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S의 천재 스파이 (88)
이틀 후, 문정동 22시.
차은성은 차내 운전석에 앉아 좌측 대각에 있는 2층집을 바라보았다.
철거 예정지라 주변은 꽤 휑했다.
“나올 때가 됐는데.”
차은성이 중얼거리며 차내 디지털시계를 보았다.
대상자 정유재.
낮에 자고 밤에 움직이는 야행성 인간이다.
살인 및 폭력 전과 3범으로 현재 무직이다.
지하 주차장에서 이관희 변호사를 위협했던 자가 바로 정유재였다.
차은성은 실내 미러를 힐금거렸다. 자신의 얼굴이 드러나면 곤란하다. 하여 변장했다.
“잘되긴 했어. 후후.”
얼굴을 기웃기웃 거리며 살피며 만족스러운 눈빛을 띠었다.
* * *
얼마 후.
집을 나온 정유재가 천천히 길을 지나가고 있었다.
철거 예정지라 보안등 같은 것이 없어 주변이 무척 어두웠다. 오가는 이도 없었다.
겁이 날 법도 한 길인데 정유재는 거리낌 없이 길을 따라 걸었다.
잠깐이란 시간이 지나고.
정유재가 막 우로 도는데 맞은편에서 한 중년인이 걸어오고 있었다.
‘응?’
정유재는 내심 어리둥절했다. 철거 예정지라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다. 그런데 이 시간에 길을 걸어오는 이라.
정유재는 묘한 느낌에 중년인을 바라보았다. 달빛 아래의 중년인은 평범했다. 특별히 눈길을 끄는 것은 없었다.
서로 마주 걸어가는 터라, 이내 두 사람이 일직선으로 나란히 서게 되었다.
돌연.
중년인이 걸음을 멈추더니 우측에 있는 정유재를 돌아봤다.
“정유재?”
순간.
정유재가 깜짝 놀라며 마주 돌아봤다.
“헉!”
대경한 얼굴이었다.
이내 정유재가 고개를 바로 하더니 쏜살같이 앞으로 뛰려 했다.
재빨리 차은성이 우로 돌아서며 왼발로 정유재의 오른 발꿈치를 쓸어 찼다.
빡.
이어 왼손을 뻗어 정유재의 뒷덜미를 낚아챘다. 그러곤 뒤로 잡아당겼다.
그러자 정유재가 균형을 잃고 길바닥에 주저앉았다.
꿍.
바닥에 엉덩이를 찧었다.
차은성이 신속하게 정유재의 목을 양손으로 감아 조르려 했다.
장유재가 재빨리 대응했다. 오른손 바닥으로 바닥을 짚더니 우로 몸을 돌렸다.
휘익.
무척 기민한 동작으로 뒤돌며 왼발로 차은성의 오른발을 찼다.
차은성이 픽 웃더니 날렵하게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일반인보다는 주어진 상황에 빠르게 대처하는 정유재다. 하지만 상대가 불행하게도 차은성이다.
헛발질을 한 정유재에게 차은성이 다가섰다. 이어 왼발로 급히 일어나려는 정유재의 얼굴을 찼다.
뻐억.
충격과 고통에 정유재가 짧은 비명을 질렀다.
“악!”
정유재가 뒤로 자빠졌다.
차은성은 그런 정유재에게 재차 다가서며 오른팔을 잡았다. 주로 칼을 쓰는 칼잡이 정유재다. 하여, 칼을 쥐는 오른손을 먼저 부러뜨리려 했다.
차은성이 곧바로 관절기를 걸자 정유재가 팔을 빼려 했다. 아울러 바닥에서 서둘러 일어나려 했다.
차은성은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단단히 팔을 움켜쥐고, 정유재의 의사와 무관하게 이내 팔을 부러뜨려 버렸다.
뚝.
그러자.
“으아악.”
정유재가 비명을 질렀다. 팔이 부러진 고통은 뭐라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정유재는 고통을 참을 수 없었다. 예의 고통에 계속 비명을 지르는 사이.
차은성이 정유재가 도망칠 것에 대비, 재차 오른발을 부러뜨렸다.
뚜, 뚝.
팔에 이어 다리가 부러지자.
“끄아아악.”
정유재가 바닥을 구르며 고통을 호소하는 커다란 비명을 연거푸 질렀다. 비명이 꽤 멀리까지 메아리쳤다.
차은성이 정유재에서 떨어지며, 그 광경에 소리 없이 실소했다.
씨익.
명색이 NIS. 그것도 필드 요원이다. 아무리 정유재가 칼잡이로 불리더라도 자신에게는 안 된다.
사람을 죽여 본 정유재지만, 죽인 사람의 수나 살인 기술에 있어 저만치 아래에 있는 하수 중 하수다.
* * *
몇 시간 후. 철거 예정지 인근의 한 폐점포.
녹이 잔뜩 슨 철문 셔터가 내려진 점포 내부는 꽤 밝았다.
화르르, 화르르.
낡고 찌그러진 드럼통에서 장작이 타오르며 불티가 불규칙하게 마구 튀었다.
타, 타, 탁.
여름이라 한층 열기가 거세고 강렬했다.
“으으.”
공중에 매달려 있는, 발가벗겨진 정유재가 신음하며 앞을 바라보았다.
낡은 나무 의자.
예전에 학교에서 쓰였을 법한 작은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꼰 차은성.
“질문에 충실히 답하지 않을 때마다.”
말을 끊으며 정유재를 보았다.
“으으……다, 당신! 경찰 아, 아니지?”
물으며 후회의 눈빛을 띠었다.
전과가 있기에 차은성을 형사로 오인했다. 때문에 차은성이 부르자마자 도망치려 했다.
그때.
도망치지 않고 차은성을 공격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상황은 아니었을 것이다.
정유재는 내심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한편.
차은성이 정유재를 보며 히죽였다.
“아무래도 일반 맛보기로.”
말과 함께 차은성이 손에 쥔 컨트롤러의 한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촤라라라.
쇠사슬이 풀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매달린 정유재가 천천히 아래로 내려왔다.
플라스틱 타이에 묶인 두 다리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정유재가 발버둥을 쳤다.
“안 돼!”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 미친 새끼야! 이런다고 내가 말할 것 같아!”
정유재가 차은성에게 연거푸 소리쳤다.
활활.
불길이 타오르는 드럼통 안으로 서서히 정유재의 두 다리가 사라졌다.
“아아아악! ……그, 그만! 그만!”
정유재가 몸을 좌우로 격렬하게 흔들었다.
불길에 살이 익어 가는 것 같은 극렬한 고통을 견딜 수 없었다.
차은성은 말없이 정유재를 지켜보았다.
“대화에 충실히 응하지 않으면!”
명백하다.
계속 정유재에게 고통을 줄 것임을 시사하는 차은성이었다.
* * *
정유재가 한 성질 한다.
하긴 전과 3범인데 일반 사람과 같을 수는 없다. 명색이 살인 전과가 있는 놈이 고분고분할 리도 없다. 하지만 고문에는 장사 없다.
세상 다시없을 사람도, 계속되는 고문에는 결국 무너지고 만다. 뭐, 개중에는 예외인 극소수의 이들이 있긴 하지만.
계속되는 차은성의 고문에, 결국 정유재가 굴복하고 말았다.
“으으…… 마, 말을 할 테니…….”
백기를 들었다. 그러자 차은성이 이관희 변호사와 서연이에 관해 물었다.
“나, 나안 몰라……. 그저 조, 종석이 형님이…… 돈을 받고, 변호사 조사하는 것에 대해 경고를 했을 뿐이라고.”
차은성이 당혹스러운 눈빛을 띠었다.
정유재가 뭔가 알고 있을 줄 알았더니 아는 것이 거의 없다. 단순한 해결사에 불과했다.
‘이런.’
심중 중얼거리며 차은성이 말했다.
“날 속이는 거라면.”
“흐으…… 아, 안 속여. 너 같은 놈을 속였다가는…….”
정유재의 말에 차은성이 살며시 실소했다.
“훗.”
“…….”
“좋겠지.”
차은성이 의미 모를 중얼거림을 흘리며 정유재를 보았다.
대롱대롱 매달린 정유재.
허리 아래가 벌겋다. 적어도 3, 4도의 화상을 입은 것 같다.
* * *
새벽 4시 무렵. 천호동 호박 성인 나이트.
정유재에게서 알아낸, 일을 시킨 염종석.
정유재의 말에 따르면 룸살롱 두 개, 주류 도매 상회, 호박 성인 나이트클럽. 고급 한우 고기 가든 등.
꽤 많은 업장을 가진 한편, 천호동을 장악한 조폭 두목이다.
차내 운전석에 앉은 차은성은 호박 나이트를 보며 염종석을 기다렸다.
정유재에게서 알아낸 정보를 바탕으로 회사 서버를 통해 경찰 서버에 재접속. 염종석에 관한 모든 정보를 입수, 확인했다.
* * *
얼마 후.
영업이 끝난 호박 나이트에서 일단의 이들이 하나둘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다소 시간이 지났을 때, 직원들의 마중을 받으며 장년인과 서른 초반의 여성이 나타났다.
두 남녀가 이내 기사가 운전하는 고급 세단에 탑승. 호박 나이트에서 멀어졌다.
* * *
×× 빌라.
척 봐도 고가의 빌라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흔한 말로 휘황찬란하다.
민간 경비업체 직원들이 경비를 서고 각종 보안 장비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한마디로 말해,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다.
경쟁 조폭의 습격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경찰이 느닷없이 들이닥치는 것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민간 경비업체의 경비들이 1차 커트 및 시간을 끌어 줄 테니, 충분한 도주 시간을 벌 수 있다.
* * *
빌라 2층.
돈으로 2층 전체를 바른 듯, 눈에 보이는 것들이 보통 사치스러운 것이 아니다.
무슨 재벌 회장 집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하악, 하악.”
“허억…… 허, 허억.”
안방.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한창 그 짓 중인 남녀의 가쁜 숨소리가 들린다.
천천히.
소리를 죽이고 안방으로 접근하는 이가 있다.
평범한 캐주얼 복장.
얼굴에는 문구점에서 파는 종이 로봇 가면을 썼고 머리에는 야구 모자를 깊숙이 눌러썼다.
가슴에는 사선으로 백을 찼으며 우측 어깨에는 금속 배트를 척 걸쳤다.
얼굴을 감춘 방문자.
그의 걸음걸이와 행동은 당혹스러울 만큼 완만했다. 일절 소리를 내지 않았다.
모종의 관련 훈련을 받은 그대로 움직이는 방문자였다.
* * *
염종석, 내연녀.
누운 염종석 위에 쪼그려 앉은 늘씬한 나신의 내연녀가 쉴 새 없이 위아래로 움직였다.
눈을 감고 있던 염종석이 돌연 이상한 느낌에 눈을 떴다.
눈에 보이는 가면을 쓴 방문자.
염종석이 순간 기겁했다.
“으와아아아!”
비명에 가까운 고성을 지르며 몸을 일으켰다. 아울러 내연녀를 침대 우측으로 집어 던지듯이 밀어젖혔다.
연후.
좌로 돌아섰다.
스탠드 등이 있는 미니 탁자.
염종석이 호신용으로 늘 가지고 다니는 대검 사이즈의 나이프를 집으려 했다. 그런데…….
뻐억!
어느새 다가온 방문자가 인정사정없이 배트로 염종석의 손을 내리쳤다.
“으아아아악!”
염종석이 고통 때문에 비명을 질렀다.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처럼 입이 크게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