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S의 천재 스파이 (84)
그날 저녁. 흥겨운 경음악이 깔린 북한 식당에서 손로환은 입이 찢어질 것 같은 접대를 받았다.
그를 배려한 중국 요리도 괜찮았고. 반라의 북한 식당 접대원들의 각별한 시중이 매우 만족스러웠다.
호사!
그리 말해도 무방한 접대에 손로환은 금방이라도 입이 찢어질 듯이 웃고 또 웃었다.
“이것은 박상렬 상장님께서 전하라고 하신 그분의 마음입니다.”
최순애가 작은 박스를 원탁에 내려놓더니 맞은편에 앉은 손로환에게 내밀었다.
“뭘 이런 걸 다.”
손로환이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박스를 끌어당겨 열어 보았다.
딸깍.
작은 아기 금돼지 세 마리.
손로환이 눈웃음치더니 박스를 닫았다.
최순애가 그 모습에 빙긋 웃었다.
“따로 사례의 표시로, 황허 호텔 스위트룸에 준비해 둔 것이 있습니다.”
“오……. 그래요. 역시 박상렬 상장입니다. 그분의 후의에 내가 감사해한다고 꼭 좀 전해 주시오.”
“예에.”
최순애가 대답하며 재차 미소 지었다.
빙긋.
뇌물과 성 접대에 봄날 햇볕에 녹는 얼음처럼 심신이 녹아내리는 손로환이었다.
* * *
끼릭, 끼리릭.
푸드 수레바퀴가 구르는 나직한 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수레는 605호에 이르러 멈췄다.
또, 똑.
노크 소리가 울리고. 이내 문이 조금 열리더니 문틈으로 한 사내가 얼굴을 내밀었다.
“뭐야?”
사내가 사나운 어투로 물었다.
“네. 룸서비습니다.”
“뭔 서어…… 메라고?”
“네. 룸서비습니다. 주문하신 음식을 갖고 왔습니다.”
“주문?”
“네.”
“우린 그딴 거 주문한 적 없어.”
사내가 매몰차게 대꾸하며 문을 닫으려 했다.
“어? 이 방에 사람들이 있다고 먹을 것을 가져다주라고…… 여자분이 그러셨는데요.”
사내가 멈칫하더니 반문했다.
“여자?”
“네.”
“잠깐 기다려 보라.”
사내가 말과 함께 문을 닫았다.
* * *
“조장 동지래 우리 먹으라고 주문한 모양이구만.”
“그럼 그렇지. 조장 동무만 식당에서…….”
“조장 동무래 접대하러 일로 간 기야. 고럼.”
세 사내가 서로 돌아보며 대화했다.
* * *
문이 열리고, 웨이터로 위장한 차은성이 푸드 수레를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뒤.
차은성이 룸을 나오며 인사했다.
“맛있게 드십시오.”
“기래. 고생했어야.”
한 사내가 뒤따라오더니 말과 함께 문을 닫았다.
차은성이 두어 걸음을 걷다가 멈춰 서더니 뒤돌아봤다.
“후후.”
나직이 웃으며 중얼거렸다.
“팁이라도 줄 것이지.”
서운한 눈빛을 띠었다.
* * *
시간이 꽤 흐른 후.
차은성이 예의 문 앞에 섰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재빨리 키를 꺼내 문을 열었다.
철컥.
* * *
룸 내부는 엉망진창이었다. 그릇들이 바닥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개중에 몇몇 그릇은 깨져 파편들이 역시 바닥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다.
그릇에 담겨 있던 음식도 마찬가지였다.
무질서하게 바닥에 쓰러져 있는 세 남자.
그들의 입에는 거품이 남아 있었다. 격렬하게 몸부림을 친 흔적들이 역력했다.
차은성은 그들이 죽었는지 확인한 후 만족스러운 눈빛을 띠었다. 포타슘으로 조용히 세 남자를 잠재웠기에.
* * *
최순애는 차로 손로환을 황허 호텔까지 데려다주었다. 그가 스위트룸으로 들어가는 확인한 후 뒤돌아섰다.
* * *
바로 아래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띵.
문이 열리며 한 사내가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최순애는 우측으로 다가와 서는 사내를 힐금거렸다.
사내는 손에 쥔 폰을 만지작거렸다. 최순애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전혀 돌아보지도 않고 계속 폰만 보았다. 게임을 하는지 액정 화면에서 연방 빛이 반짝였다.
그 모습이 최순애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렸다.
최순애가 고개를 들어 엘리베이터 상단에 있는, 층수를 알리는 디지털 패널을 보았다.
순간.
……휙.
사내가 최순애에게 돌아섰다. 어느새 오른손에 걸머쥔 폰.
사내의 돌연한 행동에 최순애가 흠칫하더니 급히 대응하려 하였다. 하지만 한발 늦고 말았다.
퍽!
사내가 폰으로 최순애의 목을 강하게 찔렀다.
“끅!”
최순애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눈을 부릅떴다. 목에서 느껴지는 격한 통증에 이내 최순애가 얼굴을 찡그렸다.
그사이.
사내가 왼 주먹으로 최순애의 우측 옆구리를 때렸다.
뻐억.
묵직한 힘이 옆구리에서 폭발하듯 작렬하며 내부로 스며들었다. 내부가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격렬한 아픔이 일었다.
“우욱.”
최순애가 신음했다.
옆구리의 충격과 고통에 순간 숨을 쉬기 어려웠다. 그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그만 상체를 숙이고 말았다.
뭘 어떻게 할 수 없는 순간적인 고통에 최순애는 너무도 충실하게 반응했다.
기다렸다는 듯.
사내가 지체 없이 오른발 무릎을 쳐올렸다.
쾅.
무릎이, 숙인 최순애의 얼굴을 재차 강타했다.
순간적인 기습.
연이어진 세 번의 공격과 가격.
최순애는 짧은 시간 동안 무방비로 사내의 공격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툭.
사내가 미련 없이 폰을 놔 버렸다. 그러자 폰이 엘리베이터 바닥에 떨어졌다.
무릎에 당한 최순애가 고개를 들자 사내가 왼손을 뻗어 단숨에 그녀의 머리를 움켜잡았다. 그러곤 오른손 주먹으로 얼굴을 연거푸 가격했다.
뻐……버, 벅.
뭘 어떻게 할 겨를도 없이 가격이 연이어졌다.
사내는 머리를 움켜쥔 왼손으로 최순애의 얼굴을 고정했다. 그 상태에서 계속 주먹으로 가격했다. 이어지는 충격과 그로 인한 아픔에 최순애는 무력했다.
반격하거나 가격을 회피해야 했지만. 그녀에게는 능력 밖의 일이었다.
결국 최순애의 코에서 피가 터지듯이 줄줄 흘러내리고 이빨 두어 개가 상한 듯 심하게 흔들렸다.
최순애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이 몸을 휘청거렸다.
기습에 당한 후, 그녀에게 전혀 틈을 주지 않는 사내의 강력하고 맹렬한 공격에 속수무책이었다.
그녀가 약해서가 아니었다. 사내가 그녀보다 강했다.
사내는 최순애에게 틈을 주지 않았다. 그녀의 머리를 잡은 왼손을 당겨, 최순애의 머리를 숙이게 만들었다. 그러곤 예의 오른손 주먹으로 최순애의 좌측 귀를 수여 회에 걸쳐 가격했다.
퍼퍼퍼퍼퍽.
가격이 연이어지고 충격이 고스란히 우측 귀로 흘러들었다.
최순애는 균형 감각을 잃고 한층 더 휘청거렸다. 충격으로 반고리관이 그만 기능을 상실하고 말았기에.
풀썩.
최순애는 자의와 무관하게 엘리베이터 바닥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사내가 매우 신속한 동작으로 최순애의 등 뒤로 돌아갔다. 그러곤 양손으로 최순애의 머리를 감쌌다. 뭘 어떻게 할 겨를도 없는 삽시.
우두둑.
사내가 최순애의 목을 돌려 버렸다. 그러자 최순애의 목이 우로, 거의 180도로 빙글 회전했다.
사내가 양손을 놓자 목이 부러져 즉사한 최순애의 몸이 미끄러지듯이 엘리베이터 바닥에 쓰러졌다.
털썩.
사내는 최순애가 죽었는지 확인한 후, 엘리베이터의 층수 버튼을 눌러 6층으로 다시 올라갔다.
상황은 꽤 길었으나, 걸린 시간은 불과 몇 초 어림이었다.
단숨에 최순애를 제압하여 죽여 버린 사내.
차은성.
* * *
“선택은 그쪽 몫입니다.”
차은성의 말에 폰 너머에서 노대문의 엄청 당황한 음성이 들렸다.
“그래도…….”
“여기서 손로환 국장을 제쳐 버린다면 다음 국장은 당신입니다.”
“국장에게는 내가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뒷배경과 연줄이 있단 말이오!”
노대문이 언성을 높였다. 그의 의사와 무관한, 차은성이 벌여 놓은 판에 큰 부담을 느꼈다.
“아무리 연줄이 있다고 해도 현장에서 현행범으로. 게다가 증거가 명확하다면 배경도, 연줄도 아무 소용 없을 겁니다. 아울러 우리가 귀 외교부에 강력히 항의를 넣을 테니…….”
차은성은 손로환의 옷을 벗기고자 판을 짰다.
“…….”
차은성의 제의에 노대문은 침묵했다. 아마 목하 고심 중일 것이다. 지금 손로환을 도모하여 그의 옷을 벗기고 그의 자리를 자신이 차지하느냐 마느냐. 그 선택이 쉬울 리 없다.
하지만 차은성은 확신했다. 탐욕스러운 노대문이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일 것이라고.
‘이익으로 맺어진 사이는 결국! 이익 때문에 갈라지게 되어 있지. 후후…….’
차은성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노대문에게 유혹이란 미끼를 툭 던졌다.
“지금 손로환 국장을 쳐 내지 않으면, 앞으로 영원히 당신이 손로환 국장을 도모할 기회는 없을 겁니다.”
“…….”
“기회란, 왔을 때 잡아야 하는 법이죠.”
“…….”
“방금 전에 말한 것처럼, 이건 선택입니다.”
“…….”
“선택에 따른 결과라는 책임은 선택한 자의 몫입니다. 나는 당신에게 제의했고. 그 제의의 수락 여부는 당신에게 달린 겁니다. 그럼.”
차은성은 노대문의 대답을 듣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그러곤 이내 대련 공안국에 신고했다.
“……화, 황허 호텔 스위트룸이…… 엘리베이터에 시, 시체가…… 범인인 듯한 자가 스위트룸에 지금 막 들어갔습니다. 빠, 빨리! ……빨리! 와 주세요.”
의도적으로 더듬거리며 시체를 본 놀란 사람인 척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폰 너머에서 급히 부르는 음성이 들렸다. 차은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내 신고 전화를 끊었다.
씨익.
살며시 웃으며 우를 돌아봤다. 꽤 떨어진 곳에 스위트룸이 있다.
“Alea Iacta Est.”
남은 것은 세 운명의 여신 모이라이에게 달렸다.
* * *
한참 후.
애애애애애앵.
저 멀리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차은성은 살며시 미소 지었다.
예상한 대로.
짠 시나리오대로.
노대문이 움직여 주었다.
탐욕을 이기지 못하고 차은성이 던진 맛있어 보이는 먹잇감을 덥석 물기로 노대문이 결정한 것 같다.
차은성은 만면에 미소 지으며 황허 호텔을 올려다보았다.
스위트룸에서 아주 끝내주는 시간을 보내고 있을 손로환.
나체의 여자. 세 금돼지. 죽은 보위부 요원들. 주 중국 한국 대사관의 항의.
그 정도라면 손로환의 옷을 벗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손로환은 아마도 재기 불능일 것이다.
노대문이 말한 연줄. 보나 마나 뒷배를 봐 주는 이들일 것이다.
“공청단 아니면 상하이 방. 둘 중 하나겠지.”
차은성이 중얼거리며 씩 웃었다.
현 중국의 공산당은 공청단과 상하이 방. 이 두 정치 파벌로 양분되어 있다. 사실상 공청단이 상하이 방을 확실하게 누르며 정권을 독차지하고 있다.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 보면, 손로환의 뒷배는 아마도 공청단 내에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손로환을 지켜 주진 못하지. 후후.”
차은성이 중얼거리며 뒤돌아섰다.
저벅저벅.
걸어가며 황허 호텔로부터 멀어졌다.
그사이.
호텔에 이른 다수의 공안 차량에서 정복 공안들이 우르르 쏟아지듯이 내렸다. 그들은 황급히 황허 호텔 로비 입구로 뛰었다.
가장 뒤에서, 노대문이 천천히 걷다가 멈춰 섰다.
그가 고개를 들자 시야 가득히. 하늘을 향해 치솟은 황허 호텔이 들어왔다.
지금 이 순간이 그의 운명을 가르는 고비다.
손로환을 확실히 잡으면 대련 공안국 국장이 된다. 화려한 날개를 등에 달고 하늘 높이 날아오를 수 있다.
씨익.
노대문이 미소 지으며 음침한 눈빛을 띠었다.
“어차피 사는 것이 먹고 먹히는 것이니, 절 원망하진 마십시오. 국장님.”
노대문이 손로환을 생각하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제까지 온갖 수발을 들어 왔으니, 이젠 그 수발의 결실을 거둘 때가 되었다.
노대문이 고개를 바로 하며 황허 호텔 입구로 천천히 걸어갔다.
이익은 더 큰 이익에 먹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