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S의 천재 스파이 (108)
“제가 맞아요?”
그녀의 물음에 차은성이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정선 씨가 아니라면 누구겠습니까?”
이정선이 다시 거울을 보며 중얼거렸다.
“진짜 나라니…….”
못 믿겠다!
이정선이 그런 감정을 보란 듯이 내색했다.
자신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울에 비친 자신이, 자신이 아닌 것 같은 느낌!
완전 다른 사람이라고 말해도 다들 믿을 것이다.
상상도 해 보지 못한 여자로서의 변신에 이정선은 할 말을 그만 잃고 말았다.
이제까지 본 적이 없는 전혀 다른 여인이 거울에 비쳤다.
스스로조차 믿어지지 않는다.
자신이라니…….
차은성이 그런 이정선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이제 그 누구도 당신을 알아볼 수 없을 겁니다.”
이정선이 재차 차은성을 돌아봤다.
“고마워요.”
“천만에요.”
차은성이 대꾸하며 미소 지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자아. 이쪽으로.”
차은성이 말하며 옆으로 돌아섰다.
이정선이 차은성에게 돌아서며 물었다.
“아직 남은 것이 또 있나요?”
차은성이 웃으며 대꾸했다.
“여권을 만들기 위해서 사진을 찍어야 합니다. 그리고 만약을 대비한 이정선 씨의 태국 신분증도 만들어야 하고요.”
이정선이 놀란 듯 눈을 치떴다.
“하하하.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이정선 씨는 완전 다른 사람이 된다고요.”
차은성의 말에 이정선은 당황하는 한편으로 들뜬 눈빛을 띠었다.
* * *
한참 후.
차은성이 이창희를 돌아봤다.
“여권은?”
“다 되어 갑니다.”
“태국 신분증은?”
“이미 다 만들어 두었습니다.”
“항공권은?”
“방콕발 서울 인천행 마지막 항공기를 사전 예약해 두었습니다.”
“가명이겠지?”
“네. 적어도 24시간 동안은 세상 그 누가 조회한다고 해도 위조되었다는 것을 알아챌 수 없을 겁니다.”
“좋아. 그럼 여권 작업이 끝나는 대로 바로 공항으로 이동한다.”
차은성이 말하며 손목시계를 보았다.
“예에.”
이창희의 대답에 이어 차은성이 최라경, 신일권을 돌아봤다.
“예정대로.”
“예.”
“네.”
최라경과 신일권이 대답하며 서둘러 뒤돌아섰다.
이어.
차은성은 안용국을 돌아보았다.
“용국 씨 여권은?”
“아, 네에. 챙겨 가지고 왔습니다.”
“이리 주세요.”
“네.”
차은성이 손을 내밀자 안용국이 자신의 여권을 꺼내 건네주었다.
받아 든 차은성이 이창희에게 돌아섰다.
만에 하나를 모른다.
북한 대사관의 이들이 안용국을 알고 있을지도…….
그에 대비하여 미리 안용국의 여권을 조금 손보아 둘 필요가 있었다.
* * *
주택을 떠나 공항으로 향하는 차내에서 차은성은 이정선과 안용국에게 몇몇 주의 사항을 말했다.
그리고 절대 잊지 말고 자신이 말해 준 대로 움직여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절대 당황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를 믿고 침착하게! ……아시겠습니까?”
“네.”
“예에.”
이정선과 안용국의 대답에 차은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우를 돌아봤다.
“조 선배는?”
“네. 공항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이창희가 대답했다.
그러자 차은성이 짧게 숨을 쉬었다.
“휴우.”
정신없이 일련의 일을 해치우느라 다소 피곤했다.
“저어, 팀장.”
이창희가 차은성의 눈치를 보았다.
“왜, 할 말 있어?”
“그게, 잠시 귀 좀.”
이창희가 말하며 이정선과 안용국의 눈치를 보았다.
차은성은 이창희가 자신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내심 의아해해하며 이창희에게 귀를 내밀었다.
그러자 이창희가 재빨리 귀엣말로 말했다.
“……베트남, 방콕, 프놈펜 공항에 북한 사람들이 쫙 깔렸습니다. 팀장.”
이창희가 귀에서 떨어지자 차은성은 고개를 가볍게 까닥였다.
이미 예상한 바다.
“걱정할 것 없어. 그건 조 선배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깐.”
차은성이 말하며 알아보기 어려운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곤 가만히 이정선을 보았다.
안용국과 소리 죽여 대화를 나누는 그녀.
그 누구도 지금의 이정선을 탈북 한 북한 식당의 접객원 이정선으로 생각하지도, 보지도 않을 것이다.
완벽하게!
다른 사람이 되어 있으니깐.
* * *
시간이 꽤 지났다.
차가 공항으로 향하는 동안 차은성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으음…….’
이번 캄보디아에서의 작전은 생각 외로 오래 걸렸다.
작전 지역인 캄보디아와 북한의 관계.
시아누크를 염두에 두면 결코 만만한 지역이 아니다.
캄보디아 옆에 있는 베트남이 공산국가라는 점도 적잖게 마음에 걸렸다.
다른 무엇보다도 이정선의 안전을 최우선하다 보니, 이래저래 적잖은 시일을 잡아먹었다.
이정선을 빼낸 즉시, 프놈펜 공항으로 이동.
곧바로 항공기에 탑승.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하면 되지만.
문제는 북한 대사관의 이들이 결코 바보가 아니라는 점이다.
보나 마나.
제일 먼저 공항을 생각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그리고 북한 대사관 사람들의 이목이 공항뿐만 아니라 항구와 국경 등에 미칠 것은 충분히 예상하고도 남는 일이다.
그 때문에 최라경으로 하여금 이정선과 안용국을 데리고 국경의 산악 지대를 넘어 태국으로 이동하라고 지시했다.
‘시일이 걸리긴 했지만.’
차은성은 만족스러웠다.
아직까지 죽거나 다친 이들이 단 한 명도 없기 때문이다.
작전 시일이 늘어나는 것보다 팀원들과 이정선, 안용국이 안전한 것이 더 중요하다.
차은성이 창밖을 보며 생각하는 사이, 어느덧 차는 방콕 국제공항으로 들어섰다.
* * *
공항 터미널 한편.
차은성과 팀원들. 그리고 안용국, 이정선이 조영국과 접선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니. 난 별로 한 것이 없어. 수고는 장춰린 그 친구가 많이 했지. 대체 어떻게 구워삶았기에 그렇게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건지…… 알다가도 모르겠어.”
조영국이 웃으며 말했다. 그런 한편으로 넌지시 의문과 궁금증이라는 두 감정을 내보였다.
차은성은 짐짓 모른 척하며 말없이 미소 지었다.
씩.
그러곤 작고 낮은 목소리로 조영국에게 물었다.
“미끼는 어떻게 됐습니까?”
“스탠바이 완료야. 신호만 주면 곧바로 움직일 거야.”
“프놈펜 공항과 하노이 공항은 어떻게 됐습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같은 시간에 움직일 거야.”
조영국의 대꾸에 차은성이 망설임 없이 말하며 손목시계를 보았다.
“그럼, 지금 시간을 맞추도록 하죠.”
“OK.”
조영국이 고개를 끄덕이며 차은성처럼 자신의 손목시계를 보았다.
두 사람의 말과 행동에 팀원들이 각자의 손목시계를 보았다.
안용국과 이정선은 아르티펙스 팀원들의 행동에 어리둥절했다.
* * *
차은성은 팀을 3개의 조로 나눴다.
안용국과 조영국을 1조로 묶어, 앞서 출국장으로 이동하도록 지시했다.
한국 국적의 안용국이라 이정선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전하기 때문이다.
2조는 이창희와 신일권이었고, 3조는 최라경과 이정선이었다.
차은성은 1조를 선두로 하여 그다음 2조, 3조의 순으로 출국장으로 이동하라고 재차 지시했다.
그리고 이정선에게 보청기 형태의 이어폰을 건넸다.
“이게 뭐죠?”
이정선이 물었다.
“귀에 끼세요. 보청기 형태라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
“제가 이정선 씨를 뒤따르며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이어폰을 통해 말할 겁니다. 이정선 씨는 이어폰을 통해 들리는 제 말대로 말하고 행동하시면 됩니다.”
차은성은 일종의 아바타 게임을 염두에 뒀다.
영어나 태국어에 약한 이정선이다.
자칫 그녀가 무심코 북한 말을 쓰게 되면 탈북민이라는 것을 감출 수 없다.
의심을 사는 것은 당연하고. 상황이 잘못되면 그 즉시 북한 대사관 사람들이 떼로 이정선에게 몰려들 것이다.
차은성은 그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정선은 이어폰을 받아 들며 가만히 차은성을 보았다.
차은성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출국장으로 이동하며 앞만 보십시오. 좌우는 절대 돌아보지 마시고…… 당당하게. 거칠 것이 없다는 태도로…… 당 간부 자녀들처럼 걸으세요.”
“…….”
“북한 사람들이 바로 옆에 있더라도, 그들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하세요. 그리고 가능하면 아무 말 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
“말을 해야 할 경우.”
“…….”
“제가 이어폰으로 지시를 할 겁니다. 이정선 씨는 제 지시대로 말하고 행동하시면 됩니다. 아시겠습니까?”
“네.”
이정선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어폰을 귀에 꼈다.
* * *
공항 터미널은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로 북적였다.
해외로 나가려는 이들.
해외에서 들어오는 이들.
환승하려는 이들.
공항에 볼일이 있는 이들 등등.
저마다의 일로 바쁜 다양한 이들이 공항 터미널 내를 바삐 오갔다.
출국장이 가까워지며 북한 사람들이 부쩍 눈에 많이 띄었다.
어이없게도.
그들은 보란 듯이 인민복을 입고 왼쪽 가슴 상단에 김일성, 김정일 배지를 달고 있다.
일부러 그런 것인지, 공항으로 빨리 이동하기 위해서인지, 이런저런 일로 시간이 없어서인지
알 수는 없지만. 수십여 명의 북한 대사관의 이들이 터미널 내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아주 활개를 치고 있었다.
“어머!”
“지금 뭐하는 거예요?”
“뭐예요?”
북한 대사관 이들은 손에 이정선의 사진을 들고.
터미널 내를 오가는 동양인 여성에게 서둘러 다가갔다.
그러곤 손에 쥔 사진과 여성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이정선인지 확인하려는 북한 대사관 이들의 행동에 동양인 여성들이 신경질 내고 짜증을 냈다.
좋아할 턱이 일절 없다.
시대에 뒤떨어져도 너무 많이 뒤떨어진 그들의 복장에 절로 웃음이 나지만.
대놓고 웃을 수 없다.
억지로 웃음을 참고 묵묵히 출국장으로 걸어갔다.
각 조 사이에는 불특정한 간격이 있었다.
보기에 티가 나지는 않지만, 관련 전문가가 유심히 보면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팀을 꾸린 지 얼마 되지 않는다. 아직 필드, 그러니깐 현장 경험이 일천하다.
한편.
3조 뒤.
3~4미터의 거리를 두고 차은성이 뒤따랐다.
차은성은 앞서 걸어가는 3조의 최라경, 이정선을 지켜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언제 돌연한 상황이 생길지 모른다!
그 때문에 차은성은 심중 긴장했다.
그런 한편으로.
어떤 돌발 상황에서도 즉각 대응할 수 있는 만반의 채비를 갖췄다.
꿀꺽.
차은성이 걸으며 긴장감에 작은 마른침을 삼켰다.
단 한시도 긴장과 경계를 늦출 수 없어 적잖은 피로감을 느끼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사이.
이정선은 차은성의 당부대로 당당하게 걷고 있었다.
그녀는 거침이 없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명품으로 도배하다시피 한 그녀의 모습에 지나가는 이들이 한 번씩은 돌아보았다.
어떻게 보면 인싸 내지는 셀럽 같은 이정선이었다.
손에 사진을 쥔 몇몇 북한 사람이 이정선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꿀꺽.’
이정선은 긴장감에 마른침을 삼키며 자신도 모르게 스쳐 지나가는 북한 사람을 힐금거렸다.
일순간.
공포가 밀려와 이정선의 심신을 한입에 꿀꺽 집어삼켰다.
의식적으로 태연한 척하지만, 공포라는 감정에는 어쩔 수가 없는 이정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