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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S의 천재 스파이 (112)화 (112/208)

NIS의 천재 스파이 (112)

“우린 여기서 흩어진다. 다음 작전 때까지 푹 쉬도록 해라. 그리고 노파심에서 말하지만, 감찰실이 눈을 부릅뜨고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라!”

차은성의 말에 팀원들이 일순 움찔움찔했다.

차은성은 이전 팀이 감찰실의 감시와 모종의 조사를 받았던 점을 감안했다.

“문제가 될 만한 행동은 아예 처음부터 하지 않는 게 좋아.”

당부한 후, 팀원들에게 한 사람씩 기내에서 내리라고 말했다.

팀원들이 하나둘 차은성에게 인사한 후 기내에서 내렸다.

이후.

차은성은 사무장 이요한과 기장 조국현을 찾아가 고마웠다고 인사한 후 마지막으로 기내에서 내렸다.

*    *    *

입국 수속을 마친 차은성이 천천히 입국장을 빠져나왔다.

이내.

차은성은 걸음을 멈추고 서더니 피식 웃고 말았다.

맞은편.

수여 미터의 거리를 두고 박영광이 서 있었다.

왼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고 오른손을 가슴 높이로 들더니 검지를 앞뒤로 서너 번 까닥였다.

수 초의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박영광이 손을 내리고는 뒤돌아섰다.

―따라와.

차은성은 박영광의 무언에 입맛을 다셨다.

“쩝.”

별수 없다.

보자는데, 볼 수박에.

*    *    *

공항 내에 있는 프랜차이즈 커피숍.

우측 벽면에 접한 한 테이블에 박영광과 차은성이 마주 보며 앉아 있었다.

박영광이 마시던 커피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내가 너 때문에 속이, 속이 아니다. 응!”

라고 말하며 은근 화냈다.

그러자 차은성이 말없이 씩 웃었다.

“웃긴!”

“작전을 중단할 수 없었습니다.”

박영광이 흠칫했다.

차은성은 간략하게 설명했다.

“리가에서의 일로 이정선 씨를 포함한…… 그들 모두 평양으로 송환되기 직전이었습니다. 그래서…….”

“너어……?”

박영광이 매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전문 무시와 지시 불응은 박영광의 머리에서 순간 깨끗하게 지워졌다.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에서의 급습!

대외비 중 대외비인데 캄보디아에서 작전 중이었던 차은성이 알고 있다.

어떤 경로로 알고 있는 것인지, 박영광은 부지불식간에 크게 놀라고 말았다.

그사이.

차은성은 회사의 지시에 불응할 수밖에 없었음을 말하며 설명을 끝맺었다.

그러자 박영광이 뭔가 묵직한 것이 실린 듯한 한숨을 쉬었다.

“휴우.”

그런 한편으로.

손을 들어 이마를 짚으며 자신이 머리가 아프다는 것을 은연중에 내보였다.

―내가 너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응?

박영광이 행동으로 그렇게 말했다.

차은성은 가만히 박영광을 바라보며 눈치를 보았다.

“회사에서 어떻게 하기로 했습니까?”

차은성의 물음에 박영광이 손을 내리며 마주 보았다.

“청와대에서 제동을 걸었다.”

차은성이 순간 움찔했다.

“보복하려면 청와대의 작전 승인이 필요한데, 곧 대선이라 청와대에서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외교적으로 적잖은 부담이 있고 예기치 못한 몇몇 문제가 일어날 수도 있다며 관련 작전 승인을 차일피일 지금 미루고 있다.”

“…….”

“1차장은 공을 세우려고 혈안이라, 무조건 보복 작전을 실행하자고 입에 거품을 물며 강력히 주장하고.”

“…….”

“2차장은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며 청와대의 승인이 없는 작전을 극구 반대하고 있다.”

말하는 박영광의 얼굴에서 난감이라는 감정이 배어 나왔다.

“원장님은 대선이 끝나면 자리에서 물러나야 할 입장이라…… 사실상 한시적인 위치에 있는 입장이라……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식이야.”

“…….”

“가장 큰 문제는 회사 내부에서 리가에서의 일로 보복을 주장하는 직원들이 적잖다는 거야.”

“…….”

“직원들 사기도 사기지만…… 연평도 포격처럼 이번에도 가만히 있을 거냐고. 회사 전체적으로 격앙된 분위기야.”

박영광의 말을 가만히 듣던 차은성이 천천히 입을 뗐다.

“보복 작전에 나설 경우, CIA가 딴죽을 걸지는 않겠습니까?”

박영광이 말없이 질문한 차은성을 바라보았다.

“틀림없이 알고 있을 겁니다.”

차은성이 박영광에게 말해 달라고 은근히 재촉했다.

“휴우.”

박영광이 한숨을 쉬었다.

이어.

말하기 시작했다.

“리가에서의 일은 CIA와 상호 공조한 공동 작전이었어……. CIA 애들은 리가의 일에 대한 보복에 소극적이고 미온적이야. 자기 애들은 죽지 않았다 이거지.”

차은성이 일순 성난 눈빛을 띠었다.

“우리가 CIA 따까립니까? 도대체 언제까지 걔들 밑구녕을 우리가 닦아 줘야 합니까? 네에?”

“방귀 뀐 놈이 성낸다더니.”

박영광이 차은성에게 대꾸하며 재빨리 주변을 살폈다.

이어.

차은성을 바라보며 바닥에 깔듯이 아주 낮게 말했다.

“그게 다 너 때문이잖아!”

“예?”

차은성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왜 자신 때문이라고 말하는지 알 수가 없다.

박영광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어투로 말했다.

“니가 벨기에에서 미국 애들을 죽이는 바람에, 우리가 CIA에 약점이 잡혀서…….”

차은성은 순간 와락 인상 썼다.

“염병!”

자신도 모르게 거친 욕이 튀어나왔다.

억울하다!

박영광이 말했다.

“됐고. 전문 불응에 대한 자세한 경위서 작성해서 제출해.”

“그게…….”

“입 닥쳐라. 응!”

박영광이 차은성을 쏘아보았다.

“넌 회사의 지시에 불응했어. 그리고 리가에서의 일에 너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어.”

“…….”

차은성은 침묵하며 고개를 숙였다.

브뤼셀에서 충동적으로 CIA 요원들을 죽였다.

자신이 소속이 없는 외로운 늑대라면 CIA의 보복을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문제는 자신이 NIS에 소속되어 있다는 점이다.

차은성은 고개를 숙인 채 중얼거리듯 말했다.

“CIA가 제가 그쪽의 요원들을 죽인 것을 빌미로 회사를 위협했다면!”

“…….”

“CIA 요원들에게 죽임을 당한 3팀의 우리 요원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천천히.

차은성이 고개를 들어 박영광을 보았다.

감정이 격해졌음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차은성의 얼굴과 두 눈동자.

마주 보는 박영광이 순간 눈에 띌 정도로 매우 당황했다.

뭔가 심상치 않다!

그런 느낌을 받은 모양이다.

차은성에게 내재되어 있는 과격성과 폭력성.

그 때문에 과거 차은성이 정신병원에 장기 입원 했었다.

박영광은 불안감에 떨리는 목소리로 차은성을 불렀다.

“으, 은성아…….”

정기적인 주치의와의 면담과 약물요법으로 과격성과 폭력성을 억제한 차은성이다.

간단하게 말해, 언제든지 기폭 장치가 작동하면 그 즉시 폭발하는 시한폭탄에 다름 아니다.

그 때문에 과거 주철현 국장이 그 점을 언급하며 박영광이 차은성을 제어하지 못할 경우. 회사 차원에서 제거할 수밖에 없다고 단단히 주의를 준 적이 있다.

박영광이 심기일전하듯 정색하더니 차은성을 바라보며 높지도 낮지도 않은 목소리로 툭 던지듯 말했다.

“3팀 애들을 죽인 것은 CIA 뜻이 아니었다. 응? 시먼스! 그 개자식의 개인적이고 독단적인 일탈이었어!”

강조하듯이 힘주어 말했다.

그러자 차은성이 눈을 반짝였다.

“참. 시먼스, 그 자식을 추적하는 것은 어떻게 됐습니까?”

“왜, 알면 죽이게?”

박영광의 물음에 차은성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입을 다물었다.

“…….”

“아서라. 세계는 넓다. 어느 구석에 숨어 있는지…….”

박영광이 말끝을 흐렸다.

현재 어디에 숨어 있는지 알아내지 못했고, 그를 여전히 찾는 중이다.

박영광의 무언에 차은성이 앞에 있는 커피 잔을 들었다.

몇 모금 마신 후 커피 잔을 내려놓으며 농담조로 말했다.

“제가 랭글리를 날려 버려도 됩니까?”

“야아!”

박영광이 낮게 힘주어 말하고는 급히 주변을 둘러봤다. 커피숍 내부에 있는 다른 손님들이 신경 쓰인다.

차은성은 짓궂은 기색을 지었다.

“국제 무기 암시장에서 히로시마급 핵폭탄 정도는 언제든지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랭글리를 날려 버리는 것은 여반장입니다.”

차은성은 엄청 진지했다.

정말 그럴 작정인지 매우 의심스럽다.

“이 미친놈이!”

박영광이 성난 표정을 지으며 눈을 부릅떴다.

순간.

피식.

차은성이 웃었다.

“장난입니다, 장난.”

박영광은 당장이라도 차은성에게 주먹을 휘두를 듯 흉험하기 짝이 없는 눈빛을 번득였다.

“다시 병원에 입원하고 싶냐? 병원이 그리워 죽겠어?”

박영광이 낮게 말하며 은근 차은성을 위협했다.

“그냥 장난친 것뿐입니다.”

별것 아니라는 어투로 차은성이 말했다.

그러자 박영광이 차은성을 노려보았다.

“똑똑히 잘 들어!”

“…….”

“널 병원에서 꺼낼 때…… 국장님과 몇 가지 합의를 한 것이 있어……. 네 몸속에 약물로 잠재워 둔 또 다른 네가 깨어나고, 네 스스로 자신을 통제하지 못한다면!”

박영광이 말끝을 끊으며 의미심장한 눈빛을 띠었다.

뭔가 심상치 않다.

차은성이 부지불식간에 멈칫했다.

“삼촌…….”

“말장난도 정도가 있어.”

박영광이 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브뤼셀에서 네가 CIA 애들을 죽였을 때.”

“…….”

“난 혹시라도 약물요법으로 잠재운 네 속의 또 다른 네가 깨어난 것이 아니었을까? 정말 무서웠어.”

박영광의 말에 차은성은 내심 씁쓸했다.

그저 농담이었을 뿐인데. 박영광이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자신 역시 알고 있다. 자신의 속에 있는 또 다른 존재를!

차은성이 생각하는 사이.

박영광이 이어 말했다.

“내가 병원에서 널 꺼낸 것을 후회하지 않게 해 줬으면 좋겠다. 은성아.”

“…….”

“나로 하여금 널 제거하게 만들지 마라!”

박영광이 엄청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차은성을 마주 보았다.

위험하다!

만약 차은성이 내면의 자신에게 먹혀 버린다면, 자칫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그 때문에 당시 주철현 국장이 강력하게 반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영광은 밀어붙였다.

―그렇기 때문에 최고의 요원이 될 수 있는 겁니다!

박영광은 차은성을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제가 모든 책임을 지겠습니다. 제가 직접 교육시키겠습니다.

자신만만했고.

박영광이 하도 밀어붙이는 바람에 주철현 국장은 마지못해 허락하며 몇몇 조건을 붙였다.

박영광이 말하는 동안.

차은성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CIA에 대한 격한 마음에 충동적으로, 농담처럼 말했을 뿐인데.

박영광이 개그를 다큐로 받아 버렸다.

‘이거 난감하네. 쩝.’

차은성이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어머니 조혜선이 정병훈과 재혼한 것도, 따지고 보면 자신 때문이다.

천천히.

박영광이 앉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치의를 만나 봐라.”

말하며 옆으로 돌아섰다.

차은성이 커피숍 출입문으로 걸어가는 박영광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제 속에 악마가 있다는 것을!”

나직이 중얼거렸다.

*    *    *

끼익.

택시가 정차하고.

이내.

차은성이 뒷문을 열고 내렸다.

그러자 곧 택시가 움직였다. 택시는 서 있는 차은성을 뒤로하고 도로를 따라 서행했다.

차은성은 천천히 정면 건물을 향해 걸어갔다.

*    *    *

끼익.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일하던 직원들이 하나둘 돌아봤다.

“어머, 차 실장님.”

“출장 잘 다녀오셨어요?”

“안녕하세요.”

직원들이 반갑게 인사했다.

차은성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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