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NIS의 천재 스파이 (104)화 (104/208)

NIS의 천재 스파이 (104)

수화기 너머에서 지도원 김양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니끼니, 일단 두어 달 정도 피양에 들어갔다가…….”

“지도원 동무. 이리 갑자기 그리 말씀하시면 전 어캅니까? 말미를 주시고 말씀을 주셔야 저도…….”

송봉해의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김양호가 자신의 말만 하고는 전화를 끊어 버렸다.

일방적인 통보!

“지도원 동무, 지도원 동무!”

송봉해가 거듭 소리쳐 불렀지만 김양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송봉해가 귀에서 수화기를 떼더니 어이없다는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이런 샹! 염병할 놈의 새끼가!”

거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손해가 예상된다. 상납도 해야 하는데.

김양호가 전화 한 통화로, 일방적인 통보를 통해 자신의 숨통을 단숨에 조여 버렸다.

그 때문에 송봉해는 우거지상을 하며 돌연 고성을 내질렀다.

“으아아아아! ……이 씨바아아알 노오옴아아아!”

일순간.

고성이 사무실 안을 떠돌다가 이내 사라졌다.

*    *    *

얼마 후.

식당 접객원인 여성들에게 지배인 송봉해의 통지가 전해졌다.

다들 크게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몇몇 접객원이 황당함을 못 이기고 강력히 항의했다.

“이러는 법이 어디 있습네까? 지배인 동무.”

“갑작스럽게 이럼 어카자는 겁네까?”

“느닷없이 평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라니요.”

송봉해가 그들의 항의를 간단히 밟아 버렸다.

“난들 어카간?”

“…….”

“지도원 동무래 느닷없이 전화해서, 사상 검증 때문에 다들 평양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하는데. 당의 방침이라는데 나더러 뭘 어쩌라는 기야?”

송봉해가 언성을 높였다.

억울하다!

이번 조치로 자신이 얼마나 피해를 보는데.

송봉해가 접객원들에게 심하게 짜증 냈다.

“다들 그런 줄 알라. 그리고 이틀 후에 시간을 줄 테니깐 다들 평양에 들어가기 전에 필요한 것들을 사라.”

송봉해는 그렇게 말한 후 휑하니 사라져 버렸다.

남겨진 접객원들은 서로 돌아보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당의 방침이라면.

그녀들이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무조건 따를 수밖에.

“그나저나 평양으로 돌아가면 다시 나올 수 있간?”

“또 상납해야 하잖네.”

“아, 정말 미치갔구나.”

“평양에 들어가기 전에 뭘 사야 하지?”

“뭘 고민하네. 화장품하고 약들을 우선 사야지.”

“맞아. 길고 붕대랑, 1회용 주사기도 돈이 되니깐 사야 해.”

다들 평양으로 돌아가는 것을 화제로 서로 말을 주고받았다.

그런 한편으로.

평양으로 가지고 가서 장마당에 내다팔 만한 것들이 뭐가 있는지 서로 정보를 주고받았다.

화장품은 장마당에서 가장 인기 있는 상품 중 하나다.

그리고 북한에는 병원에 약이 없다. 그 때문에 장마당에서 약품은 부르는 것이 값이다.

접객원들 대다수는 소지하기 쉽고 장마당에 내다팔았을 때 돈이 되는 것들을 사서 평양으로 가지고 들어가려 했다.

다시 해외 북한 식당에 접객원으로 선발, 나오려면 관련 당 간부들에게 뇌물을 먹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와 같은 이유로 접객원들 모두 부산스러웠다.

그녀들 중 한 사람, 이정선은 큰 충격을 받았다.

겉으로는 아무 일 없는 듯 태연했지만, 내심 어쩔 줄을 몰랐다.

혹시 들킨 것이 아닐까?

두려움에 이정선은 멍하니 서서 그저 앞만 바라보았다.

그새.

옆에 서 있던 박정희가 이정선을 돌아봤다.

“뭐 하네.”

“…….”

이정선이 못 들은 듯 아무 말이 없자 박정희가 손을 들어 이정선의 왼쪽 어깨를 슬쩍 건드렸다.

“정선아.”

“아, 으응.”

이정선이 당황하며 박정희를 돌아봤다.

“뭔 정신 줄을 그렇게 놓고 있네?”

“어, 언니. 그게…….”

이정선이 말을 더듬으며 뭐라 말하려는데.

“니 맘 다 알아야. 하지만 어떻게 하간. 당의 방침이라는데. 평양으로 들어갈 수밖에.”

“언니. 우리 다시 함께 나올 수 있을까?”

이정선의 물음에.

“그건…….”

박정희는 말을 흐렸다.

함께 나올 수 있을지 없을지. 지금으로서는 알 길이 없다.

운이 좋고, 관련 당 간부들에게 충분히 먹인다면 다시 해외 북한 식당으로 나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럴 경우 캄보디아가 아닌 중국이나 러시아 등 다른 나라의 북한 식당으로 갈 확률이 높다.

그도 아니면.

해외로 나올 수 없어 북한 내에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박정희가 이정선을 바라보며 말했다.

“혹시 모르니끼니, 평양 들어갈 때 화장품이랑 약품이랑 담배랑 넉넉히 사 가지고 들어가라.”

당 간부들에게 뇌물을 먹일 것을 염두에 둔 박정희였다.

못 알아들을 이정선이 아니다.

“그래야겠지.”

“그래야지.”

박정희가 대꾸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정선은 내심 안용국을 생각했다.

이제 평양으로 들어가면 두 번 다시 안용국을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안 돼!’

탈북을 계획한 것을 들키는 것보다 안용국을 두 번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이 더 두려운 그녀다.

불안감에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쿵쾅 뛰었다.

온몸이 쫄깃쫄깃해지는 것 같은 강렬한 긴장감과 초조에 이정선은 온몸의 피가 마르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가만히 입을 다물고 부서져라 힘껏 어금니를 악물었다.

빠득.

침착해지라고 마음속으로 스스로에게 말하며 정신을 바짝 차리려고 발버둥을 쳤다.

혹시 주변 사람들에게 이상한 느낌을 주거나 티가 날까 봐, 주의에 주의를 거듭했다.

*    *    *

시간이 흘러 영업을 시작한 북한 식당 안으로 손님들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대다수 손님은 단골 고객이었다.

하나둘 식당 안에 있는 테이블이 손님들로 채워지고 접객원으로 일하는 여성들이 바삐 테이블과 주방을 오갔다.

몇 시간 후.

이정선은 테이블에 주문한 요리를 내려놓고 주방으로 돌아서며 식당 입구를 힐금거렸다.

안용국.

2, 3일에 한 번씩 두서너 명의 지인과 함께 식당을 찾는다.

이정선은 안용국이 식당에 올 때가 되었다고 생각. 이제나저제나 안용국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에게 빨리 자신을 포함한 북한 식당의 접객원들이 모두 평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것을 알려야 했다.

안용국과 함께하기로 하며 탈북을 결심하였기에.

이대로 평양으로 돌아가면 이제 두 번 다시 안용국을 볼 수 없기에.

이정선은 애가 바짝바짝 탔다.

그런 이정선을 지나가던 박정희가 보곤 슬쩍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러곤 옆을 지나치며 주의를 주었다.

“뭐하네? 누굴 기다리네?”

박정희의 말에 이정선이 화들짝 놀라며 급히 돌아봤다.

“아, 아니. 그게…….”

“기집애. 그 팁 잘 주는 남조선 동무가 그립네?”

박정희가 장난쳤다.

그러자 이정선이 서둘러 말했다.

“언니. 그게 아니라…….”

“니 마음 알아. 하지만 접으라.”

박정희는 매몰찬 어투로 말했다.

“그 동무는 남조선 사람이야. 넌 북조선 사람이고.”

“알아. 이제 평양으로 돌아가면 다시 만날 일이 없을 테니깐 마지막 인사라도 하고 싶은데…….”

이정선이 말끝을 흐리자 박정희가 실소했다.

“와? 길카뭔. 팁이라도 왕창 줄 것 같아서 그러네?”

“언니!”

“됐어야. 조심해. 다른 애들이나 지배인 동무가 보면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으니끼니.”

“조심할게.”

“싸게 일하라.”

“응.”

이정선이 박정희에게 대답하며 주방으로 걸어갔다.

박정희가 그런 이정선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세상 물정 모르는 숙맥 같으니.”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안타까운 눈빛을 띠었다.

이정선이 자주 오는 안용국에게 마음을 주고 있음을 이미 알아챘다.

하지만 서로 죽자 살자 할 정도로 엄청 사랑하고 있다는 것은 까맣게 몰랐다.

박정희는 이정선을 생각하는 마음에, 남조선 사람인 안용국에 대한 마음을 일찍 접도록 넌지시 주의를 주었다.

서로 언니 동생 하는 사이라 이정선이 다치지 않기를 바랐다.

남조선 남자에게 관심이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생활총화에서 자아비판감이다. 그리고 평양으로 돌아가서 큰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

박정희는 이정선이 잘못되는 것을 원하지 않기에 짐짓 모른 척해 왔을 뿐이다.

*    *    *

한참 후.

안용국이 두어 명의 지인과 함께 북한 식당에 나타났다.

세 사람이 앉은 테이블 서빙을 맡은 것은 박정희와 이정선이었다.

이정선은 박정희의 눈치를 보며 남몰래 안용국에게 쪽지를 건넸다.

워낙 조심하고 재빠르게 건넨 탓에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다.

*    *    *

몇 시간 후.

차은성은 창가에 서서 안용국과 통화했다.

“알겠습니다.”

“서둘러 주십시오. 이틀입니다. 이틀!”

“걱정하지 마십시오. 안용국 씨. 이쪽은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요.”

“꼭 좀 부탁드립니다.”

폰 너머에서 간곡한 안용국의 음성이 들렸다.

“네에.”

차은성이 대답하며 안용국과의 통화를 끝냈다.

귀에서 폰을 떼어 바지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중얼거렸다.

“이틀이라…….”

이미 도·감청을 통해 북한 식당 접객원들 모두 평양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고 있다.

차은성은 눈을 반짝이며 재차 중얼거렸다.

“디데이는…….”

뒤로 미룰 수 없다.

이틀 후를 작전 당일로 잡을 수밖에.

“서둘러야겠군.”

준비해야 할 게, 사전에 세팅해 두어야 할 게 많다.

이정선이 없어지면 틀림없이 북한 대사관의 이들이 그녀의 뒤를 쫓을 것이다.

프놈펜 경찰 당국도 염두에 둬야 한다. 우군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차은성은 창밖을 바라보며 눈을 반짝였다.

잠깐.

머릿속을 정리한 후 천천히 뒤돌아섰다.

*    *    *

이틀 후 쇼핑몰.

오전이라 그런지 한산했다.

북한 식당의 접객원들은 삼삼오오 헤어졌다. 그리고 쇼핑몰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쇼핑하기 바빴다.

그사이.

슬금슬금.

쇼핑몰 내로 하나둘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며 쇼핑몰로 들어오는 사람들 수가 차츰 늘어났다. 그 때문에 쇼핑몰이 빠르게 혼잡해지기 시작했다.

박정희는 화장품을 거의 쓸어 담고 있었다.

양손에 백을 서너 개씩 들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쇼핑 욕구는 식을 줄을 몰랐다.

평양으로 돌아가 장마당에 내다팔 것을 감안한 박정희는 부피가 작고 제법 값이 나가는 것들을 주로 구매했다.

립스틱, 파운데이션, 립밤 등등.

*    *    *

텁석.

이정선은 왼팔을 잡는 누군가의 손길에 깜짝 놀랐다.

“헉!”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왼쪽을 돌아봤다.

“쉿!”

안용국이었다.

이정선은 대경한 표정을 지으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크게 놀랐음을 그렇게 나타내더니.

홰액.

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히 북한 접객원들이나 다른 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당혹스럽게도 젊은 캄보디아 여성이 많이 보였다.

마치 벽처럼.

서 있는 이정선 주변을 바삐 오가고, 점포에서 진열한 상품을 보는 등.

은연중에 자신들의 몸으로 북한 사람들의 시야를 가로막았다.

이정선이 급히 안용국을 돌아봤다.

“오빠!”

“쉿! 목소리 낮춰!”

안용국이 주의를 주며 돌아섰다. 그러며 이정선의 왼팔을 잡아당겼다.

“지금 뭐하는 겁네까?”

이정선은 영문을 몰라 물었다.

그러자 안용복이 잡은 이정선의 팔을 잡아당기며 대답했다.

“서울로 가자, 정선아.”

“예?”

이정선이 깜짝 놀랐다.

그러곤 이내 그녀는 안용국이 잡아당기는 대로 끌려갔다.

*    *    *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차은성, 최라경, 신일권, 조영국이 안용국과 이정선을 힐긋거렸다.

그런 한편으로.

주변에서 서성이는 북한 쪽 사람들을 주시하며 동태를 감시했다.

다들 만약의 경우를 염두에 두었다.

그 때문에 상당히 긴장했다. 하지만 그 긴장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태연히.

쇼핑하는 척하며 주변 돌아가는 상황을 면밀히 관찰했다. 시야에 북한 사람들을 항시 두며 은연중에 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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