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S의 천재 스파이 (171)
주립공원
로베르토 역시 한다고 하고 있지만 일이 풀리지 않는 것을 어떻게 하지는 못했다.
그것을 알지만 다시 한번 로베르토를 독려한 던컨이었다.
로베르토가 그런 던컨의 마음을 알지는 모르겠지만.
* * *
세인트루이스에서 몇십 Km 떨어진 마크트웨인 주립공원.
의외로 계곡이 많아 산이 험준했다.
그런 산기슭을 차은성이 지나가고 있었다.
말이 말발굽을 떼며 걸을 때마다 안장에 앉은 차은성의 몸이 미미하게 좌우로 흔들렸다.
긴 줄에 끌려 뒤따라오는, 등 좌우에 짐을 잔뜩 실은 말이 발굽을 뗄 때마다 힘겨운지 콧김을 뿜었다.
말을 대여하여 산중을 지나가는 차은성은 간간이 상의에서 태블릿 PC를 꺼내 GPS 좌표를 확인했다.
“흠.”
낮은 침음을 흘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무엇인가를 찾는 듯 은근 조급한 눈빛을 띠었다.
“꽤 가까워진 것 같은데.”
중얼거리며 다시금 태블릿 PC를 보았다.
툭툭.
차은성은 태블릿 PC에 저장되어 있는 9× 지도를 띄워 현 위치 및 목적지와의 거리를 체크했다.
“분명히 여기 어딘가에 있을 텐데.”
차은성은 중얼거리며 기대의 눈빛을 띠었다. 주위에 있는 것은 온통 나무였다.
찾는 JK. 시먼스의 은신처는 보이지 않았다. 주기적으로 숨어 있는 곳을 바꾸는 시먼스.
그 때문에 그를 추적하는 데 적잖은 애로를 겪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오랫동안 JK. 시먼스를 뒤쫓았다.
그리고 최근에 알 하르비와 세르게이의 도움에 힘입어 그의 은신처를 마침내 알아냈다.
* * *
산에서는 의외로 밤이 빨리 찾아온다.
차은성은 불을 피우지 않았다. 밤에는 매우 떨어진 곳에서도 불이 선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차은성은 만에 하나를 염두에 두고 최대한 자신의 위치를 드러내지 않으려 했다.
인근에 있는 나뭇가지에 두 마리의 말의 고삐를 묶어 두고 적당한 곳을 골라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아마존을 통해 구매한 군용 전투식량을 데워 배를 채웠다.
우물우물.
입안의 음식을 씹으며 차은성이 생각했다.
JK. 시먼스.
전 CIA 부국장이다. 그와 자신은 면식이 없다. 이렇다 할 접점도 없다.
그런데 시먼스가 자신의 팀원들을 죽였고 자신 역시 죽이려 했다.
팀원들이 마담 화이트에 당해 죽었을 때. 충분히 자신을 죽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죽이지 않았다.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처럼.
앙금인 양.
진한 의문이 차은성의 가슴 한구석에 남아 있었다.
‘만나 보면 알 수 있겠지.’
차은성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씹던 입안의 음식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다시 음식을 먹으며 고개를 들었다.
가을 밤하늘.
한국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별들이 보인다.
* * *
고급 레스토랑임을 한눈에 알 수 있는 화려한 내부 인테리어.
안쪽 깊숙이에 위치한 한 원형 테이블.
세 사람이 둘러앉아 있었다.
던컨 허슬러, CIA 미 서부 지역 총괄 책임자 벤자민 하우저, 국토 안보부 서부 지역 최고 관리자 그레이엄 카터.
세 사람은 원탁에 둘러앉아 코스 요리를 즐기며 대화를 나눴다.
던컨은 벤자민을 바라보며 CIA가 가진 정보를 은근 요구했다.
벤자민은 짐짓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며 던컨이 가진 정보가 무엇인지 알고자 했다. CIA의 정보는 감추고, 역으로 FBI의 정보에 대한 관심을 내보이며 탐색했다.
그레이엄 카터는 던컨과 벤자민을 말없이 잠시 지켜보았다.
‘휴우우우.’
그레이엄은 마음속으로 길게 한숨을 쉬었다.
미국 정가의 이들뿐만 아니라 언론, 경찰 관계자들 등.
어지간한 이들 대부분이 CIA와 FBI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개와 원숭이.
견원지간이라고 말해도 틀린 말이 아닐 정도로 CIA와 FBI의 관계는 최악이다.
얼마나 서로 물고 뜯으며 싸우는지 모른다.
백악관도 CIA와 FBI의 관계에 머리를 절레절레 내저을 정도라면 말 다한 것 아니겠는가?
그와 같은 관계의 일면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자리였다.
던컨과 벤자민의 대화에 그레이엄은 내심 무척 답답했다.
대화를 시작한 지 상당히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던컨과 벤자민은 이렇다 할 합의를 보지 못했다.
무슨 기 싸움을 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정보 공유를 논의하는 자리인데 이리도 소속 기관의 이기심만 극명하게 드러내다니.
그레이엄은 답답함에 내심 화가 치밀었지만 꾸욱 눌러 참았다. 하지만 참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고.
결국.
참다못한 그레이엄이 말하고 나서며 던컨과 벤자민의 대화를 중간에서 끊어 버렸다.
“그만!”
순간.
던컨과 벤자민이 멈칫하더니 동시에 그레이엄을 돌아보았다.
그레이엄이 격한 감정을 드러내며 던컨과 벤자민을 강하게 힐난했다.
“도대체 지금 뭐하자는 겁니까?”
그레이엄이 던컨을 돌아보았다.
“CIA의 정보가 필요하면 필요하다고 말하고 협조를 요청하는 것이 뭐가 그렇게 어렵다고 이리 질질 대화를 끄는 겁니까?”
그레이엄이 이번에는 벤자민을 돌아보았다.
“FBI가 가지지 못한 정보를 가지고 있으면 FBI에 주면 될 거 아닙니까? 그게 뭐 그렇게 어려운 일이라고 질질 대화를 끄는 겁니까?”
성난 그레이엄의 언행에 던컨과 벤자민은 몸을 움찔거리며 곤혹스러운 눈빛을 띠었다.
“9.11 때 그렇게 당하고서도 아직 정신을 못 차렸습니까? 이번에는 상원 정보위원회에서 CIA와 FBI의 폐지 여부를 두고 청문회 및 공청회가 열려야 정신을 차릴 겁니까?”
그레이엄의 언행에 던컨과 벤자민은 뭐라 말 한 마디 하지 못했다.
두 사람은 그레이엄의 눈치를 보았다.
“지금 당장 서로 필요한 정보의 공유 및 공조를 시행하지 않으면 내가 직접 상원 정보위원회의 오카시스 위원장에게 이번 일을 보고할 겁니다. 그 이후 무슨 문제가 발생해도 날 원망하지는 말아야 할 겁니다.”
그레이엄이 면전에 대놓고 위협했다.
던컨과 벤자민은 진한 꺼림의 눈빛을 띠며 당황했다.
―상원 정보위원회.
―오카시스 코르테즈 위원장.
사실상 미국의 모든 정보기관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다.
백악관의 미 대통령도 경우에 따라서는 상원 정보위원회와 위원장의 눈치를 봐야 한다.
그 예가 과거 레이건 행정부 때의 이란―콘트라 게이트다.
당시 레이건 대통령은 하마터면 미국 건국 이래 처음으로 의회의 탄핵을 받을 뻔했다.
그때 가장 앞장서서 백악관을 비난하고 레이건 대통령을 궁지로 몰아붙인 것이 바로 상원 정보위원회와 위원장이었다.
미 상원 정보위원회의 파워는 생각 이상으로 막강하다.
그들의 본연의 업무 중 하나가 미국의 모든 정보기관을 감시 및 감찰하는 것이다.
* * *
그레이엄의 강력한 경고에 던컨과 벤자민은 침묵했다.
“…….”
그레이엄은 재차 그들을 핍박하듯 몰아붙였다.
벤자민으로 하여금 CIA가 가지고 있는 정보를 FBI에 넘기라고 말했다. 그리고 FBI에게는 CIA와 공조하라고 다그쳤다.
그런 그레이엄의 협박이 주효했다.
던컨과 벤자민이 실무진의 회동을 통해 서로 가진 정보를 공개 및 공유하기로 그레이엄 앞에서 합의를 보았다.
그레이엄이 속한 국토 안보부는 미국의 모든 정보기관이 가진 정보를 취합, 분배하는 등 미국 모든 정보기관을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 이유로 던컨과 벤자민은 그레이엄의 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국토 안보부의 눈 밖에 날 경우. 치러야 할 대가가 이만저만 막심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 *
이틀 후.
차은성이 능성에 서서 군용 망원경으로 저 멀리에 있는 한 통나무집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통나무집 지붕에 설치된 위성통신 안테나였다.
그리고 별도의 발전설비가 눈에 들어왔다.
또한 위장복을 입고 중무장한 일단의 이들이 통나무집 주변에 서서 주위를 경계하고 있었다.
일정한 간격으로, 특정 위치를 고수하듯 그들은 서 있는 위치를 좀처럼 벗어나지 않았다.
차은성은 내심 무척 들떴다.
‘드디어!’
마침내 JK. 시먼스가 있는 은신처를 찾아냈다.
차은성은 망원경을 확대하여 통나무집과 주변을 꼼꼼하게 살피고 관찰했다.
그동안 은신처를 자주 바꾸며 도주에 도주를 거듭했던 JK. 시먼스다.
틀림없이 뒤를 봐 주는 AOA와 정기적인 연락을 주고받을 것이다. 그리고 각별한 후원과 엄중한 경호 역시 받을 것이다.
일단의 중무장한 이들.
그들이 차은성의 짐작이 맞음을 지금 입증하고 있다.
AOA에게 시먼스는 매우 유용한 수족이자 중요 멤버일 것이 분명하다.
여기서 잡아야 한다. 만약 놓치면 시먼스는 AOA의 도움을 받아 더욱더 찾을 수 없는 곳으로 숨어들 것이다.
“흠.”
차은성은 침음을 흘리며 위성안테나를 보았다.
‘가장 먼저 통신부터!’
자신이 기습 공격 한다면, 틀림없이 통신을 통해 외부 지원을 요청할 것이다.
그럴 경우, 자칫 자신이 역으로 당할 수도 있다.
‘그런 상황은 절대 없어야 해!’
차은성이 심중 힘주어 중얼거렸다.
‘여기서 죽기에는…… 난 아직 할 일이 많아.’
차은성은 망원경으로 통나무집 주변에 흩어져 있는 중무장한 이들을 보았다.
몇 명인지 아직 정확한 인원수를 모른다. 그들의 무장에 관해서도 모른다. 그 때문에 최대한 중무장한 이들에 관해 알고자 하였다.
‘일단 몇 명인지 파악해야 해. 그리고 통나무집 내부에도 사람이 몇 명이나 있는지 알아야 하고.’
차은성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계속 망원경으로 통나무집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상대해야 하는 정확한 인원수를 알아야 어떻게 그들을 상대할지, 적절한 전술을 생각해 낼 수 있다.
전투에서 필히 체크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적을 상대로 한 정찰 및 정보활동. 아군의 보급 등.
차은성은 그와 같은 것들을 유념하고 있었다.
* * *
달이 밤하늘 정중앙에 이른 자정 무렵.
중무장한 이들의 교대가 이루어졌다. 대략 열두 명 남짓 되는 것 같다.
하나같이 군사훈련을 받은 정예병들 같다.
미국의 정규군은 장비와 무기발로 싸우는 군사 조직이다. 진짜 전투는 미국의 특수부대가 한다.
차은성은 교대하는 중무장한 이들이 혹 미국 특수부대 출신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어쩌면 관련 특수부대를 나온 전역자들로 이루어진 용병들일지도 모르지.’
차은성은 섣불리 공격하기에는 부담스러웠다.
막 교대가 끝난 중무장한 이들을 공격할 생각은 없었다.
공격할 경우.
교대한 이들이 밖으로 뛰쳐나와 자신을 상대하는 한편, 자신이 숨어 있는 곳을 찾으려 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그렇게 되면 그들 모두를 자신 혼자서 상대해야 한다.
수적 열세다.
자신에게 매우 불리한 상황이 전개될 것이 뻔하다. 그런 상황은 달갑지 않다. 무조건 피해야 한다.
차은성은 교대한 이들이 잠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혹 대인 레이더와 같은 장비가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닌지 주의하며 재차 통나무집 주변을 은밀히 돌아다니며 세세하게 둘러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