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NIS의 천재 스파이 (75)화 (75/208)

NIS의 천재 스파이 (75)

“누굴까?”

에나가 중얼거렸다.

“…….”

“한국 정부의 누가아아아아!”

“…….”

“나아아아! 에나 니켈슨을 이렇게 엿 먹인 걸까!”

에나가 목이 터져라 고성을 질렀다.

“…….”

쟈넷은 침묵했다.

“어쩐지 이상했었어. 공항에서부터 NIS가 날 미행했을 때, 한국 정부가 개입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야 했는데. 내가 그 생각을 하지 못했어.”

심하게 후회하며 자책하는 에나였다.

“조금만 빨리 한국 정부의 개입을 알아챘더라면, 모든 상황이 아마 지금과는 판이하게 달랐을 거야.”

“…….”

“한국 정부의 개입을 역이용해서 엄청난 차익을 실현했을 거야. 그리고 마음껏 한국 정부를 비웃으며 뉴욕행 항공기를 탔을 거야. 승자로서 기쁨과 희열을 내 마음껏 만끽하면서 말이야.”

에나는 분노로 인해 미칠 것 같았다. 이내 모든 것이 엎질러진 물과 같다고 생각하는지, 풀 죽은 어조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훗…… 이미 지나간 일. 후회해 봐야 달라지는 건 없지.”

에나가 천천히 숙인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두 눈동자 하나 가득 서울의 스카이라인이 들어왔다.

“다시!”

에나가 눈에 잔뜩 힘주었다.

“난 다시 돌아온다!”

결연한 눈빛을 띠며 심중 다음을 기약했다.

복수!

그런 에나를 쟈넷이 말없이 지켜보았다.

*    *    *

다음 날 한성 그룹 회장실.

무혐의 처분을 받고 검찰에서 나온 한우종 회장이 만면에 미소 지었다.

“하하하하하.”

모든 것이 잘 풀렸다. 그리고 이번 일로 한성 그룹은 막대한 이문을 챙겼다.

물론 대외비다.

한우종 회장이 좌측 3인용 소파에 앉은 차은성을 바라보았다.

“차 팀장.”

“네.”

“어떤가? 이번 기회에 우리 한성에 들어오는 것이. 내 부장 대우를 약속하지.”

차은성이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저는 월급쟁이에는 관심 없습니다. 그리고 이번 일이 얼추 다 끝난 것 같으니, 마무리를 지은 후에 저는 다시 내곡동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이런.”

한우종 회장이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원장님과 약속한 일!”

차은성이 말하며 한우종 회장을 똑바로 보았다.

“이상 없이 잘 처리해 주십시오.”

“물론이네.”

한우종 회장이 빙긋 웃었다.

“그럼 저는 이만.”

차은성이 일어나며 정중하게 한우종 회장에게 인사했다.

*    *    *

잠시 뒤.

문을 닫고 돌아서던 차은성이 복도에서 한승미와 부닥쳤다.

“그동안 죄송했어요.”

한승미가 사과했다.

“별말씀을. 그럼.”

차은성이 말하며 한승미의 우측으로 걸어갔다. 그녀를 지나가려고 하는데.

한승미가 돌아서며 불렀다.

“차 팀장님.”

차은성이 멈칫거리더니 걸음을 멈추고 섰다. 그러곤 천천히 뒤돌아봤다.

눈에 들어오는 한승미.

“승희 언니도 알고 있어요?”

그녀가 물었다.

차은성은 무슨 말인지 선뜻 알아듣지 못했다. 하여 가만히 한승미를 보았다.

“차 팀장님이 NIS 사람이라는 거요.”

차은성은 한승미가 뭔가 오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뭔가 착각하신 것 같은데. 저와 한승희 사장님은 차장님이 생각하는 그런 사이가 아닙니다. 그저 몇 번 만나 안면이 있을 뿐입니다. 그럼.”

차은성이 말한 후, 뒤돌아보던 시선을 바로 했다. 그러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완만한 걸음으로 복도를 걸어갔다.

저벅저벅.

한승미가 뒤에서 물끄러미 걸어가는 차은성을 바라보았다.

*    *    *

여드레 후.

일련의 수순이 이어졌다.

한조 투금의 로비 대상이었던 정관계의 이들과 언론에 대한 대대적인 검찰 수사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언론에 대한 적극적인 수사 의지는 결여되어 있었다.

언론 권력!

통상 그렇게 부르는, 언론이 가진 힘이라고 말할 수 있는 권력이 얼마나 막강한지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다.

국가 공권력 중 하나인 검찰이 종교와 함께 언론에 너무도 무기력했다.

차은성은 한승미와 함께 마무리에 들어갔다.

에나 니켈슨이 이른바 주식 매수 청구권을 행사했다. 하여 별도의 팀을 꾸려 그녀의 팀과 두어 번 회동하며 협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 시가의 2배.”

“과하시군요. 저희는 현 시가밖에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현재 주가가 계속 하락 중이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동의하지 않으면 차후에는 지금보다 더 낮은 가격으로 주식을 처분해야 할 것이다.

어떻게 보면 협박이었다.

에나 니켈슨은 냉정했다. 일절 자신의 감정을 내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타이거는 풀을 먹지 않죠.”

“앨리게이터가 호랑이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차은성이 한 템포 쉬고 에나 니켈슨에게 말했다.

“한국에서 호랑이는 아주 오래전에 일제에 의해 멸종되었습니다.”

차은성의 말에 에나 니켈슨이 어이없어하더니 돌연 웃기 시작했다.

“호호호호.”

차은성의 조크를 뒤늦게 이해한 것 같다. 그녀의 웃음이 잠시 이어졌다.

연후.

“손해!”

“…….”

“까짓, 본 김에 더 보죠.”

의외로 강하게 나왔다. 차은성에게 밀리지 않으려는 고집이 보인다.

“그런데 저희가 가진 주식이 한조 그룹으로 넘어가면 어떻게 될까요?”

에나 니켈슨. 영리한 여자다. 한조 그룹으로 가진 주식을 넘기면 틀림없이 한조 그룹이 한성 전자를 차지하기 위해 기업 전쟁을 일으킬 것이다.

그것은 한성 그룹으로서는 피해야 하는 상황임을 에나 니켈슨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한조 투금을 내세운 앨리게이터 펀드와 한차례 부딪친 한성 전자다. 아무 피해 없이 멀쩡할 수만은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대미지가 있다는 말이다.

그런 상태의 한성 전자가 과연 그룹 차원에서의 전쟁을 감당해 낼 수 있을까?

아니.

한성 그룹이 감당할 수 있을까?

설사 감당한다고 해도.

크든 작든 대미지는 남을 수밖에 없다.

에나 니켈슨이 에둘러 그렇게 말했다.

차은성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씨익.

이어 담담하게 말했다.

“뭐, 하고 싶으신 대로 하십시오.”

차은성의 말에 에나 니켈슨이 당황이란 감정을 자신도 모르게 내색하고 말았다.

“뭐라고요?”

반문하는 에나 니켈슨이었다.

차은성은 태연했다.

“혹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한조 투금의 한상구 사장이 이번 주가 랠리에…… 한조 그룹은 그쪽의 주식을 살 여유가 없습니다.”

“…….”

“지금 당장 그룹의 자금 경색을 우려해야 하는 처집니다. 그리고 한조 투금을 살리려면 막대한 자금을 한조 투금에 쏟아부어야 합니다.”

“…….”

“뭐, 한조 투금이 그룹 계열사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을 각오한다면 자금 경색은 없겠습니다만.”

“…….”

“한조 투금은 한조 그룹으로서는 한조 생명과 함께 매우 중요한 재정 기반이 되는 금융 관계 계열사라 아마 포기하긴 어려울 겁니다.”

차은성의 말에 에나 니켈슨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녀의 수중에는 한성 그룹을 위협할 수 있는 카드가 하나도 없었다.

상황은 한성 그룹이 칼자루를 쥐었다. 마음대로 칼을 휘두르면 에나 니켈슨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결국 에나 니켈슨은 한성 그룹의 요구대로, 시가대로 가진 주식을 모두 넘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잘 마무리가 되었다.

*    *    *

며칠 후.

막대한 손실을 본 에나와 그녀의 팀원들이 출국했다.

한우종 회장은 관련 팀원들에게 적잖은 금액의 금일봉을 주었다.

“내 마음이네.”

“감사합니다.”

차은성은 사양하지 않았다.

이후.

한우종 회장이 이대로 헤어지는 것이 너무 아쉽다며 한성 호텔 한식당에 회식을 준비했다.

다들 참석하여 회식을 즐겼지만 차은성은 참석하지 않았다.

*    *    *

×× 공원묘지.

부슬부슬 비가 왔다.

우산을 든 차은성.

천천히 걸었다.

노태준을 비롯한 팀원들이 영면한 묘지.

각 묘지마다 국화 한 송이씩 내려놓았다. 그러곤 묘지 정중앙에 한동안 가만히 서 있었다.

투투투투툭.

우산을 때리는 빗방울 소리가 무척 처량한 느낌을 주었다.

“…….”

굳게 다문 입.

차은성은 뭐라 말할 수 없이 울적했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음지에서 활동하다 순직한 이들.

자신의 아버지를 포함. 수많은 이들이 죽었다.

처음부터 알아주기를 원하지도,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대한민국에 태어난 국민으로서 나라를 위해 일하고자 하였고, 그 끝이 지독히도 외로운 죽음임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도망치지 않았다. 등을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음지에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와 국민이라 부르는 이들을 지키는 이로서 남고자 하였다.

천천히.

차은성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아십니까?”

누군가에게 물었다.

“이 세상 어딘가에서 지금도!”

“…….”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

“국민을 위하여!”

“…….”

“활동하고 죽어 가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

“공을 알아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치하해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그들이 있다는 것만!”

“…….”

“가끔은 기억하고 생각해 달라는 겁니다.”

“…….”

“나라와 국민을 지키는 이들을 말입니다.”

차은성은 가만히 눈을 내리감았다.

주룩.

작은 눈물 한 방울이 천천히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자신이 죽은 팀원들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단 하나도 없다. 그저 생각하며 눈물 흘리는 것이 다다.

*    *    *

한 달 후, 초여름. 서울 교외의 모 유명 가든.

룸에 박영광과 차은성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테이블 중앙에 있는 불판에서는 먹음직스러운 한우 채끝살이 맛깔스럽게 구워지고 있었다.

지글지글.

잠깐이란 시간이 지나고.

박영광이 소주를 한 잔 걸치더니 이내 채끝살 두어 점을 한 번에 집어 먹었다. 허겁지겁 먹는 모습에 차은성이 눈살을 찌푸렸다.

“누가 안 뺏어 먹습니다. 좀 천천히 드세요.”

박영광이 우걱우걱 씹으며 대꾸했다.

“내 배가 놀라서 그래. 이게 얼마 만에 먹는 한우냐?”

“감사합니다. 삼촌.”

“응?”

차은성의 말에 박영광이 어리둥절했다.

“고생했다고 이렇게 한우 고기도 사 주시고요.”

차은성이 고마워했다.

그러자 박영광이 씹던 것을 꿀꺽 삼키더니 어림도 없다는 어조로 말했다.

“은성아.”

“네.”

“짱구 굴리지 마라.”

“네?”

차은성이 반문하며 영문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

“…….”

“내가 네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어. 이게 어디서 머리를 쓰고 그래.”

“크으…….”

차은성이 고개를 푹 숙였다.

안 통한다.

은근슬쩍 박영광에게 계산을 떠넘기려고 했는데.

“짜식이. 한우종 회장에게서 두둑하게 금일봉을 받았으면 알아서 재깍 한턱 쓸 것이지.”

박영광이 탓했다.

차은성이 고개를 들어 맞은편에 앉은 박영광을 보았다.

“금일봉은 또 어떻게 아셨어요?”

박영광은 대꾸하지 않았다. 쌈을 집더니 잘 구워진 채끝살 한 점을 척 올렸다.

“혹시 저 모르게 사람을 붙이셨어요? 아니면, 제 몸 어딘가에 저도 모르는 도청 장치를 숨겨 두셨어요?”

묻는 차은성.

도무지 알 수가 없다는 속내를 내보였다. 박영광이 어떻게 자신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는 건지 정말 궁금하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는 말은 지금 쓰기에 딱 적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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