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S의 천재 스파이 (81)
“이후, 시먼스 부국장이 날 협박했어. 정보를 넘겨주지 않으면 내가 정보를 넘긴 이중 스파이라는 걸 NIS에 알리겠다고.”
“…….”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스스로 내 목에 개목걸이를 찬 셈이야. 그 이후 난 시먼스 부국장에게 질질 끌려갈 수밖에 없었어.”
자조적으로 말하는 정재승 국장. 후회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엎질러진 물과 같아 결코 주워 담을 수 없었다.
* * *
한편.
차은성은 정재승 국장의 입에서 시먼스 부국장이 나오자 내심 크게 놀랐다.
‘어떻게 여기서!’
예상치 못한 충격에 차은성은 뭐라 말할 수 없었다. 하여 입을 꾹 다물고 정재승 국장의 말을 듣기만 했다.
* * *
부들부들.
박희오 원장이 마구 몸을 떨며 분노를 표출했다.
“1차장.”
“예.”
1차장 윤희상이 대답했다.
“시먼스 그 개자식. 지금 어디에 있나?”
“그것이…….”
윤희상이 말을 흐렸다.
“어디에 있냐고!”
박희오 원장이 버럭 소리쳤다.
“어디에 있는지, 소재지를 현재 알 수 없습니다.”
“찾아내!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최대한 빨리 그 개자식을 찾아내.”
“넵!”
윤희상이 대답하며 고개를 숙였다.
박희오 원장이 앞을 바라보았다. 유리 너머의 정재승 국장.
“멍청한 놈!”
화가 너무 치밀어 견딜 수가 없다.
“2차장.”
“네.”
선우종이 대답했다.
“내가 검찰총장에게 전화해 놓을 테니, 정 국장 검찰로 넘겨.”
“…….”
선우종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러자 박희오 원장이 돌아봤다.
“내 말 못 들었나?”
언성을 높이자.
“말씀하신 대로 처리하겠습니다.”
선우종이 대답했다.
“철저히!”
“…….”
“보안 유지해!”
“네.”
선우종이 재차 대답하자 박희오 원장이 주철현을 돌아봤다.
“5국장.”
“네.”
“수고 많았어.”
“죄송합니다. 원장님.”
“자네가 죄송할 건 없어.”
박희오 원장이 말하며 박영광을 돌아봤다.
“국장보.”
“네, 원장님.”
“차은성을 자네가 직접 키웠다지?”
“네.”
“잘 키웠어.”
“감사합니다.”
“감사하긴. 오히려 내가 자네에게 고맙네. 간만에 제대로 된 물건을 봤어. 앞으로도 잘해 주게.”
“네.”
박영광의 대답을 끝으로 박희오 원장이 밖으로 나갔다.
“휴우우.”
윤희상이 한숨을 쉬며 앞을 보았다. 차은성이 천천히 일어나고 있었다.
‘밥맛 뚝 떨어지는 새끼!’
한 건 크게 해냈다. 그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 * *
그사이.
선우종은 앉아 있는 정재승 국장을 봤다.
착잡한 눈치였다. 뭐라 말할 수 없는 감정이 그의 얼굴에서 물결치고 있었다. 믿고 아꼈던 만큼, 그에 비례한 실망을 느꼈다.
* * *
주철현 국장은 마음이 무거웠다. 이중 스파이를 밝혀냈지만 개운치가 않다. 뭐랄까? 가슴 가득히 큼지막한 돌덩이가 들어앉은 것 같은 갑갑한 기분이었다.
주철현은 박영광을 돌아봤다.
“국장보.”
“네, 국장님.”
“차 팀장에게 최대한 빨리 일 하나 맡겨.”
“네?”
박영광이 영문 몰라 했다.
“일에 몰두하게 해서 빨리 이번 일을 잊게 만들라고.”
“아……. 알겠습니다. 국장님.”
박영광이 대답하며 차은성을 곁눈질했다.
* * *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는 차은성의 귀에 정재승 국장의 나직한 음성이 들렸다.
“자네 팀원들.”
“…….”
“정말 미안하네.”
차은성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묵묵히 문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 * *
타……아앙.
총성이 울렸다. 고즈넉한 숲의 정적을 깨트리는 총성이 꽤 멀리까지 울려 퍼졌다.
철컥.
손에 쥔 사냥용 총에서 탄피를 배출하는 시먼스.
그의 좌측.
세 걸음 떨어진 곳에 정장을 입고 선글라스를 쓴 중년인이 서 있었다.
탄띠 역할을 하는 허리춤에 찬 가죽 주머니.
시먼스가 예의 주머니에서 탄을 꺼내 장전했다.
철컥.
이어 총을 눈높이로 들어 올렸다.
“정재승의 처리는?”
“네. 사흘 전에 한국 검찰로 넘겼다고 합니다. 현재 서울 서부 지검 공안부에서 극비리에 수사 중입니다.”
“…….”
“문제는 NIS에서 심문받을 때 정재승 국장이 부국장님을 언급했다는 것입니다.”
중년인 게리의 말에 시먼스가 신경질적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타……아앙.
총성이 울리고, 상당히 떨어져 있는, 둥근 나무 그루터기에 올려 둔 맥주 캔이 산산이 터져 나갔다. 사방으로 맥주가 뿜어졌다.
시먼스가 언짢은 어조로 말하며 총을 내렸다.
“한심한 인간.”
NIS 내부에 있는 협력자는 정재승만이 아니다. 정재승은 협력자들 중 한 명일 뿐이다.
“현재 박희오 원장이 부국장님의 소재지를…… 상당히 당혹스러울 정도로 집요합니다.”
“…….”
“무엇보다도 월터 부국장이 박희오 NIS 원장에게 적극 협력하는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게리의 말에 시먼스가 탄피를 배출하고 다시 장전했다.
“아서. 월터 부국장이 마음에 들진 않지만 그래도 CIA 현직 부국장이야. 그에 걸맞은 대우는 해 줘야지.”
시먼스의 말에 게리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월터 부국장을 처리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무언으로 돌려 물었다. 그러자 시먼스가 놔두라고 했다.
―지금은 월터 부국장을 처리할 때가 아니다.
시먼스가 예의 눈높이로 총을 들었다.
“차은성이라고 했나? NIS의 아르티펙스 팀의 팀장 말이야.”
“네.”
게리가 대답하며 고개를 들었다.
“신경에 너무 거슬려.”
시먼스가 말과 함께 방아쇠를 당겼다.
타……아앙.
총성이 울렸다.
시먼스가 천천히 총을 내렸다.
“브뤼셀 때부터 NIS가 눈에 거슬리더니. 1개 팀을 없애 버렸으면 알아들을 법도 한데. 도무지 겁이 없어.”
시먼스가 탄피를 배출하고 다시 장전했다.
철컥.
신경질적이다. 마음에 들지 않음을 모를 수 없다.
브뤼셀, 마담 화이트, 정재승 등 사사건건 차은성이 연루되어 있다.
“브뤼셀 이후 자꾸 저희와 엮이며 방해가 되고 있습니다만.”
게리의 말에.
“쯧쯧.”
시먼스가 혀를 찼다.
“게리.”
“네.”
“조금 전에 NIS가 내 소재지를 찾으려고 꽤 집요하게…… 그런데 여기서 덜컥 아르티펙스 팀의 팀장을 죽여 버리면 NIS가 어떻게 나올 것 같나?”
시먼스의 물음에 게리는 침묵했다.
“…….”
“NIS도 자존심이라는 게 있어. 독이 올라 버림 우리만 귀찮아져.”
“…….”
“뭐, 그렇다고 가만 놔둘 수는 없고…….”
시먼스가 말하며 게리를 뒤돌아봤다.
히죽.
웃는 그의 눈에서 묘한 빛이 어른거렸다. 따로 다른 생각이 있는 눈치다.
게리가 말없이 시먼스를 바라보았다.
* * *
다음 날 저녁.
지글지글.
불판에서 대패 삼겹살이 구워지고 있었다.
“고생 많았다.”
박영광이 말하며 손에 쥔 소주병을 기울였다.
쪼르르.
차은성이 쥔 소주잔에 소주가 채워지자.
박영광이 소주병을 테이블에 내려놨다. 이어 말없이 소주가 채워진 자신의 잔을 들었다.
……쨍.
가볍게 두 소주잔이 부딪치고.
박영광과 차은성이 단숨에 잔을 비웠다.
타, 탁.
빈 잔을 내려놓고.
차은성이 소주병을 들어 박영광의 잔에 소주를 따랐다. 이어 자신의 잔에 소주를 따랐다.
그새.
박영광이 젓가락을 들더니 불판의 대패 삼겹살, 콩나물, 김치를 이리저리 뒤적였다.
“많이 먹어. 오늘은 내가 사는 거니깐.”
박영광의 말에 차은성은 말없이 고소했다.
픽.
자신은 경제적으로 풍요하다. 까짓, 최고 등급의 한우를 배가 터지게 실컷 먹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박영광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삼촌.”
“응?”
젓가락으로 뒤적이던 박영광이 차은성을 쳐다봤다.
“대패, 얼마 안 해요. 그리고 삼촌이 어릴 때 저 키우며 하도 대패만 먹여서, 전 대패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요. 지겹다고요.”
평소보다 감정적인 어조로 말하는 차은성이었다. 정재승 국장의 일로 심적 악영향이 있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망할 놈.”
박영광이 짐짓 화난 어조로 차은성에게 톡 쏘아붙였다.
“삐딱선 탈래?”
“…….”
“닻을 내릴 항구 하나 없이, 정처 없이 대양을 떠도는 유령선이 되고 싶지 않음 삐딱선 타지 마라.”
박영광의 말에 차은성이 픽 싱겁게 웃었다.
* * *
얼마 후.
박영광과 차은성은 소주를 마시고 안주로 대패 삼겹살을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았다.
사뭇 분위기가 좋았다. 그러자 박영광이 천천히 본론을 꺼냈다.
“일 하나 해야겠다. 어려운 일 아니니깐 긴장할 건 없고……. 너 혼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니깐 빼지 마라.”
차은성이 씹던 대패 삼겹살을 서둘러 삼켰다.
“못 부려 먹어서 안달인데. 오더, 국장님이 떨군 겁니까?”
박영광이 피식 웃더니 고개를 까닥였다.
“너 많이 생각하시더라.”
인정이다.
“그걸 고양이가 쥐 생각 한다고 그러는 겁니다.”
“너어.”
박영광이 눈을 부라렸다.
그러자 차은성이 숨을 길게 쉬었다.
“후우우.”
“땅 꺼지겠다. 응.”
박영광의 말에 차은성이 천천히 말했다.
“어쩐지. 만나자고 연락 왔을 때, 알아챘습니다. 어딥니까?”
차은성이 의외로 선선하게 오더를 받아들였다.
싫다고.
잠시 쉬게 해 달라고.
항의할 줄 알았는데.
박영광이 심중 의아해하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몇 해 전에…… 탈북 한 방여옥이라고 40대 여성이…… 중국 위조 여권을 들고 입국했는데.”
“…….”
“며칠 전에 대련 공항을 통해 중국에 입구하려는데…… 공항 출입국 사무소 직원에게 우리 한국 여권을 압수당하고 잠시 출입국 사무소에 억류되었다가…….”
“…….”
“현재 대련 공안국에 송치 및 구금 중이야.”
“…….”
“몇몇 의문이 있는데…… 대련 공항의 출입국 사무소 직원이…… 방여옥이 몇 해 전에 중국 위조 여권으로 출국한 것을 알고 있었다는 거야.”
“…….”
“그리고 대련 공안국이 현재 이렇다 할 죄명이나 혐의를 밝히지 않고 계속 구금 중인 것이…….”
“…….”
“혹시라도 북한으로 넘기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돼.”
“…….”
“방여옥은 평범한 탈북민이라 외교부에서 크게 신경을 쓰는 눈치가 아니야.”
“…….”
“필요 이상으로 공안국이 그녀를 물고 늘어지는 것이 영…….”
박영광이 몇몇 의문점을 입에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