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S의 천재 스파이 (146)
“흠.”
“회사 내에 이중 스파이가 없다면 CIA가 내가 움직이는 동선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선배.”
차은성은 확신에 찬 눈으로 조영국을 바라보았다.
“뭐, CIA가 평소에 절 꾸준히 지켜보고 감시해 왔다면…… 말이 조금 달라지지만 말입니다.”
차은성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신일권이 말하고 나섰다.
“잠수는 언제까지 해야 합니까?”
차은성이 신일권을 돌아보았다.
“비상 회선으로 호출 코드가 올 때까지!”
차은성의 대꾸에 신일권은 침묵했다.
“…….”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하긴 무한 대기 모드이니 좋을 리 없겠지.
차은성은 다시금 팀원들을 둘러보며 엄중 경고했다.
“……확률적으로 내가 우려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은 희박해. 하지만 만에 하나라는 게 있으니까.”
“…….”
“마음 놓고 안일하게 있기에는 상대가 CIA라는 점이 너무 마음에 걸려.”
“…….”
“조심하고 또 조심해도 과하지 않은 상대라는 걸 다들 잘 알고 있을 거야.”
차은성은 팀원들에게 안전이 제일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어.”
팀원들은 침묵했다.
“…….”
다들 불안을 감추지 못했다.
CIA가 자신들을 죽이려고 할지도 모른다.
다들 예의 불안에 젖은 눈으로 차은성을 바라보았다.
이후 상황이 어떻게 이어질지…….
* * *
팀원들을 떠나보낸 후.
차은성은 폰을 확인했다. 부재중 전화가 수십여 통 와 있다.
박영광.
발신인은 다름 아닌 그였다.
차은성은 박영광에게 전화했다.
이내.
귀에 댄 폰에서 통화 연결음이 들렸다.
그리고 곧 폰 너머에서 박영광의 음성이 들렸다.
“은성아!”
급하게 차은성을 불렀다.
“네.”
“너, 괜찮으냐?”
박영광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재차 물었다.
“네. 괜찮습니다.”
“어디 다친 곳은 없고?”
“예, 다친 곳 없습니다.”
“다행이다. 휴우.”
박영광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차은성은 그에게 팀원들을 부탁했다.
“……만일에 대비하여 거주지를 바꾸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리고 당분간은 잠수하라고 했습니다.”
“잘했다. 일단은 잠수하는 것이 좋아.”
“그리고…… 제 개인적인 생각이긴 합니다만. 아무래도 회사 내에 이중 스파이가 더 있는 것 같습니다.”
“뭐?”
박영광이 깜짝 놀라며 반문했다.
차은성은 자신의 동선을 입에 올렸다.
“정확하게 절 노렸습니다. 제가 어디에서 어떻게 움직일지 훤히 알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제가 며칠 전에 퇴직하자마자 곧바로 절 노렸습니다. 그건 오래전부터 절 주시하고 있었다는 걸 말합니다. 회사 내부에서 누군가가 저에 관한 정부를 CIA로 흘린 것이 분명합니다.”
차은성의 말에 박영광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
차은성은 눈을 반짝였다.
“레스 큐, 레스 큐…… 발할라, 노을, 펜리르…….”
침착한 차은성의 말에 폰 너머에서 당황한 박영광의 음성이 들렸다.
“너어!”
“비록 며칠 전에 퇴직하기는 했지만. 팀원들을 위해 팀장으로서 공식적으로 해당 프로토콜의 가동을 요청합니다.”
“은성아!”
“필요합니다.”
차은성은 단호하게 말했다.
“알았다. 너도 당분간은…….”
박영광은 말을 하다가 멈췄다.
차은성의 말대로 며칠 전에 강제로 퇴직 처리되었다. 이젠 민간인이다.
엄연히 말해 국정원이 이번 일에 끼어들 공식적인 명분이 없다.
차은성은 소리 없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전 이제 민간인입니다.”
은근 개입하지 말라고 돌려 말했다.
“은성아…….”
박영광은 차은성을 걱정하고 있음을 감추지 않았다.
“일단 임범철 국장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잘했다.”
“해당 프로토콜을 빨리 진행해 주십시오. 회사 내에 누가 이중 스파이인지, 그 수가 몇 명인지 조속히 파악해야 합니다.”
차은성은 다급함을 감추지 않았다.
“물론이다. 잡히기만 하면!”
폰 너머에서 박영광의 분노에 찬 음성이 들렸다.
“그럼.”
“조심해라.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지?”
“네.”
차은성은 대답하며 천천히 귀에서 폰을 뗐다. 폰을 상의에 집어넣은 다음 주위를 들러봤다.
“이제 이곳도 마지막이군.”
곧 회사에서 관련 팀이 와 모든 흔적을 깨끗하게 지울 것이다.
차은성은 옆으로 돌아섰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니 가능한 많은 것을 미리 챙겨 놓는 것이 좋다.
각종 무기와 최첨단 장비 등등.
빼돌릴 수 있는 것은 서둘러 빼돌려 놓아야 할 것 같다.
* * *
몇 시간 전.
1인 소파에 앉은 박희오 원장이 조바심을 냈다.
“아직 도착하지 않았나?”
우측에 앉은 윤희상 1차장을 돌아봤다.
“방금 전에 두 SOG 요원의 신병을 경찰로부터 인계받았다고 연락이 왔었습니다. 그러니 아마 지금쯤이면 회사로 오는 중일 겁니다.”
윤희상 1차장의 말에 박희오 원장이 조급함을 드러냈다.
“서둘러야 할 텐데 말이야.”
은근 기대감을 풍기는 박희오 원장이었다.
윤희상 1차장은 박희오 원장을 지켜보며 살며시 미소 지었다.
씨익.
선우종 2차장이 경찰로부터 신병을 인도받은 두 SOG 요원.
그들을 CIA에 돌려주고 이번 일을 덮는 조건으로 미국으로부터 건네받을 대가!
박희오 원장이 그 대가에 기대하는 바가 큼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윤희상 1차장이다.
전재원 순경 건으로 여당 대선 후보가 낙선했다.
국정원이 대선에 끼어들어 낙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셈이 되었다.
그 때문에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제출하는 과정에서 수모를 받은 박희오 원장이다.
만약 현 정부에 뭔가 큰 이득! 예의 대가를 안겨 준다면 박희오 원장의 위상이 확 달라진다.
전재원 순경 건을 잊을 만큼 큰 성과, 대가를 안겨 준다면 박희오 원장은 강력한 존재감을 청와대에 어필하게 되는 셈이 된다.
운이 조금만 따라 준다면 이시목 당선인도 박희오 원장을 달리 볼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박희오 원장은 정권이 교체되어도 국정원장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 모른다.
운이 크게 작용해야 하지만 말이다.
자리보전.
박희오 원장이 기대감을 내비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이다.
윤희상 1차장은 그것을 훤히 알고 있기에 내심 고소를 지었다.
박희오 원장이 만약 사직서를 제출하고 원장직에서 물러난다면 1, 2차장인 윤희상과 선우종 역시 옷을 벗어야 할지 모른다.
이른바 동반 책임이자 일종의 연좌제 적용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정권이 교체되면.
원장을 포함. 1, 2차장과 각국의 국장들은 최우선 물갈이 대상이다.
역대 정권 교체 때마다 어김없이 물갈이가 이루어졌다. 이제는 해당 물갈이가 당연시된다.
그런 이유로 살아남으려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할 수밖에 없는 큰 공을 세워야 한다. 자신의 자리를 공고히 지켜 줄 공을 말이다.
전재원 순경 건으로 위기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 뜻하지 않게 SOG 건이 터졌다.
‘하늘이 우리를 도와주려고 내려보낸 구원의 동아줄이야. 하하하하.’
윤희상 1차장은 내심 크게 들떴다.
희희낙락했다.
차은성이 죽을 뻔한 것은 그의 머릿속에 남아 있지 않았다.
위기의 순간!
살 수 있는 행운이 찾아온 것에 크게 기뻐하고 가슴 가득 희망을 품을 뿐이었다.
그것은 박희오 원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조급하게 연신 벽시계와 손목시계를 번갈아 보았다.
“시간이 왜 이렇게 더뎌.”
박희오 원장이 짜증 냈다.
윤희상 1차장이 박희오 원장에게 말했다.
“원장님. 오는 중입니다. 너무 조바심 내지 않으셔도 됩니다. 일은 아주 잘 풀릴 겁니다.”
자신만만한 1차장이었다.
박희오 원장은 윤희상 1차장을 쳐다보았다.
“CIA 지부장은?”
“국정원으로 오라고 이미 통보해 두었습니다.”
“확실하게 잡아!”
박희오 원장이 매우 전투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원장님. 날로 벗겨 먹을 겁니다.”
“이번 일로 CIA를 확실히 잡아!”
“물론입니다. 그리고 CIA에게 저희가 무엇을 요구할지, 저희 애들이 지금 머리를 맞대고 회의 중입니다. 이번 기회에 CIA를 확실히…….”
윤희상 1차장은 CIA로부터 대가를 왕창 뜯어내겠다는 의중을 훤히 드러냈다.
박희오 원장은 윤희상 1차장의 말에 만면에 미소 지었다.
“역시 사람 죽으란 법은 없어. 궁 즉 통이라고. SOG 사건이 터지다니. 하하하하. 미국 애들. 완전 외통수에 걸렸어. 으하하하하!”
박희오 원장은 매우 기분이 좋은지 대소를 터트렸다.
윤희상 1차장은 대소를 터트리는 박희오 원장을 바라보며 입가에 매우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때.
똑, 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박희오 원장이 문을 돌아봤다.
“들어와.”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문이 열리며 비서실장이 황급히 뛰어 들어왔다.
* * *
몇 분 후.
정면에 있는 대형 TV를 보는 박희오 원장과 윤희상 1차장은 아연실색했다.
임범철 국장의 기자회견이 속보로 방송 중이었다.
“미, 미친!”
박희오 원장은 황당무계하다는 얼굴로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언론에 결코 알려져서는 안 되는 일을 경찰이 다 까발렸다.
이렇게 되면 CIA와의 협상이 난항을 겪게 된다.
이번 일이 가져올 파장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한국 국민들이 혈맹이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최고의 우방국인 미국이 한국 국정원 요원을 암살하려 하였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다.
이미 브뤼셀에서 다수의 요원이 죽었고. 이전 아르티펙스의 요원 네 명이 죽었다.
국외가 아닌 국내에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팀장인 차은성을 암살하려고 시도하다가 실패했다.
국민들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들고일어나 광화문에서 시위 및 집회를 하는 것은 정해진 일이나 마찬가지다.
언론은 마르고 닳도록 이번 암살 미수 사건을 떠들어 댈 것이다.
국민 여론은 하늘을 찌르고도 남을 것이다.
청와대가 국민과 미국 정부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두 고래 사이에 끼인 새우 신세나 다름없게 된다.
곧 정권 교체다.
대통령 퇴임 말기다. 국민 여론이 폭발하면 통제 불가능하다.
정치권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대응은 뻔하다. 무조건 그런 일 없었다고 시치미를 딱 잡아뗄 것이다.
한국 정부에게 있지도 않은 일로 미국을 곤란하게 하지 말라고 엄중 경고하며 강한 압박을 가해 올 것이다.
한국 정부는 국민 여론과 그와 같은 미국의 대응에 적극 맞서며 이면에 미국이 있음을 입증하지 않으면 안 된다.
퇴임 말기의 현 정부가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아닌 말로, 미국이 차기 정권과 얘기하겠다고 현 정권과 대화 시도 자체를 하지 않으려 할지도 모른다.
그럼 한미 관계가 얼어붙을 것은 자명하다.
이번 일은 질질 시간만 끌다가 차기 정권의 몫으로 남겨질 것이다.
결국 한미 간에 적당한 선에서 이번 일이 무마될 것이 뻔하다.
그런 한편으로.
청와대에서는 이런 일이 터질 때까지 국정원은 뭐 했느냐고, 왜 보고하지 않았느냐고 잡아먹으려 들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