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S의 천재 스파이 (182)
씩.
이어 나직이 중얼거렸다.
“시카고 경찰국이 아주 난리가 났겠군그래. 흣.”
차은성이 눈웃음치며 천천히 뒤돌아섰다.
서둘러.
차은성이 L42A1 저격 소총을 분해하기 시작했다.
* * *
PM 7시 05분.
시카고 경찰국 회의실.
널찍한 일자의 테이블 중앙에 앉은 정복 차림의 장년인.
시카고 경찰국장 리베 라토레.
엄청 열 받은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전 9시경. 시카고 50번 도로에서 시카고 트리뷴지의 대주주 중 한 명이자 미국 언론계의 유명 인사 중 한 명인 랜디 아로자레가 죽었다.
죽어도 그냥 죽은 것이 아니다. 탄 리무진과 함께 폭사했다.
뒤이어 시카고 시장 제런 듀런이 집무실과 함께 폭사하고.
시카고 문단을 대표하는 유명 작가 카사스가 밀레니엄 공원 벤치에서 저격당해 즉사했다.
또.
일리노이 대학교 캠퍼스에서 유명 물리학자이자 대학교수인 에드윈 엘링이 역시 캠퍼스에서 저격당해 즉사했다.
단 하루 동안 시카고를 대표한다고 말해도 손색이 없는 저명인사가 무려 넷이나 죽었다.
기가 막힌 것은 시카고 시장 제런 듀런의 죽음이다.
시카고 경찰의 수장은 단연 경찰국장인 리베 라토레다. 하지만 리베 라토레는 시장 제런 듀런의 지휘를 받는다.
즉.
대통령이 군 통수권자이듯.
제런 듀런이 시카고의 모든 경찰을 통솔한다. 그런데 그런 제런 듀런이 폭사했다.
현재 시카고 경찰은 벌집을 쑤셔 놓은 것 같은 상황이다.
비번은 물론이고 정직이나 휴직 중인 모든 경관이 비상소집 되었다.
전 경찰력이 단 하루 동안 일어난 네 건의 사건을 분담. 지금 맹렬히 수사 중이다.
하지만 폭발물, 저격과 관련이 있어 수사에 난항을 겪고 있다.
경찰국장 리베 라토레가 좌우를 번갈아 보았다.
시카고 경찰국 소속의 모든 부서장이 테이블 좌우에 지금 앉아 있다.
그들 모두 엄청 긴장한 모습이었다. 칼날처럼 군기가 바짝 서 있다고나 할까?
“닉!”
리베 라토레 국장이 오른쪽 첫 번째에 앉은 부서장 닉 알렌을 돌아보았다.
최선임 부서장이자 리베 라토레 국장의 부재 시 그의 권한을 대행하는 닉 알렌이다.
꿀꺽.
닉 알렌은 내심 마른침을 삼키며 리베 라토레 국장을 보았다.
“네. 국장님.”
“수사!”
“…….”
“어떻게 됐어?”
리베 라토레 국장이 언성을 높였다. 잔뜩 화난 모습이었다.
“닉!”
리베 라토레 국장이 격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 그게, 그러니깐…….”
닉 알렌은 심하게 말을 더듬었다.
마지막 사건.
에드윈 엘링 교수가 저격당해 죽은 지 아직 반나절. 6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리베 라토레 국장이 모든 수사 결과를 지금 당장 내놓으라고 윽박지르고 있다.
“어떻게 됐냐고!”
리베 라토레 국장이 회의실이 떠나가라 소리쳤다.
닉 알렌이 놀라 몸을 움칫거리며 급히 머리를 깊이 숙였다.
“지, 지금 수사가 진행 중입니다. 아직 이렇다 할 단서를 찾진 못했습니다만. 조만간 단서를…….”
닉 알렌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야아아!”
리베 라토레 국장이 악에 받친 듯이 고성을 지르며 눈을 부라렸다.
당장이라도 닉 알렌을 죽이기라도 할 듯이, 엄청 살기등등한 눈으로 닉 알렌을 쏘아보았다.
“테러범이 지금 밖에서 돌아다니고 있어. 온 시카고를 종횡무진으로 누비고 다니며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죽이고 있다, 그 말이야!”
“…….”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아들어!”
리베 라토레 국장이 재차 소리치며 마구 침을 튀기더니 왼쪽 두 번째 자리에 앉은 대외협력부서장 호머 베일리를 돌아보았다.
“호머!”
“예, 예에. 국장님!”
호머 베일리가 놀라 황급히 대답했다.
“그 미친놈이 폭탄으로 사람을 죽였어.”
리베 라토레가 현재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돌려 물었다.
호머 베일리는 기다리기라도 한 듯 매우 빠른 속도로 대답했다.
“현재 국토 안보부, FBI, 주 경찰과 검찰 등에 연락!”
“…….”
“범인이나 범죄와 관련된 정보가 있는지 확인 중입니다. 그리고 최근 시카고로 테러리스트가 이동한 정황이 없는지도 함께 문의 중입니다.”
“…….”
“물론 협조 요청을 아주 단단히 해 두었습니다.”
“최대한 빨리 어떤 놈인지 알아내. 그놈이 시카고 어디에 있는지 필히 알아내란 말이야!”
리베 라토레 국장이 목청이 터져라 외쳤다.
“예, 예에.”
호머 베일리는 급히 대답했다.
리베 라토레 국장은 좌우에 앉은 각 부서장을 둘러보았다.
“잡아! 무조건 잡아!”
“…….”
“만약에 못 잡으면, 니들 모두 옷 벗을 각오 해!”
“…….”
“내 말 알아들었어, 못 알아들었어!”
리베 라토레 국장이 목이 터져라 고래고래 소리쳤다.
“잡겠습니다!”
그러자 부서장들이 마치 미리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머리를 깊이 숙였다.
* * *
해가 저물고 마지막 캐나다행 여객선이 미시간 호수를 유유히 지나가고 있었다.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 역할을 하는 미시간호를 미국과 캐나다의 여객선들이 정기적으로 오간다.
캐나다에서 시카고로 출근하고, 시카고에서 캐나다로 퇴근하기도 한다.
마치 한 나라나 도시처럼 말이다.
* * *
여객선 난간.
여느 승객들처럼 두 사람이 나란히 서서 미시간호를 무심히 바라보았다.
“……장로께서 더 이상은 무리라고 하셨습니다.”
“…….”
“CIA와 FBI가 힘을 합쳐 팀을 만들었습니다. 팀장은 FBI 내에서 차기 국장 후보 중 한 명으로 유력시되는 하비에 스와레즈라는 자로…….”
화교 조직의 접선책 리샤오가 뜻밖의 정보를 언급했다.
하비에 스와레즈.
그의 이름이 리샤오의 입에서 나올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
차은성은 침묵했다.
장로.
미국 화교 조직의 최고위 인사 중 한 명으로 양승조와 각별한 인연이 있는 이다.
아무래도 그가 화교 조직을 걱정하는 것 같다.
‘하긴. 이해 못 할 바도 아니지. 상대가 FBI와 CIA 연합이라면 감당하기 버겁지.’
차은성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며 뭐라 말하지 않고 리샤오의 말을 묵묵히 듣기만 했다.
이윽고.
말을 마친 리샤오가 뒤돌아서더니 난간에 기대섰다.
“죄송합니다. 양 대인께서 각별히 부탁하셨는데…….”
그냥 하는 빈말이 아닌 것 같다.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것 같다.
차은성은 침묵했다.
“…….”
가타부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무심히 미시간호를 바라보았다.
난간에 기대선 리샤오가 차은성을 흘겨봤다.
방금 전 한 말.
더는 도와줄 수 없다!
그 말에 대한 차은성이 반응이 신경 쓰이는 눈치다.
그런 리샤오의 시선을 알아챈 것인지, 차은성이 높지도 낮지도 않은 완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딱 두 가지만 부탁하고 싶은데.”
리샤오가 차은성을 돌아보았다.
―말씀하십시오.
재촉하는 리샤오의 무언의 시선에 차은성이 말하기 시작했다.
“뉴욕과 워싱턴 DC에 안전한 가옥, 최소한의 무기, 장기간 보관 가능한 식량, 장비를 마지막으로 세팅해 주었으면 하는데…….”
차은성이 말끝을 흐렸다.
미국 화교 조직에게 자신이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에게 꼭 필요한 요구라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 화교 조직이 시카고를 끝으로 손을 끊고자 한다.
하면.
자신이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이는 아만의 알 하르비와 러시아 FSB 세르게이밖에 없다.
NIS.
국정원은 아예 생각하지도 않는다. 도와주지 않을뿐더러, 자신에 관한 정보를 CIA에 넘기지 않으면 다행이다.
알 하르비나 세르게이 모두 지속적으로 자신에게 도움을 주긴 어렵다.
단 한 번!
도움을 받을 수 있을 뿐이다.
전날.
모스크바와 텔아비브에서 각기 세르게이와 알 하르비를 만나, 모종의 대화를 나누며 일종의 보험을 들었다.
한편.
차은성의 요구에 리샤오가 흠칫하더니 입을 다물었다.
말없이 잠시 생각하는가 싶더니 왼쪽을 돌아보며 리샤오가 말했다.
“제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는 사안입니다. 일단은 장로님께 연락해 보겠습니다.”
“…….”
“장로님께서 받아들이신다면 몰라도, 만약 거절하신다면!”
“…….”
“도와 드리기 어렵습니다.”
리샤오의 말에 차은성이 낙담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어쩔 수 없지.”
도움을 구걸하고 싶진 않다.
차은성의 낙담한 목소리에서 은근 당당함이 배어 나왔다.
리샤오가 왼쪽을 둘러보며 대답했다.
“유감입니다. 끝까지 도움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니.”
차은성이 칼로 자르듯이 단호하게 대꾸했다.
“상대가 FBI와 CIA라면!”
“…….”
“화교들이 계속 미국에서 살아가야 하니. 미국 정부의 눈 밖에 나는 일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겠지.”
리샤오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저희 입장을 고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혹시?”
“…….”
“지금이라도 출국하시고자 한다면!”
“…….”
“캐나다 쪽에서 저희가 도움을 드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리샤오의 호의를 차은성이 거절했다.
“NO!”
그러자 리샤오가 순간 의아한 눈빛을 띠며 자세와 시선을 바로 했다.
그런 한편으로.
리샤오가 서 있는 난간 주변을 빠르게 살폈다. 경계와 주의를 게을리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리샤오가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계속 현재와 같은 행보를 이어 나간다면 종국에는…….”
차마 말을 끝맺을 수 없는지 리샤오가 말끝을 흐렸다. 그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모를 수 없다.
―결국에는 죽어!
아마도 리샤오는 차은성에게 그렇게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차은성은 담담하게 대꾸했다.
“내 여정의 끝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어차피 알고서 시작한 일이라면?”
차은성이 고개를 돌려 왼쪽을 돌아보았다.
리샤오가 차은성을 곁눈질했다.
“그동안 죽인 이들을 통해…… 충분한 경고가 이루어졌다고 저는 생각합니다만.”
“내가 물러난다고 해서 그들이 과연 날 가만히 놔둘까?”
차은성의 물음에 리샤오가 몸을 흠칫하더니 입을 다물었다.
가만 놔둘 리 없다.
차은성이 말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내가 죽을 때까지.”
“…….”
“끊임없이 날 죽이려고 할 게 뻔한데. 여기서 도망치는 건 아니지. 후후후.”
“상대는 CIA입니다.”
리샤오가 CIA를 상기시켰다.
그는 차은성이 상대하는 이들이 CIA라고 알고 있었다.
CIA가 차은성을 죽이려고 하였고, 차은성은 그에 대항해 지금 CIA와 홀로 외로운 전쟁 중이다.
리샤오는 AOA에 관해 아는 것이 전무했다.
차은성이 전쟁 중인 상대가 AOA인 것을 최대한 감췄기 때문이다.
천천히.
차은성이 자세와 시선을 고쳤다.
물끄러미 전면에서 출렁이는 미시간호의 수면을 바라보더니.
천천히.
아주 천천히.
차은성이 말했다.
“생사재천!”
삶과 죽음은 하늘에 달려 있고.
“시종여일!”
처음부터 끝까지 그 어떤 변함도 없으며.
“사생유명!”
삶과 죽음은 운명이 결정하는 바. 인간이 그 운명을 어떻게 하겠는가?
“신심직행!”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주저 없이 밀고 나갈 뿐이다.
차은성의 각오가 있는 그대로 드러나는 말이었다.
한편.
차은성이 말하는 동안 입을 다물고 침묵한 리샤오. 그는 차은성의 말에 흠칫거리며 매우 놀란 눈빛을 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