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S의 천재 스파이 (73)
다음 날 오전.
국내 포털과 각 언론사에 돌연 공정위 관련 기사가 떴다.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와 협력업체와의 부당 거래로 한성 전자에 역대급 과징금인 2천3백억 원을 부과한다는…….
한창 거래 중이던 장에, 해당 기사는 큰 충격을 주었다.
“맙소사.”
“2천3백억 원이라고?”
“한성 전자, 요즘 왜 이래?”
“공장 화재에다가 공정위 과징금이라니. 뭔 악재가 이렇게 연이어져.”
“역대급 과징금이라고.”
“이거 혹시 정부가 한성 죽이려는 거 아니야.”
“사람하곤. 그럼 세무감사가 들어갔겠지.”
“모르지. 정부가 다른 방식으로 한성을 치려는 건지도.”
“그나저나 간신히 반전한 주가가 자칫 잘못하면 반 토막 나겠는데.”
일부 개미들이 중얼거리며 전광판을 보았다. 한성 전자 주가가 무섭게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삽시간에 매도세가 매수세를 압도하고 말았다.
기관투자가들, 증권사, 개미들, 외국계 투자가들.
그들 모두 앞다투어 투매에 나섰다. 그렇게 되자 시장이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그리 오래지 않아 서킷 브레이크가 발동되었다.
* * *
한조 투금 트레이딩 룸을 내려다보며 에나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얼마라고요?”
“460만 원 선입니다.”
좌측에 서 있는 임우진 부장이 대답했다. 주식이 너무 빠져서일까? 임우진 부장의 안색이 무척 흐렸다.
“더 투입하세요.”
에나가 단호한 어조로 말하자.
“여기서 관망이 아니라 추가 매숩니까?”
임우진 부장이 당혹스러운 어조로 반문했다.
“자금은 충분하잖아요.”
태연하게 임우진 부장의 말을 받아넘기는 에나였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시장에서 이상하게 생각할 겁니다.”
임우진 부장이 우려조로 말하자.
“상관없어요. 아니, 우리 앨리게이터가 한성 전자 주식을 매수 중임을 적극적으로 알리세요.”
“그럼?”
“맞아요. 계획을 앞당겨 화려하게 무대에 등장하는 겁니다.”
“나쁘진 않습니다. 어쩌면…….”
임우진 부장이 기대의 눈빛을 반짝였다.
“앨리게이터 펀드가 한성 전자 주식 매수의 주체임을 시장에 알린다면 폭락세가 급반전하며 폭등세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 같군요.”
임우진 부장이 눈웃음쳤다. 에나 니켈슨이 무엇을 노리는지 알아챘기 때문이다.
에나가 임우진 부장을 재촉했다.
“서둘러 줘요.”
“네. 미스 에나.”
“한조 투금의 영향력하에 있는 각 언론 매체를 이용해 대대적으로 앨리게이터 펀드를 알려요.”
“알겠습니다.”
임우진 부장이 정중하게 머리를 숙였다 들었다. 그리고 서둘러 뒤돌아섰다.
걸어가는 임우진 부장을 에나가 바라보며 서늘한 눈빛을 띠었다.
계획을 아주 조금 앞당길 뿐이다.
* * *
잠깐이란 시간이 지나고.
트레이딩 룸을 내려다보는 에나의 곁으로 쟈넷이 다가와 섰다.
“디렉터.”
“알고 있어!”
“네?”
쟈넷이 반문하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한성 그룹이 우리가 한성 전자를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그럴 리가요?”
쟈넷이 당황조로 반문했다.
“확실해!”
확신하는 에나였다.
쌩긋.
그녀가 웃으며 눈을 반짝였다.
“상황이 아주 재미있게 돌아가고 있어.”
에나가 들뜬 어조로 중얼거리며 임전의 각오를 다졌다.
* * *
에나의 의도에 시장이 마구 요동쳤다.
“뭐라고?”
“앨리게이터 펀드가 한성 전자 주식을 매수하고 있다고?”
“그럼.”
“맞아. 그럴 줄 알았어. 어쩐지 이상하게 한성 전자 주가가 단기 급등하더라니.”
“빨리 한성 전자 주식을 사아아!”
“이건 무조건 급등이야.”
“주가가 급상승할 게 뻔하다고.”
기관투자가, 증권사, 개미, 외국계 투자가들 등.
죄다 한성 전자의 주가가 폭등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무조건적인 매수 포지션으로 돌아섰다.
* * *
다음 날.
차은성은 모니터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으음. 세게 나오는데.”
“팀장. 주가가 급상승 중입니다.”
“이대로 놔두면 폭등 장세가 이어질 것 같습니다만.”
“어떻게 하죠? 팀장.”
류성찬을 비롯하여 팀원들이 차은성을 돌아봤다.
태연한 차은성.
“이렇게 나온다면 할 수 없지.”
느긋했다.
팀원들은 차은성의 여유에 어안이 벙벙했다.
* * *
30분 후. 한성 그룹 회장실.
“저쪽이 생각 외로 세게 나옵니다.”
“흠. 3단계를 염두에 두고 있나?”
한우종 회장이 좌측 3인용 소파에 앉은 차은성을 보았다.
차은성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육지계가 불가피합니다.”
한우종 회장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심중 작은 불안을 느끼는 그였다.
만에 하나 정부가 그의 뒤통수를 친다면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
정부를 100% 신뢰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자신은…….
차은성이 한우종 회장의 불안을 알아챘다.
“회장님.”
“…….”
“저희 원장님과 이미 협의가 끝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믿어라?”
“믿지 못하시면 3단계는 성공하지 못합니다.”
“맞는 말이네.”
한우종 회장이 씩 웃었다.
“이미 달리는 호랑이 등에 올라탔네. 내리고 싶어도 내 맘대로 내릴 수 없는 처지라고 할 수 있지.”
“그럼?”
“3단계. 가세!”
한우종 회장이 호기로운 어조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차은성이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 * *
늦은 밤. 한조 시그너스 호텔 로열층.
오른손에 와인 잔을 든 에나가 유리벽 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서울 야경을 바라보며 간간이 와인을 마셨다.
‘어떻게 알았을까?’
에나는 한조 투금이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쟈넷을 통해 알아본 바로는 한조 투금이 이번 일에 있어 매우 만족스러운 보안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을 뿐이다.
정보 유출 경로가 현재 오리무중이다.
다행히 주가가 반등. 매수세가 유지되고는 있지만 마냥 안심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공장 화재에 이은 공정위 과징금.
한성 그룹에서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주가를 방어하고 있다.
“으음.”
에나는 침음을 흘리며 와인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혹시 정부와 한성 그룹 사이에 모종의 교감이 있는 것은 아닐까?’
에나는 의혹의 눈빛을 띠었다. 딱히 증거는 없지만 돌아가는 상황이, 한국 정부의 개입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꿀꺽, 꿀꺽.
와인을 몇 모금 마신 에나가 입에서 잔을 뗐다.
‘정부가 개입했다면 아주 어려운 싸움이 되는데.’
에나는 진한 꺼림을 느꼈다. 한국 정부를 상대로 싸우는 상황은 무조건 피해야 한다. 한국 정부의 개입은 미국 정부와의 갈등을 의미한다.
경제적인 문제가 외교 문제로 비화되어 버리면 미 행정부나 의회에서 문제가 될 소지가 다분하다. 더욱이 앨리게이터 펀드가 한성 전자를 노리는 현 상황에서 불필요한 뜻밖의 잡음들이 생길 수도 있다.
‘한국 내에서 한국 정부와 맞서게 되면!’
에나가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 보았다.
앨리게이터 펀드 VS 한성 전자의 구도가 앨리게이터 펀드 VS 한국 정부가 되어 버린다. 하면, 지루한 소모전 양상을 띨 가능성이 크다.
‘적절치 않아.’
에나는 한국 정부와 맞서게 되는 상황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아무리 앨리게이터가 글로벌 헤지펀드라고 해, 한국 정부를 상대로는 버겁다.
에나가 다시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때.
저벅저벅.
쟈넷이 걸어와 에나의 우측에 섰다. 그러자 에나가 천천히 돌아봤다.
“뉴욕에서 오너께서…….”
침묵한 에나가 순간 긴장의 낯빛을 띠었다.
앨리게이터 펀드의 실질적인 주인이 그녀와의 대화를 원하고 있었다.
에나는 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돌아서며 와인 잔을 쟈넷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쟈넷이 잔을 받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