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S의 천재 스파이 (162)
차은성이 말했다.
“아닌 말로 타이완 삼합회 조직원들이 10만여 명에 가까운데, 그 10만 명 중에서 스파이를 찾아내라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장샤오츠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
맞는 말이다.
틀린 말이 아니다. 조사 대상자가 너무 많고 조사 영역이 너무 광범위하다.
“뭐, 특정 용의자를 알려 주며 그자가 스파이라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를 확보해 달라고 한다면 또 모르지만.”
차은성의 말에.
장샤오츠는 말없이 차은성을 마주 보았다.
‘후후.’
차은성은 내심 실소했다.
어떻게 삼합회 내에 스파이가 있다는 심증을 얻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누가 스파이인지 현재 모르는 것 같다.
‘하긴 용의자가 특정되었다면 굳이 날 찾아와 도움을 청하진 않았겠지.’
차은성이 생각하는 동안 장샤오츠가 한숨을 쉬었다.
“휴우. OK!”
받아들였다.
차은성이 싱긋 웃더니 상체를 숙이며 손을 뻗었다. 장샤오츠 앞에 있는 담뱃갑과 라이터를 집어 들며 말했다.
“정보, 무기, 활동비.”
어떻게 자신에게 제공할 것이냐?
차은성이 돌려 묻자.
“접선!”
장샤오츠가 만날 때 제공하겠다고 의사를 밝혔다.
“굿.”
차은성이 대꾸하며 입에 담배를 물었다.
그리고 라이터로 불을 붙이며 가만히 맞은편에 앉은 장샤오츠를 바라보았다.
‘양령 누님이 휴가라고 말했었지.’
차은성은 양령을 생각했다.
단순한 휴가가 아닌 것 같다. 자신이 양가에 나타나자마자 뒤이어 양령이 나타났다.
‘대만 군정국도 삼합회 내에 중국 스파이가 있다는 것을 알아챈 걸까?’
의심스럽다.
혹 양령이 해당 스파이에 관한 조사 및 색출 때문에 휴가를 빌미로 양가에 나타난 것이 아닐까?
* * *
수십여 분 후.
차은성은 장샤오츠와 꽤 많은 것을 화제로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그와 헤어져, 스타벅스를 나오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만 번화가 중 한 곳이 시먼역 주변이다.
“바버숍이 있을 법도 한데.”
차은성은 중얼거리며 폰을 꺼내 검색했다.
* * *
세계 어느 도시나 슬럼가가 있다.
타이베이 교외에 있는 한 슬럼가에 밤의 어둠이 찾아들었다.
영화 킹스맨의 배우들처럼 한껏 멋을 낸 차은성이 어두운 골목을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뚜벅뚜벅.
낭랑한 발자국 소리가 울려 퍼지고 어둠 속에서 무엇인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람이었다.
서너 명의 이가 슬금슬금 차은성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차은성은 소리 없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장야의 친구다.”
차은성의 말에 슬금슬금 다가오던 이들이 멈칫멈칫 서더니 이내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차은성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 * *
슬럼가처럼 인간의 본능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도 없다.
살기 위해서, 살아가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몸을 파는 이들이 있는 사창가를 지났다.
이어.
몇 푼의 돈으로 술에 취할 수 있는 가주 거리를 또 지났다.
저렴하게 배를 채울 수 있는 야시장 역시 지났다.
이윽고 차은성은 침침한 한 골목으로 들어섰다.
저 앞에 내걸린 작은 등 하나가 외롭게 어두운 골목을 밝히고 있었다.
장의사 집.
* * *
똑, 똑.
차은성이 노크한 후 문을 열자 방문을 열어젖힌 방을 배경으로 작은 마루에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50대 초반의 이.
평범한 복색으로 앉아 시름 깊은 표정을 지으며 애잔한 눈으로 들어선 차은성을 바라보았다.
“귀신처럼…….”
“오랜만입니다, 장야.”
차은성이 말하며 그에게 걸어갔다.
슬럼가의 주인 장야가 왼쪽으로 다가와 마루에 앉는 차은성을 돌아보았다.
“그동안 광고 모델로 전직했어? 그 우스꽝스러운 차림은 뭐야?”
“장야의 귀에 빨리 들어가라고…….”
“지랄한다. 일어서.”
장야가 말하며 마루에서 일어나며 신발을 신었다.
차은성이 장야를 바라보았다.
“어딜 가려고요?”
“모처럼 만났는데 가주라도 한 잔 걸쳐야지.”
장야가 말하며 문으로 걸어갔다.
차은성이 피식 웃으며 마루에서 일어나 장야를 뒤따랐다.
* * *
야시장 한편.
벽에 탁 붙인 허름하고 엉성한 나무 탁자에 서너 개의 술안주가 놓여 있고.
흔히들 길거리 술이라고 말하는 가주 몇 병이 덩그러니 탁자에 나뒹굴었다.
장야가 고개를 젖히며 손에 쥔 접시의 술을 한 번에 다 마셨다.
타앙.
빈 접시를 내려놓으며 장야가 맞은편에 앉은 차은성을 바라보았다.
“양가에 나타났다는 소리는 들었어. 무슨 바람이 불어서 돌아온 거야?”
“운명이 이끄는 대로.”
“지랄한다. 운명은 무슨…… 용건이나 말해.”
“1차 항쟁 이후 지금까지 타이완과 홍콩 삼합회에서 일어난 모든 일!”
“정보를 원한다?”
장야의 물음에 차은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불은?”
“비트코인.”
“좋지. 아주 확실하니깐.”
장야가 웃으며 술병을 들었다.
쪼르르.
빈 접시에 술을 따르며 천천히 차은성이 원하는 정보를 말하기 시작했다.
* * *
시간이 흐르며 차츰 야시장의 손님들 발길이 뜸해졌다.
있던 손님들도 하나둘 떠나가고 야시장은 서서히 적막해졌다.
장야의 말을 묵묵히 경청한 차은성이 손을 들더니 상의에서 밀봉된 두 개의 봉투를 꺼냈다.
그리고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장야에게 두 봉투를 내밀었다.
스윽.
장야가 두 봉투와 차은성을 번갈아 보았다.
“뭔데?”
“쥐도 새도 모르게 패도맹주와 황하회주에게 전해 줬음 합니다.”
“내가 니 심부름꾼이야?”
장야가 투덜대며 두 봉투를 집어 들었다. 상의에 집어넣는 것을 본 차은성이 말했다.
“알아봐 줬음 하는 것이 있습니다.”
“뭔데?”
“……북경, 홍콩과…… 접촉한 모양인데. 그자에 관한…….”
“중국 국안부 스파이에 관한 건이라면 난 손대고 싶지 않아.”
장야가 거절했다.
차은성이 흠칫하며 장야를 바라보았다.
“뒷골목 정보꾼인 주제에 국가기관과 얽히고 싶진 않다고!”
장야가 완강하게 거절했다.
“단지 접촉 관련 정보만 있으면 됩니다.”
“그게 얽히는 거야.”
“…….”
“지금 너와 이렇게 마주 앉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난 위험해.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어?”
장야의 말에 차은성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
장야가 천천히 일어나며 말했다.
“조심해. CIA 쪽에서 널 죽이려고 히트맨을 고용했다는 말이 있으니깐.”
차은성은 살며시 미소 지었다.
“타이완 암흑가에서 귀수를 죽이려고 달려들 정도로 간 큰 살인 청부업자가 과연 있을까요?”
장야가 옆으로 돌아섰다.
“지난 몇 년 동안 타이완 암흑가가 많이 변했어. 조심하라고.”
차은성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장야가 말과 함께 걷기 시작했다.
술에 취한 듯 비틀비틀하며 차은성의 시야에서 차츰 멀어졌다.
* * *
슬럼가를 빠져나온 차은성은 네온사인이 휘황찬란한 도심의 거리를 걸었다.
밤의 거리는 행인들로 북적였다.
행인들 사이를 한참 동안 스쳐 지나가던 차은성이 천천히 걸음을 멈추더니 우로 돌아섰다.
×××.
속칭 ‘백엔숍’으로 불리는 일본 대형 잡화점.
친일의 타이완답게 일본 쪽 점포가 상당히 눈에 많이 띈다.
차은성은 이내 숍으로 걸어 들어갔다.
직후.
한 사람이 빠른 걸음으로 뒤이어 숍으로 들어갔다.
20대 중반의 그는 귀 여기저기에 피어싱을 했고, 입은 옷 또한 일장기를 모티브로 한 캐주얼이었다.
* * *
차은성은 진열대 사이를 지나가며 구석 상단에 있는 대형 반사거울을 힐금거렸다.
일장기를 모티브로 한 옷을 입은 이.
차은성은 시선을 바로 하며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어떻게 알았지?’
문득 장야가 생각난다.
자신에 관한 정보를 다른 이에게 팔았을까?
‘아니야. 장야가 그럴 사람은 아니야. 그럼…….’
둘 중 하나 같다.
CIA 아니면 삼합회.
양승조를 암살하려고 한 의문의 이가 은밀하게 그동안 자신을 감시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지만 그런 낌새를 전혀 알아채지 못했는데. 음.’
차은성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CIA를 생각했다.
CIA라면 첨단 감시 장비와 타이베이 곳곳에 있는 감시 카메라 등.
동원 가능한 모든 것을 통해 자신을 주시 및 감시할 수 있다.
장야가 주의를 준 대로 뒤에 따라붙은 자가 CIA가 고용한 히트맨일 수도 있다.
차은성은 천천히 진열대를 스쳐 지나가며 주위를 살폈다.
* * *
수십여 초 후.
차은성은 진열대에 있는 네모난 투명 플라스틱 박스 하나를 집어 들었다.
서둘러 개봉한 후.
안에 있는 못을 한 움큼 손아귀에 쥐었다.
손가락 두어 마디 길이의 못.
차은성은 박스를 진열대에 내려놓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다시 진열대 사이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곧바로 화장실로 향했다.
* * *
화장실로 들어선 차은성은 내부를 빠르게 살폈다.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지만 자신 외에 다른 이들은 없었다.
* * *
20대 중반의 일장기를 모티브로 한 옷을 입은 이가 천천히 화장실로 들어섰다.
발소리를 죽인 그는 손을 허리 뒤로 돌리더니 이내 총을 꺼냈다.
총은 독특했다.
소음기가 부착되어 있었는데 탈, 부착용이 아닌 아예 총과 일체화되어 있었다.
무음 권총.
중국 국가 안전부가 오래전에 소련 KGB의 암살용 권총을 기본 베이스로 개발한 암살용 권총이다.
그는 양손으로 총을 받쳐 들며 앞으로 내밀었다.
천천히 화장실 내부를 살피는 그의 두 눈동자가 긴장으로 번들거렸다.
입구 바로 우측에 세면대가 있고, 좌측 바로 앞에는 칸막이벽이 있었다.
칸막이는 모두 네 개였다.
끝에는 청소용 도구를 보관하는 비품 보관용 칸이었고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첫 번째 칸은 닫혀 있었고.
두 번째와 세 번째 칸은 문이 비스듬히 열려 있었다.
그는 조용히 움직이며 첫 번째 칸 아래를 살폈다. 그러자 구두와 바지 밑단이 보였다.
소리 없이 미소 짓더니 그가 사격 자세를 잡았다.
차은성이 변기에 앉아 있는 것을 감안. 차은성의 가슴 높이를 염두에 두고 총구를 겨냥했다.
곧.
퓨퓨퓨퓻.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기자 낮은 소리와 함께 사격이 이루어졌다.
퍼퍼퍼퍽.
눈 깜짝할 사이에 칸막이벽에 네 개의 구멍이 뚫렸다.
그 모습에 그가 득의의 눈빛을 띠는 찰나!
세 번째 칸막이에서 차은성이 밖으로 뛰쳐나왔다.
휘익.
차은성이 그를 향해 손아귀에 쥔 못을 내던졌다. 그러자 다수의 못이 삽시간에 허공을 스쳤다.
* * *
차은성이 막 뛰쳐나오던 순간. 그는 엄청 놀라며 급히 차은성을 향해 돌아섰다.
그리고 다수의 못을 던지는 차은성의 손짓에 본능적으로 왼팔을 들어 얼굴을 가드 했다.
동시에.
오른손에 쥔 권총의 총구로 차은성을 겨누며 방아쇠를 당기려 했다.
그사이.
투투툭.
왼팔에 닿은 못들이 힘없이 화장실 바닥으로 떨어졌다.
* * *
눈 깜짝할 사이에 달려든 차은성이 양손으로 그의 오른손과 총을 잡아챘다.
그리고 순식간에 총을 내리 돌리자 총구가 그의 가슴으로 향했다.
그 바람에 방아쇠를 당기려던 그의 손가락이 순간 멈칫거려졌다.
결국 그는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뭘 어떻게 할 수 없는 찰나지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