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S의 천재 스파이 (114)
이미 개들은 죽었다. 그러니 피해 보상이나 왕창 받아 내자!
견주들의 황당한 이기심과 배금주의에 차은성은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엄청 화가 나지만 꾸욱 눌러 참았다.
그사이.
예서가 앉은 일자의 나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서더니 견주들에게 소리쳤다.
“당신들!”
“…….”
“하마터면 사람이 크게 다칠 뻔했어요!”
예서가 목소리를 높이며 왼쪽에 앉은, 힘없이 고개를 숙인 상복 여인을 돌아보았다.
개들에 의해 심하게 훼손된 보자기를 가슴에 꼬옥 끌어안은 모습이 보기에 너무 안쓰럽다.
“……상을 당해 힘든 분이신데…… 돌아가신 남편분이 남기신 유품을 개들이 어떻게 해 놨는지 함 보라고요.”
기세등등한 예서다.
“먼저 이분에게 정중하게 사과부터 하는 게 예의잖아요. 그런데 자신들의 개부터 먼저 챙겨요?”
“…….”
“아니, 사람이 중요해요? 아님, 개가 중요해요?”
예서가 말하며 흥분했다.
“개가 죽은 게 무슨 큰일이라고! ……사람이 잘못되었으면 어쩔 뻔했어요?”
예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견주들이 고함치며 맞받아쳤다.
“내겐 자식 같은 애완견이야.”
“우리 가족이고 식구라고!”
“네가 뭔데 우리 수지를…….”
차은성은 견주들의 언행에 기가 막혔다.
아무리 개가 자식 같고 가족 같다고는 하지만, 사람 목숨보다 위일 수는 없다.
최소한 자신의 개 때문에 상복 여인이 다칠 뻔했다면 미안해하고 사과하는 것이 먼저다.
그런데 죽은 자신들의 애완견부터 먼저 챙기고, 그 죽음에 슬퍼하며 은근 보상을 받으려 한다.
차은성은 견주들의 행태에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역시나 꾸욱 눌러 참았다.
마음 같아서는 견주들에게 달려들어, 팔다리 하나 정도는 뚝뚝 부러뜨려 주고 싶지만.
감정적으로 처리할 일이 아니다.
있는 곳이 다름 아닌 지구대가 아닌가?
경찰들이 북적이는 곳임을 십분 감안해야 한다.
그런 차은성의 마음도 모르고 지구대 대장이 견주들을 향해 돌아섰다.
지구대 대장은 가슴 높이로 양손을 들어 올리며 견주들을 진정시키려 했다.
“자자, 다들 고정하세요. 진정들 하시라고요.”
견주들은 지구대 대장의 말에 한층 더 고함치며 흔한 말로 지랄을 떨었다.
“이미 애완견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죽은 이상, 살아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러니 적절한 보상을 받으시고 서로 합의하세요.”
지구대 대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견주들이 고래고래 소리쳤다.
“내겐 자식 같은 애였다고요.”
“그 애를 어떻게 돈으로 환산할 수 있어요!”
“합의라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지구대 대장은 강하게 항의하는 견주들을 진정시키고 설득시키느라 아주 진땀을 뺐다.
“자자, 여러분.”
“…….”
“저희 지구대에 지금 일이 많습니다. 우리 경찰들이 연일 격무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개들이 죽은 사건까지…….”
“…….”
“……아, 네에. 자식 같고 가족 같은 애완견의 죽음에 다들 많이 슬프실 겁니다. 하지만 이미 죽은 애완견이 살아 돌아오지는 않지 않습니까? 그러니 다들…….”
견주들에게 말하는 지구대 대장.
은근 짜증 내고 있었다.
방금 전에 말한 것처럼.
지구대의 자잘한 업무가 많다.
그런데 몇 마리 개들이 죽은 사건까지, 이렇게 시끄럽게 처리할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
지구대 대장은 개들을 죽인 차은성이 돈으로 현 상황을 해결하도록 유도하며 짜증 나고 귀찮은 현 사건을 빨리 정리하려 했다.
* * *
한참 후.
오주택 변호사가 지구대에 도착했다.
그는 지구대 대장을 만나 자신의 명함을 건넸다.
“변호사?”
지구대 대장의 말에 견주들이 일제히 오주택 변호사를 바라보았다.
피해 보상을 염두에 두었는지.
견주들이 은근 들뜬 표정을 지었다.
한편.
“오빠.”
예서가 우측에 앉은 차은성을 돌아봤다.
그러자 차은성이 말없이 예서를 마주 보았다.
“저런 인간들과 합의할 거야? 하지 마! 법으로 싸워!”
무슨 여전사라도 되는 양, 매우 전투적이 되어 버린 예서다.
차은성은 한숨을 쉬었다.
“휴우우.”
머리가 아프다.
“오빠.”
“넌 가만히 있어.”
“어떻게 가만히 있어. 저런 인간들은 그냥 확!”
예서가 말하며 견주들을 쏘아보았다.
* * *
얼마 후.
오주택 변호사의 말에 차은성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걸 말이라고…….”
오주택 변호사가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합의를 한다면 견주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습니다.”
“그건 압니다만. 요구가 너무 어이없지 않습니까? 한 마리당 5백만 원이라니.”
오주택 변호사가 곤혹스러운 눈빛을 띠었다.
“견주들의 주장으로는 순종의 혈통에…….”
차은성은 오주택 변호사의 말을 들으며 견주들을 바라보았다.
견주들은 차은성과 오주택 변호사를 주시하며 넌지시 기대의 눈빛을 띠었다.
자신들의 감정을 속일 줄 모르는 견주들이었다.
지구대 대장을 포함, 지구대의 경찰들은 견주들을 바라보며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들이 생각해도 견주들의 요구가 너무 과하다.
한몫 잡자!
그런 속내가 훤히 보인다.
지구대 대장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자 살이 접히며 몇몇 주름이 나타났다.
원만하게.
자신들에게 최대한 유리하게, 편하게 상황을 정리하려고 했는데. 견주들이 과한 요구를 하고 말았다.
자칫 일이 꼬여 버리면 개들이 죽은 어처구니가 없는 사건까지 맡아 처리해야 한다.
한마디로 왕짜증이다!
견주와 개들을 죽인 차은성이 서로 합의를 시작하면 자신들과는 무관한 일이 된다.
귀찮은 일을 잘 마무리 지을 수 있다.
지구대 대장은 마음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다가.
‘그런데…….’
차은성이 동전으로 개들을 죽인 것을 머리에 떠올렸다.
‘묘하게 신경이 거슬린단 말이야.’
동전으로 개를 죽인다?
평범한 일반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무슨 무술이라도 익힌 모양이다.
‘서로 합의가 잘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걸…….’
지구대 대장은 머릿속으로 잔머리를 굴렸다.
자신이나 부하 직원들이 편하게.
합의가 잘 이루어지지 않으면.
무술을 빌미로 차은성을 압박하여, 견주들에게 양보하게 강요할까?
지구대 대장은 내심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차은성이 금전적으로 손해를 본다. 2, 3천만 원 정도는 그냥 허공으로 날릴 것이다.
하지만 개인 변호사를 부른 것을 보면 상당히 잘사는 집 사람 같다.
그러니 개 한 마리당 5백만 원씩, 금전적인 보상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귀찮기 짝이 없는 사건을 여기에서 깔끔하게 끝낼 수 있다.
지구대 대장은 흔한 말로 ‘통밥’을 굴리며 차은성을 바라보았다.
오주택 변화사와 꽤 길게 대화하는 것으로 보아, 뭔가 얘기가 잘 안 되는 모양이다.
‘하지만 개 몇 마리 죽인 걸로 경찰서를 들락거리고 법정에 서고 싶진 않겠지.’
지구대 대장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은근 기대했다.
강아지들이 죽은 사건은 맡고 싶지 않기에.
그는 민중의 지팡이가 아니었다. 경찰이란 옷을 입은 그저 월급쟁이 직장인에 지나지 않았다.
한편.
“예?”
오주택 변호사가 반문하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법대로 처리해 주십시오.”
“차 실장님.”
“오 변호사님.”
“네.”
“저, 돈도 있고 백도 있습니다. 연줄도 있고요. 그런데 제가 왜 저치들과 합의를 해야 합니까?”
차은성의 말에 오주택 변호사는 뭐라 말할 수 없었다.
“법대로 처리하세요. 까짓, 검찰까지 가고. 법정에 서서 재판을 받아 보자고요.”
“…….”
“사람을 구하기 위해 개 몇 마리 죽였다고, 대한민국 판사가 사람을 감옥으로 보내는지, 보내지 않는지, 어디 한번 두고 보죠.”
차은성의 말에 오주택 변호사가 천천히 말했다.
“차 실장님.”
“…….”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감정적으로 이번 일을 처리하지 마시고. 적당히 돈 몇 푼 집어 주면 조용히 넘어갈 수 있습니다.”
“오 변호사님.”
“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으로서의 도리에 관한 문젭니다.”
“…….”
“대한민국이 갈수록 개판이 되어 간다는 건 압니다만. 그래도 저는 오 변호사님이 말씀하신 대로 이번 일을 처리하고 싶진 않습니다.”
차은성은 단호했다.
옆에 앉은 예서가 끼어들었다.
“역시 우리 오빠!”
말하며 손을 들더니 차은성의 등을 가볍게 툭툭 쳤다.
차은성이 예서를 돌아보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어!”
예서가 혀를 살짝 내밀었다 집어넣었다.
그 모습이 보기에 무척 귀엽다.
그 때문인지.
차은성이 일순 피식 웃고 말았다.
오주택 변호사가 남매의 모습에 살며시 미소 지었다.
씨익.
이어, 말했다.
“얼겠습니다.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 변호사의 의무이니 차 실장님이 말씀하신 대로 처리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오주택 변호사의 말에 차은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잠시 뒤.
견주들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주택 변호사는 거침없이 그들에게 말했다.
“고소를 하시든, 고발을 하시든 마음대로 하십시오. 저희는 합의할 의사가 없습니다.”
견주들은 당황하는 표정을 짓더니 서로 돌아봤다.
그러곤 그들끼리 쑥덕공론을 하듯 말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상황이 전혀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 견주들 모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들은 매우 혼란스러워했다.
생명은 금전으로 환산할 수 없지만. 현실적으로 그들의 애완견을 금전으로 환산한다면 10~20만 원대다.
하지만 차은성을 고소하거나, 고발을 하거나 맘대로 하라고 했다.
결국 법정으로 이번 일을 가져가는 것을 피할 순 없다.
법정으로 이번 일을 가져가는 경우.
견주들은 엄청난 금전적 지출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
법정에 서면.
무조건 변호사를 선임해야 한다.
요즘 변호사 선임비가 아무리 최소로 잡아도 기본적으로 5백만 원 내외다.
그리고 법정에서 재판을 하게 되면 적어도 3심까지 각오해야 한다.
견주들이 3심까지 가, 최종적으로 이길 경우.
차은성이 치러야 할 대가는 기껏 해 봐야 몇백만 원의 벌금형이다.
대한민국이 건국된 이래로 개를 죽였다고 실형을 선고받은 전례는 없다.
결국.
차은성은 재물 손괴죄를 적용받을 것이고, 벌금만 내면 그만이다.
하지만 견주들은 최소 2, 3천만 원의 금전적 지출을 각오해야 한다.
금액으로 보면.
재판으로 가져가지 않는 것이 견주들에게 이익이다.
견주들이 혼란스러워하며 우왕좌왕하는 동안.
지구대 경찰들이 당황한 눈으로 차은성을 바라보았다.
의외로 강경하게 대응한 차은성이다.
그들 모두 은근 신경질과 짜증을 표출했다.
강아지들이 죽은 것을 일일이 서류로 작성하여 소속 경찰서로 보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