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NIS의 천재 스파이 (133)화 (133/208)

NIS의 천재 스파이 (133)

이상 감각

지금 눈에 보이는, 시야에서 멀어지는 차은성을 자신의 수중에 넣을 그때를.

*    *    *

차은성은 태연히 카지노 입구로 걸어갔다.

‘후후. 확실히 운이 좋아.’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카지노에서 잠깐 동안 8천 달러를 벌었고. 하비에와 FBI를 유인한 계획이 성공했다.

그리고 자신이 아무 탈 없이 하비에와 FBI에게서 벗어났다.

팀원들이 지금쯤이면 다들 미국을 벗어나고 있을 것이다.

차은성은 일절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묵묵히 입구로 걸어갔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여유로운 걸음으로.

만에 하나.

FBI 요원들이 자신을 체포하려고 한다면.

‘어쩔 수 없지. 한판 할 수밖에.’

차은성은 FBI 요원들과의 무력 충돌을 염두에 뒀다.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순순히 FBI에 체포당할 순 없다.

FBI에 체포되면 회사가 곤란해진다. 그러니 차라리 FBI 요원들과의 교전 중에 사망하는 것이 좋다.

자신이 세바스찬 박과 관련이 있다는 명확한 증거가 없다.

물론 하비에를 포함하여 FBI가 심증은 갖겠지만.

국가 간의 문제로 비화되면 증거로 내놓을 수 있는 물증은 필수다.

증명하지 못하면 100% 미국의 과실이 되어 버린다.

카지노에서 갬블을 즐기던 한국 정부의 정보 요원을.

FBI 요원들이 다른 곳도 아니고 다수의 이들이 있는 카지노 내에서 사살했다?

FBI 국장이 옷을 벗어야 할 사안이다.

일단 국장이 옷을 벗으면 아래의 간부들 중 몇은 목이 날아간다.

백악관에서도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 게다가 국무부에서도 길길이 뛸 것이 뻔하다.

궁지에 몰린 FBI.

평소 앙숙 중 앙숙인 CIA가 FBI를 물 먹일 호재를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리 없다.

이면에서 틀림없이 모종의 장난을 칠 것이고. FBI는 어쩌면 미 상원 정보위원회의 조사를 받을지도 모른다.

이미 예전에 유사한 사건이 몇 번 있었다.

달리 FBI와 CIA의 사이가 안 좋은 것이 아니다.

NSA, DHS와 같은 상부 기관의 개입이 없었다면.

FBI와 CIA는 이미 오래전에 한바탕 피를 보았을 것이다.

*    *    *

잠시 뒤.

차은성은 곧바로 도로가로 나왔다.

내심 바짝 긴장했다.

뒤늦게 하비에가 마음을 바꾸어 FBI 요원들로 하여금 자신을 체포하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런 경우에 대비하여 생각해 둔 것이 있긴 하지만. 부디 예상하는 해당 상황이 일어나지 않기를 마음속으로 바랄 뿐이다.

*    *    *

이내.

차은성은 택시를 잡고 뒷좌석에 타며 기사를 바라보았다.

“International airport.”

기사가 고개를 끄덕이고.

이내.

택시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휴우우우.’

차은성은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젠 마음을 놓아도 되겠어.’

얼마나 긴장했는지 소변이 마렵다. 하지만 현재 택시 안이니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참을 수밖에.

차은성은 고개를 우로 돌려 차창 밖을 보았다.

가로수 역할을 하는 야자수들 사이로 라스베이거스의 각 호텔과 카지노들이 보인다.

피식.

차은성은 웃었다.

미국을 벗어날 때까지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 방심해서는 안 되겠지.’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런 한편으로.

머릿속으로 손자병법의 한 구절을 생각했다.

―기만이란 강성한 적에 맞서 전쟁이라는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다.

인위적으로 승리를 만드는 것이 바로 기만이다.

적이 강하면 전면전을 피하고. 적에게 해로운 수단과 방법을 강구하여 적을 피로하게 만들어라.

적을 도발하여 동요시키고 적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려 아군을 공격하지 못하게 하라.

차은성이 전술적 기만에 관해 생각하는 동안.

택시는 라스베이거스의 도심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    *    *

한참 후.

라스베이거스 국제공항 터미널은 도박의 도시답게 다양한 인종의 이들로 매우 붐볐다.

차은성은 천천히 터미널을 가로지르며 정면 대형 전광판을 바라보았다.

각종 항공기의 출발, 도착, 행선지 등등.

다양한 정보가 일목요연하게, 실시간으로, 반복해서 나타났다 사라졌다.

차은성은 가장 빨리 인천국제공항행 항공기를 찾았다. 굳이 국적기가 아니라도 출발이 가장 빠르면 된다.

그런 이유로 차은성은 각 항공사 관련 정보를 훑었다.

사전에 항공권을 예약하면 되지만.

그런 경우.

유사시에 관련 정보들이 FBI나 경찰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사전 예약을 하지 않았다.

항공사는 항상 120, 130%의 예약을 받는다.

이는 빈 좌석 없이 항공기를 운항하기 위해서다. 빈 좌석이 많으면 많을수록 항공사의 매출 이익은 떨어진다.

항공기의 모든 좌석이 만석이 되어 운항하는 경우는 좀처럼 보기 드물다.

열에 여덟아홉은 빈 좌석이 있다.

차은성은 그 점을 염두에 두고 항공편 관련 정보를 빠르게 둘러보았다.

탐색하듯이.

이윽고.

노스 아메리카 203편이 차은성의 눈에 들어왔다.

정확히 1시간 후에 출발 예정이다.

차은성은 발걸음을 돌려 각 항공사가 모여 있는 부스로 걸어갔다.

저벅저벅.

차은성은 터미널을 지나가며 주의 깊게 주변을 살폈다.

이젠 버릇이 된 조심성이자 주의다.

시야에 들어오는, 걸어가는 차은성의 주변을 바삐 오가는 다양한 인종의 여행객들.

그들에게서 별다른 위험이나 이상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 때문에 차은성은 안심하려 했는데.

‘응?’

차은성은 천천히 걸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느낌!

누군가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것 같다.

단지 느낌에 불과하지만 차은성에게는 무척 익숙한 느낌이었다.

회사에서 수시로 재교육을 받으며 미행과 감시에 관한 각종 테크닉을 보고 배운다.

해당 프로그램을 반복적으로 이수한 차은성이기에 바로 알아챘다.

자신이 감시받고 있음을.

‘누가……?’

차은성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어느새 차은성의 얼굴이 경직되었다. 두 눈동자에서 주의와 경각심의 빛이 반짝이고, 주위를 신속하게 살피기 시작했다.

어디에서? 누가? 자신을 지금 바라보고 있는지…….

차은성은 서둘러 파악하려 하였다.

주의, 경계, 긴장, 긴박, 흥분, 경각 등.

차은성은 다양한 감정들을 느꼈다.

해당 감정들로 차은성의 가슴속이 꽉 들어찼다.

차은성은 의아한 눈빛을 띠었다.

‘누가?’

라스베이거스에 자신을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더욱이 지금 있는 곳이 공항이다.

자신의 공항행을 아는 이는…….

천천히 걷는 차은성의 뇌리에 한 사람이 번쩍였다.

―하비에 스와레즈

그를 제외하면 아는 이가 없을 것이다.

차은성은 걸으며 심중 중얼거렸다.

‘아니야. 하비에가 만약 날 어떻게 해 볼 요량이었다면 카지노에서 이미 손을 썼을 거야.’

차은성의 가슴속에서 의구심이 일어나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다른 감정들을 지우고 가슴속을 독차지했다.

‘음…….’

차은성은 심중 신음을 흘리며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예의 부스로 향했다.

*    *    *

몇 분 후.

차은성은 티케팅을 한 후 화장실로 향했다. 자신을 주시하는 누군가를 화장실로 유인하려 하였다.

차은성은 서두르지 않았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는 완만한 걸음으로 움직였다. 그럼으로써 자신이 지켜보는 이를 전혀 알아채지 못했음을 알리려 하였다.

*    *    *

차은성은 화장실로 들어서며 재빨리 내부 구조를 파악했다.

그리고 화장실 내에 있는 다양한 인종의 이들을 둘러보았다.

남자 화장실이라 그런지 의외로 사람들이 꽤 많았다.

그들은 각자의 일로 분주했다. 그런 가운데 몇몇 이들이 바삐 화장실을 오갔다.

차은성은 소변기로 가 볼일을 보며 좌우를 흘낏거렸다.

이어.

세면대로 걸어가 앞에 서며 상체를 숙였다.

쏴아아.

물을 틀자 시원하게 물이 쏟아졌다.

차은성은 손을 씻으며 주변을 살폈다.

다들 저마다의 일로 바빠서 다른 이들에게 무심했다. 딱히 자신을 신경 쓰거나 가까이 다가오는 이가 없었다.

그런데…….

막 화장실로 들어서는, 겉보기에는 남미계로 보이는 남자가 곧장 세면대로 걸어왔다.

서른 중후반쯤 되어 보이는 남미인.

그는 차은성과 거리를 두고 섰다.

차은성의 우측 세 번째 세면대.

남미인은 물을 틀며 정면 거울을 보았다.

찰나.

남미인이 재빨리 차은성을 흘겨보았다가 다시 정면 거울을 보았다. 다른 이들이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남미인의 시선 처리는 빨랐다.

‘훗. 너냐?’

주의하고 있었기에.

남미인은 눈여겨보고 있었기에.

차은성은 남미인이 흘겨보는 것을 알아챘다.

평범한 자는 아니다.

차은성은 수도를 잠그고 왼쪽으로 돌아섰다. 그러곤 벽에 걸려 있는 종이 타월을 한 장 끌렀다.

차은성은 씻은 손을 닦는 척하며 우측에 있는 거울을 보았다.

남미인 외에 자신을 주시하는 다른 이들은 없는 것 같다.

*    *    *

차은성은 곧바로 화장실을 나오며 귀에 집중했다. 뒤따라 나오는 남미인의 발걸음 소리를 염두에 두었다.

저벅저벅.

역시!

남미인은 4, 5미터의 거리를 두고 자신을 따라붙었다.

너무 가까이 붙으면 자신이 알아챌까?

너무 거리를 두면 오가는 이들 때문에 시야에서 자신을 놓칠까?

남미인이 나름 꽤 신경을 쓰는 것 같다.

그는 뒤따라오며 자신과 발걸음을 맞추는 한편으로 은연중에 동조를 이루기 시작했다.

미행하는 자가 자연스럽게 가지게 되는 일종의 버릇 내지는 습관이다.

의식한다면 모를까?

무의식으로 미행을 하다 보면 대개 자신도 모르게 미행 대상자의 발걸음에 자신의 발걸음을 맞추게 된다.

대상자가 오른발을 내밀면 미행하는 자 역시 오른발을 내밀고.

대상자가 빠르게 걸으면 미행하는 자 역시 빠르게 걷는다.

그 점에 유의하면.

누군가 자신을 미행하는지, 하지 않는지. 그 여부를 알아챌 수 있다.

차은성은 그 점을 염두에 두고 미행자가 맞는지 확인할 심산으로 걷는 속도를 줄였다 높이는 등 조절했다.

아니나 다를까?

뒤따라오는 남미인이 그런 자신에게 보조를 맞췄다. 또한 뒤따라오며 자신과 일정한 거리를 두는 한편, 해당 거리를 유지했다.

‘맞네.’

의심의 여지가 없다.

차은성은 최종적으로 남미인이 자신을 주시했던 자이고, 남미인 외에 다른 이들이 없다는 것을 알아챘다.

홀로 자신을 미행 중인 남미인.

‘후후.’

차은성은 걸으며 실소했다.

남미인.

배짱이 두둑하다. 무엇을 믿기에 혼자서 자신을 미행하는 걸까?

차은성은 궁금했다.

남미인이 누구인지. 혹 다른 이의 사주를 받아 자신을 미행하는 건지.

아니면.

자신을 죽이려고 노리는 건지.

알아보고 싶은 것이 꽤 많았다.

남미인이 어떻게 자신을 알아보았을까?

터미널 내에서 다양한 인종의 이들이 바쁘게 오가는 가운데, 자신을 귀신같이 찾아낸 것 같은데…….

더욱이 화장실까지 자신을 따라붙었다는 것이 차은성은 영 께름칙했다.

*    *    *

잠깐이란 시간이 흐르고.

차은성은 공항 내에 있는 비상계단으로 걸어갔다.

이윽고.

비상계단 출입문에 이르며.

끼익.

거리낌 없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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