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S의 천재 스파이 (128)
눈동자의 색깔, 망막, 눈동자의 모세혈관 등등.
다양한 사전 입력 값이 있다.
AI 시스템은 그 모든 입력 값을 바탕으로 특정 화면에 나타난 수십여 명은 불과 몇 초 사이에 검색.
찾는 대상자를 실시간으로 알려 준다.
99%…… 93%…….
이런 식으로.
한스가 하비에 지부장을 바라보았다.
“현재 샌프란시스코에서 다른 도시로 빠져나가는 외곽의 검문검색을 강화 중입니다. 그러니 절대 샌프란시스코를 빠져나가지 못할 겁니다.”
충만한 자신감이 실린 한스의 말에 하비에 지부장이 돌아보았다.
“맥.”
“네, 지부장님.”
“세바스찬 박!”
하비에의 말에 맥이 움찔하더니 서둘러 대답했다.
“현재 진행 중입니다. 각 호텔, 게스트 하우스 등…… 무엇보다도 현재 소재지를 아직 파악하지 못해…….”
맥이 말끝을 흐렸다.
이렇다 할 진척이 없음을 모를 수 없다.
하비에가 인상 쓰더니 맥을 쏘아보았다.
“샌프란시스코 내에 있는 것이 분명한데, 아직도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지 못했단 말이야?”
언성을 높여 맥을 질타했다.
맥은 뭐라 답할 말이 없어 입을 다물며 고개를 푹 숙였다.
유구무언!
하비에가 재차 언성을 높였다.
“잘한다, 잘해!”
심기가 매우 불편함을 모를 수 없는 하비에다.
한스와 맥은 입을 다문 채 하비에의 눈치를 보았다.
그러자 하비에가 한스와 맥에게 고함쳤다.
“빨리 찾아! 언제까지 시간을 질질 끌 거야?”
“네.”
“예에.”
한스와 맥은 고양이 앞의 쥐처럼 몸을 움츠리며 하비에의 눈치를 거듭 보았다.
* * *
며칠 후.
정면에 셔터가 내려진 모 차고지.
차은성, 신일권, 이창희가 한 차량을 일정하게 빙글빙글 맴돌았다.
세 사람은 각기 맡은 일이 달랐다.
차은성, 신일권, 이창희는 쉬지 않고 바삐 일했다.
차량의 각 유리는 신문지로 가려져 있었다.
치이익, 치이익.
차은성은 긴 줄이 달린 분무기를 손에 들고 바삐 도색 작업 중이었다.
잠시 뒤.
차은성이 분무기를 들고 뒤로 서너 걸음 물러났다.
도색한 차를 바라보며 차은성이 한숨을 쉬었다.
“휴우우.”
그사이.
신일권이 차체에 붙어, 크고 긴 테이프를 조심조심 손으로 잡아당겼다.
찌이이익.
이창희는 차량 뒤에서, 손에 쥔 몇몇 연장으로 번호판을 교체 중이었다.
차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 조영국과 최라경이 나란히 서 있었다.
교대한 조영국은 땀을 닦으며 손에 쥔 콜라를 꿀꺽꿀꺽 마셨다.
이어.
차은성, 신일권, 이창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참, 지극정성이다, 지극정성이야.”
조영국의 중얼거림에서 짜증이 묻어났다.
왼쪽에 서 있는 최라경.
왼손에 레토르트 용기를 들었다. 그러곤 오른손에 쥔 1회용 플라스틱 수저로 용기의 리소토를 떠먹었다.
“이놈의 가공식품. 이젠 물리다 못해 헛구역질이 날 지경이에요.”
최라경이 불만을 내보였다.
그러자 조영국이 최라경을 돌아봤다.
“그것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먹어.”
“선배.”
최라경이 조영국을 돌아보았다.
“우리, 밖에 나가서 한식 레스토랑에서 얼큰한 김치찌개를 먹으며 소주 한잔 캭.”
조영국이 슬며시 웃더니 말했다.
“그랬다가는 소주 반병을 비우기도 전에 FBI가 네 앞에 떡하니 서 있을 거야. 그럼 라경이 넌 그 순간부터 버려진 요원이 되는 거야.”
“…….”
최라경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버려진 요원!
그 말이 엄청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요원들에게 ‘버려진 요원’이란, 일종의 금기어였다.
* * *
다음 날.
FBI의 의심을 사지 않고 맘 놓고 이동하자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애애애애앵.
911 응급 앰뷸런스가 요란하게 사이렌을 울리며 샌프란시스코 도심 도로를 주행 중이었다.
운전석에 앉은 신일권은 거치해 둔 휴대폰을 간간이 힐금거렸다.
내비게이션.
나름 샌프란시스코의 지리를 숙지하긴 했지만.
불과 며칠 만에 샌프란시스코의 도심 지리를 모두 파악하기란 매우 어려웠다.
시간 여유가 없었다.
한편.
조영국이 앉은 조수석을 뒤로 젖혀 반쯤 누웠다.
“살살 몰아라. 너무 흔들려.”
신일권이 운전하며 조영국을 힐금거렸다.
“선배. 우린 지금 응급 구조 연락을 받고 출동하는 구급찹니다, 구급차.”
“강조하지 않아도 다 알아. 마아.”
“선배.”
“앞!”
“끄응.”
신일권이 앓는 소리를 내며 정면을 응시했다.
“차 팀장 머리가 확실히 좋아. 누가 상상이나 하겠어. 우리가 구급차로 이동할 줄 말이야.”
“하지만 지난 며칠 동안 구급차를 만드느라 우린 아주 날밤을 새웠습니다.”
신일권의 말에 조영국이 부드럽게 웃었다.
도장하고 테이프로 로고 작업을 하는 등.
차량을 구급차로 위장하느라 다들 엄청 고생했다.
“하아암.”
조영국이 하품하며 옆으로 돌아누웠다.
“나, 잔다. 잠 안 깨게 차 잘 몰아라.”
신일권이 조영국을 힐금거리며 우거지상을 지었다.
‘젠장!’
속으로 투덜거렸다.
* * *
도심 외곽 주택단지.
모든 집의 형태가 똑같다.
그 때문에 집 앞에 있는 우편함에 적혀 있는 번호가 아니면 집들을 구분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끼익.
그중 한 주택 앞에 구급차가 섰다.
이내.
구급차에서 구급대원들이 내렸다.
그들은 구급차의 뒤로 돌아가 뒷문을 열었다.
바퀴가 달린, 접이식 의료용 침대.
구급대원들이 빠르게 침대를 밀며 주택으로 뛰어갔다.
그 모습이 딱.
응급 환자를 이송하기 위해 바삐 뛰는 응급 상황이었다.
* * *
주택 안으로 들어서며 차은성이 얼굴을 가린 의료용 마스크를 벗었다.
그사이.
주택 안에 있던 이들이 부리나케 움직였다.
그들은 각기 숨어 있다가 재빨리 뛰쳐나오며 차은성과 팀원들을 에워쌌다.
일련의 모든 상황이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나고 전개되었다.
에워싼 이들이 손에 쥔 권총으로 차은성과 팀원들을 겨냥했다.
여차하면 즉각 방아쇠를 당길 기세다.
꿀꺽, 꿀꺽.
조영국, 신일권. 최라경, 이창희가 긴장을 가누지 못했다.
다수에게 포위당했고. 포위한 이들이 권총으로 겨눈 상황이다.
그들 중 한 사람이라도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다른 이들이 뒤따라 방아쇠를 당길 것이다.
그렇게 되면 차은성과 팀원들은 즉사다.
그런 상황에 차은성과 팀원들의 얼굴이 하나같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차은성을 제외한 팀원들이 하나같이 긴장의 눈빛을 띠었다.
죽음이 목전에 와 있다.
팀원들은 어떻게 된 상황인지…….
영문 몰라 했다.
다들 얼어붙은 것처럼 서서 총을 겨눈 이들을 둘러보았다.
그런 한편으로.
팀원들은 직면한 현 상황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맹렬하게 생각하며 매우 조심스럽게 서로 곁눈질했다.
은연중에 무언의 대화를 매우 빠르게 주고받았다.
그런데 총을 겨눈 이들을 둘러보던 조영국의 눈이 일순 반짝였다.
망설임 없이.
조영국이 두 눈 아래 얼굴을 가린 의료용 마스크를 벗었다. 그러자 장난기 가득한, 들뜬 얼굴이 나타났다.
“마아아. 나야, 나.”
조영국의 외침에.
총을 겨눈 이들 중 두어 명이 당황하더니 곧 조영국을 알아보았다.
“어?”
“조 선배?”
서로 안면이 있는 모양이다.
조영국이 씩 웃더니 거리낌 없이 그들에게 걸어갔다.
“하하하. 이 자식들아, 오랜만이다.”
조영국이 양손을 벌렸다.
그러곤 이르자마자 아는 이들을 덥석 껴안더니 안은 이의 등을 툭툭 쳤다.
한편.
총을 겨눈 이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조영국과 차은성을 제외한 팀원. 신일권, 최라경, 이창희를 번갈아 보았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몰라 혼란스러운 눈빛을 띠며 천천히 총을 내렸다.
그사이.
차은성이 그들을 둘러보며 피식 웃었다. 그러곤 툭 던지듯이 접선 암구호를 말했다.
“은하수.”
그러자 총을 내린 이들의 최후미에 서 있는 서른 초반의 이가 말했다.
“동료들이야.”
그의 말에 총을 내린 이들이 좌우로 비켜섰다.
천천히.
서른 초반의 이가 걸어 나오며 차은성을 바라보았다.
“카레. 맛없습니다.”
대응 암구호에 차은성이 부드럽게 웃었다.
씨익.
그러곤 말했다.
“아르티펙스 팀장 차은성입니다.”
“아에토스 팀장 허영호입니다.”
차은성과 허영호는 상대에게 걸어갔다.
이내.
서로의 면전에 이르러 서며 손을 내밀었다. 그러곤 굳게 악수하며 미소 지었다.
씨, 씨익.
허영호가 말했다.
“나이 지긋하신 분인 줄 알았습니다.”
“저야말로.”
차은성이 대꾸하며 심장한 눈빛을 띠었다.
얼마 전에 통화했던 상대방.
다름 아닌 허영호였다.
* * *
잠시 뒤.
허영호의 안내를 받으며 차은성이 한 방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소파에 앉아 있던 안경을 쓴 이가 급히 일어나더니 차은성을 향해 돌아섰다.
안경을 쓴 이. 세바스찬 박.
허영호가 그를 바라보았다.
“안심하셔도 됩니다. 회사에서 데리러 온 사람이니까요.”
이어.
허영호가 차은성을 돌아보았다.
“세바스찬 박. 화물입니다.”
차은성에게 말하며 허영호가 살며시 웃었다.
화물!
일종의 은어다.
차은성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세바스찬 박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처음 뵙겠습니다. 차은성이라고 합니다.”
세바스찬 박은 당혹스러운 기색을 짓더니 허영호를 돌아봤다. 그러곤 무언의 시선으로 물었다.
―진짭니까?
―믿어도 됩니까?
세바스찬 박의 무언에 허영호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안심해도 됩니다!
그렇게 무언으로 세바스찬 박에게 대꾸했다.
허영호를 믿는지.
세바스찬 박이 슬쩍 안도의 기색을 지었다.
* * *
몇 분 후.
담요로 몸과 얼굴을 가린 세바스찬 박이 의료용 침대에 누워 있었다.
차은성, 조영국 등.
아르티펙스 팀원들이 침대를 끌며 서둘러 구급차로 향했다.
허영호와 아에토스 팀의 팀원들이 주택 창가에 모여서서 차은성과 아르티펙스 팀원들을 바라보았다.
세바스찬 박을 아르티펙스 팀에 인계함으로써 그들은 주어진 임무를 완수했다.
그들은 구급차가 움직이고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말없이 지켜보았다.
이윽고.
허영호가 서 있던 창가에서 뒤로 두 걸음 물러났다. 그러고는 천천히 돌아서며 아에토스 팀의 팀원들을 둘러보았다.
“우리 임무는 이제 끝났다. 다들 집으로 돌아가자.”
기분 좋은 외침이었다.
“예에에.”
팀원들이 들뜬 목소리로 동시에 소리쳐 대답했다.
다들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임무를 무사히 완수했다. 그리고 이제 가족들 품으로 돌아간다.
지금까지의 긴박한 상황과 그에 따른 긴장과 경계심 등.
아에토스 팀원들은 그들을 짓눌렀던 눈에 보이지 않는 짐을 모두 다 내려놓았다.
그런 이유로 다들 무척 홀가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서로 돌아봤다.
좋아하며 서로 마구 얼싸안는 팀원들의 모습에 허영호가 부드럽게 입가에 미소 지었다.
씨익.
* * *
잠시 뒤.
주택 부엌에서 허영호가 어딘가로 전화했다.
이내.
상대방이 받는 소리가 들리자 허영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주문한 제품. 지금 막 택배로 보냈습니다. 네에. 그럼 들어가십시오.”
허영호가 공손하게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러곤 폰을 상의에 집어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