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S의 천재 스파이 (105)
사랑은 국경을 넘어
쾅!
지도원 김양호가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치며 앉은 의자를 박차고 벌떡 일어났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기야아아아!”
사무실이 떠나가라 고함쳤다.
앞에 서 있는 지배인 송봉해.
고양이 앞의 쥐처럼 몸을 찔끔거리며 움츠렸다.
죽일 듯이 노려보는 김양호의 눈치를 보며 서둘러 변명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쇼핑몰에서 느닷없이 캄보디아 가수가 뮤빈지 뭔지를 찍는다고 사람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식당으로 돌아오는 길을 몰라 시간이 걸린다고 생각하고 기다렸는데. 그것이 아무리 기다려도…….”
순간.
“닥치라!”
김양호가 목청이 터져라 크게 고함쳤다.
‘이크!’
송봉해가 화들짝 놀라며 급히 머리를 푹 숙였다.
당장이라도 찢어 죽일 듯이.
김양호가 살기등등한 눈으로 송봉해를 노려보았다.
“동무래 지금 무슨 헛짓거리를 했는지 알간?”
“…….”
“만에 하나!”
“…….”
“이정선이란 동무래 남조선으로 도주하였다면, 동무래 수용소행이야. 알간!”
김양호의 말에 송봉해는 순간 얼어붙었다.
사색이 된 얼굴을 들어 김양호를 마주 보며 말을 더듬었다.
“지, 지도원 동무.”
“입! 닥치라!”
김양호가 버럭 고함치며 급히 상체를 숙이더니 책상 오른쪽으로 손을 뻗었다.
이내.
수화기를 들어 귀에 댔다. 그러곤 매우 빠르게 말했다.
“……당장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하고…… 전 대사관 직원들을 공항과 국경으로 보내라. 그리고 태국과 베트남에 있는 우리 대사관에게도 알려 협조를 구하라. 그 간나가 남조선으로 가면 우리 모두 끝장이야, 끝장!”
김양호는 침을 마구 튀겨 가며 매우 다급하게 소리쳤다.
수화기에 대고 고래고래 외치는 김양호를 바라보는 송봉해.
눈앞이 하얘졌다.
김양호의 말처럼, 만에 하나 이정선이 탈북 하여 한국으로 갔다면 그나 김양호는 책임을 면키 어렵다.
한마디로 말해 인생 끝이다.
그런 이유로 송봉해는 두려움에 몸을 떨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 * *
몇 시간 후.
캄보디아와 태국 국경.
인근은 산악 지대였다. 그 때문에 도로가 끊겼다.
끼익.
구형 도요타 승용차의 운전석과 조수석 문이 열리더니 안용국과 이정선이 내렸다.
이정선은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몰라 연방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안용국 역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내.
“약쏙, 약쏙, 약쏙.”
연거푸 소리쳤다.
한국어 약속과 중국어의 약속은 발음이 거의 비슷하다.
이정선은 안용국을 돌아봤다.
“오빠.”
안용국이 그녀를 돌아봤다.
“잠깐만. 여기서 만나기로 한 사람이 있어.”
그의 말에 이정선이 움칫하는 순간.
“기다리고 있었어요.”
안용국의 우측 수풀에서 최라경이 걸어 나왔다.
몸으로 수풀을 스치는 소리.
걸어 나오는 발자국 소리.
예의 두 소리에 안용국과 이정선이 돌아봤다.
최라경의 등장에 이정선이 화들짝 놀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정선은 진한 경계와 두려움이 뒤섞인 눈으로 최라경을 바라보았다.
그새.
안용국이 이정선을 돌아봤다.
“걱정하지 마. 우릴 도와주실 분이야.”
이정선이 안용국을 돌아보자.
끄덕끄덕.
안용국이 고개를 위아래로 움직였다.
“안심해도 돼.”
“알았어. 오빠.”
이정선이 대답하며 최라경을 돌아봤다.
최라경은 그사이 안용국에게 이르러 섰다. 두 남녀는 천천히 말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안용국은 최라경과 대화하며 간간이 이정선을 힐금거렸다.
현 상황이 안심이 되지 않는지.
이정선은 내심 매우 불안했다.
목숨을 건 탈북이다.
최악의 경우…… 죽는다!
죽음을 각오하고 탈북에 나선 이정선은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모든 것이 불안에서 불안으로 이어지는 연속이었다.
* * *
캄보디아와 태국의 국경 지대에 있는 검문소.
한 대의 트레일러가 검문소를 지나 태국 국경 내로 들어섰다.
부우우웅.
도로를 타고 주행하며 서서히 속도를 높이는 트레일러의 운전석에는 신일권이 앉아 있었다.
양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왼쪽 미러를 힐긋거렸다.
운전석 바깥에 있는 큼직한 미러.
소총을 어깨에 짊어진 몇몇 캄보디아 군인이 미러에 비쳤다.
피식.
신일권이 웃으며 정면을 바라보았다.
탁 트인 시야.
아무 일 없이, 무사히 캄보디아와 태국의 국경을 넘었다.
이젠 조금 마음을 놓아도 된다. 그런 이유로 신일권은 입가에 조금은 들뜬 미소를 지었다.
씨익.
* * *
트레일러 내부 정중앙에 있는 테이블.
차은성이 서서 양손을 벌려 테이블을 짚으며 상체를 숙였다.
눈에 들어오는 위성 맵.
깜빡깜빡.
맵에서 작은 점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끝없이 반복하고 있었다.
안용국과 이정선을 데리고 국경 산악 지대를 넘는 최라경.
그녀의 현 위치를 나타내는 점이다.
특전사 출신으로 독도법을 기본적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산악 행군 경험도 풍부하다.
그 때문에 최라경에게 GPS를 비롯한 몇몇 장비를 주었다.
그리고 안용국과 이정선을 데리고 캄보디아와 태국 국경을 넘으라고 지시했다.
차은성이 위성 맵을 내려다보며 눈으로 최라경의 예상 이동 경로를 더듬었다.
그사이.
“팀장!”
테이블 너머 2미터 남짓 떨어진 전면 좌측. 앉아 있던 이창희가 뒤돌아보았다.
차은성이 바라보자.
“북한 대사관에서 프놈펜 경찰국에 이정선 씨가 실종되었다고…… 긴급 수색을 의뢰했습니다.”
“최대한 지연시켜.”
“네?”
이창희가 영문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반문했다.
“프놈펜 경찰국에서 공항, 항구, 국경 등지의 각 경찰에게 통신으로 명령문을 보낼 거잖아.”
“설마 재밍을…….”
이창희의 반문에 차은성이 즉각 말했다.
“안 돼!”
팀이 개입한 흔적은 가능한 남기지 말아야 한다.
개입은 어쩔 수 없는, 피치 못할 경우에만…….
이창희가 차은성에게 물었다.
“그럼, 어떻게?”
“프놈펜 전화국에 세팅해 둔 도·감청 장치!”
“아…….”
이창희가 그제야 알겠다는 듯 나직한 탄성을 흘렸다.
“폭파시켜. 그럼 전화국의 통신회선이 마비될 거야.”
“하지만 그럴 경우 프놈펜 경찰국에서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팀장.”
“걱정할 것 없어. 내가 따로 손을 써 둘 테니깐.”
차은성은 말하며 장춰린을 생각했다.
그에게 미화 10만 불을 그냥 건넨 것이 아니다.
“알겠습니다. 팀장.”
이창희가 대답하자.
“그리고 프놈펜에 남아 있는 조 선배에게…….”
차은성이 빠르게 지시했다.
“네, 팀장.”
이창희가 대답하며 앉은 자세와 시선을 바로 하더니 서둘러 조영국을 호출했다.
“여기는 둥지, 둥지! ……참새 원. 나와라, 참새 원…….”
이내.
조영국과 통신이 연결되었다.
“참새 원. 참새 원. 듣고 있다. 말하라.”
그러자 이창희가 빠르게 차은성의 지시를 전달했다.
“끄응.”
조영국이 앓는 소리를 내더니.
“OK.”
냅다 대답한 후 통신을 끊었다.
* * *
어둑어둑한 산길을 지나가는 세 남녀.
최라경, 안용국. 이정선.
세 남녀는 그런 순서로 산길을 걸어갔다.
“헉, 헉.”
“하악, 하악.”
안용국과 이정선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평소 산을 타지 않는 안용국과 이정선이다. 그 때문에 야간 산행이 무척 힘겨웠다.
숨이 턱까지 차고 당장이라도 바닥에 풀썩 주저앉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꼈다.
안용국과 이정선의 가쁜 숨소리를 들은 최라경이 일순 걸음을 멈췄다.
이어.
왼손 손목시계를 보았다. 그러곤 상의에서 태블릿을 꺼냈다.
최라경은 위성 지도 앱을 켜, 현 위치와 시간을 확인했다.
수 초 후.
최라경이 태블릿을 상의에 집어넣고 뒤돌아보았다.
“잠깐 쉬도록 하죠.”
그녀의 말에 안용국과 이정선이 크게 반색했다.
* * *
잠시 뒤.
이정선이 다소 높은 둔덕 같은 바닥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발치.
최라경이 한쪽 무릎을 바닥에 댔다.
그녀는 익숙한 손동작으로 이정선의 양말을 벗겼다.
발 상태를 확인하려 하였다.
한편.
이정선은 최라경의 행동에 매우 곤혹스러워했다.
“괘, 괜찮아요.”
이정선의 말에 최라경이 올려다보았다.
“전혀 괜찮지 않아요.”
최라경이 말하며 이정선의 발을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등에 짊어졌던 가방에서 서둘러 압박붕대를 꺼냈다.
최라경은 세심하게 압박붕대로 이정선의 발을 감싸기 시작했다.
“힘든 거 알아요. 하지만 참고 이겨 내세요. 앞으로 서너 시간만 더 걸어가면 태국이에요. 그럼 당신은 자유의 몸이에요.”
최라경의 말에 이정선이 몸을 흠칫하더니 안용국을 돌아봤다.
안용국은 심호흡하며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는 이정선이 돌아보는 기척에 그녀를 마주 보았다.
빙긋.
활짝 웃었다.
“걱정하지 마. 우린 아무 일 없을 거야.”
“오빠…….”
이정선이 안용국을 부르자, 안용국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라경은 두 연인의 대화를 못 들은 척하며 이정선의 발을 감싼 압박붕대를 단단히 결박했다.
그런 다음.
가방에서 물을 꺼내 이정선에게 건넸다.
“바로 마시지 말고 입안을 충분히 몇 번 헹군 다음 마셔요.”
“예에.”
이정선이 대답하며 물을 받아 들었다.
“다 마시지 말고 1/4 정도만 마셔요.”
“네.”
최라경의 말에 이정선이 대답하며 물을 마시는 사이.
최라경은 가방에서 새 양말을 꺼내 이정선의 발에 신겼다.
사전에 철저히 준비한 듯.
최라경의 손길은 거침이 없었다.
이윽고.
최라경이 일어나며 안용국을 돌아봤다.
“군에서 천리 행군 해 봤죠?”
최라경의 물음에 안용국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래 봬도 제5보병 사단 특공 연대 출신입니다.”
안용국의 대답에 최라경이 말없이 웃었다.
빙그레.
전방에 배치된 최정예 사단들 중, 피의 능선 전투로 유명한 제5사단 특공 연대 출신이라면 돌봐 주지 않아도 된다.
충분히 자신의 앞가림 정도는 할 수 있다.
“군 경험이 이렇게 유용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안용국이 말하며 슬쩍 미소 지었다.
최라경은 말없이 물을 마시는 이정선을 돌아봤다.
그녀가 잘 따라올 수 있을지…….
* * *
북한 식당은 잠정 폐쇄 되었다.
영업을 이제 하지 않는다는 안내문을 입구에 써 붙였다.
접객원들은 세 무리로 나뉘어 각기 세 개의 방에 사실상 구금되었다.
북한 대사관에서 나온 이들이 그녀들을 감시했다.
웅성웅성.
접객원으로 일했던 여종업원들이 서로 돌아보며 소곤거렸다.
“남조선으로 도망친 거겠지?”
“정선이 그 간나. 어떻게 지금까지 감쪽같이 우리를…….”
“우린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어쩌다가 이런 일에 우리가…….”
그녀들은 한결같이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불안한 눈빛을 띠었다.
다들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탈북이 의심되는 이정선의 실종으로 행여 자신들에게 모진 불이익이 돌아오지는 않을까?
다들 마음속으로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녀들 중 한 사람. 박정희.
그녀는 방구석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양손으로 두 다리를 감싸 안고 하염없이 방바닥을 보았다.
박정희는 이정선을 생각했다.
‘너래…….’
뒤통수를 맞아도 이렇게 세게 맞다니.
설마 이정선이 탈북을 할 줄이야. 꿈에서도 상상해 보지 못한 현실에 큰 충격을 받은 박정희는 반쯤 넋을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