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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S의 천재 스파이 (138)화 (138/208)

NIS의 천재 스파이 (138)

박영광은 움찔거리며 주철현 국장의 눈치를 보았다.

그사이.

주철현 국장이 성난 목소리로 외쳤다.

“언제까지 명인이 우려먹을 거야?”

“형님!”

“인마, 알아. 나도 다 알고 있다고.”

주철현 국장이 매서운 눈초리로 박영광을 마주 보았다.

“명인이 놈. 버림받아 그렇게 죽어 가도록 만든 놈들 중 하나가 바로 나야. 나라고!”

주철현 국장의 눈동자에 빠르게 물기가 고였다.

“누군 그러고 싶어서 그런 줄 알아!”

박영광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

침묵하며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위에서…… 그 씹새끼들이 내 손발을 다 묶어 놓고 명인이를 죽어 가도록 방치했어.”

“…….”

“이 내가!”

주철현 국장이 오른손을 들며 주먹 쥐더니 자신의 가슴을 마구 치기 시작했다.

퍽퍽퍽퍽퍽.

주철현 국장이 비통하기 이를 데 없는 목소리로 고함쳤다.

“명인이 그 녀석을 버렸다고! 알아듣겠어?”

“…….”

“무전으로 그 녀석이 죽어 가며 마지막으로…… 조국을 위하여! ……명인이 그 녀석의 말이 아직도 내 귀에 쟁쟁해. 그 녀석을 죽인 AK47 총성과 함께!”

“…….”

“그 병신 새끼가 위험하니 퇴출하라고 하는데도 끝까지 임무를 완수하겠다고 고집을 부릴 때. 말리지 못하고 내버려 둔 것이 내 가슴속에 한으로 남아 있어.”

“…….”

“명인이 그놈이 남긴 마지막 말을 가르친 것이 바로 나야. 나! 주철현이라고!”

“…….”

“조국을 위하여!”

고함치는 주철현 국장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흐르기 시작했다.

“필요하면!”

“…….”

“조국을 위하여 죽으라고!”

“…….”

“내가!”

“…….”

“내가!”

“…….”

“그렇게 가르쳤다고!”

주철현 국장이 피를 토할 것처럼 고함치고 또 고함쳤다.

죽은 차명인.

차은성의 아버지를 교육시킨 장본인이자 보육관이 바로 주철현 국장이었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교육시킨 요원이 죽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어떻게 손을 쓰지 못했다.

차명인이 맡은 공작이 세상에 알려지면 안 된다고.

한국 정부가 개입한 것이 절대 세상에 알려져서는 안 된다고.

비밀 유지를 위해 차명인을 버리라고.

윗선에서 그렇게 지시가 내려왔고.

주철현은 그 지시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조직에 속한 자로서 조직의 명령에 항명이란 있을 수 없기에.

결국.

차명인이 죽임을 당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이렇다 할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차명인은 죽어 가면서 무선으로 알아낸 마지막 정보를 회사로 보냈다.

교육관이자 보육관이던 주철현에게 배운 그대로, 자신의 목숨과 정보를 맞바꾸었다.

주철현 국장의 비통한 외침에 박영광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은성아…….’

차은성을 생각하며 박영광은 뼈저리게 후회했다. 차은성을 회사로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었다.

*    *    *

창문이 없는 3평 남짓한 공간.

덩그러니.

낡은 철제 테이블과 두 개의 접이식 철제 의자가 있을 뿐이다.

차은성은 철제 의자에 앉아 정면을 바라보았다.

미러.

차은성은 미러를 향해 고함쳤다.

“아직 준비 안 됐습니까? 이왕 할 거, 빨리하시죠.”

불쾌했다.

자신이 동물원 우리에 갇혀 있는 원숭이가 된 기분이다.

그리 오래지 않아.

끼익.

문이 열리며 임동일 과장이 들어왔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일상적인 걸음으로 다가온 임동일 과장이 천천히 맞은편 철제 의자에 앉았다.

“오랜만입니다. 과장님.”

차은성이 말했음에도 임동일 과장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

“정 계장이 들어올 줄 알았는데. 의외군요. 과장님이 직접 나서시다니.”

임동일 과장이 천천히 다문 입을 뗐다.

“정 계장을 자네가 너무 잘 알지 않나? 그리고 자네 말에 정 계장이 너무 민감하게 반응해. 그러니 조사가 제대로 될 리가 없지.”

“그렇다고 과장님이 직접 나서시는 것은 좀 오버 아닙니까?”

“사안이 사안인 만큼.”

임동일 과장의 말에 차은성이 흠칫했다.

‘망할!’

사안이 심각하긴 하다.

NIS의 정치 개입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뭐, 단순히 법을 어겼다고 말할 수 없는 사안이긴 하다.

임동일 과장이 가만히 차은성을 바라보더니 툭 던지듯 말했다.

“원장님이 사직서를 제출하셨어.”

차은성은 자신도 모르게 움찔했다.

임동일 과장은 차은성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청와대에서 옷을 벗기기 전에 알아서 옷을 벗으시겠다는 거지.”

“…….”

“일이 얼마나 심각한지, 이젠 알겠나?”

“그래서 제게 뭘 기대하시는 겁니까?”

“자백!”

임동일 과장이 간결하게 말했다.

“아하.”

차은성이 잊었던 것이 생각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제가 관련 정보를 유성갑 후보 측에 제공했다? 그렇게 의심하시는 겁니까?”

“아닌가?”

“증거 있으십니까?”

차은성의 반문에 임동일 과장이 눈살을 찌푸렸다.

증거?

없다!

임동일 과장이 말했다.

“아주 솜씨가 좋더군. 봉투에서 지문 하나 나오지 않았어. 머리카락이나 침도 마찬가지고. 아주 깨끗해.”

“…….”

“전문가의 손길을 탔다는 거지.”

“그래서 제가 범인이라는 겁니까?”

“전재원 순경에 관한 모든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야.”

“과장님. 제가 했다는 증거부터 제시하시고 그렇게 말씀하시죠.”

차은성은 자신은 아무 상관이 없다고 무언으로 항변했다.

“증거도 없이 절 콕 점찍어 범인으로 상황을 몰아가는 건 좀 아니지 않습니까?”

“…….”

“더욱이 전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작전 중이었습니다.”

“알아. 박 선배가 자네 보호하려고 급히 오더를 내렸다는 거.”

“과장님!”

“자네 말대로 이미 결론은 내려져 있어. 우리는 그 결론에 맞춰서…….”

“이러니까 우리 필드 요원들이 감찰실을 싫어하는 겁니다.”

차은성의 말에 임동일 과장이 움칫했다.

“누군 목숨을 걸고 사선을 넘나들며 작전하는데.”

“…….”

“명색이 동료라고 말하면서 뒤에서 우리들 머리통에 총구를 겨누는…… 그러니 누가 감찰실을 좋아하겠습니까?”

임동일 과장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

가만히 차은성을 바라보았다.

“회사에서 이미 결론을 내렸다면 감찰실에서 조사받는 것이 의미 없는 거겠죠. 안 그렇습니까?”

차은성의 반문에 임동일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차은성은 천천히 앉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추후 통보만 해 주십시오. 어떤 결론이 내려지든 따를 테니까요.”

임동일 과장이 차은성에게 언성을 높였다.

“차 팀장!”

“저, 도망 안 갑니다.”

차은성이 책상 우측으로 걸어가며 임동일 과장을 돌아보았다.

“감옥에 처넣고 싶으시면 경찰 보내십시오.”

“차 팀장!”

임동일 과장이 소리쳐 부르며 앉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

차은성은 말없이 문으로 걸어갔다.

“차 팀장!”

임동일 과장이 재차 차은성을 소리쳐 불렀다.

하지만 차은성은 돌아보지도 뭐라 말하지도 않았다.

이내.

문에 이르며 손잡이로 손을 뻗었다.

“차 팀장. 지금 자네 행위는 회사에 대한 항명으로 간주될 수 있어.”

“어차피!”

차은성이 말하며 임동일 과장을 힐긋 뒤돌아보았다.

“찍힌 몸입니다.”

차은성은 시선을 바로 하며 문을 열었다.

철컥.

그러자 좌우에서 양복을 입은 두 요원이 앞을 가로막았다.

“비켜!”

차은성이 그들에게 소리쳤다.

두 요원이 움찔하더니 임동일 과장을 바라보았다.

“휴우.”

임동일 과장이 한숨을 쉬더니 무언의 눈짓으로 비키라고 말했다.

두 요원이 눈짓을 보고는 재빨리 좌우로 비켜섰다.

차은성은 그들을 지나쳐 복도로 나왔다. 그러곤 좌로 돌아서며 천천히 걸어갔다.

저벅저벅.

*    *    *

감찰실이 사용하는 층을 벗어나는 계단 앞에 이른 차은성의 눈에 벽에 기대고 선 정가연이 보였다.

어떻게 알고 서 있는 건지…….

차은성이 걸어가며 정가연에게 말했다.

“어떻게 알고 마중 나온 거야?”

정가연이 벽에서 떨어지며 대꾸했다.

“미러!”

차은성은 피식 웃었다.

미러 너머에 서 있었던 모양이다.

“가연이 너와도 이것으로 끝인 것 같다. 그동안 고마웠고, 미안했어.”

차은성이 정가연 앞에 이르러 걸음을 멈추고 섰다.

“…….”

정가연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잘 지내.”

차은성이 말하며 왼쪽으로 돌아섰다.

이어.

계단을 내려가려는데.

“아직 포기하기에는 일러.”

정가연의 말에 차은성이 멈칫 걸음을 멈추고 서더니 뒤돌아보았다.

“무슨 말이야?”

묻자.

“이시목.”

정가연이 당선인을 언급했다.

“그 사람이 네게 도움이 되어 줄지도 몰라.”

정가연의 말에.

“풋.”

차은성이 실소했다.

“됐어.”

기대도 하지 않는다.

차은성이 다시 계단을 내려가려는데.

“혹시 네게 연락이 가면 거절하지 말고 한번 만나 봐.”

뒤에서 정가연이 말했다.

차은성은 재차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았다.

“뭔 소리야?”

“그런 게 있어.”

정가연이 말하며 뒤돌아서더니 이내 복도로 걸어갔다.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가 나지막하게 울렸다.

차은성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가연이 당선인 이시목을 왜 언급하는 건지?

*    *    *

이틀 후.

라센느는 평상시와 똑같았다.

고객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한편으로 직원들이 이리저리 바삐 실내를 오갔다.

한참 후.

끼익.

문이 열리며 세 소녀가 들어왔다.

송나리, 김남주, 방다솔.

필리핀 세부에서 만났던, 드림 엔터테인먼트사가 한창 키우는 아이돌 그룹 ‘해피’ 멤버들이다.

세 소녀에 이어 두 매니저 김보영과 이선태가 라센느에 들어오고.

뒤이어 해피 멤버들보다 한두 살 어려 보이는 한 소녀가 실내로 들어오더니 문을 닫았다.

문이 닫히는 소리에 일하던 직원들 중 몇이 그들을 돌아보았다.

이내.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직원들과 해피 멤버들, 두 매니저가 서로 인사를 주고받았다.

*    *    *

몇 분 후.

해피 멤버들과 두 매니저. 그리고 한 소녀가 다인용 두 소파에 나누어 앉았다.

직원들이 그들에게 마실 것과 다과를 가져다주었다.

이내.

“호호호.”

변종수가 웃으며 나타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소파로 걸어갔다.

그러자 김보영이 재빨리 일어나며 머리를 숙였다 들었다.

“안녕하세요. 변 치프님.”

변종수가 걸음을 멈추고 서며 김보영에게 말했다.

“에이. 한두 번 본 사이도 아니면서 무슨 인사? 그냥 오셨어요, 라고 말하면 돼요.”

“그래도…….”

김보영이 변종수의 눈치를 보았다.

“나 그렇게 앞뒤 꽉 막힌 사람 아니니까, 우리 격식 같은 건 따지지 말자고요.”

변종수가 말하며 송나리, 김남주, 방다솔을 돌아보았다.

“다들 오랜만.”

송나리, 김남주, 방다솔이 그새 일어나 서 있었다.

“안녕하셨어요.”

송나리, 김남주, 방다솔이 동시에 인사했다.

변종수가 그 모습에 손을 들어 입을 가렸다.

“호호호. 너희들 여전히…….”

변종수가 말하며 김보영을 돌아봤다.

“보영 씨. 애들 좀 풀어 줘요. 무슨 군인도 아니고, 너무 꽉 조여져 있어.”

“아, 네에.”

김보영이 말하며 옆을 힐금거렸다.

이어.

발로 앉아 있는 이선태의 오른발을 툭툭 건드렸다.

―일어나! 어서 빨리!

김보영이 그렇게 눈치를 주었지만.

이선태는 눈을 말똥거리며 김보영과 변종수를 번갈아 보았다.

어리둥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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