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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S의 천재 스파이 (76)화 (76/208)

NIS의 천재 스파이 (76)

이중 스파이

한참 후.

얼추 고기로 배를 채우고 소주를 세 병이나 비웠다. 연후, 입가심으로 사이다와 콜라를 각기 한 병씩 시켰다.

박영광이 상의에서 담뱃갑과 라이터를 꺼내더니 이내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제발 좀! 그놈의 담배! 좀 끊으세요. 네에?”

차은성이 담배 연기에 짜증 냈다. 하지만 박영광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동안…… 이중 스파이에 관해 알아봤다.”

박영광의 말에 차은성이 흠칫했다. 긴장한 눈빛을 띠며 담배 연기를 후우 뿜는 박영광을 보았다.

“……정보의 질이나 보안 등급을 감안할 때. 원장과 1, 2차장. 그리고 국장급들만이 해당 정보에 접근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

“원장과 1, 2차장은 이중 스파이 혐의에서 제외하고.”

“뭔 소리예요? 당연히 원장과 1, 2차장을 포함해야죠. 그게 원칙이잖아요?”

차은성의 물음에 박영광이 담배를 물며 툭 던지듯 말했다.

“너, 제정신이냐?”

“…….”

“회사의 머리와 오른팔, 왼팔이야. 그런데 정보를 유출했다고?”

박영광은 원장과 1,2차장에게 혐의를 두지 않았다.

“그 세 사람은 이중 스파이에 대한 조사를 보고받는 위치야. 그리고 세 사람을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은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 가능한 기획조정실장밖에 없어.”

박영광의 말에 차은성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자신 역시 그 세 사람은 혐의 선상에서 은연중에 제외하기 때문이다.

다만 조사에 있어 원칙을 말했을 뿐이다.

“그간 유출된 정보는 국내외를 망라해.”

“…….”

“너도 알다시피 1, 2차장은 국외와 국내를 담당해. 상대방의 업무에 일절 관여할 수 없어.”

“…….”

“그동안 이리저리 알아보며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박영광이 말끝을 흐리며 눈을 반짝였다. 뭔가 소득이 있었던 모양이다.

차은성은 내심 기대했다.

박영광이 진중한 어조로 말했다.

“원장도 1, 2차장도 아니면서 의심 없이 자연스럽게 해당 정보에 접근 가능한 사람!”

“…….”

“몇몇 사람이 용의 선상에 떠올랐고. 그중 가장 유력한 한 사람이…….”

박영광은 이내 꽤 충격적인 이를 언급했다.

“정보통신국장 정재승.”

“예에에?”

차은성은 깜짝 놀랐다. 너무 의외다. 설마 정보통신국장일 줄이야.

“회사와 연관된 거의 모든 정보가 정보통신국을 거쳐. 그 말은 정보통신국장 정재승이 거의 모든 정보에 접근 가능하다는 거지.”

박영광이 담배 연기를 후우 뿜었다.

“정말!”

차은성이 신경질 내며 손을 들더니 얼굴 앞에서 어른거리는 담배 연기를 이리저리 흩어 놓으며 물었다.

“확실한 겁니까?”

“모르지.”

박영광의 말에.

“예?”

차은성은 당황했다.

박영광이 확실한 증거를 잡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사이.

박영광은 물이 반쯤 든 종이컵에 피우던 담배꽁초를 퐁당 빠트렸다.

“이제부터 조사해서 알아봐야지.”

“헐!”

차은성은 어이가 없었다.

박영광이 차은성을 보며 씩 웃었다. 그 모습에서 뭔가 불길한 느낌을 받은 차은성이 급히 말했다.

“저 물고 늘어지지 마세요.”

“은성아…….”

“안 합니다. 안 해요.”

“내가 가장 믿는 놈이 너 말고 또 누가 있냐? 응?”

“안 한다고요!”

차은성이 목소리를 높였다.

“얌마. 너 지금 하는 일도 없잖아. 그리고 회사 내부 사람이 하면 자칫 정재승 국장의 귀에 들어갈 수도 있다고.”

“감찰실 있잖습니까? 걔네들더러 조사하라고 하세요.”

“국장이다. 응? 감찰실에서 잘도 국장 뒷조사를 하겠다. 설사 한다고 해도, 정재승 국장의 귀에 안 들어갈 것 같으냐?”

박영광의 말에 차은성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

정재승 국장의 귀에 들어갈 확률이 높다.

“당분간 너를 팀장으로 하는 새 팀이 꾸려지기 전까지 넌 일도 없고 회사 밖에 있으니, 보안이란 측면에서 보면 네가 딱이야.”

“삼촌!”

차은성이 재차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정재승 국장입니다. 말 그대로 NIS맨이라고요.”

“…….”

“정식으로 입사 시험 쳐서 당당하게 들어와 지금까지 열심히 노력하고 일하며 차근차근 성과를 쌓았고. 그 성과를 인정받아 단계적으로 승진에 승진을 거듭하며 지금의 국장 자리에 오른 분입니다.”

“…….”

“게다가 아직도 직원들 중에서…… 정재승 국장이 아프간에서 선교 활동하다가 인질로 잡힌…… 협상 과정에서 죽은 부하 때문에 울면서 원장에게 대들었던 정재승 국장을 기억하는 이들이 있다고요.”

차은성은 부르짖듯이 힘주어 말했다.

“사내에서 정 국장님을 좋아하는 직원들이 하나둘이 아니잖습니까? 아닌 말로 몇몇 직원들은 멘토로 여깁니다.”

“…….”

“모 영화 때문에 직원들이 정재승 국장을 뒤에서 킹스맨이라고 부릅니다. 그 정도로 위아래의 신망이 두텁습니다. 아래 부하들이 믿고 따르고, 상사들이 든든하게 생각해서 관련 업무를 믿고 맡깁니다.”

“…….”

“그 누구도 정재승 국장을 이중 스파이로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그의 뒷조사를 하는 것이 이제까지 정재승 국장이 NIS맨으로 살아온 삶을 모욕하는 것으로 생각할 겁니다. 그 누구도 뒷조사를 하지 않으려 할 거라고요.”

미주알고주알 정재승 국장에 관해 시시콜콜하게 이어 말하는 차은성.

정재승 국장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박영광이 말없이 손을 뻗어 사이다 병을 들더니 천천히 유리잔에 따랐다. 이어 반쯤 사이다를 마시고 잔을 내려놨다.

연후.

차은성을 바라보며 또박또박 힘주어 말했다.

“배신은…… 가장 믿는 사람이 하기 때문에 뼈가 시리도록 아픈 법이야.”

“…….”

“나는 혐의를 두고 의심하지만…… 정재승 국장이 아닐 수도 있어. 내가 잘못 짚었을 수도 있단 말이야.”

“…….”

“그래서 더욱더 네가 이 일을 맡아 주어야 해.”

“…….”

“네가 조사해서, 정재승 국장은 아닙니다!”

“…….”

“그렇게 말해 주어야 내가 정재승 국장에 대한 의심을 지울 수 있어.”

“…….”

“딴 놈이 한 조사는 내가 믿을 수 없어. 인정하지도 않고.”

박영광이 차은성에 대한 강한 신뢰를 입에 올렸다.

차은성이 빤히 보더니.

“휴우.”

한숨을 쉬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맡겠습니다. 그런데 만약 정재승 국장이 이중 스파이가 맞다면?”

차은성이 넌지시 묻자 박영광이 거침없이 말했다.

“배신자는…….”

“…….”

“제거해야겠지!”

단호한 박영광이다.

정재승 국장이 이중 스파이라면…….

죽인다!

박영광이 냉혹하게 그런 속내를 내보였다.

차은성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

천천히 손을 뻗어 콜라 병을 쥐었다. 그러곤 고개를 젖히며 단숨에 병을 비웠다.

연후.

탁.

거칠게 병을 내려놓았다.

박영광이 그런 차은성을 보며 말했다.

“네 팀원들을 죽이는 데 결정적인 조력을 한 이중 스파이다!”

차은성이 천천히 두 눈을 내리감으며 말했다.

“맞다면!”

“…….”

“확실하다고 확신이 들면!”

차은성이 눈을 뜨며 박영광을 보았다.

“제가 처리합니다!”

차은성의 눈에서 형형한 빛이 번쩍였다.

싸늘하다!

죽이고자 하는 살의를 거침없이 내뿜었다.

그 모습에 박영광이 살며시 웃었다.

씨이익.

그와 차은성이 속한 세계는 냉혹하고 잔인하다. 철저히 사람으로서의 감정을 죽이고 냉철한 이성으로 모든 것을 대해야 한다.

친형제나 마찬가지이고 생사고락을 같이한 동료라고 해도, 배신자로 판명되면!

가차 없이 머리를 날려 버려야 한다. 배신자는 그 어떤 경우에라도 용서할 수 없기 때문에!

*    *    *

그날 저녁.

차은성이 테이블에 앉아 머그잔의 커피를 마시며 노트북 모니터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박영광에게서 받은 SD 메모리 카드.

정재승 국장에 관한 정보가 예의 카드에 들어 있었고 노트북을 통해 해당 정보를 아주 꼼꼼하게 수여 회에 걸쳐 보고 또 보았다.

“으음.”

차은성은 침음을 흘렸다.

노트북 모니터에 뜬 정보에서 별다른 특이 사항은 눈에 띄지 않는다.

정말 이중 스파이라면, 일절 흔적을 남기지 않을 것이다.

흔적을 남길 정도로 하수가 아닌 정재승 국장이다. 오히려 흔적이 없는 완벽에 가까운 깔끔함이 의심스럽다.

정말 이중 스파이가 아니기에 깔끔할 수도 있지만.

모니터의 정보만으로 정재승 국장이 이중 스파이라고 단정 내릴 수는 없었다.

차은성은 정재승 국장이 아닌 가족 관련 정보들을 훑기 시작했다.

“기러기 아빠라…….”

부인과 자녀들이 모두 미국에 가 있다. 미국의 주택은 몇십만 불짜리다. 하지만 국내 모든 재산을 처분하고 장만한 것이니, 딱히 돈과 관련하여 문제가 될 것은 없다. 이상한 점도 없고.

자녀들이 소소한 문제가 몇 있긴 하지만. 눈에 확 띄는 문제는 없다. 다만 부친이 좀 의심스럽다. 남자가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만약 이중 스파이라면 배신한 이유가 있을 텐데.”

차은성은 중얼거리며 정재승 국장이 금전적인 물욕 때문에 이중 스파이가 되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가능성은 있지만.”

차은성이 중얼거리며 왼손을 옆으로 뻗었다. 머그잔을 쥐고 천천히 입으로 가져갔다.

*    *    *

이틀 후.

기러기 아빠인 정재승 국장은 혼자서 ×× 원룸에서 살고 있다.

차은성은 폰을 꺼내 시간을 보았다.

오전 6시 42분.

이내 폰을 집어넣고 차은성은 주차장을 바라보았다. 눈에 들어오는 정재승 국장의 승용차.

연식이 7년이나 지난 중형차였다. 아무래도 새 차를 구매할 때가 된 것 같은데.

‘가족에게 보내야 하는 돈 때문일까?’

차은성이 심중 중얼거릴 때였다.

저벅저벅.

발자국 소리가 울렸다.

*    *    *

차은성은 정재승 국장이 출근한 것을 확인하고 그가 사는 원룸으로 올라갔다. 뭔가 단서가 없을까, 하는 생각에 정재승 국장이 사는 원룸을 살펴보려 했다.

수십여 년을 NIS에서 보낸, 현직 국장이다.

그런 이유로 차은성은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꼼꼼하고 주의 깊게 원룸 출입문을 비롯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살폈다.

소지한 폰으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찍고 영상으로 촬영했다.

출입문, 신발장, 운동화, 슬리퍼, 액자 등등.

무단 침입자를 염두에 두고 문틈에 끼워 둔 머리카락.

아무렇게나 팽개쳐 둔 것 같은 신발과 슬리퍼.

신문이 놓여 있는 위치와 각도 등.

모든 것이 누군가가 원룸에 침입하였고 원룸을 훑어보았다는 것을 알리는 경보일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차은성은 신중하고 또 신중했다. 자신이 왔다 간 흔적을 일절 남기지 않으려고 애썼다.

*    *    *

한참 후.

정재승 국장이 혼자 사는 원룸은 평범했다. 이상한 점이 없었다. 싱크대에는 설거지를 하지 않아 더러워진 그릇이 잔뜩 쌓여 있었고. 청소를 하지 않아 방 여기저기가 먼지투성이였다.

차은성이 눈살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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