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NIS의 천재 스파이 (170)화 (170/208)

NIS의 천재 스파이 (170)

그는 익숙하게.

“헤이, 브라운. 나 왔어!”

식당 안이 떠나가라 고성을 질렀다. 그러자 주방에서 앞치마를 한 중년인이 나왔다.

카우보이모자를 쓴 백인을 본 중년인은 눈살을 찌푸렸다.

“랄프. 두 번 다시 우리 식당에 오지 말라고 말했었지.”

언짢음을 감추지 않았다.

카우보이모자를 쓴 백인 랄프가 앞치마를 한 중년인 브라운에게 목청을 높였다.

“이거 왜 이래. 내가 이래 봬도 여기 9년 단골이라고.”

“손님들과 싸우는 단골은 필요 없어. 그리고 너 같은 인종차별주의자는 난! 싫다고! 알겠어.”

앞치마를 한 브라운이 언성을 높였다. 혼혈인 그로서는 인종차별주의자인 랄프가 싫을 수밖에 없다.

랄프는 브라운에게 지지 않으려는 듯 대꾸했고, 그 때문에 브라운과 랄프는 잠시 입씨름했다.

“내가 외지인에게 그러지 동네 사람들에게 그러진 않잖아!”

랄프가 목청을 높였다.

말씨름에 지친 듯.

브라운이 더는 아무 말 하지 않고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랄프가 그런 브라운에게 목청을 높였다.

“늘 먹던 걸로 줘.”

그러곤 시선을 바로 하며 테이블로 걸어가려 했다.

멈칫.

랄프가 테이블로 향하던 걸음을 멈추고 서며 차은성과 나란히 앉아 버거를 먹는 동양인 여자를 바라보았다.

씨이익.

랄프가 마치 득템한 듯이 미소 지으며 눈을 반짝였다.

그 모습이 흡사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의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동양인 여자.

랄프가 사는 마을에서는 보기 매우 어렵다. 1년에 한 번 볼까 말까다.

랄프는 앉아 있는 동양인 여자에게 거리낌 없이 걸어갔다.

차은성은 포크로 소시지 조각 하나를 찍으며 걸어오는 랄프를 흘겨봤다.

‘쯧.’

말썽 일으키지 말았으면 했는데, 아무래도 헛된 희망 사항 같다.

이윽고.

랄프가 걸음을 멈추고 서더니 차은성과 동양인 여성 사이로 몸을 들이밀었다.

차은성에게 등을 보이며 테이블에 기대 비스듬히 선 랄프가 동양인 여성을 마주 보았다.

“헤이. 어때, 나와 같이 맥주 한 잔 하는 것이?”

동양인 여자에게 수작을 거는 랄프. 한두 번 한 일이 아닌 듯 무척 자연스러웠다.

동양인 여성은 랄프를 보지 않았다. 앉아 정면을 보며 묵묵히 버거를 먹을 뿐이다.

“헤이. 내 말 안 들려!”

랄프의 음성이 다소 높아졌다. 은근 성내는 것 같아 동양인 여성이 움칫거리며 반응하고 말았다.

그 모습에 랄프가 흐릿한 득의의 눈빛을 띠었다. 랄프가 다시 동양인 여성에게 말하려는데.

툭, 툭.

차은성이 뒤에서 랄프의 등을 가볍게 두어 번 두드렸다.

랄프가 돌아보며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동양인 여성과 잠시라도 놀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방해받았다.

그래서일까?

랄프가 성난 표정을 지으며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차은성에게 말하려 했다.

“넌 뭔데 끼어…….”

랄프의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차은성이 정면을 보며 왼손을 랄프에게 뻗었다.

덥석.

랄프의 머리를 움켜쥐자마자 힘껏 끌어당겼다.

불시에 머리를 당기는 차은성의 손길을 랄프는 피하지 못했다.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콰, 콰, 쾅.

차은성은 랄프의 얼굴을 연거푸 테이블 모서리에 찍었다.

“아아악!”

랄프가 고통스러워하며 마구 비명을 질렀다. 대번에 코가 짓뭉개지기라도 한 듯 코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이빨 역시 충격을 받아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충격과 고통이 의외로 컸다.

차은성은 거침없이 머리를 움켜쥔 채 랄프를 왼쪽 뒤로 집어 던졌다. 그 힘에 랄프가 힘없이 뒤에 있는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한편.

느닷없이 일어난 상황에 동양인 여자가 매우 당황하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동그랗게 뜬 눈으로 차은성과 랄프를 번갈아 보았다.

뭘 어떻게 할 겨를도 없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자 상황이었다.

차은성은 그녀를 보며 눈짓으로 입구를 가리켰다.

―가라.

차은성의 무언을 알아들은 동양인 여자가 잠깐 그를 보더니 일어나 빠른 걸음으로 입구로 향했다.

걸어가는 그녀를 힐긋 본 차은성이 천천히 앉은 의자에서 일어나며 나이프를 오른손에 쥐었다.

그러는 동안.

랄프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차은성은 랄프에게 돌아서며 손에 쥔 나이프를 던졌다.

휘이익.

나이프는 눈 깜짝할 사이에 허공을 지나 랄프의 오른발 허벅지에 깊이 박혔다.

퍽.

그 고통에 랄프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아아악!”

양손으로 나이프가 박힌 허벅지를 잡으며 랄프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차은성은 그런 랄프를 보며 서늘한 눈빛을 띠었다.

살인 충동!

가슴 저 깊은 곳에서 랄프를 단숨에 죽여 버리고 싶은 강한 충동이 일었다.

다중 성격 장애.

약을 끊으며 또 다른 존재가 눈을 떴다.

차은성은 지그시 이를 악물었다.

랄프를 죽여 버릴 경우.

가장 먼저 지역 보안관들이 움직일 것이다. 그럼 기록이 남는다.

혹시라도 CIA와 FBI가 자신을 추적해 올 경우. 랄프는 중요한 추적 단서가 될 수 있다.

지역 보안관과 추적의 단서가 되는 것이 두렵진 않다. 다만 귀찮을 뿐이다.

차은성이 마음속으로 힘겹게 충동을 억누르는 사이.

주방에서 앞치마를 한 브라운이 급히 나왔다. 그는 차은성과 랄프를 보곤 놀라 소리쳤다.

“잠깐!”

차은성이 멈칫하더니 브라운을 돌아보았다.

“손님. 우리 식당에서 말썽이 일어나는 것을 저는 원하지 않습니다.”

브라운이 말하며 눈짓으로 입구를 가리켰다.

―얼른. 빨리 가.

브라운의 무언의 재촉에 차은성이 픽 웃더니 테이블로 돌아섰다.

차은성은 지갑에서 돈을 꺼냈다.

음식 값과 팁을 계산해 테이블에 달러를 몇 장 내려놓았다. 그리고 지갑을 챙기며 입구로 돌아섰다.

천천히 걸어가는 차은성.

앞치마를 한 브라운이 걸어가는 차은성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랄프를 돌아보았다.

“언제고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어. 그러게, 왜 타지 사람에게 그렇게…….”

앞치마를 한 브라운이 말하는 사이.

랄프가 비명을 지르며 고래고래 고함쳤다.

“아아악! 보안관에게 연락해. 어서 빨리 보안관을 부르라고. 아아악!”

랄프의 고함에 걸어가던 차은성이 멈칫 서더니 천천히 뒤돌아섰다.

허리 뒤춤에서 글록을 꺼내는 차은성을 본 브라운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허억!”

대경실색한 표정을 지으며 두 눈동자를 엄청 크게 치떴다.

랄프는 차은성이 총구를 겨냥하는 모습에 아연실색했다. 죽음을 목전에 둔 공포에 랄프는 잠시 허벅지의 고통을 잊었다.

순간.

타……아……앙.

한 줄기 긴 총성이 울렸다.

*    *    *

책상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피우는 던컨 허슬러.

온몸으로 짜증을 내보이고 있었다.

“도대체가…….”

목소리에도 짜증이 배어 있었다.

돈 파블리코 사건.

도무지 진척이 없다. 누가 왜 그를 죽였는지 용의자를 특정 지어야 하는데. 전혀 진척이 없다.

한데.

서부 지역 마피아 조직들이 돈 파블리코의 죽음으로 여태까지 없던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마피아 조직 사이에 대규모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시간문제다.

전쟁을 막고 싶긴 한데. 막을 수 있는 수단이나 방법이 없다.

그런 이유로 던컨은 머리가 이만저만 아픈 것이 아니었다.

하비에 스와레즈가 좌천당하고 그의 후임이 되었을 때 엄청 기뻤다. 미 서부 지역 FBI 최고 책임자 자리는 몇 안 되는 요직이다.

출세했다고 말해도 부족함이 없는 영전인데. 돈 파블리코 사건이 터지다니. 좋은 일에 마가 끼었다. 그것도 아주 단단히…….

“휴우우우.”

던컨이 답답한 마음에 길게 한숨을 쉬며 재떨이에 피우던 담배를 비벼 껐다. 그리고 커피 잔으로 막 손을 뻗는데.

똑, 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던컨이 멈칫하더니 문을 바라보았다.

“들어와.”

말하며 잔을 쥐었다. 입으로 가져가 커피를 마시는 사이, 문을 열고 로베르토가 들어왔다.

로베르토는 문을 닫고 곧장 던컨이 앉아 있는 책상으로 걸어가 섰다. 그리고 머리를 숙였다 들며 인사하는데.

“무슨 일이야?”

커피 잔을 책상에 내려놓으며 던컨이 물었다.

“보고가 있어 왔습니다.”

“보고?”

“네.”

“혹시 용의자를 특정할 수 있는 단서라도 잡았어?”

던컨의 물음에.

“죄송합니다. 아직…….”

로베르토가 말끝을 흐렸다.

“그럼 무슨 보고야?”

던컨이 은근 짜증 냈다.

“그것이…… 서부 지역 CIA 지부와 요원들 움직임이 이상합니다. 여기저기 바쁘게 들쑤시는 것이…… 혹시 저희가 모르는 것을 CIA가 알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로베르토의 말에 던컨이 작은 침음을 흘렸다.

“흠.”

“CIA와 저희 FBI 사이에 정보의 공조가 이루어진다면 CIA가 알고 있는 정보를 저희도 알 수 있지만.”

“…….”

“만에 하나라도 돈 파블리코 사건 용의자와 관련하여 CIA가 뭔가 정보를 알고 있는데 저희가 그 정보를 알지 못한다면…….”

로베르토가 말끝을 흐리며 앉아 있는 던컨의 눈치를 보았다.

던컨은 입을 다물고 비스듬히 시선을 내리깔았다. 목하 생각하기 시작하는 모습이었다.

‘로베르토의 말대로 우리가 모르는 정보를 CIA가 알고 있다면?’

던컨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밑져야 본전이긴 한데.’

CIA가 돈 파블리코 사건 관련 정보를 가지고 있다면, 해당 정보를 입수하여 용의자를 특정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이 자신의 공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반대로.

CIA가 돈 파블리코 관련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자신이나 FBI가 손해 볼 것은 없다. 그저 현 상태가 그대로 유지될 뿐이니까.

로베르토가 생각 중인 던컨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떻게 CIA와 접촉을…….”

작은 목소리였다.

로베르토는 속한 FBI와 CIA가 견원지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9.11만 해도 그렇다. 서로 관련 정보의 공유가 늦어져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그 바람에 관련 책임을 지고 적잖은 이들이 소속 기관을 떠났다.

백악관은 물론이고 상원 정보위원회까지.

죄다 관련 정보기관들을 아주 갈아 마셔 버리려고 했다. 그 결과, 국토 안보부라는 부서가 신설되었다.

로베르토가 다시 조심스럽게 던컨을 불렀다.

“지부장님…….”

“…….”

“지부장님…….”

“…….”

“지부…….”

로베르토가 계속 부르자 던컨이 바라보았다.

“CIA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깐 빨리 좀 단서를 찾아서 용의자를 특정 지어. 대체 언제까지 시간을 질질 끌 참이야!”

던컨이 화냈다.

“우리 FBI가 어떤 기관인데, 여태까지…….”

던컨이 강한 자긍심의 목소리로 말하며 로베르토를 압박했다.

“…….”

로베르토는 침묵했다.

던컨의 말에 답할 말이 없었다. 그 때문에 로베르토가 머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쯧쯧.”

던컨이 무척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으로 머리를 숙인 로베르토를 바라보았다.

답답하다!

은연중에 그런 감정을 내색했다.

“그만 나가 봐.”

던컨의 말에 머리를 바로 한 로베르토가 대답하며 왼쪽으로 돌아섰다.

“네.”

던컨은 사무실 출입문으로 걸어가는 로베르토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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