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S의 천재 스파이 (160)
차은성은 무안해 당우희에게 계속 식사할 것을 권했다.
“드시죠.”
당우희가 방그레 웃더니 젓가락으로 초밥 하나를 집었다. 그녀가 초밥을 입에 넣고 씹는 사이.
차은성 역시 젓가락으로 초밥을 하나 집어 입에 넣었다. 천천히 씹으며 레이와 10여 명의 부하를 곁눈질했다.
말한 대로.
레이와 부하들이 레스토랑 손님들에게 찾아가 정중하게 머리를 깊이 숙이며 사과하기 시작했다.
차은성은 곁눈질하던 시선을 바로 하며 심중 의문을 느꼈다.
‘지난 몇 년 동안.’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1차 항쟁 당시의 사자방 방도들과 지금의 사자방 방도들은 전혀 다른 사람처럼 이질적인 느낌을 준다.
‘으음.’
차은성은 마음속으로 침음을 흘렸다.
알아봐야겠다.
자신이 없었던 지난 몇 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래도 관련 정보들이 필요할 듯싶다.
* * *
점심을 먹고 당우희의 사무실로 돌아온 차은성은 곤혹스러운 상황을 마주했다.
상석인 1인용 소파에 당우희가 차은성을 반강제로 앉혔다.
그리고 자신은 오른쪽에 있는 3인용 소파에 앉았다.
잠깐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당우희의 비서가 들어와 두 찻잔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밖으로 나갔다.
그사이.
당우희가 일어나 그녀의 책상으로 갔다 돌아왔다. 다시 소파에 앉는 그녀의 손에는 몇 장의 서류가 들려 있었다.
당우희는 서류들을 앉은 차은성 앞에 내려놓았다.
“서명 및 사인하세요.”
차은성은 당우희를 보았다.
“어떤 서류인지 읽어 볼 틈도 주지 않고 다짜고짜 서류에 서명 및 사인을 하란 말입니까?”
당우희가 빙긋 웃더니 눈으로 서류를 가리켰다.
“그럼 보시든가요.”
차은성은 앞에 있는 서류를 내려다보며 하나씩 살펴보기 시작했다.
채 몇 초도 되지 않아.
“이건!”
놀란 차은성이 급히 앉은 당우희를 바라보았다.
당우희는 차분하게 말했다.
“아버님과 합의가 되면 바로 법적 절차에 들어갈 거예요. 만약 합의가 되지 않는다면 서류들은 모두 폐기될 거구요.”
“혹시 의부님 지십니까?”
차은성의 물음에 당우희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흠.”
차은성은 단발의 침음을 흘리며 서류를 보았다.
‘어떻게 하지?’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일이다.
자신이 순수 중국 혈통이 아님을 양승조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 때문에 법적으로 양자 입적은 가능하지만 사자방의 소방주에 이어 방주가 되는 것은 현시점에서는 불가능하다.
‘의부님이 그것을 모를 리가 없는데. 음…….’
차은성은 고심의 눈빛을 띠었다.
서류에 서명 및 사인을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좀처럼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당우희가 차은성을 재촉했다.
“뭐하세요. 빨리 서명 및 사인하세요.”
차은성이 다시 당우희를 보았다.
“그렇게 밀어붙여서 될 일이 아닙니다.”
“말씀드렸잖아요. 아버님과 합의가 되지 않으면 폐기한다고요.”
“믿어도 되겠습니까?”
차은성이 의심의 목소리로 물었다.
“물론이죠. 제가 왜 속이겠어요.”
“좋습니다. 믿어 보겠습니다.”
차은성이 대꾸하자 당우희가 기다렸다는 듯 펜을 내밀었다.
차은성이 펜을 받아 들며 한숨을 쉬었다.
“휴우.”
차은성은 서명 및 사인하며 마음 한구석으로 불안을 느꼈다.
사기 당하는 기분이었다. 지금 당우희가 자신을 속이는 것은 아닐까?
차은성은 혹시나 싶어 서명 및 사인하며 법적 문제를 염두에 두었다. 당우희 모르게 서명과 사인에 살짝 장난쳤다.
서명 및 사인을 끝내자 당우희가 기다렸다는 듯 서류들을 챙겼다.
그녀는 다시 소파에서 일어나 책상으로 갔다가 돌아왔다.
앉은 차은성의 우측으로 가까이 다가오더니.
뭘 어떻게 할 틈 없이.
차은성이 상상도 하지 못한 돌발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당우희의 행동은 이만저만 빠른 것이 아니었다.
차은성은 그녀의 행동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형수님!”
조건반사적으로 크게 소리쳤다.
당우희는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았다. 태연해도 너무 태연했다.
그녀는 차은성의 무릎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더니 양손으로 차은성의 목을 둘렀다.
과감한 도발에 차은성은 어쩔 줄을 몰라 엄청 당황하며 쩔쩔맸다.
당우희는 차은성의 왼쪽 귀에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댔다.
“……난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았어요. 어디까지나 집안끼리의 정략적인 결합이었죠.”
당우희가 죽은 양용을 슬쩍 언급했다.
결혼을 강요당했다!
차은성은 당우희의 말에 당황하며 무의식적으로 두 눈을 질끈 내리감았다.
왼쪽 귀에서 당우희의 숨결이 느껴진다. 귀를 간지럽히는 당우희의 입김에 자신도 모르게 성적 흥분을 느끼고 말았다.
그리고 무릎에서 느껴지는 당우희의 히프가 주는 감촉. 가슴에 착 달라붙은 그녀의 부푼 젖가슴.
당우희가 자신을 유혹하려는 것 같다.
‘아, 안 돼!’
차은성은 마음속으로 고함치며 냉정을 잃지 않으려고 어금니를 부서져라 힘껏 악물었다.
으득!
요원 시절을 생각하며 관련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하던 때를 상기했다.
‘내 감정을 제어해야 해!’
차은성은 마음속으로 소리치며 스스로에게 주의를 상기시켰다.
교육받을 때.
의지로 자신의 감정을 제어했었다. 한 번 하였으니 두 번도 할 수 있다.
차은성은 혼신의 힘을 다해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디찬 이성의 날을 세우려 했다.
그렇게 차은성이 몸과 마음을 추스르는 동안 당우희가 계속 말했다.
“그 사람이 죽고 시간이 흘러 잘 생각나지 않게 되었을 무렵. 아버님이 절 불러 재혼을 말씀하셨어요.”
양승조가 아직 젊은 당우희에게 재혼을 제의한 모양이다.
“……제 의지로 평생을 함께할 남자를 선택…… 허락해 주시더군요.”
당우희는 말하며 슬쩍 차은성을 보았다. 눈을 감고 있다. 그런데 몸이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흥분하고 호흡이 거칠어져야 정상인데.
‘뭐지?’
당우희는 내심 어리둥절했다. 차은성이 그녀의 예상과 달랐다.
그녀는 말을 이었다.
“주위에 있는 남자들 중에서…… 제 선택은 바로 당신이에요. 귀수!”
순간.
내리감은 차은성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이건 유혹이야!’
차은성은 뭔가 잘못되어 간다는 느낌에 이로 혀를 깨물었다.
‘우욱!’
상당한 통증이 느껴졌다.
차은성은 양용을 생각하며 머릿속에 그의 얼굴을 떠올렸다.
‘이건 아니야!’
차은성이 마음속으로 고함치며 눈을 번쩍 떴다.
형형한 눈빛.
코드명 벌매로 화했다.
말벌의 새끼만 골라 잡아먹는 잔인한 야생 매.
무리를 짓지 않고 홀로 살아가는 나그네 매.
NIS 일급 요원 차은성이 되었다.
슥.
차은성이 왼손으로 당우희의 허리를 두르며 거리낌 없이 오른손으로 당우희의 좌측 젖가슴을 움켜쥐었다.
뭉클.
당우희는 당황하며 눈을 크게 떴다.
“흐윽.”
그녀가 염두에 둔 상황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차은성이 성적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그녀의 유혹에 넘어와야 하는데.
차은성은 전혀 흥분하지도 넘어오지도 않았다.
자신의 허리를 두르고 젖가슴을 움켜쥔 행동만 놓고 보면 차은성이 성적 흥분을 가누지 못한 모습이다.
하지만 그녀가 바라보는 차은성의 두 눈동자는 착 가라앉아 있었다.
무심했다.
전혀 흥분하지도 않았고 유혹에 넘어오지도 않았다는 것을 곧바로 알 수 있다.
냉정한 이지가 번득이는 차은성의 두 눈동자가 싸늘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것에 당우희는 내심 크게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차은성이 물었다.
“이걸 바라십니까?”
착 가라앉은 평온한 목소리.
“도, 도련님.”
당우희가 당황이란 감정에 그만 말을 더듬고 말았다.
그녀의 얼굴을 비집고 놀람, 당황, 당혹 등 몇몇 감정이 배어 나왔다.
차은성을 마주 보는 당우희의 두 눈동자에도 동일한 감정들이 떠 있었다.
차은성은 거리낌이 없었다.
당우희의 허리를 두른 왼팔에 힘을 주었다.
그 순간.
“헉!”
당우희가 당황이 밴 헛바람을 크게 삼키며 힘없이 차은성에게 끌려갔다.
차은성의 가슴에 당우희의 가슴이 밀착되고, 그의 오른손이 거리낌 없이 당우희의 상의 블라우스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차은성은 냉정했다.
호흡은 안정되어 있었고, 얼굴은 감정이 없는 것처럼 무정하기 이를 데 없었다.
“도, 도련님.”
당우희가 차은성을 불렀다.
“내 여자가 되겠다면서 날 도련님이라고 부릅니까?”
차은성이 매우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며 흐트러짐이 없는 눈으로 당우희를 보았다.
당우희는 알 수 있었다.
‘이. 이 사람!’
차은성이 냉정한 이성을 칼날처럼 예리하게 세웠음을.
그녀의 유혹에 넘어오지 않았고, 지금 이 순간 차은성이 어쩌면 자신을 조롱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에.
당우희의 낯빛과 눈빛이 확 바뀌었다.
무슨 승부사처럼.
차은성을 상대로 모종의 결판을 내려는 양 매우 진지해졌다.
“당신!”
말투 역시 바뀌었다.
“이러려고 그날 밤 내가 마시는 술에 약을 탄 겁니까?”
차은성의 말에 당우희가 크게 동요했다.
“그, 그건…….”
“잘 들으십시오.”
차은성이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죽은 양용 형님과 양령 누님을 친형제자매처럼 여기고 생각합니다.”
차은성은 양가의 사람들과 자신이 당우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관계가 깊다는 것을 말하기 시작했다.
“홀로 된 형수님이 평생 수절하는 것은 원하지 않습니다. 좋은 남자가 있으면 결혼해서 행복하게 여생을 살았으면 합니다. 양령 누님도 마찬가집니다. 좋은 남자를 만나 행복하게 살기를 바랍니다.”
차은성의 말에 당우희는 자신이 밀린다는 것을 알았지만 과할 정도로 당황하고 있어 차은성에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랐다.
더욱이 차은성의 왼손이 허리 아래로 미끄러지며 강한 자극을 가해 오고 단추를 다 푼 그의 오른손이 거침없이 블라우스 안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그것은 당우희에게는 견딜 수 없는 강렬한 자극이었다.
정략결혼이지만 남편은 남편이다.
양용의 사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부부 생활을 하지 않은 금욕적인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지금 차은성이 그런 자신을 자극하며 이제까지 억눌렀던 여자로서의 본능을 일깨우고 있었다.
차은성은 멈추지 않고 계속 말했다.
“저 아니라도 좋은 남자는 많습니다. 굳이 저에게 국한시키지 말고, 보다 많은 사람들을 둘러보시고 형수님의 평생 반려자가 될 남자를 찾아보십시오.”
“…….”
“저, 이제 곧 생사를 건 일전을 치러야 합니다. 그 일전에서 어쩌면 저는 죽을지도 모릅니다.”
“…….”
“그런 제가 의부님의 허락도 없이 형수님을 취하리라 생각합니까? 양용 형님에 대한 의리를 저버릴 것 같습니까?”
당우희는 피가 나도록 입술을 힘껏 깨물었다.
필사적으로 흔들리는 이성을 바로잡으려 했다.
그동안 금욕적인 생활을 하며 억눌러 놓았던 본능이 봇물처럼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오려 했다.
당우희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에 열기를 띠며 힘없이 차은성의 어깨에 머리를 얹듯이 떨궜다.
“흐으으으…….”
힘껏 깨문 입술 사이로 나직한 비음을 흘렸다. 자의와 무관하게 그녀의 몸이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