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NIS의 천재 스파이 (129)화 (129/208)

NIS의 천재 스파이 (129)

몇십 분 후.

사이렌을 끈 구급차가 우회전했다. 그러곤 골목을 따라 잠시 주행하더니 이내 좌회전했다.

그리 오래지 않아.

구급차가 막다른 길에 이르러 정차했다.

끼익.

곧.

그그긍.

정면의 철문이 좌로 열렸다.

그러자 구급차가 천천히 철문 안으로 들어갔다.

이내.

철문이 원상태로 닫혔다.

쿠웅.

*    *    *

차은성이 의자에 앉은 세바스찬 박에게 다가서며 손에 쥔 콜라를 건넸다.

세바스찬 박이 받아 들며 차은성을 올려다보았다.

차은성이 옆으로 돌아서더니 손을 뻗어 한 의자를 끌어당겼다.

털썩.

차은성이 앉으며 세바스찬 박을 마주 보았다.

“이제부터…….”

차은성은 손에 쥔 콜라를 따며 세바스찬 박에게 이제 곧 시작할 일련의 작업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현재 FBI가 당신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온 샌프란시스코를 이 잡듯이 훑고 있죠.”

“…….”

“비단 FBI뿐만이 아닙니다. FBI의 영향력하에 있는 미국 서부의 마피아들, 각종 갱 조직 등등.”

“…….”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거의 모든…… 당신을 찾아내기 위해서…… 우린, 당신을 완전 다른 사람으로 바꿀 겁니다. 물론 신분증과 여권 역시 새로…….”

차은성은 간간이 콜라를 마셨다.

콜라를 마시며 차은성의 설명을 경청하는 세바스찬 박.

긴장한다.

그것이 한눈에 다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FBI에게 잡히면 최소 30~40년 형이다. 운이 나쁘다면 종신형을 선고받을 수도 있다.

그런 이유로 세바스찬 박은 불안감을 떨치지 못했다. 심중의 불안감이 훤히 드러났다.

그에겐 목숨이 걸린 일이다. 그러니 불안한 것이 당연하다.

*    *    *

이틀이 지났다.

사무실 창가에 서서 샌프란시스코의 스카이라인을 바라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긴 하비에 스와레즈.

“어디에 있을까?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자문하듯 중얼거리며 차은성을 생각했다.

분명 샌프란시스코에 있다. 아직 샌프란시스코를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세바스찬 박을 샌프란시스코에서 빼내어 한국으로 데려가야 하니깐.

“접선했을까?”

하비에가 중얼거리며 궁금증의 눈빛을 띠었다.

지금까지 세바스찬 박을 보호하고 있던 NIS의 이들과 차은성이 만났을까?

세바스찬 박의 신병을 넘겨받았을까?

하비에의 눈이 반짝였다.

차은성과 아르티펙스 팀의 흔적이 발견될 법도 한데. 아직 흔적이 드러나지 않았다.

세바스찬 박의 흔적도 아직이다.

하비에는 조급함을 느꼈다. 그는 지그시 아랫입술을 힘주어 깨물었다.

“생각 외로 오래 버티고 있어.”

하비에가 중얼거렸다.

속한 FBI가 그리 허술한 기관이 아닌데. 어떻게 된 일인지 지금까지 이렇다 할 성과를 올리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NIS 요원들이 유능하다는 건가?”

마음 한구석으로 진한 불안감이 느껴진다.

하비에는 차은성을 재차 생각했다.

“우리의 광역 감시망을 벗어나려고 뭔가를 획책하고 있을 텐데. 으음.”

하비에는 침음을 흘렸다.

차은성은 샌프란시스코를 빠져나가려고 궁리 중일 것이다.

“어떤 방법으로 우리 FBI의 광역 감시망을 벗어나려고 할까?”

하비에는 눈을 깜짝이며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차은성이라면 샌프란시스코를 빠져나가기 위해 어떤 방법을 사용할까?

하비에의 머리가 맹렬하게 돌아갔다.

잠깐이란 시간이 지나고.

하비에는 해로를 생각했다.

배나 보트를 타고 해안선을 따라 남하하면 로스앤젤레스다. 거기서 곧바로 공항으로 이동. 항공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가면 한국이다.

하지만…….

이미 예상한 경로라 관련 대비가 되어 있다.

차은성이 해당 해로로 이동하면 필히 잡힐 수밖에 없다.

하비에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차은성은 바보가 아니야. 뻔히 예상되는 해로를 이용할 가능성은 없어.”

하비에는 해로가 아닌 육로를 생각했다.

그 역시 쉽지 않다.

발령한 테러 경보로 경찰이 물샐틈없는 경계망을 펼쳤다.

예의 경보로 테러 가능성이 높아 경찰의 검문검색이 이만저만 엄중한 것이 아니다.

동양인이라 백인이나 흑인과 달리 눈에 띄기 쉬운 차은성이다.

그 때문에 차은성이 세바스찬 박을 데리고 해당 경계망을 뚫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바다도, 육로도 아니라면.”

하비에가 중얼거렸다.

차은성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어떤 계획을 세워 두었을까?

세바스찬 박을 미국 내에서 어떻게 빼돌릴까?

하비에는 매우 궁금했다.

자신이 차은성이라도 현 상황하에서는 샌프란시스코를 빠져나갈 방법이 없을 것 같은데.

*    *    *

머리를 염색한 세바스찬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의 시선은 정면 거울에 고정되어 움직일 줄 몰랐다.

세바스찬 박의 뒤에 서 있는 차은성.

양손에 쥔 빗과 가위를 현란하게, 빠르게 움직이며 염색한 세바스찬 박의 머리를 잘랐다.

써, 썩.

차은성은 헤어 디자이너로서의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런 차은성을, 멀찍이 뒤에 모여 서 있는 조영국, 신일권, 최라경, 이창희가 지켜보았다.

다들 손에 쥔 탄산음료 캔을 들어 간간이 마시며 서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팀장 솜씨가 정말이지…….”

최라경이 놀랍다는 마음을 담아 중얼거리며 눈을 반짝였다.

은근 부러운 그녀다.

최라경은 현란할 정도로 능숙하게 빗과 가위를 다루는 차은성의 모습에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한번 부탁해 봐.’

최라경은 자신의 머리를 차은성에게 맡기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

그사이.

신일권이 캔을 홀짝이며 중얼거렸다.

“대체 팀장의 위장 직업이 뭐길래?”

알고 싶다!

신일권이 궁금증을 내비치며 옆에 서 있는 조영국을 힐금거렸다.

“선배. 팀장에 관해 뭐 아는 거 없습니까?”

“몰라.”

조영국이 신일권의 물음을 가볍게 툭 쳐 냈다.

“에이. 아까 보니 아는 사람 많으신 것 같던데.”

“아, 모른다고.”

조영국이 귀찮다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한편.

“휴우우.”

이창희가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바닥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휴우우.”

한숨 소리에 조영국과 신일권이 돌아보았다.

“웬 한숨이야?”

“뭔 걱정 있어?”

조영국과 신일권이 이창희에게 물어보았다.

이창희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

하지만 얼굴이 무언으로 말하고 있었다.

―뭔가 있다고!

조영국과 신일권이 무슨 눈치를 챘는지 이창희를 물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너, 뭐 있지?”

“뭐야? 빨리 말 안 해.”

조영국과 신일권이 이창희를 다그쳤다.

이창희가 옆으로 돌아섰다.

“어딜 가려고?”

“어쭈. 이게 어디서 도망을 치려고.”

조영국과 신일권이 자리를 피하려는 이창희를 붙잡았다.

그러자 이창희가 급히 말했다.

“저, 말 못 해요. 못 한다고요.”

“얘가. 아직 물어보지도 않았어, 마!”

조영국이 다소 목소리를 높였다.

“어쭈구리.”

신일권이 말하며 은근 흥미라는 감정을 내비쳤다.

“뭔가 있긴 있네.”

신일권이 슬며시 미소 지었다.

이창희는 조영국과 신일권을 번갈아 보았다.

잔뜩 겁먹었다.

“창희야.”

“우리 귀여운 막내야.”

“전, 말 못 해요. 죽어도 말 못 해요. 팀장이 그랬다고요. 저 혼자만 알고 있으라고요. 그리고 팀장이 지시한 것은…….”

이창희가 차은성을 방패로 내세웠다. 사전에 단단히 주의를 받은 눈치다.

그새.

조영국과 신일권은 서로 돌아보며 의아한 눈빛을 띠었다.

*    *    *

얼마 후.

차은성이 세바스찬 박의 얼굴에 물컹거리는 젤리 덩어리를 붙였다.

그리고 미용용 테이프로 덩어리를 단단히 고정했다.

화장을 하면.

해당 테이프는 가려져 눈에 보이지 않는다.

간혹 테이프를 이용해 턱이나 얼굴의 살을 뒤로 밀어, 둥그스름한 얼굴 윤곽을 역삼각형으로 만들곤 한다.

이른바 화장이란 마법을 부리는 중요 아이템 중 하나가 바로 테이프다.

차은성은 각종 남성 화장품을 이용해 세바스찬 박의 얼굴을 둥글둥글하게 만들었다.

그런 다음.

태닝 오일을 세바스찬 박의 전신에 바른 다음, 그를 태닝 시켰다.

그런 세바스찬 박의 모습은 영락없는 볼살이 빵빵한 흑인이었다.

그 후.

차은성은 세바스찬 박의 허리에 두툼한 복대를 둘렀다.

마치 임산부처럼.

세바스찬 박의 배가 불룩해졌다.

*    *    *

몇 시간 뒤.

차은성이 설명한 모든 작업을 마친 후, 세바스찬 박은 영락없는 배불뚝이 흑인이었다.

전형적인 고도비만의 모습이었다.

차은성은 거침이 없었다.

세바스찬 박의 눈동자에 콘택트렌즈를 끼웠다.

이어.

그에게 안경을 씌웠다.

잠시 뒤.

세바스찬 박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전신 거울 앞에 서서 변한 자신의 모습을 이리저리 둘러보는 세바스찬 박.

그의 얼굴과 눈동자에 놀람이 하나 가득 들어찼다.

“어떻게?”

세바스찬 박은 믿을 수 없다는 강한 부정을 온몸으로 내보였다.

차은성은 그런 세바스찬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천천히 뒤돌아보았다.

눈에 보이는 이창희.

조영국과 신일권에게 둘러싸여 어쩔 줄을 모르고 있다.

조영국과 신일권이 이창희를 고문하듯이 쥐어짜는 중이었다.

그 모습에 차은성이 눈살을 찌푸리더니 이창희를 소리쳐 불렀다.

“이창희!”

그러자 이창희가 죽었다 살아난 것 같은 표정을 짓더니 급히 차은성을 바라보았다.

“네, 팀장님.”

이창희가 소리치며 급히 차은성에게 뛰어갔다.

조영국과 신일권은 그런 이창희를 바라보며 아쉬워했다.

“쩝.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더라면.”

“아……. 하필이면 지금.”

안타까움에 젖은 신일권이 조영국을 돌아봤다.

“선배.”

“응.”

조영국이 신일권을 돌아보았다.

“팀장이 창희에게 뭘 지시했을까요?”

“글쎄.”

“뭔가 아주 중요한…… 그런 느낌 안 들어요?”

“들긴 하지. 그런데…….”

조영국이 말끝을 흐리며 차은성을 바라보았다.

차은성이 이창희를 마주 보며 뭐라 말하는 중이었다.

신일권이 조영국의 시선을 쫓아 차은성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뭔 생각으로 창희에게…….”

신일권은 중얼거리며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을 띠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해되지 않는다!

신일권이 넌지시 그런 감정을 내색했다.

*    *    *

다음 날.

샌프란시스코 메디컬 센터.

위이이잉.

옥상으로 향하는 대형 엘리베이터.

차은성, 이창희, 최라경이 병원 관계자로 위장. 의료용 침대 주변에 서 있었다.

차은성은 고개를 들어 층수를 표시하는 디지털 액정을 보았다.

한편.

최라경과 이창희는 긴장의 눈빛을 띠었다.

특히.

이창희의 긴장이 생각 외로 깊고 강했다.

‘제발 아무 일이 없어야 할 텐데.’

불안했다.

차은성의 지시로 메디컬 센터의 서버를 해킹했다.

그리고 권한을 가진 병원 고위 관계자의 아이피와 비번을 확보한 후, 이를 이용해 온라인으로 닥터 헬기를 의뢰했다.

차은성은 이창희를 통해 긴급 환자 이송으로 위장하여 라스베이거스로 이동. 라스베이거스 국제공항을 통해 한국으로 가려 했다.

FBI는 꿈속에서도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샌프란시스코라는 대도시를 대상으로 광역 감시망을 운용 중인데.

도시 외곽의 강화된 검문검색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차은성과 팀원들이 닥터 헬기로 샌프란시스코를 빠져나가려 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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