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S의 천재 스파이 (111)
코드 89의 경우.
인근 제주 공군기지에서 스크램블이 곧 이루어질 것이다.
코드 89의 기체를 목적까지 안전하게 호위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내.
“당소 제주 관제소. 아시아나 302. 코드 89. 확인 바람. 코드 89. 재확인 요청.”
기장 조국현이 즉각 응답했다.
“아시아나 302. 기내에 콜 넘버 77249 탑승. 반복한다. 77249 탑승.”
“제주 관제소. 아시아나 302. 현 항로 유지하라. 곧 다시 연락하겠다.”
“라저!”
기장 조국현이 씩씩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히죽 웃었다.
부기장 정일우가 그런 기장 조국현을 돌아보며 입가에 작은 미소를 지었다.
씨익.
* * *
차은성, 팀원들, 안용국, 이정선이 샴페인을 마시는 사이.
다른 1등석 승객 중 두어 명이 그들을 돌아보았다.
못마땅하다.
두 승객은 소란스러운 이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두 승객이 이내 승무원을 호출, 강력히 항의했다.
그러자.
“죄송합니다.”
“……탈북 하신 분들이라…… 기뻐서 저러시는 것이니, 부디 양해 부탁드립니다.”
승무원들의 대답에 두 1등석 승객이 깜짝 놀랐다.
그들은 부리나케 차은성, 팀원들, 안용국, 이정선을 돌아봤다.
이해 못 할 바가 아니다.
죽다 살아났으니 저렇게 기뻐하는 것이 당연하다.
대부분의 승객은 이해하고 상황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몇몇 승객은 불만을 품었다.
예의 불만을 겉으로 드러내지도, 뭐라 말하지도 않았다.
행여 차은성, 팀원들, 안용국, 이정선에게 불만을 말하거나 항의했다가 구설수에 오르거나 문제가 생기면 자신들만 손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 * *
얼마 후.
제주 관제소에서 아시아나 302편에 인천까지의 항로 우선권을 부여했다.
“현 고도를 1,200까지 올리고, 우로 5도 변침하라. 아시아나 302.”
“제주 관제소. 알겠다. 고도 상승 및 변침하겠다.”
“인천까지 무사히 비행하길 기원한다. 아시아나 302.”
“탱큐.”
기장 조국현이 간결하게 대꾸하며 환하게 웃었다.
“하하하하.”
* * *
쇄, 쇄에에에엑.
제주 공항에서는 F16 C/D 2기가 활주로를 박차고 이륙했다. 두 기체는 곧장 비행 중인 아시아나 302편을 향했다.
* * *
조국현 기장이 조종하는 아시아나 302편은 비행에 있어 각종 편의를 제공받았다.
제주 공역에 이어 군산 공역, 오산 공역 등 각 공역을 통과하며 항로 우선권이란 특혜를 마음껏 누렸다.
뻥 뚫려 있는 고속도로를 고속으로 질주하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제주 관제소에서 이미 연락을 취한 것 같다.
일사천리로 각 공역을 우선 통과하며 아시아나 302편은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했다.
그사이.
인근 공역을 비행 중이던 각 민항기들은 느닷없는 항로 변경과 저속 비행 요구에 당황했다.
국내선 항공기, 국적기, 국외기 할 것 없이 모든 민항기는 아시아나 302편에 항로를 무조건 양보해야 했다.
통상 민항기들을 효율적으로 관제하기 위해 비행고도와 항로 등에 차이를 둔다.
그 때문에 민항기마다 연료 소모량, 비행시간, 도착 시간 등에 있어 부득불 차이가 생긴다.
연료의 경우.
소모했다 하면 기본적으로 천만 원 단위다. 무시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니다.
* * *
인천국제공항은 때아닌 코드 89로 난리가 났다.
아시아나 302편에 대기 없이 곧바로 착륙할 수 있는 우선권이 자동 부여되었다.
인천국제공항처럼 붐비는 공항의 경우.
때로는 상공을 선회하며 몇십 분씩 착륙을 기다리기도 한다.
민항기 조종사들 사이에서 먼저 착륙하려고 적잖은 신경전을 벌일 정도로 착륙 순서 다툼이 치열하다.
그 점을 감안하면.
인천국제공항 관제탑에서 아시아나 302편에 일종의 특혜를 준 셈이다.
* * *
사무실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 중인 박영광.
“아무리 생각해도 꿀꿀해.”
중얼거리며 불안한 눈빛을 띠었다.
“은성이 그 녀석 성미에 고분고분하게 전문을 따르지 않을 텐데.”
박영광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차은성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뻔하다. 순순히 전문을 따르지 않을 것이다.
“틀림없이 뭔가 사고를 치긴 칠 텐데.”
박영광이 불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뭔 사고를 치려는 건지. 미리 알기라도 한다면 이리 답답하지는 않을 텐데. 젠장.”
박영광이 한숨을 쉬었다.
“휴우우.”
차은성과 팀 아르티펙스 때문에 직급이 올랐다.
뭐, 그래 봐야.
민간 회사로 치면 과장 대우와 개인 사무실이 주어질 뿐이지만. 아예 그와 같은 것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훨씬 낫다.
혼자 쓰는 사무실이다 보니 실내 흡연을 마음껏 할 수 있어 좋다.
박영광이 입에 담배를 물고 라이터를 손에 들고 켜려는 순간.
띠리리링…… 띠리리리링.
책상에 아무렇게나 놓아둔 폰이 울렷다.
박영광은 입에서 담배를 빼어 라이터와 함께 책상에 내려놓았다.
이어.
천천히 폰을 들어, 발신자와 발신 번호를 확인한 후.
후다닥.
폰을 귀에 댔다.
“여보세요.”
“나다.”
“어? 형님이 웬일로 제게 다 전화를 주십니까?”
박영광이 묻자.
“차 팀장이 사고 쳤다!”
폰 너머에서 들린 주철현 국장의 말에.
“컥!”
박영광은 순간 숨이 막힐 정도로 엄청 놀랐다.
“캐, 캐, 캑.”
“너, 왜 그래?”
폰 너머에서 주철현 국장이 급히 물었다.
“사, 사레가…….”
박영광이 필사적으로 말하자.
“아주 가지가지 한다. 응? 너나 차 팀장이나 아주…… 끼리끼리 잘 만났다. 응!”
박영광은 뭐라 대답하지 않았다. 서둘러 사레를 진정시켰다.
“지금 당장 인천국제공항으로 튀어 가. 차 팀장이 코드 89를 발동한 모양인데. 작전이 성공한 것 같아.”
“콜록, 콜록.”
“마음 같아서는 확 그냥!”
“…….”
“회사의 지시를 아주 개무시한 것을 생각하면! 니들을 정말이지!”
주철현 국장이 적잖게 화냈다.
“작전이 성공해서 이 정도로 끝나는 줄 알아!”
주철현 국장이 상당히 열 받은 모양이다.
하긴, 이해 못 할 바도 아니다.
잠정 활동을 중지하고 대기하라는 전문을 차은성이 깔아뭉개 버렸다.
그리고 독단적으로 작전을 감행. 다행히도 성공시켰다.
상사로서 회사의 지시에 불응한 것을 생각하면 열 받을 수밖에 없다.
간신히 사레를 진정시킨 박영광이 급히 말했다.
“형님, 형님.”
주철현 국장과 서로 호형호제하는 사이라 급히 불렀지만.
주철현 국장이 이미 전화를 끊었다. 그 때문에 주철현 국장의 음성을 들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박영광은 귀에서 폰을 뗄 수밖에 없었다.
통화를 끝낼 수밖에 없는 박영광은 가만히 손에 쥔 폰을 내려다보았다.
곧.
박영광이 책상에 툭 폰을 던지듯 내려놓았다.
“망할!”
어쩐지 감이 이상하다 했다. 불안했었는데, 딱 들어맞았다.
“이놈의 자식이!”
박영광이 거칠게 중얼거리며 앉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빨리 인천국제공항으로 가 봐야 한다.
박영광은 황급히 책상을 빠져나와 사무실 문으로 뛰어갔다.
후다닥.
* * *
끼, 기이이잉.
아시아나 302편의 바퀴가 활주로에 닿았다.
잠깐 동안 아시아나 302편이 활주로를 주행하더니.
서서히.
들린 기체 앞이 숙여졌다.
그러곤 기체가 부드럽게 활주로를 미끄러졌다.
기체의 속도가 빠르게 줄어들며 감속이 이루어졌다.
이윽고.
속도를 완전히 줄인 기체가 서서히 정지했다.
그사이.
기체를 계류장으로 이동시키기 위한 차량이 다가왔다.
* * *
덜컥.
기체의 문이 열리자 미리 와 있던 양복을 입은 이들이 우르르 안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승무원들이 그들을 보고는 재빨리 옆으로 비켜섰다.
그사이.
승무원들이 승객들에게 잠시 기다려 달라고 양해를 구했다.
* * *
한 여승무원의 안내를 받으며 일단의 양복 입은 이들이 1등석으로 들어섰다.
NIS 공항 분소 주재 요원들 선두.
선임 요원인 최승재는 1등석으로 들어서는 순간.
흠칫하더니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의 눈에서 놀람과 당혹의 두 감정이 샘솟았다.
바라보는 최승재의 눈에 보이는 차은성.
팀원들, 안용국, 이정선과 기뻐하며 즐겁게 정담을 나누고 있었다.
한편.
다른 요원들이 서 있는 최승재의 좌우를 지나 앞으로 걸어가려고 했다.
그러자.
“멈춰!”
최승재가 짧게 힘주어 말하며 양손을 좌우로 길게 뻗었다.
지나가려던 요원들이 그에 멈춰 서며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선배!”
“팀장님.”
분소 요원들이 의아한 눈으로 최승재를 돌아보았다.
다들 영문 몰라 했다.
그사이.
차은성, 팀원들, 안용국, 이정선이 분소 요원들을 돌아보았다.
팀원들은 흠칫흠칫했고, 안용국은 어리둥절해했다.
이정선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경계의 눈빛을 띠었다.
차은성은 담담했다.
별다른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보기에 무심한 모습이었다.
차은성은 양팔을 좌우로 벌려 분소 요원들을 제지한 최승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안면이 있다.
일전에 마담 화이트 때문에 공항에서 소란을 부린 적이 있다.
당시 최승재를 보았었다.
잠시 뒤.
최승재가 분소 요원들을 돌아보며 뭐라 말했다.
그러자 분소 요원들이 움칫움칫하더니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최승재는 천천히 차은성에게 걸어갔다.
이내.
이르러 서더니 정중하게 인사했다.
“최승재라고 합니다. 일전에 공항에서 뵌 적이 있습니다만. 기억하십니까?”
차은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납니다. 그때는 신세 많았습니다.”
“아닙니다. 그런데 코드 89…….”
최승재가 말끝을 흐리며 팀원들과 안용국, 이정선을 돌아봤다.
누가 코드 89인지 대상자를 찾는 최승재였다.
차은성이 그런 최승재를 바라보며 픽 웃더니.
“통지받았습니까?”
라고 물었다.
그러자 최승재가 차은성을 돌아보았다.
“네. 통지받았습니다.”
차은성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눈짓으로 안용국을 가리켰다.
“재외 국민입니다. 그리고 저분은 이정선 씨로, 코드 89 당사잡니다. 두 사람은 커플이니 그 점, 감안해 주었으면 합니다.”
“네. 잘 알겠습니다.”
최승재의 대답에 차은성이 안용국과 이정선을 바라보았다.
“저 사람들을 따라가세요……. 이젠 안심하셔도 됩니다.”
혹 이정선이 불안해할까 봐 차은성이 신경 썼다.
“정선 씨.”
이정선이 차은성을 마주 보았다.
“네.”
“대한민국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순간.
이정선이 움찔하더니 천천히 차은성에게 허리를 깊이 숙였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서너 번.
이정선이 허리를 깊이 숙였다 들며 고마워했다.
그 모습에.
차은성과 팀원들이 입가에 흐뭇한 작은 미소를 지었다.
* * *
수십여 초 후.
최승재와 분소 요원들의 안내를 받으며 안용국과 이정선이 기내에서 내렸다.
이어.
탑승한 승객들이 하나둘 내리기 시작했다.
한편.
차은성은 팀원들을 돌아봤다.
조영국, 최라경, 신일권, 이창희.
한 명씩 마주 보며 말했다.
“첫 작전이었는데 모두들 잘해 주어 정말 고맙다.”
그러자 팀원들이 말없이 웃기 시작했다.
씨익, 씩.
차은성이 재차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