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NIS의 천재 스파이 (80)화 (80/208)

NIS의 천재 스파이 (80)

“5천만 명이야.”

“…….”

“그들이 어떤 일을 당했는지 알아?”

“…….”

“불과 6개월 전만 해도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다니던 부장이 하루아침에 실직하고 길바닥 노숙자가 되어 버렸어. 인생 밑바닥으로 떨어져,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돈 100원을 구걸하는 거지가 되어 버렸어!”

“…….”

“정리 해고된 가장이 생활비를 못 벌어 오자 와이프가 술집에 나가 몸을 팔면서 생활비를 벌었어.”

“…….”

“돈이 없어, 잔돈을 모아 둔 돼지 저금통의 배를 갈라 10원, 50원짜리 동전을 비닐봉지 가득 넣어서 동네 슈퍼로 가서 가장 싼 분유를 살 때. 아버지가 느꼈을 비참함과 슬픔을 자네가 알 수 있겠나?”

“…….”

“가장 싼 분유를 계산대에 올려놓고. 계산하는 사람 앞에 10원짜리와 50원짜리 동전을 쏟아 낼 때의 아버지의 심정!”

“…….”

“계산하는 사람이 쳐다보는 황당하다는 눈!”

“…….”

“뒤에 서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아버지를 어이없다는 눈으로 바라보며 짜증 내고 신경질 내는 사람들의 시선과 폭언!”

“…….”

“집에 돈이 없어서 쌀을 살 수 없어, 수도를 틀어 물로 배를 채우는 아버지를 본. 이제 겨우 여덟 살이 된 어린 아들이. 배가 고파 아버지를 흉내 내어 수돗물로 배를 채우는 모습을 본 아버지의 가슴 찢어지는 고통!”

“…….”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아내가 이혼을 요구하고. 그 요구를 뿌리치지 못해 아내라도 잘 먹고 잘 살라고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어야 하는 남편의 비참한 심정을 자넨 알 수 있겠나?”

“…….”

“그렇게 이혼한 아내가 이제 여섯 살이 된 어린 자식을 내팽개치고 집을 나가 버린 후. 도저히 어린 자식을 키우지 못해 그 자식의 손을 잡고 보육원에 몰래 데려다주고. 행여 들킬까 싶어, 뒤에서 아버지를 부르며 울부짖는 어린 자식을 두고 도망치는 아버지의 고통과 아픔을 자넨 알 수 있겠나?”

“…….”

“비참하고 또 비참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아파트 옥상에서 몸을 날린 아버지의 마음!”

“…….”

“자넨 이해할 수 있겠나?”

“…….”

“그렇게 다 당했어. IMF 시절. 허다한 국민들이 그런 고통과 비참함 속에서 근근이 생을 이었어.”

“…….”

“……가족이 그렇게 해체되고. 다들 뿔뿔이 흩어져 각자도생해야만 했었지.”

“…….”

“IMF를 부른 당시 대통령이나 장관을 비롯한 정부 각료들은 어땠을 것 같나?”

“…….”

“다들 매 끼니 상다리가 부러지는, 고급 한식당에서나 볼 법한 밥상을 받았어. 배고픔을 모를 정도로 넉넉하게 먹었지. 말 그대로 호의호식했어.”

“…….”

“그들은 아무 불편도 없었고. 고통도, 슬픔도, 비참함도 없었어. 그들에게 있었던 것은 부유와 사치. 그리고 풍요였어!”

정재승 국장이 울분을 토했다.

차은성은 자신도 모르게 두 눈을 내리감고 말았다. 당시 고통에 허우적거렸을 사람들. 뭐라 말할 수 없는 비애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IMF 시절이 가고 몇 년 후가 되자 당시 대통령이 환갑이랍시고 호텔에서 잔치를 열었지. 그러자 여당, 야당은 말할 것도 없고. 소위 사회 지도층이라 불리는 온갖 인사들이 죄다 잔치가 열리는 호텔로 모여들었어.”

“…….”

“그들은 전직 대통령인 그를 민주주의 투사라고 치켜세우며 환갑을 축하했지. 대통령은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환갑잔치를 즐겼고. 그곳, 그 어디에도 IMF 시절을 혹독하게 겪었던 국민의 비참함이나 고통 따윈 없었어.”

“…….”

“언론에서도 전 대통령을 한국 민주주의 운동의 위대한 투사라고 칭송하며 연일 환갑 관련 기사를 내보냈고.”

“…….”

“IMF 시절 자살했던 이 땅의 아버지들!”

“…….”

“어린 자식이 수돗물로 배를 채우는 모습에 피눈물을 흘려야 했던 아버지들.”

“…….”

“생활고 때문에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지 않으면 안 되었던 남편들.”

“…….”

“어린 자식을 보육원에 버리듯이 몰래 놔두고. 울면서 아버지를 소리쳐 부르는 어린 자식을 외면하고 도망쳐야 했던 아버지들!”

“…….”

“그 비참함과 아픔을!”

“…….”

“그날, 그곳의 환갑잔치에 있었던 전직 대통령이나 정부 각료들. 정치인들 등등…… 그들 모두 외면했어. 자신들과 아무 상관이 없는 타인의 일이었으니깐!”

“…….”

“자신들이 그렇게 만들어 놓고도 사과 한마디 없었던, 이 세상에서 가장 뻔뻔했던 이들.”

“…….”

“그 전 대통령이 죽었을 때, 정부는 국민의 장으로 국민의 혈세로 장례를 아주 성대하게 치러 줬었고.”

“…….”

“안장이 예정된 국립묘지의 묘소를 팠더니 알같이 둥근 돌덩이들이 나왔다고 언론들이 앞다투어 천하 명당이라고 보도하고. 위대한 한국 민주주의 운동의 투사이자 선구자가 드디어 영면한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지.”

“…….”

“그 대통령 때문에 고통받고 비참했으며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어야 했던 이들은 뭐였을까?”

“…….”

“모 영화 대사처럼. 국민은 그 대통령에게는 개돼지가 아니었을까?”

정재승이 차은성에게 물었다.

“…….”

차은성은 대답할 수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폭발하는 화산처럼.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삭이기 위해 힘주어 말아 쥔 두 주먹!

손바닥이 땀에 흥건히 젖었다.

“그렇게 한 시대가 가고.”

“…….”

“대한민국의 국민은 다시 위대한 민주주의 투사라고 부르는 다른 이를 대통령으로 뽑았어.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이성적인 판단조차 내리지 못하는 반쯤 치매에 걸린 노인을 말이야.”

“…….”

“대통령이 된 그는 철저히 허수아비였어. 측근들이 그를 얼굴마담처럼 세워 놓고 모든 것을 농단했지.”

“…….”

“허수아비가 경제에 관해서는 쥐뿔도 모른다는 것을 이용해, 측근들이 재벌들과 손잡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이라는 명분하에 비정규직, 계약직이라는 얼토당토않은 노동정책을 발표하고 밀어붙였어.”

정재승 국장이 차은성을 보았다.

“자네도 알 거야. 비정규직의 이들이 얼마나 피눈물을 흘렸는지. 얼마나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았는지. 그들은 사실상 현대판 노예였어.”

“…….”

“허수아비 대통령은 측근들이 의료보험이라는 것을 들고 나오자 좋은 정책이라며 빨리 실행하라고 재촉했지. 그런데 결과는?”

“…….”

“대실패였어. 온 국민이 죽겠다고 울부짖자 그제야 해당 정책의 긴급 수정 및 보완에 들어갔어. 그리고 해당 정책을 내놓고 추진한 장관을, 허수아비 대통령이 대놓고 왕따를 시키며 분노를 표명했지. 전 국민이 다 알도록 말이야.”

“…….”

“허수아비 대통령의 시대는…… 측근들과 재벌들에게는 천국과 같은 나날이 이어지는 시절이었어. 그런 한편으로 국민들은 너나없이 죽겠다고 아우성쳤고.”

“…….”

“그 허수아비 대통령이 죽었을 때, 그가 태어난 생가를 국민 세금으로 기념관으로 만들자고 측근들이 떠들어 댔지. 국민들은 아무 말 하지 않았고 침묵으로 일관했어. 덕분에 모든 것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지.”

“…….”

“그 어디에도 허수아비 대통령이 만들어 낸 비정규직이라는 이들의 아픔과 고통은 없었어. 그들이 흘려야 했던 피눈물은 과연 어디에 있었을까?”

정재승은 차은성을 보며 분노 어린 외침을 쉬지 않고 쏟아 냈다.

“불법과 탈법으로 만든 회사가 자신의 것이라고 스스로 자신의 입으로 말함에도. 국민들은 그를 대통령으로 뽑았어. 어떻게 됐을까?”

“…….”

“개판이었어. 그 개판 끝에 다시 새로운,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당선됐고. 선거 기간 내내. 해외 언론들이 독재자의 딸이 대한민국 대통령이 된다고 보도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들 그녀에게 환호성을 보내며 연호했지.”

“…….”

“그 아버지가 일본과 한일 협정을 할 때. 국민들이, 학생들이 반대 시위를 하자 경찰을 동원. 무자비하게 시위를 진압한 것처럼. 딸인 그녀 역시 일본과 그녀 맘대로 국가 간 협정을 맺었지. 국민들이 그것은 아니라고 외쳐도 측근들과 함께 밀어붙였어.”

정재승 국장이 숨이 차는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러곤 다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후우우.

하얀 담배 연기를 뿜으며 정재승 국장이 말했다.

“내게 대한민국은 개좆같은 나라야.”

“…….”

“대한민국 국민?”

“…….”

“개좆같은 새끼들이야.”

“…….”

“언제나 밟으면 힘없이 밟히고.”

“…….”

“참새도 죽을 때는 짹 소리라도 낸다는데. 단 한 마디 말도 하지 못하고.”

“…….”

“방금 전에 내가 말한 대사처럼. 개돼지와 별반 다를 것이 없어.”

정재승 국장이 입에 담배를 물며 차은성을 보았다.

“나더러 대한민국과 국민을 배신했다고 말했나?”

“…….”

“천만에! 만만에 말씀!”

“…….”

“배신은 내가 한 것이 아니야. 난 배신을 당한 피해자야.”

정재승 국장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어조로 말했다.

“…….”

“미친 듯이 일하고 또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뭐 같은 대통령들을 국민들이 대통령으로 뽑아 줬지. 그러곤 뽑은 대통령들이 개지랄 염병을 떨어도 아무 소리도 못 하고. 저항 한번 하지 않고 멍청이처럼 당하기만 한 병신 쪼다들이 바로 대한민국 국민들이야!”

“…….”

“날 배신한 것은 바로 그들이야!”

정재승 국장이 입에서 담배를 빼며 하얀 담배 연기를 뿜더니 차은성에게 고함쳤다.

당당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는, 떳떳한 정재승 국장이었다.

차은성은 어이가 없었다. 마주 보는 정재승 국장은 삐뚤어질 대로 삐뚤어진 시대가 낳은 모순! 그 자체였다.

천천히.

차은성이 말했다.

“희망을 품고 계셨군요. 아니, 기대를 하셨어요.”

뭔가 알아챈 것일까? 입에 담배를 물던 정재승 국장이 멈칫했다.

“국장님. 가슴 깊숙이에 있는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는 시대가, 시절이 오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그 시절은 오지 않고 자꾸만 어긋나기만 했죠. 그렇죠.”

차은성의 말에 정재승 국장은 말없이 입에 담배를 물었다.

“국장님 스스로 CIA에게 정보를 넘겨주겠다고 나서진 않았을 겁니다. 그래도 마음속에 한 가닥 애국심은 남아 있었을 테니까요.”

“…….”

“누굽니까?”

“…….”

“국장님의 그런 심리를 꿰뚫어 보고 접근하여 포섭한 CIA 사람이!”

차은성이 질타조로 언성을 높이며 그새 담배를 피우는 정재승 국장을 몰아세웠다.

후우우우.

자포자기한 듯.

정재승 국장이 담배 연기를 뿜더니 차은성을 보았다. 착잡한 두 눈동자.

“이 마당에 감출 것이 뭐가 있을까?”

“…….”

“업무 때문에 몇 번 미국을 드나들었지. 그런 내게 JK. 시먼스 전 CIA 부국장이 접근해 왔어.”

“…….”

“그의 말은 너무도 달콤했어. 새로운 시대를, 내가 바라고 원하는 대한민국을 함께 만들어 보자!”

“…….”

“쿡쿡쿡. 그건 악마의 유혹이었어. 그 유혹에 넘어가 두어 번 정보를 넘긴 후에야 깨달았지.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하지만 후회란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이라고.”

정재승 국장이 고개를 조금 숙이며 입에 담배를 물었다. 괴로워하는 모습이었다.

차은성은 전혀 공감도, 동정도 가지 않았다. 그의 앞에 앉아 있는 정재승 국장은 이중 스파이일 뿐이다.

정재승 국장 때문에 팀원들이 죽었다!

차은성은 그것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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