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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S의 천재 스파이 (109)화 (109/208)

NIS의 천재 스파이 (109)

낚시는 역시 미끼가 좋아야 해

그들은 선글라스를 쓴 이정선의 모습에.

그들이 찾는 이정선과 거리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힐긋 돌아볼 뿐.

얼굴을 자세히 보지 않으려 했다. 그저 무심히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하지만.

이정선은 북한 사람들이 곁을 지나가는 것에 무의식적으로 움칫거렸다.

눈에 잘 띄지 않는 미미한 반응이었지만, 주의를 주어야 할 것 같다.

차은성은 즉시 이어폰을 통해 이정선에게 북한 사람을 보지도, 반응하지도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태연하게 걸어요.

이정선은 고개를 숙이더니 차은성의 지시대로 고개를 들며 태연히 걷기 시작했다.

―곧입니다. 조금만 참고 걸어가면 됩니다.

차은성이 이어폰을 통해 재차 말했다.

*    *    *

수십여 초 후.

돌연.

우르르.

북한 사람들이 터미널 한쪽으로 황급히 몰려갔다.

차은성은 그들을 둘러보며 내심 실소했다.

‘후후후.’

미끼를 물었다.

―걸어가는 속도를 높여요.

차은성이 이어폰으로 팀원들과 이정선에게 지시했다.

다들 차은성의 말에 걸어가는 속도를 높였다.

*    *    *

돌연.

“찌우밍아! ……찌우밍아! ……찌우밍아!”

캐리어를 끌며 터미널 내를 지나가던 중국 여성이 몰려드는 인민복을 입은 북한 사람들의 모습에 걸음을 멈췄다.

그녀는 위험을 느꼈는지.

이내.

주변을 둘러보더니 중국어로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대번에 주변을 오가던 이들이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돌아보았다.

한편.

북한 사람들은 그녀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원을 그리며 둘러쌌다.

“이 반동 간나가!”

“입! 닥치라!”

“이 에미나이가!”

둘러선 북한 사람들 중 몇 명이 크게 화냈다.

이정선의 복장과 유사한 복장.

쌍둥이로 착각할 정도로 매우 닮은 외모.

북한 대사관의 이들 중 몇몇이 중국어로 계속 소리치는 여자에게 서둘러 다가갔다.

그들은 찾던 이정선이 맞는지 확인하려 하였다.

한데.

그런 북한 사람들의 접근에 중국 여성이 살려 달라고, 더 고래고래 소리쳤다.

“찌우밍아! ……찌우밍아! ……찌우밍아!”

매우 절박한 모습이었다.

걸음을 멈추고 지켜보던 이들이 중국 여인과 북한 대사관의 이들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들 중 몇은 폰을 꺼내 영상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그사이.

터미널 좌우에서 다수의 태국 공항 경찰이 다급하게 뛰어오고 있었다.

*    *    *

출국 심사관이 무심히 스탬프를 내리찍었다.

쾅!

이어.

뒤에 서 있는 이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다음 분.”

그러자 뒤에 서 있던 이가 심사관을 향해 천천히 다가섰다.

잠시 뒤.

안용국, 조영국, 신일권, 이창희가 무사히 출국 심사대를 통과했다.

남은 것은 이정선과 최라경, 차은성이었다.

차은성은 이정선, 최라경과 꽤 떨어진 뒤에 서 있었다.

―긴장하지 말고 편안하게!

이정선이 긴장한 것이 한눈에 보여 차은성이 이어폰을 통해 주의를 주었다.

혹여 출국 심사관이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차은성은 내심 초조했다.

입국은 까다롭지만, 자국을 떠나는 출국은 상대적으로 까다롭지 않다.

출국자를 거의 신경 쓰지 않는다.

그 점을 감안하고 있지만, 만에 하나를 모른다.

그런 이유로 차은성은 최라경과 이정선. 그리고 출국 심사관을 예의 주시했다.

이윽고.

이정선, 최라경의 순서가 되었다.

최라경이 이정선을 돌아봤다.

“이사님. 여권을.”

출국 심사관에게 들으라는 듯 최라경이 유창한 영어로 이정선에게 말했다.

이정선은 말없이 손에 들고 있던 자신의 여권을 최라경에게 내밀었다.

최라경은 공손히 여권을 받아 들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 모습이 보기에 무슨 수행 비서 같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도배하다시피 한 이정선.

얼핏 봐도 어딘가 모르게 도도한 것이, 평범한 여성은 아니다.

잠깐이란 짧은 시간이 지나고.

출국 심사관은 최라경이 내미는 두 여권을 받아 들었다.

그는 최라경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대충 최라경의 여권을 본 후 이정선의 여권을 보았다.

발급받은 지 얼마 안 되는 새 여권.

출국 심사관이 선글라스를 쓴 이정선을 힐긋거렸다.

“선글라스를 잠시 벗어 주시겠습니까?”

출국 심사관이 정중하게 말하자, 최라경이 이정선을 돌아봤다.

“이사님.”

그사이.

차은성이 이어폰을 통해 이정선에게 말했다.

―선글라스를 벗었다가 다시 쓰세요.

이정선은 차은성의 말을 충실히 따랐다.

선글라스를 잠시 벗자 그녀의 미모에 출국 심사관이 움찔하더니 당황하는 눈빛을 띠었다.

그는 이정선이 다시 선글라스를 쓰자 아쉬워하며 이정선의 여권에 주저 없이 스탬프를 내리찍었다.

쾅!

이어.

두 여권을 최라경에게 내밀며 소리쳤다.

“다음 분.”

여권을 받아 든 최라경과 이정선은 옆으로 돌아서더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완만한 걸음으로 탑승구로 향했다.

그 광경을 바라보며 차은성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휴우우.’

출국 심사관이 뭔가 이상한 느낌이라도 받지 않았을까?

내심 불안하고 초조했었다.

다행히.

아무 탈 없이 무사히 심사대를 통과했다.

*    *    *

태국 공항 경찰과 북한 대사관의 이들이 중국 여자를 사이에 두고 서로 옥신각신 중이었다.

그들의 주변에는 적잖은 사람들이 몰려서서 말없이 지켜보았다.

몇몇 이들은 폰으로 태국 공항 경찰들과 북한 대사관의 이들이 옥신각신하는 광경을 촬영했다.

다른 곳도 아니고 공항이다.

각종 보안 시스템이 즐비하다고 말해도 무방하다.

북한 대사관 사람들에 비해 태국 공항 경찰들 수가 적었다.

그 때문인지.

다수의 태국 공항 경찰이 터미널 내 여기저기에서 황급히 뛰어오고 있었다.

*    *    *

출국 심사대를 통과한 차은성과 팀원들. 그리고 안용국, 이정선은 탑승구로 이동했다.

그들은 탑승구에 이르자마자 곧바로 통로를 지나갔다.

그러곤 계류장에 있는 방콕발 인천행 아시아나 302편에 신속하게 탑승했다.

항공기 탑승, 출입문 우측.

항공사 유니폼을 입은 몇몇 여승무원이 나란히 서 있었다.

“어서 오십시요.”

“환영합니다.”

그들은 승객들을 반갑게 맞으며 티켓을 확인했다.

“E열은 저쪽입니다.”

“네에 C열은 이쪽입니다.”

안용국, 조영국, 이창희, 신일권, 최라경, 이정선 순으로 탑승했다.

모두 1등석 티켓을 소지하고 있어, 여승무원들이 티켓을 확인한 후 1등석으로 안내했다.

일종의 1등석 고객에 한한 서비스였다.

차은성 역시 여승무원의 안내를 받았다.

예약한 1등석 좌석에 이르러 착석하며 차은성이 안내한 여승무원을 돌아보았다.

“저어…….”

“네에. 승객님.”

여승무원이 밝게 웃으며 말했다.

“사무장님을 만나고 싶습니다만.”

“예?”

여승무원이 어리둥절해했다.

기내 승무원들의 상사. 사무장.

탑승하여 좌석에 앉자마자 사무장을 찾는 차은성.

여승무원은 영문을 몰라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차은성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코드 89!”

순간.

여승무원이 깜짝 놀랐다.

“…….”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들어 입을 가리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충격을 받은 듯한 모습이었다.

국적 항공사 승무원들이 따로 받는 모종의 교육이 있다.

“사무장님. 부탁드립니다.”

차은성이 재차 정중하게 말하자.

“예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여승무원이 말과 함께 급히 뒤돌아서더니 뛰듯이 걸어갔다.

한편.

주변 좌석에 앉아 있는 팀원들과 안용국, 이정선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차은성을 바라보았다.

*    *    *

잠시 뒤.

유니폼을 입은 건장한 중년인이 급히 차은성에게 걸어왔다.

이내.

이르러 서자마자 정중하게 인사했다.

“사무장 이요한이라고 합니다.”

차은성이 돌아봤다.

“수고 많으십니다.”

“코드 89를 말씀하셨다고 들었습니다만.”

사무장 이요한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네. 현 시간부터 코드 89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콜 넘버는 77249입니다.”

사무장 이요한이 주변을 힐금거리더니 차은성을 마주 보았다.

“네, 접수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기장님께 전해 드리겠습니다.”

“네.”

차은성이 짧게 대답하자 이요한 사무장이 왼쪽으로 돌아섰다.

그는 좌석들 사이의 통로를 매우 빠른 걸음으로 지나갔다.

차은성은 사무장 이요한을 잠깐 지켜보았다.

그러자 우측 좌석에 앉아 있는 이창희가 차은성을 돌아보았다.

“팀장.”

다른 사람이 혹 들을까 봐 한껏 목소리를 낮춘 이창희였다.

차은성이 돌아보자 이창희가 물었다.

“코드 89가 뭡니까? 그리고 콜 사인 77249는 또 뭐고요?”

이창희가 궁금한 모양이다.

“몰라도 돼!”

차은성은 단호하게 대꾸했다.

그러자 이창희가 무안해하며 슬그머니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차은성은 시선을 바로 하며 천천히 눈을 내리감았다.

북한을 탈출한, 난민으로 취급당하던 탈북민들은 초창기에 북경 주재 한국 대사관으로 모여들었다.

이후.

중국 정부의 양해하에 국적기에 탑승. 인천을 거쳐 한국으로 입국했다.

그때부터 기내에 탈북민이 탑승해 있을 경우, 코드 89 상황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는 유사시.

탑승한 탈북민을 적극 보호하기 위한 항공사 지침이었다.

군함은 일종의 영토로 간주된다.

항공기 역시 유사한 개념이 적용되긴 하지만, 다소 애매하다.

기내에 탈북민이 탑승한 것을 알고 중국 공안들이 기내에 들어와 탈북민을 체포.

기내 밖으로 끌어내고자 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승무원들이 이를 적극적으로 제지하고 탈북민을 무조건 보호하라는 내부 지침이 있다.

아예 처음부터 중국 공안의 기내 진입 자체를 강력히 거부하고, 강제로 공안이 기내로 들어오려고 할 경우.

승무원들이 몸으로 이를 막으며 기내에 있는 탈북민을 피신시킨다.

기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는 탈북민을 숨길 마땅한 장소가 없다.

하지만 기내에 난입한 중국 공안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곳이 있다.

항공 관련 국제법으로 보호받는 그곳은 다름 아닌 기장과 부기장이 있는 항공기 조종실이다.

조종실은 기장과 부기장이 탑승한 후 목적지에 도착하여 기장과 부기장이 항공기에서 내릴 때까지.

무조건 문을 잠그도록 의무화되어 있다.

그런 이유로 중국 공안이라고 해도 조종실에는 진입할 수 없다.

강제로 진일할 경우.

곧바로 국제 항공법 위반이 된다.

그와 같은 탈북민 보호 조치가 가능해지려면 승무원들이 기내에 탈북민이 탑승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이를 알리는 것이 바로 코드 89다.

그리고 콜 번호 77249는 만약의 경우 항공사에 협조를 요청하는, NIS와 항공사 간에 사전 약속되어 있는 일종의 암호라고 할 수 있다.

해외 공작을 하는 요원이 ‘나, NIS 요원이오.’라고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신분증을 지참하고 활동하지는 않는다.

그런 이유로 국적 항공사에 도움을 청할 때는 사전 약속되어 있는, 일정 주기로 바뀌는 콜 넘버를 말해야 한다.

*    *    *

잠시 뒤.

사무장 이요한이 돌아왔다.

“기장님께서 통화를 원하십니다.”

차은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내 부탁드립니다.”

“네, 이쪽으로.”

사무장 이요한이 왼쪽으로 돌아서며 손을 내밀었다.

차은성은 좌석에서 일어나 앞서 걸어가기 시작하는 사무장 이요한을 뒤따랐다.

그 모습을 팀원들과 안용국, 이정선이 바라보았다.

뭐지?

무슨 일이지?

다들 무언으로 그런 마음과 감정을 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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