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NIS의 천재 스파이 (161)화 (161/208)

NIS의 천재 스파이 (161)

공피고아

다름 아닌 차은성의 손길에 의해서.

방금 전의 당우희의 유혹이 공격이라면, 차은성은 수비였다.

지금은 상황이 역전되어 차은성이 공격 중이었고 당우희는 방어 중이었다.

그런데 당우희는 제대로 방어하지 못했다. 차은성의 공격에 그녀의 방어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차은성이 담담하게 말했다.

“저를 원하신다면 양용 형님의 허락을 먼저 받으십시오.”

당우희는 어이가 없었다.

차은성이 죽은 양용의 허락을 구하라고 말했다. 이미 죽은 사람의 허락을 어떻게 얻는단 말인가?

차은성은 당우희의 본능을 자극하며 그녀를 걷잡을 수 없이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당우희의 떨림은 눈에 확연히 보일 정도로 거세졌다.

“제, 제발…….”

당우희가 견딜 수 없는 한계에 자신이 이르렀음을 말했다. 그러자 자극하던 차은성의 손길이 멈췄다.

차은성은 천천히 일어나며 자신이 앉았던 소파에 당우희를 앉혔다. 그리고 살짝 당우희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쪽.

차은성은 일어나 서며 당우희를 내려다보았다.

“형수님은 남자라면 누구나 갖고 싶어 할 정도로 멋진 여잡니다. 하지만 저는 의부님을 실망시켜 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비록 양용 형님과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동생으로서의 의리는 지키고 싶습니다. 그럼.”

차은성이 머리를 숙였다 들며 좌로 돌아서더니 곧장 문으로 걸어갔다.

당우희는 소파에 비스듬히 앉아 가쁜 숨을 쉬었다.

“하악, 하악.”

그녀는 문으로 걸어가는 차은성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여, 역시 내가 사람을 잘못 보지 않았어.’

당우희는 확신했다.

자신의 유혹을 뿌리치고 양용에 대한 의리를 고집하는 차은성.

자신과 여생을 함께할 배우자로 차은성만 한 남자는 없다!

그렇게 마음속으로 확신했었다. 그 확신은 방금 전의 일로 더욱 굳어졌고.

당우희는 문에 이른 차은성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밖으로 차은성이 나가고 이내 문이 닫혔다.

탁.

당우희는 여전히 비스듬히 소파에 앉아 호흡을 가다듬었다.

“절대 안 놓칠 거예요.”

가만히 중얼거리며 굳은 다짐의 눈빛을 띠었다.

자신의 남자로 만들겠다!

당우희가 그런 마음을 내비쳤다.

과연 그녀의 뜻대로 될지…….

*    *    *

시먼역 인근에 있는 스타벅스 야외 테라스.

차은성은 카푸치노 잔이 놓여 있는 작은 원탁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간간이 카푸치노를 마시며 차은성은 숙고를 거듭했다.

양승조에 대한 암살, 사자방의 현 상태, 다섯 장로, 양승조를 노리는 암살자, 양령, 당우희 등.

머리가 아플 정도로 복잡한 생각을 거듭하고 있었다. 하나같이 허투루 보아 넘길 수 없는 것들이다.

당장 급한 것은 양승조와 양가의 안전이었다.

그리고 차기 방주 자리를 노리는 다섯 장로들 중 누군가의 암계도 염두에 둬야 했다.

그런 이유로 차은성의 머릿속에서 일련의 생각이 실타래처럼 마구 뒤엉켰다.

“휴우우.”

차은성이 한숨을 쉬며 잔을 들어 카푸치노를 마시려는데.

뚜벅뚜벅.

누군가가 걸어오는 작은 구두 소리가 낭랑하게 들렸다.

차은성은 내심 움칫했다.

자신의 주변에 감시하는 이나 지켜보는 이가 없다는 것을 이미 확인했다. 그런데 누군가가 걸어오고 있다?

‘뭐지?’

차은성은 내심 긴장하며 묵묵히 카푸치노를 마셨다.

겉으로 보기에 차은성은 매우 담담하고 태연한 모습이었다.

구두 소리의 주인이 곁을 지나가는 이일 수도 있다. 공연히 구두 소리에 반응할 필요는 없다.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차은성은 흔들림 없이 앉아 카푸치노를 계속 마셨다.

그런 한편으로.

남몰래 신경과 감각을 끌어모으며 날카롭게 세웠다. 또한 주의와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카푸치노를 마시며 힐금거리는 차은성의 눈에 30~40대로 보이는 한 남자가 보였다.

정장 차림의 그는 곧바로 차은성이 앉아 있는 테이블로 걸어왔다.

수여 초 후.

남자는 차은성의 맞은편에 앉더니 다리를 꼬았다.

그리고 천천히 상의에서 담뱃갑과 라이터를 꺼내더니 거리낌 없이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야외 공간이니 흡연이 타이완 법에 저촉되진 않는다.

차은성은 잔을 내려놓으며 맞은편에 앉은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자신을 찾아온 것이 틀림없다!

‘누구지?’

차은성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경계했다.

초면이다.

전혀 모르는 이인데 어떻게 자신이 여기에 앉아 있는 것을 알고 찾아왔을까?

차은성은 궁금했지만 애써 모르는 척하며 태연히 계속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가 담배를 피우며 차은성을 보더니 말없이 담뱃갑과 라이터를 밀었다.

스윽.

차은성에게 피우라고 무언으로 말하는 그의 행동에.

피식.

차은성이 소리 없이 실소하더니 담뱃갑과 라이터를 거리낌 없이 받아 들었다.

그러곤 보란 듯이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며 주변을 힐금거렸다.

미처 알아채지 못한 모종의 감시망 속에 자신이 지금 있는 것은 아닐까?

차은성은 내심 우려하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후우우우.

남자가 담배 연기를 뿜더니 피우던 담배를 왼손으로 바꿔 쥐었다.

그리고 오른손을 들어 상의 안쪽에 집어넣었다가 빼냈다.

사내는 손에 쥔 명함을 테이블에 놓더니 방금 전에 그랬던 것처럼 담배를 피우는 차은성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리는 사내의 무언의 행동에 차은성의 눈에서 작은 빛이 반짝였다 곧 사라졌다.

차은성은 주저하지 않고 거침없이 왼손을 뻗어 명함을 받아 들었다.

―MJIB 장샤오츠.

명함을 본 순간 차은성은 자신도 모르게 흠칫하고 말았다.

―MJIB.

타이완 법무부 조사국!

한국으로 치면 NIS와 검찰, 그 중간의 성격을 띤 국가기관이다.

2013년 타이완 국방부 국회 연락처장인, 한국으로 치면 준장 계급인 우진쥔 소장이 스파이 혐의를 받았다. 그런 그를 타이완 법무부 조사국이 감찰했었다.

차은성이 담배 연기를 뿜으며 장샤오츠에게 말했다.

“명함은 얼마든지 위조 가능한데…….”

신원을 명확하게 밝혀라!

차은성이 그렇게 돌려 말하자 장샤오츠가 피식 웃더니 담배를 껐다.

그런 다음.

상의에서 폰을 꺼내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곧 누군가와 통화하며 광둥어로 뭐라 말하기 시작했다.

차은성은 내심 눈살을 찌푸렸다.

‘망할.’

표준어인 북경어는 알지만 광둥어는 약하다. 그 때문에 장샤오츠가 통화 상대방에게 말하는 것을 다 알아듣지 못했다.

다만.

안부를 묻고 자신을 언급하는 것을 간신히 알아들었을 뿐이다.

잠깐이란 시간이 지나고.

돌연 장샤오츠가 차은성에게 폰을 내밀었다.

차은성은 방금 전 장샤오츠가 건넨 테이블에 있는 담뱃갑과 라이터를 장샤오츠에게 밀었다. 그리고 폰을 받아 귀에 댔다.

그러자.

“여어, 차 팀장. 무슨 바람이 불어 타이완에 가 있어?”

귀에 익은 낭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방 선배?”

차은성이 생각하는 이가 맞는지 확인하려 하였다.

“하하하. 오랜만이야.”

폰 너머에서 NIS 대외 협력관인 방학기의 친근한 목소리가 들렸다.

NIS 기수로 치면 선배이고, 자신이 팀장 직급이라 업무 관계로 과거 몇 번 방학기를 만난 적이 있다.

선배 방학기는 자신이 강제 퇴직 당한 것을 모르는 눈치다.

‘하긴 회사의 보안 방침이 그렇지 뭐.’

차은성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잠시 방학기와 짧게 말을 주고받았다.

같은 NIS 소속이라고 해도 관련 업무가 없으면 서로 만나거나 연락을 주고받기가 힘들다.

타 팀의 팀원들이나 업무에 관해 알려고 해서도 안 되는 것이 NIS 보안 방침 중 하나다.

업무 관계가 아니었다면 아마 방학기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

“장샤오츠의 신원은 내가 보증해.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잘 좀 부탁해.”

“네.”

“그럼, 또 보자고.”

차은성은 방학기와의 통화를 끝내고 폰을 장샤오츠에게 건넸다.

“단단히 준비하고 날 찾아온 것 같은데. 이유가 뭡니까?”

차은성이 물으며 폰을 상의에 넣는 장샤오츠를 바라보았다.

장샤오츠는 다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타이완 삼합회 내에 중국 스파이가 있을 가능성 때문에…….”

장샤오츠가 말하며 눈을 반짝였다.

차은성의 도움을 원하는 눈치다.

타이완 정부와 삼합회는 아주 독특한 관계를 맺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법기관인 법무부 조사국이 직접 타이완 삼합회 내부를 파고들기에는 이런저런 애로가 적잖다.

사법기관과 범죄 조직.

양측 사이에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 그 때문에 타이완 삼합회 내부 동향이나 상황 파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양이다.

타이완 삼합회 내부에 중국 스파이가 암약하고 있을 가능성이라니.

차은성은 내심 놀랐지만 태연하게 장샤오츠를 마주 보았다.

“굳이 나일 필요가 있습니까?”

장샤오츠가 다소 서툰 한국어로 말했다.

“신뢰할 수 있고, 확실한 사람.”

“그래도 난 외국인인데.”

“NIS 요원. 방첩에 대한 교육과 훈련을 받았을 테니.”

장샤오츠가 은근 약 올리듯이 말하며 미소 지었다.

씨익.

삼합회 내의 누가 중국 스파이인지 지금으로서는 모른다.

삼합회 내에 있는 전문가가 나서 주어야 한다. 하지만 삼합회 내부에는 방첩 관련 전문가는 없다.

해당 조건에 부합되는 이는 현재로서는 차은성밖에 없다.

장샤오츠이 서툰 한국어로 차은성이 필요한 이유를 말하자 은성은 피식 웃었다.

“뭐, 방 선배의 소개니.”

넌지시 승낙하며 내심 눈을 반짝였다.

‘어쩌면?’

양승조를 암살하려는 자가 중국 스파이일지도 모른다.

‘다섯 장로 중 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설마 1차 항쟁 이후 다섯 장로 중 누군가가 중국 국안부에 포섭된 건가?’

차은성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피우던 담배를 껐다.

그리고 카푸치노를 마시며 장샤오츠를 힐금거렸다.

담배를 피우는 장샤오츠.

봐하니 박영광처럼 골초인 것 같다.

“CIA의 추적 및 시선 교란.”

장샤오츠가 협력의 대가를 말하자.

마침 카푸치노를 마시던 차은성이 찰나 흠칫하고 말았다. 자신도 모르게 장샤오츠의 말에 눈에 띄게 반응해 버렸다.

출국한 후 모스크바와 텔아비브를 거치는 동안 자신을 추적하는 CIA의 이목을 느끼고 있었다.

‘벌써!’

빠르다.

CIA가 자신이 타이완에 있고 3대 조직 중 하나인 사자방과 모종의 연관이 있는 것을 아무래도 알아챈 것 같은데…….

차은성은 히죽 웃으며 천천히 잔을 내려놓았다.

“약합니다.”

장샤오츠가 움칫했다.

차은성을 뒤쫓는 CIA를 잠시 막아 주겠다 제의했는데, 차은성이 그 이상을 요구한다.

장샤오츠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자 몇몇 주름이 잡혔다.

차은성은 장샤오츠에게 말했다.

“CIA 교란에 더해 해당 스파이에 관해 파악한 그쪽의 정보 일체. 그리고 내가 필요로 하는 무기의 공급 및 약간의 활동비.”

“너무 많은데.”

장샤오츠의 대꾸에 차은성이 즉각 말했다.

“아무 정보나 단서도 없이 삼합회 내에 있을 중국 스파이를 찾아내라는 것은 무리지 않습니까?”

장샤오츠는 뭐라 말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고 물끄러미 차은성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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