우, 과거 임무 수행 중에 맺은 원한 때문에 타국으로 불법 입국하여 원한 관계에 있는 이를 죽이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

“현직에서 물러난 자국의 전 정보 요원이 타국. 그것도 가장 중요한 우방국에 위조 여권으로 입국하여 사람을 그것도 셋이나 죽였습니다.”

“…….”

“필히 양국 사이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휴고의 말에 하비에가 반문했다.

“자네 말은?”

“네, 한국 NIS가 어쩌면 지금 매우 당황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여태까지 NIS는 차은성과 관련하여 이렇다 할 반응이 없습니다.”

하비에가 눈을 반짝였다.

“혹 자네. 지금 NIS를 의심하는 건가?”

하비에의 물음에 휴고가 싱긋 웃었다.

“저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래야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정보 분석이 가능하니까요.”

휴고가 스스로 ‘저는 정보분석관입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하비에가 짐짓 못 들은 척하며 중얼거렸다.

“가능성이라?”

“네.”

“흠.”

“차은성은 안전한 은신처. 그러니깐 안전 가옥과 같은 곳에 있을 겁니다.”

“…….”

“음식 역시 사전에 충분히 구해 두었을 겁니다.”

휴고가 눈을 반짝였다.

“그렇지 않다면.”

“…….”

“식사를 위해 식당을 찾거나, 식재료를 구매하기 위해 마트와 같은 곳을 찾아야 합니다. 그럼 CCTV 카메라에 차은성의 얼굴이나 몸이 잡혔을 겁니다.”

“그랬다면 우리 FBI나 CIA의 감시 시스템에 곧바로 잡혔겠지.”

하비에의 말에 휴고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바로 그겁니다. 차은성이 여태까지 FBI나 CIA의 눈에 띄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

“…….”

“차은성을 우리가 지금까지 체포하지 못한 이유!”

휴고의 눈동자가 형형하게 반짝였다.

“철저히 안전 가옥 내에 있었던 겁니다. 일절 바깥으로 나가지 않으니 FBI나 CIA가 여태까지 찾을 수 없었던 겁니다.”

휴고의 말에 하비에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납득이 간다.

비단 FBI만이 아니다. 빈번한 테러에 대한 위험 때문에 CIA는 위성까지 이용하는 광범위하고도 치밀하기 짝이 없는 감시 시스템을 구축, 운용하고 있다.

그런 CIA의 감시 시스템으로도 차은성을 찾지 못했다.

말없이 생각하는 하비에.

휴고가 그를 보며 말을 이어 나갔다.

“차은성이 사용한 각종 총기!”

하비에가 움칫하더니 가만히 휴고를 바라보았다.

“하나같이 쉽게 구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일반 무기 밀매상이 취급하는 총기들이 아닙니다.”

“…….”

“만약!”

휴고가 말에 힘주었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아챈 듯 하비에가 급히 말했다.

“설마……?”

휴고는 거의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단언했다.

“아마도 모종의 이들로부터 조직적인 백업을 차은성이 받고 있을 겁니다.”

휴고는 오해하고 있었다.

한국 NIS가, 실은 차은성을 퇴직한 것처럼 위장하여 위조 여권으로 미국에 입국하게 했다. 그리고 산토스, 얀톤, 돈 파블리코를 죽였다.

휴고는 마음 한구석으로 그런 가설을 세워 두고 의심하고 있었다.

정보분석관으로서 그것이 가장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추정이었다. 또한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경우의 수였다.

휴고가 하비에에게 물었다.

“차은성이 산토스, 얀톤, 돈 파블리코에 관한 정보를 과연 어디서 얻었을까요?”

휴고의 말에 하비에는 자신도 모르게 귀 기울였다.

“백번 양보하여 차은성이 미구엘에게서 산토스에 관한 정보를 얻었고, 산토스에게서 돈 파블리코에 관한 정보를 얻었다고 가정해도.”

“…….”

“얀톤에 관한 정보를 차은성은 어디서 얻었을까요? 그리고 얀톤을 죽인 이유가 무엇일까요?”

휴고가 의미심장한 눈으로 하비에를 바라보았다.

하비에는 뭐라 말하지 않았다.

입을 다물고 침묵하며 묵묵히 휴고의 말을 듣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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