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NIS의 천재 스파이 (74)화 (74/208)

NIS의 천재 스파이 (74)

이틀 후. 서울 중앙 지검 입구.

기자들이 잔뜩 몰려와 있었다. 다들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 기자들이 정면과 인근을 연방 힐긋거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부우웅.

한 대의 차가 중앙 지검 입구 앞으로 와 섰다.

끼익.

그러자 기자들이 일제히 해당 차량을 바라보았다.

설마?

다들 기대 어린 눈으로 차량을 보았다.

그사이.

차에서 몇몇 이들이 내렸다.

그중 한 사람.

한성 그룹 회장 한우종.

그를 본 기자들이 일순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우르르 떼로 몰려갔다.

“한 회장님.”

“회장님.”

기자들이 애타는 어조로 한우종 회장을 불러 댔다.

그러자 대기해 있던 검찰 관계자들이 즉각 움직였다. 그들은 재빨리 한우종 회장에게 다가가 에워쌌다. 그러곤 자신들의 몸으로 벽을 만들어, 몰려드는 기자들을 막아섰다.

검찰 관계자들은 기자들이 한우종 회장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무진 애를 썼다.

하지만 여의치 않았다. 불도저 같은 기세로 기자들이 달려들었다.

기자들은 악착같이 한우종 회장 가까이 다가가려 했다. 그 때문에 기자들과 검찰 관계자들 사이에서 몸싸움이 일어나고 꽤 거친 실랑이가 수여 회 오갔다.

“밀지 마십시오.”

“이러시면 안 됩니다.”

“거 좀. 취재 좀 합시다.”

“사람들이, 정말 너무하네. 국민의 알 권리 몰라요.”

“인터뷰 좀 하자는데 되게 빡빡하게 구네.”

한편.

카메라를 소지한 이들이 한우종 회장을 찍고 플래시가 쉴 새 없이 펑펑 터졌다.

적잖게 소란스러워지자 한우종 회장이 천천히 몰려든 기자들을 둘러봤다.

“자자. 이러지들 마시고…… 이 사람이 인터뷰에 응할 테니 다들 질서를 지켜 주셨으면 합니다.”

한우종 회장은 여유가 넘쳤다. 그가 그렇게 나오자, 검찰 관계자들도 잠깐의 인터뷰를 허용했다.

*    *    *

잠깐이란 시간이 지나고.

두어 명의 기자가 테이프를 칭칭 감은 마이크 다발을 한우종 회장에게 건넸다.

한우종 회장이 멋쩍은 듯이 흐릿하게 웃더니 양손으로 마이크 묶음을 받아 들었다. 이어 기자들의 물음에 침착하게 답하기 시작했다.

“공정위가 검찰에 회장님을 고발했는데. 지금 심정이 어떠십니까?”

“지금 심정은 담담합니다.”

한우종 회장이 슬쩍 미소를 지었다.

“제가 혐의가 있으면 검찰이 법에 따라 절 사법 처리 할 겁니다. 그리고 혐의가 없으면 풀려나겠죠.”

한우종 회장은 흔들림이 없었다. 무척이나 침착했다.

“공정위가 말한 대로 계열사 간 일감 몰아주기와 협력업체와의 부당 거래가 있었습니까?”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긴 하지만. 저희 한성 그룹은 그런 적이 없습니다. 정상적으로 적법한 절차에 의해 계열사 사이에 거래가 있었고, 협력업체와의 부당 거래는 사실무근입니다.”

한우종 회장이 딱 잘라 말하며 부인했다.

자신만만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으로 켕기는 바가 없잖아 있는 한우종 회장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속일 뿐 겉은 태연, 그 자체였다.

“검찰이 뭔가 오해를 한 것 같은데…… 일단은 성실히 검찰 조사에 응하겠습니다.”

“회장님. 최근 한성 전자의 주가가 이상 폭등 했는데, 혹 앨리게이터 펀드와 회장님의 이번 검찰 출두 사이에 뭔가 연관이 있습니까?”

갑자기 꽤 날카로운 질문이 훅 들어왔다.

한우종 회장은 동요하지도, 당황하지도 않았다. 아무 일 없다는 듯 차분하게 말했다.

“글쎄요. 그건 저로서는 알 수가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최근 저희 한성 전자의 주가가 이상 폭등 한 것은 분명 앨리게이터 펀드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기자분들이 저보다 더 잘 알고 계실 겁니다.”

한우종 회장이 언뜻 서운함을 내비쳤다.

한조 투금의 로비에 넘어간 한미일보와 TBC 등 몇몇 언론 매체가 이번에 반한성의 노선을 걸었다.

국내 최고 재벌 그룹으로서, 국내 광고업계의 최고 광고주로서 손을 썼지만 먹히지 않았다.

앨리게이터 펀드와 한조 투금의 로비가 상상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한우종 회장은 몇몇 언론 매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대놓고 그런 마음을 내보이진 않았다.

그사이.

한 기자가 뜻밖의 질문을 던졌다.

“한성 전자의 구미 공장 화재에 이어 공정위의 고발이 며칠 간격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회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우종 회장이 질문을 한 기자를 보았다.

“글쎄요. 저희 한성 전자의 구미 공장 화재는 실화로 보고받았습니다. 그리고 공정위는 국가기관이 아닙니까? 공장 화재와 공정위 고발을 무슨 음모론의 관점에서 보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한우종 회장의 말에 예의 모 기자가 재차 질문했다.

“회장님의 검찰 조사가 한성 전자의 주가에 영향을 미치겠습니까?”

한우종 회장이 슬며시 웃더니.

“그건 제게 물으실 것이 아니라 주식시장과 투자가들에게 물어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만.”

다소 여유롭게 기자의 질문을 받아넘겼다. 그러자 몇몇 기자가 가볍게 웃었다.

“하하.”

한편.

한우종 회장이 둘러싼 기자들을 천천히 돌아봤다.

“자, 질문은 이 정도로 하고. 제가 검찰 조사를 받을 수 있게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한우종 회장의 말에 주위에 서 있던 검찰 관계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길을 터 주십시오.”

“뒤로, 뒤로.”

“자자. 비키세요. 비키시라고요.”

검찰 관계자들이 길을 트며 기자들을 뒤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거참.”

“조금만 더 합시다.”

“어머. 어딜 밀고 그래요. 성희롱으로 고소해요.”

“자자. 이쯤 합시다.”

“충분히 인터뷰들 하지 않았습니까?”

“다들 뒤로 물러서세요.”

기자들과 검찰 관계자들 사이에 입씨름이 몇 회 오갔다.

지켜보던 한우종 회장은 이내 두 명의 검찰 관계자와 함께 재빨리 중앙 지검 내로 걸어 들어갔다.

그 모습을 다수의 방송국 카메라가 따라잡으며, 한우종 회장의 얼굴을 줌인으로 당겼다.

한편.

기자들이 아우성치며 중앙 지검 입구로 몰렸다.

검찰 관계자들은 그런 기자들을 막느라 아주 진땀을 뺐다.

아수라장까지는 아니더라도 난장판이라고 말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큰 소란이었다.

*    *    *

주식시장이 거의 실시간으로 반응했다.

한성 전자의 주식이 폭락하기 시작하고 그 속도가 눈 깜짝할 사이에 가속화되었다.

그에 더해, 기관투자가와 증권사들이 적극적인 투매에 나섰다.

한성 그룹 한우종 회장의 검찰 조사로 매수세가 주춤거리는 시황에서 그와 같은 적극적인 투매에 개미들이 의아해했다.

“뭔가 이상한데?”

“혹시 한우종 회장이 구속되는 거 아니야?”

“설마?”

“이 사람아. 설마가 사람 잡아.”

“기관투자가들과 증권사들이 적극적으로 투매 포지션을 잡는 것이, 뭔가 있는 것 같은데.”

“있긴 뭐가 있어. 앨리게이터 펀드가 계속 한성 전자 주식을 매수하고 있다고. 지금은 숨 고르기야. 곧 다시 폭등할걸.”

개미들의 의견은 분분했다.

그런데 얼마 있지 않아 한성 전자의 공시가 떴다.

―액면 분할.

금번 앨리게이퍼 펀드의 주식 매수로 주가가 이상 폭등하고…… 주당 500만 원 선이 넘는 현 상황에서 부득불 주식의 액면가를 나누어…….

한성 전자의 공시는 시황에 결정타였다.

공급이 수요의 2배가 된다. 필연적으로 주가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앨리게이터 펀드의 주식 매입에 대한 한성 전자의 주가 방어는 예상 밖이었다. 그 누구도 액면가 분할이란 방법을 예상하지 못했다.

상황이 그렇게 되자, 한성 전자의 공시에 개미들이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우라질!”

“어쩐지 기관투자가들과 증권사들이 적극적인 투매 포지션을 취한다 했어.”

“빌어먹을.”

“개자식들이, 이미 다 알고 있었어.”

“뭣들 해. 어서 팔아야지. 지금 못 팔면 본전도 못 건져.”

투매라는 급선회는 시황에 엄청난 혼란을 야기했다. 앞으로 한성 전자의 주가는 계속 떨어진다. 바닥을 치고 반등하기까지 시일이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 짧게는 몇 달이고, 길면 연 단위가 될 수도 있다.

그에 즉각적인 급폭락이 시작되었다. 한성 전자 주가는 하향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무섭게 하락했다. 그 속도에 탄력이 붙었다. 아닌 말로 곤두박질이었다.

개미들은 한성 전자의 주식을 팔려고 혈안이었고, 외국계 투자가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어쩔 줄을 몰랐다. 급히 보유한 한성 전자 주식을 매도하려고 하였으나, 이미 폭락장이라 매수세가 아예 없었다.

주가 흐름은 급폭락이었고, 그것은 누구도 거슬릴 수 없는 대세로 이내 굳어졌다.

*    *    *

이틀 후.

경제나 주식 관련 방송 매체들이 속보로 한성 전자의 액면가 분할을 보도했다.

한조 투금은 핵폭탄을 맞은 것처럼 충격에 휩싸였다.

정병옥 전무가 적극적으로 나서며 긴급 임원 회의를 열었다.

한상구 사장을 필두로 임원들은 한성 전자의 액면가 분할을 논의하였다.

“저희에게 큰 피해는 없을 것 같습니다만.”

“맞습니다. 손실은 앨리게이터 펀드가 볼 겁니다. 저희는 이미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수수료를 챙기지 않았습니까?”

“이번 거래는 앨리게이터 펀드가 주도적으로 한 겁니다. 저희는 해당 거래에 일절 관여하지 않았지 않습니까?”

임원들은 낙관적이었다. 법적으로, 도덕적으로 그들은 문제 될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책임질 것이 없는 자의 여유라고나 할까? 다들 태연하고 여유로웠다.

한데, 한 사람은 그렇게 여유로울 수 없었다.

한상구 사장.

얼굴이 파리한 것이 어딘가 아파 보였다.

정병옥 전무가 이를 이상하게 여겨 물어보았다.

“사장님. 어디 몸이 안 좋으십니까?”

“아, 아니.”

한상구 시장이 급히 말을 얼버무렸다.

정병옥 전무는 순간 느낌이 이상했다. 뭔가 싸한 기운 같은 것이 등줄기를 훑어 내리는 것 같았다.

연륜이라고 할까?

오랜 경험상 한상구 사장에게 뭔가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눈을 두어 번 깜빡이며 한상구 사장을 보던 정병옥 전무는 순간 뇌리를 스치는 한 상념에 흠칫하고 말았다. 이어 무의식적으로 소리치고 말았다.

“설마!”

대경실색하는 정병옥 전무였다.

임원들이 의아한 눈으로 정병옥 전무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왜 저러시지?

임원들 모두 그런 감정을 느꼈다. 이내 그들의 귀에 자지러지는 정병옥 전무의 외침이 들렸다.

“저 모르게 회사 공금으로 한성 전자의 주식을 매집하셨습니까? 사장님.”

따져 묻는 정병옥 전무였다.

그 순간.

“흑!”

“허억!”

“커, 컥!”

임원들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막대한 손실이 불가피해진다.

현재 한성 전자 주가는 연일 하락세다. 매도가 대세이고 매수가 전혀 들어오지 않고 있다.

그런데 한상구 사장이 회사 공금으로 한성 전자 주식을 매집했다?

다들 아연실색하고 망연자실했다.

“…….”

임원들은 할 말을 잊고 멍하니 한상구 사장을 바라보았다.

한편.

정병옥 전무가 다그쳐 물었다.

“얼마나 사들이신 겁니까? 자금을 얼마나 지출하셨습니까?”

“그, 그게…….”

한상구 사장은 말을 더듬었다. 회사 공금뿐만 아니라 신용거래까지 했다.

앨리게이터 펀드가 한성 전자를 타깃으로 주식을 매수하며 주가가 연일 폭등세라, 그만 욕심에 눈이 멀고 말았다. 하여 아주 과감하게 질러 버렸다.

상황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올인 따윈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장님! 얼마나 투입하셨습니까? 대체 얼마나 지출하셨느냔 말입니다아아아!”

정병옥 전무가 앉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양손으로 회의용 테이블을 짚었다. 목이 터져라 외치는 모습이 거의 반쯤 이성을 잃은 것 같다.

한상구 사장은 뭐라 말하지 못하고 힘없이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그 모습에 정병옥 전무가 쉬지 않고 계속 다그쳐 물었다. 임원들은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오너 리스크!

최악의 사태가 한조 투금에 닥쳤다. 위기다!

*    *    *

다음 날 한조 시그너스 호텔 로열층.

에나가 창가에 서 있었다. 그녀의 곁에 쟈넷이 서서 눈치를 보았다.

“디렉터.”

“…….”

에나는 침묵했다.

뉴욕의 오너가 한국 정부가 개입한 이상, 손절매하고 돌아오라고 지시했다.

직후, 한우종 회장이 검찰에 출두하고 한성 전자가 액면가 분할이란 기상천외한 수로 장세를 반전시켰다.

활활 타오르는 불에 기름을 끼얹어 버린 것처럼 현재 시황은 매도 일변도다. 걷잡을 수 없는 폭락세라 추가 자금의 투입이 불가피하다.

그런데 뉴욕의 오너는 추가 자금 지출을 불허했다.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실패해 본 적이 없었어.”

에나가 힘없이 중얼거렸다.

“언제나 승자는 나였어. 그런데…… 그런데 한국에서 내가…….”

에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쟈넷은 그런 에나를 지켜보며 입을 다물었다.

“…….”

헤지펀드나 선물 투자와 같은 세계에서 10년을 버티는 이는 찾아보기 어렵다.

다들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나이 서른이 채 되기도 전에 은퇴한다.

하지만 에나는 달랐다. 그녀는 승부사였고, 언제나 승부에서 최종 정리자가 되며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헤지펀드계의 슈퍼스타!

그와 같았다. 그런 에나가 이번 한국 투자에서 패배의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쟈넷이 천천히 입을 뗐다.

“디렉터.”

“…….”

“상대가 한성 전자나 한성 그룹이 아니었습니다. 한국 정부였습니다.”

쟈넷이 은근 한국 정부를 강조했다.

일개인인 에나가 국가인 한국 정부를 상대로 이기지 못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다. 패배가 당연하다. 그러니 그렇게 패배 의식에 시달리지 마라.

쟈넷이 에둘러 에나를 위로했다.

그것을 모를 에나가 아니었다.

“훗.”

그녀는 실소하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서울의 스카이라인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국이란 나라…… 참 묘하지.”

“디렉터…….”

쟈넷이 가만히 에나를 불렀다.

“틀림없이 알고 있었어!”

확신하는 에나였다.

“한국 정부가 우리 앨리게이터가 한성 전자를 노리는 것을 사전에 알고 철저히 계획을 세워 두었던 거야. 그런데 멍청하게도 나는 뒤늦게 그것을 눈치챘어.”

에나가 고함쳤다.

“…….”

쟈넷은 입을 다물고 가만히 에나를 보았다.

“우리 안에 있는, 날 유혹하는 한성 전자라는 미끼에 혹해…… 내 발로 우리 속으로 걸어 들어간 거야. 멍청하게도 말이야아아아!”

에나가 재차 고함치며 오른손을 뻗었다.

탁.

그녀는 손바닥을 펴 유리를 짚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절망이란 감정이 묻어날 것 같은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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