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S의 천재 스파이 (148)
신변 정리
차은성이 말했다.
“아버지가 죽임을 당할 때. 제가 그 모습을 보고 쇼크를 받아 정신병원에 입원한 후로 어머니는 하실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셨습니다. 그러니 더는 제게 책임 같은 것을 느끼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리고 정말 드리고 싶지 않은 말씀인데. 이제 그만 절 놔주셨으면 합니다. 어머니.”
차은성은 이를 꽉 악물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흐를 것 같다. 필사적으로 눈물을 참으며 힘겹게 말을 이었다.
“전…….”
“…….”
“어머니가 행복하셨으면 합니다. 더 이상 제게 신경을 쓰시지 마셨으면 합니다. 전, 전…… 이, 이제…… 죽었다! 생각해 주십시오.”
“은성아아아아!”
조혜선이 자지러지는 외침을 질렀다.
차은성은 어금니가 부셔져라 힘껏 악물었다.
“며칠 전에 경찰 간부가 기자회견을 한 것을 아실 겁니다.”
차은성의 말에 조혜선의 떨림이 커졌다.
부들부들.
설마!
아주 불길한 예감이 조혜선의 뇌리를 관통하듯 스쳤다.
“암살하려고 했던 국정원 팀장이 바로 접니다. 어머니.”
순간.
조혜선의 몸이 우로 넘어지듯 쓰러졌다.
털퍼덕.
그녀는 차은성의 말에 정신을 잃고 말았다.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도 엄청난 말이었다.
조혜선이 쓰러지는 소리를 들은 차은성이 급히 고개를 들었다.
“어머니이이이!”
차은성이 황급히 소리치며 뒤돌아보았다.
“아주머니, 아주머니, 아주머니.”
일하는 아주머니를 불렀다.
이내.
아주머니가 나타나자 차은성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119! 119요!”
“네, 네에.”
아주머니가 서둘러 대답하며 급히 폰을 꺼내 들었다.
차은성은 모친 조혜선을 돌아보았다.
“어머니! 어머니!”
모친 조혜선이 정신을 잃을 정도로 큰 충격을 받을 줄은 몰랐다.
한국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모친 조혜선에게 인사를 하러 온 것인데.
모친이 자신의 말에 혼절할 줄이야.
차은성은 미처 몰랐다.
“어머니! 어머니!”
애타게 모친을 부르며 다가가 쓰러진 몸을 붙잡고 좌우로 흔들었다. 정신을 차리셨으면 하는데. 모친 조혜선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어머니! 어머니!”
차은성이 계속 모친 조혜선을 안타깝게 부르며 매우 크게 후회했다.
차라리 말하지 말걸!
* * *
×× 대학 병원 VVIP실.
차은성은 복도 우측 벽에 기대섰다.
힐긋.
VVIP 병실을 돌아보는 차은성의 눈에 걱정이 하나 가득 어렸다.
모친 조혜선.
아직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 그 때문에 차은성은 매우 걱정스러웠다.
자신을 제외한 가족인 정병훈 사장, 정의서, 정지용, 정예서가 연락을 받고 급히 병원으로 달려왔다.
차은성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병실을 보는 사이.
드르륵.
거칠게 병실 문을 열고 정지용이 복도로 뛰쳐나왔다.
정지용은 곧바로 서 있는 차은성에게 뛰듯이 다가갔다. 그러곤 이르자마자 양손으로 차은성의 멱살을 틀어쥐더니 차은성을 벽으로 힘껏 밀어붙였다.
“너!”
정지용이 이성을 잃은 것처럼 고함쳤다. 엄청 화난 모습이었다.
차은성은 정지용의 언행에 당황했다.
“무슨 짓이야!”
정지용에게 성난 목소리로 말하는데.
“어머니에게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무슨 짓을 한 거냐고!”
정지용이 분노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순간.
차은성은 멈칫했다.
‘이, 이 자식이!’
당황스럽다.
정지용이 어머니 조혜선에게 진심인 것 같다. 마치 자신의 친어머니처럼 생각하는 모양이다.
자신을 길러 준 친어머니!
그렇게 여기지 않는다면 정지용이 지금 이렇게 자신에게 분노할 리 없다.
차은성은 왠지 마음이 놓였다.
안심이 된다고나 할까?
정지용이 어머니 조혜선을 진심으로 자신의 어머니로 여기는 것 같아 고맙기까지 하다.
“흣.”
차은성은 실소했다.
어머니 조혜선은 자신을 버리고 정병훈과 재혼하며 그의 집으로 들어가 정의서, 정지용을 친자식처럼 키웠다.
그리고 예서를 낳았다.
자신은 박영광의 밑에서 자랐다.
문득 그것이 서글펐고. 그 서글픔에 자조적인 실소를 흘리고 말았다.
정지용이 차은성의 실소에 화냈다.
“야아아! 차은성! 너 지금 웃음이 나와아아!”
정지용이 차은성에게 고함치며 왼손으로 멱살을 계속 틀어쥐고 오른손을 어깨 높이로 들었다.
단단하게 말아 쥔 오른손 주먹.
당장이라도 차은성의 얼굴을 때리기 직전이었다.
그때.
뒤이어 급히 복도로 나온 정병훈이 소리쳤다.
“지금 뭐하는 짓이야!”
정지용이 멈칫하더니 돌아보았다.
“아, 아버지.”
당황한 것 같다.
정병훈이 아들 정지용에게 언성을 높였다.
“당장 그 손 놓지 못해!”
“아버지…….”
“당장!”
정병훈이 거듭 소리치자 정지용이 차은성을 죽일 듯 쏘아보았다.
빠득.
그러곤 잇몸을 드러내며 이를 악물었다.
“너어, 두고 보자!”
정지용이 단단히 벼르며 손을 내리고 뒤로 두 걸음 물러났다.
* * *
잠시 뒤.
벽을 등지고 차은성과 정병훈이 마주 보고 섰다.
“은성아. 지용이는 어머니가 쓰러졌기 때문에 감정이 격해져서 그런 거니깐 네가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구나.”
차은성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
입을 다물고 묵묵히 정병훈에게 머리를 깊이 숙였다 들었다. 그러곤 옆으로 돌아서더니 이내 천천히 복도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은성아…….”
정병훈이 차은성을 돌아보며 착잡한 눈빛을 띠었다.
의붓아들!
그에게 차은성은 그랬다.
돌아가신 정병훈의 모친. 조혜선의 시어머니는 차은성을 집 안으로 들이는 것을 극구 반대했고.
그 때문에 차은성을 보듬어 안아 주지도 못했다. 사실상 버렸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때문에 마음 한구석으로 차은성에게 한없이 미안한 정병훈이었다.
천천히.
정병훈의 시야에서 차은성이 멀어졌다.
* * *
병동 야외 테라스.
조경에 적잖은 심혈을 기울인 티가 난다. 주변에 녹음이 가득하다.
일자의 벤치에 차은성, 정예서가 나란히 앉아 도란도란 대화를 주고받았다.
“오빠. 지용 오빠는, 그러니깐 그게…….”
“아무 말 하지 마. 너와는 상관없는 일이야.”
“오빠…….”
예서가 좌를 돌아보았다.
여동생인데.
안쓰럽다는 눈으로 이복 오빠 차은성을 보았다.
차은성은 가만히 앞을 바라보았다.
“예서야.”
“응.”
“정말 아이돌이 네 꿈이니?”
차은성의 물음에 예서가 뜬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빠!”
차은성이 다시 말했다.
“아주, 아주 힘들 거야.”
그러자 예서가 흠칫했다.
“분노도 할 것이고 좌절도 할 거야. 절망도 맛볼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신이 혼자인 것처럼 외로움도 느낄 거야. 모든 것을 다 때려치우고 싶은, 뿌리칠 수 없는 마음의 유혹도 받을 거야.”
차은성은 앞으로 예서가 겪게 될 것들을 하나하나 입에 올렸다.
예서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
입을 다물고 침묵으로 일관했다.
차은성은 말을 끊지 않고 계속 말했다.
“네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 노력의 결실을 보지 못할 수도 있어.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진한 허무도 맛볼 거야.”
차은성이 예서를 돌아보았다.
“그래도 네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하고 싶니? 예서야?”
예서가 가만히 앞을 바라보았다.
“꿈은…….”
“…….”
“저 멀리 있어. 손을 뻗어 잡고 싶지만. 내 손이 닿지 않는 저 멀리에.”
예서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알아, 오빠. 꿈을 이루기 힘들다는 거.”
“…….”
“꿈을 손에 쥐기 위해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난 그저 다가갈 뿐이야. 그리고 어쩌면 영원히 꿈을 손에 쥐지 못할지도 몰라.”
예서의 말에서 두려움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이 묻어났다.
차은성은 말없이 이복 여동생 예서를 보았다.
“하지만 꿈을 손에 움켜쥐기 위해, 단 한 걸음이라도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
“…….”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서 저 멀리 보이는 신기루 같은 꿈을 바라만 보고 싶진 않아. 오빠.”
예서의 눈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네 노력이 부정당해도, 네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도?”
차은성이 묻자 예서가 당찬 목소리로 말했다.
“걷고 또 걷고. 그렇게 걷다 보면 꿈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갈 수 있지 않을까? 오빠.”
“닿지 않을 수도 있어.”
“이루기 힘들고,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어쩌면 그래서 꿈일 수도 있지만. 난 뭐라도 하고 싶어. 가만히 서서 꿈을 바라만 보고 있긴 정말 싫어.”
“…….”
“내 꿈에 단 한 걸음이라도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
예서의 말에 차은성이 살며시 웃더니 상의에서 미리 적어 놓은 메모지를 꺼냈다.
빙긋.
차은성은 예서에게 돌아앉으며 매듭이 지어진 메모지를 내밀었다.
“받아.”
예서가 돌아보았다.
메모지와 차은성을 번갈아 보며 의아한 눈빛을 띠었다.
“뭐야?”
차은성은 부드럽게 웃었다.
싱그레.
이어.
차분한 목소리로 예서에게 말했다.
“네가 네 힘으로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을 마주했거나 직면하게 되었을 때. 연락해.”
“오빠.”
“받아 둬.”
“뭔 말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받아는 둘게.”
예서가 메모지를 받아 챙기며 당혹스러운 기색을 지었다.
“그런데 오빠.”
“응.”
“어디 멀리 가. 마치 두 번 다시 못 볼 것처럼 말하는 게…….”
예서가 뭔가 알아챈 것 같다.
차은성이 말없이 미소 지었다.
씨익.
가타부타 말하지 않았다.
예서는 미심쩍은 눈으로 그런 차은성을 보았다.
* * *
한참 후.
의식을 차린 조혜선이 급히 차은성을 찾았다.
“은성이는? 은성이는요?”
“여보!”
정병훈이 조혜선을 부르며 그녀를 진정시키려 했다.
“은성이는요?”
조혜선은 머리가 어떻게 된 사람처럼 차은성을 거듭 찾았다.
그 모습에 정의서와 정지용이 묘한 눈빛을 띠었다.
남매 모두 조혜선을 아버지 정병훈의 배우자이자 자신들의 어머니로 인정하고 있었다.
어린 차은성을 내버려 두고 정병훈과 재혼. 집으로 들어오며 그녀는 친어머니처럼 남매를 키웠다.
진심으로. 그녀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다.
그것을 남매도 인정하는 터라 깍듯이 어머니로 대하며 존중했다.
그런데 지금 아들 차은성을 찾는 조혜선의 모습에 남매는 뭐라 말할 수 없이 착잡한 심정이었다.
“은성이! 은성이는?”
조혜선은 진정시키는 정병훈을 뿌리치며 차은성을 계속 찾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죄책감 가득한 아들 차은성에 대한 애끓는 모정!
조혜선은 그 모정에 아들 차은성을 계속 찾았다.
죽을지도 모른다!
이제 두 번 다시 아들 차은성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조혜선으로 하여금 이성을 놓게 했다.
“여보. 진정해. 진정하라고.”
정병훈은 아내 조혜선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우리 은성이, 은성아아아!”
조혜선이 목 놓아 차은성을 불렀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미 은성은 병원을 떠났기에.
* * *
그 시간.
박희오 원장은 엄청 심각한 모습으로 앉아 좌우를 번갈아 보았다.
우측 소파에 나란히 앉은 윤희상 1차장과 선우종 2차장.
좌측 소파에 역시 나란히 앉은 주철현 국장과 박영광 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