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S의 천재 스파이 (103)
The Butterfly Effect
“회사의 구성원으로서 지시에 순응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신일권의 말에.
이창희, 최라경, 조영국이 신일권을 돌아봤다.
차은성은 신일권을 물끄러미 마주 보았다. 그러곤 이내 천천히 웃기 시작했다.
“신일권.”
“네.”
“너 때문에 사람이 죽은 적이 몇 번이나 있나?”
“네?”
차은성의 물음에 신일권이 어리둥절해했다. 자신 때문에 죽은 사람이라니.
신일권은 차은성의 물음이 무슨 말인지 몰라 의아한 눈으로 차은성을 바라보았다.
그사이.
차은성은 고개를 돌려 팀원들을 둘러보았다.
“난.”
“…….”
“많다.”
차은성의 말에 팀원들이 너나없이 흠칫거렸다.
“이전 팀의 멤버들 역시 나 때문에 죽었다.”
차은성은 착잡한 마음을 담은 눈빛을 띠었다.
“지긋지긋하다!”
그러곤 고개를 쳐들며 외치듯이 힘주어 말했다.
“나 때문에 더는 누구도 죽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
차은성이 팀원들을 한 명씩 마주 보며 소리쳤다.
“이정선!”
그녀를 언급하자 팀원들의 눈가가 일순 가늘게 떨렸다.
“그녀의 죄라면.”
“…….”
“지구상 최악의 나라, 북한에서 태어난 것밖에 없어!”
“…….”
“그리고 한 남자를 만나 사랑한 것밖에.”
“…….”
“그런데 그 대가로 자신의 목숨을 내놔야 해!”
차은성은 은근 결기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Love Is Over The Nation!”
사랑은 국경을 넘어!
여자인 최라경이 다른 팀원들보다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눈치다.
심중의 동요가 의외로 큰 것 같다.
지그시 아랫입술을 깨무는 것이 은근 마음속으로 각오를 다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사이.
차은성이 계속 말했다.
“너희들에게 강요하진 않겠다.”
“…….”
“작전에서 빠지고 싶은 사람은 빠져도 좋다!”
차은성이 신일권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신일권이 움칫하더니 눈치가 보이는지 급히 팀원들을 돌아보았다.
차은성은 그런 신일권을 보며 무시하듯이 팀원들을 한 명씩 마주 보았다.
“빠지고 싶은 사람?”
물음에 답하는 팀원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다들 서로 돌아보더니 이내 차은성을 쳐다보았다. 그러곤 고개를 위아래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끄덕끄덕.
다들 작전 강행에 동의했다.
“좋아!”
차은성이 웃으며 신일권을 다시 바라보았다.
신일권은 은근 고개를 옆으로 돌려 차은성의 시선을 피했다.
회사의 지시에 순응하자고 말했다. 그 마음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그를 제외한 팀원들이 차은성과 같은 생각임을 밝혔다.
그런 이유로 신일권은 자신의 뜻을 굽힐 수밖에 없었다.
차은성은 말없이 입가에 흐릿한 미소를 짓더니 이창희를 바라보았다.
“이창희.”
“네. 팀장.”
“북한 대사관.”
차은성의 말에 순간 이창희가 움찔하며 긴장의 눈빛을 띠었다.
여기서 갑자기 북한 대사관이 왜 튀어나오는지.
이창희는 영문을 몰랐다.
한편.
이창희를 제외한 팀원들이 차은성의 말에 깜짝 놀랐다.
다들 이창희처럼 영문 몰라 하며 차은성을 바라보았다.
뭔가 느낌이…….
좀.
아니나 다를까?
“북한 대사관을 도·감청하고 싶은데.”
“티, 팀장?”
이창희가 더듬거리며 매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이창희를 제외한 팀원들 역시 당황했다.
예상을 넘어선 차은성의 발언이다. 북한 대사관을 도·감청하고 싶다니.
팀원들 모두 내심 어이가 없었다.
북한 대사관 내는 사실상 북한 영토로 간주된다.
즉.
대사관 안에서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 누구도 도와줄 수 없다.
아닌 말로.
북한 대사관 내에서 북한 사람들에게 잡힌다면 꼼짝없이 평양으로 끌려가게 된다.
그 과정에서의 고문이나 평양 도착 후의 고문이나. 이런저런 고초가 엄청날 것은 물으나 마나다.
그사이.
차은성이 재차 이창희에게 물었다.
“가능해? 불가능해?”
“팀장. 그게, 가능하긴 하지만. 그러자면 북한 대사관 내로 잠입해서 관련 장치들을 몇 군데에 세팅해야 합니다.”
“알아. 하지만 그런 방법 말고 도·감청하는 방법은 없어?”
차은성의 물음에 이창희가 마른침을 꿀꺽 삼키더니 말했다.
“진동을 통해 도·감청하는 장비가 있긴 하지만, 지금 제 수중에 없어서…….”
“그럼 불가능하다는 거군.”
“네.”
이창희가 어쩔 수 없다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음.”
차은성이 흐릿한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곤 무엇인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조영국이 그런 차은성을 방해했다.
“팀장.”
차은성이 생각을 중지하고 조영국을 바라보았다.
“북한 대사관은 왜…… 우리가 드러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나 우리가 개입한 정황을 남겨서는 안 된다고…….”
조영국의 말에 차은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압니다, 선배. 하지만 필요합니다.”
차은성이 높지도 낮지도 않은 목소리로 간략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리가에서의 일에 북한이 깊이 개입되어 있다면.”
차은성의 설명에 조영국이 일순 움칫했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해도 북한 대사관이 관련된 모종의 반응이나 동태의 변화가 있을 겁니다.”
차은성은 확신의 눈빛을 띠었다.
틀림없이.
주 캄보디아 북한 대사관이 눈에 띄는 변화를 보일 것이다.
조영국은 침묵했다.
“…….”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여 생각했다.
‘나비효과?’
차은성이 그것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닐까?
조영국이 생각하는 사이.
차은성은 말없이 빙긋 웃으며 다시 이창희를 바라보았다.
“이창희.”
“네, 팀장.”
“프놈펜 전화국을 통해 북한 대사관의 통화를 도·감청할 수 있어? 없어?”
“그건 가능합니다. 문제는 프놈펜 전화국에 잠입하여 도·감청 장치들을 세팅하는 겁니다만.”
이창희의 대답에 차은성이 신일권을 힐긋거렸다.
신일권이 차은성의 시선에 움찔하더니 무언으로 도움을 청하듯 좌우에 서 있는 최라경과 조영국을 번갈아 보았다.
그러곤 차은성을 마주 보더니 오른손 검지를 들어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
저요?
차은성이 살며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
그러자 신일권이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차은성이 말했다.
“프놈펜 전화국에 잠입해서 도·감청 장치 세팅해.”
“아, 예에.”
신일권이 마지못해 대답했다.
하기 싫은데, 어쩔 수 없이 한다!
은근 그런 속내를 내보였다.
차은성은 다시 이창희를 보았다.
“이창희.”
“네, 팀장.”
이창희가 대답하는 사이.
“끄응.”
신일권이 앓는 소리를 내며 마뜩잖다는 표정을 지었다.
차은성이 알아채고 툭 던지듯 말했다.
“그럼, 북한 대사관 잠입할래?”
“아, 아닙니다!”
신일권이 화들짝 놀라며 급히 대답했다.
북한 대사관 잠입보다는 프놈펜 전화국 잠입이 백배 천배 낫고 안전하다.
북한 대사관에 잠입했다 들키거나 잡히는 날에는, 한마디로 말해 그것으로 끝장이다.
차라라 혀를 깨물고 죽는 것이 낫지.
신일권은 내심 그렇게 중얼거리며 차은성의 시선을 피했다.
한편.
차은성이 최라경을 바라보았다.
“최라경.”
“네.”
“북한 식당 내부로 잠입해서 도·감청 장치 세팅해.”
“네?”
최라경이 당황한 목소리로 반문했다.
차은성은 그녀의 당황을 무시하듯이 이어 말했다.
“나중에 다시 북한 식당에 잠입해서 필히 도·감청 관련 장치들을 모두 수거해 와야 해. 물론 일절 흔적을 남겨서는 안 되고.”
“티, 팀장. 위험부담이 너무 커요.”
최라경이 더듬거리며 황급히 대답했다.
작전이 끝난 후, 북한 식당에 잠입해서 도·감청 관련 장치들을 흔적 없이 깔끔하게 수거하라니.
그녀더러 죽으라는 말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지시였다.
한데.
“저어…….”
이창희가 돌아가는 분위기를 살피며 입을 뗐다.
그러자 팀원들의 이목이 이창희에게 쏠렸다. 다들 이창희를 바라보았다.
“차후 수거할 필요 없이. 그냥 외부에서 무선 리모컨 조작으로 폭파시키는…….”
이창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차은성이 물으며 날카로운 눈으로 이창희를 마주 보았다.
“그럼, 흔적은?”
이창희가 몸을 움찔하더니 급히 대답했다.
“그럼 폭약 대신 산성 용액 캡슐을 장치에 세팅해서…… 깔끔하게 녹여 버리는 방법도 있습니다만.”
이창희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거 좋은 방법이네.”
최라경이 급히 말하며 이창희의 말에 찬성임을 나타냈다.
은근 반색한 그녀다.
북한 식당 내에 도·감청 장치들을 세팅하는 것은 어렵지도, 문제가 되지도 않는다.
문제가 되는 것은 작전 종결 후다.
북한 식당에 잠입. 세팅해 둔 장치들을 모두 수거하고 일련의 흔적을 깨끗하게 지운다?
들키면 골로 가는 것은 물론이다.
위험도는 북한 대사관에 잠입하는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최라경과 신일권은 은연중에 곱지 않은 눈으로 차은성을 바라보았다.
무리한 것을 지시한다.
아닌 말로, 자신들의 목숨을 내놓으라고 말하는 격이다.
위험에 노출되어 죽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자신들이다.
지시한 차은성은 전혀 위험하지도 않고 죽을 일도 없다.
한편.
차은성이 이창희에게 확답을 받으려는 듯이 물었다.
“산성 용액 캡슐. 확실하겠지?”
“네.”
이창희가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드러날 수 있는 그 어떤 흔적도 남겨서는 안 돼!”
차은성이 힘주어 말하자.
“감쪽같을 겁니다.”
이창희가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목, 걸 수 있어?”
차은성이 묻자 이창희가 최라경을 힐금거렸다.
최라경은 눈짓으로 차은성을 가리키며 빨리 대답하라고 이창희를 재촉했다.
“네, 네에.”
이창희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차은성에게 대답했다.
“좋아.”
차은성이 조영국을 돌아봤다.
“선배.”
조영국이 차은성을 바라보았다.
“몇 가지 해 주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차은성의 말에 조영국이 의문의 눈빛을 띠었다.
“무슨…….”
차은성은 조영국을 마주 보며 살며시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씨익.
라트비아의 리가에서 일어난 일은 분명 예상하지 못한 변수다.
자신이나 조영국의 생각처럼 북한이 관련되어 있다면 틀림없이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불가피하다.
북한 대사관과 북한 식당에서 뭔가 모종의 돌발적인 그 무엇이 있을 것이다.
차은성은 내심 확신했다.
라트비아 리가에서의 일에 북한에 개입되어 있다면.
남측의 보복이나 그에 준한 사태의 발발을 북한이 틀림없이 우려할 것이다.
그 때문에 각국 대사관에 이에 대한 경고를 하며 모종의 조치를 취하려 할 것이다.
캄보디아처럼 남북과 동시 수교한 나라는 해당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확률적으로 매우 높다.
‘북한에 바보만 있는 것이 아니라면 어떤 식으로든 반응이 있을 거야.’
차은성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곤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런 차은성을.
이창희, 최라경, 신일권, 조영국이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다들 알게 모르게 긴장이란 감정을 내색했다.
향후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
* * *
며칠 후.
“예에?”
귀에 수화기를 댄 채, 북한 식당 지배인 송봉해가 앉은 의자를 박차고 벌떡 일어났다.
매우 놀란 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