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S의 천재 스파이 (56)
하르비가 말없이 차은성을 바라보더니 천천히 입을 떼기 시작했다.
“자네. 상식이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고 있나?”
“우린 최악의 경우, 목숨을 잃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피를 흘리는 것은 우리지, 아만이 아니지 않습니까?”
“…….”
“정 싫으시다면 저흰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
“마제드 왕자가 왕이 되는 걸 보고 싶지 않다면 아만이 움직여야 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어느 선까지의 희생은 각오해야겠죠. 자칫 CIA에 노출될 수 있는 위험도 감수해야 할 겁니다. 그리고 CMC와의 교전 상황도 고려해야 할 테지요.”
하르비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직접 움직일 경우, 지출되는 것이 하나둘이 아니다. 적잖은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앞뒤를 따져 보면 차은성의 요구를 수락하는 것이 이익이다. 적어도 아만의 조직원이 죽거나 피를 흘리진 않는다.
“만약 마제드 왕자가 와히브의 왕이 된다면 이스라엘은 와히브에 지부를 신설하고, 상주하며 정보활동을 할 요원들을 파견해야 합니다. 관련 비용도 상당히 지출해야 할 거구요.”
차은성은 이스라엘이 지불해야 할 유·무형의 부담을 입에 올렸다.
말없이 듣고만 있던 하르비가 말했다.
“내일 ……에서 14시에 보기로 하지.”
하르비가 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은성은 태연히 앉아 자연스럽게 주변을 둘러봤다. 혹 지켜보는 이가 없는지, 마음속으로 경계했다.
* * *
이틀 후.
도로를 중심으로 2, 3층의 집들이 어지럽게 각기 자리 잡고 있다.
그중 한 옥상.
망원경을 눈에 댄 중년인 달튼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대기…… 대에기…….”
부하들이 숨은 매복지로 세 대의 검은색 고급 세단이 다가오고 있었다. 해당 차량들이 사전에 세팅되어 있는 대전차지뢰가 매설된 곳에 이르면 폭발이 일어난다. 해당 폭발을 신호로. 집중 공격이 시작된다.
또한 AT 계열의 휴대형 대전차미사일로 무샤드 왕자가 탄 방탄 차량을 날려 버리면, 그것으로 모든 의뢰 완수다.
그런 이유로 달튼은 다소 들떴다.
한편.
망원경으로 바라보는 세 세단이 매복지로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달튼이 들뜬 어조로 연이어 중얼거리는데.
돌연 세 세단이 일제히 서더니 급히 유턴하기 시작했다. 이어 부리나케 속도를 높여 시야에서 멀어졌다.
“뭐야? 왜 저러는 거야?”
달튼이 당황한 어조로 연거푸 중얼거렸다.
“소령님!”
“차량들이 되돌아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합니까? 소령님.”
통신망에서 매복한 부하들이 마구 소리쳤다.
달튼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부하들의 말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의 관심사는 돌연 유턴하여 되돌아간 세 세단이었다.
의뢰를 끝낼 수 있었는데, 돌연 모든 것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달튼은 이유를 몰라 매우 곤혹스러워했다. 의뢰주가 서둘러 의뢰를 종결지어 줄 것을 다그쳤었다. 반대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결국 우려한 대로 탈이 생기고 말았다.
“Fuck You!”
달튼이 신경질적인 어조로 소리치며 망원경을 내렸다.
* * *
얼마 전.
세 세단 중앙.
도로를 주행 중인 세단의 운전석과 조수석에 건장한 두 사내가 앉아 있었다.
뒷좌석에는 체크무늬의 천을 머리에 쓰고 테로 고정한 마흔 중반의 이가 앉아 있었다.
빈 무샤드.
그는 폰이 울리자 별생각 없이 폰을 꺼냈다. 이어 무심코 액정을 바라보는데.
순간.
무샤드 왕자가 흠칫했다. 액정에 뜻밖의 문자메시지가 떠 있었다.
―민 샤르릴 와스와실 칸나스
코란의 구절 중 하나였다.
무샤드 왕자가 자신도 모르게 움찔하고 말았다.
예의 구절은 재앙을 의미한다. 누가, 왜 자신에게 이런 구절을 문자메시지로 보냈을까?
무샤드 왕자가 의문의 눈빛을 띨 때였다.
돌연.
퍽!
좌측 차창에서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는 무샤드 왕자의 눈에 서너 개의 원이 겹친 듯한 흔적이 보였다. 흔적 주변으로 원의 형태로 다수의 실금이 갔다. 마치 거미줄처럼.
무샤드 왕자의 얼굴이 일순 핼쑥해졌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고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방탄유리가 아니었더라면 죽었을 것이다.
사색이 된 무샤드 왕자가 반쯤 얼이 빠져 멍해 있는 사이.
조수석의 경호원이 운전하는 기사를 돌아보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차 돌려! ……저격이야! ……빨리 차 돌려!”
이어 무샤드 왕자를 돌아봤다.
“왕자님. 숙이십시오. 숙여요!”
경호원이 큰 목소리로 머리와 상체를 숙일 것을 종용했다.
해당 상황이 앞뒤의 세단에 전파되는 것은 이내였다.
* * *
차은성은 스코프를 오른쪽 눈에 대고 세 세단의 움직임을 쫓았다.
“훗.”
실소하며 우형광을 불렀다.
“형광아.”
“네. 팀장.”
“수고했다.”
“별말씀을요. 그런데 차량이 의외로 튼튼한데요. 일반 탄으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적어도 나토 탄들 중에서…….”
“누가 저격수 출신 아니라고 할까 봐, 사람 죽일 생각밖에 없어.”
“하하하. 팀장. 직업병입니다, 직업병.”
“CMC는?”
“네.”
“……서남방 2Km쯤 떨어진…… 세 방향에 매복한 것을 확인했습니다. 전형적인 십자포화 사격 위치던데요. 그리고 개중에 몇 놈은 예상하신 대로 휴대형 대전차미사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봐하니 AT 계열 같습니다.”
“모두 몇 명이야?”
“열두 명쯤 될 것 같습니다만, 더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알았다.”
차은성이 말하며 스코프를 해당 방향으로 돌렸다.
“민준아.”
“네, 팀장. 듣고 있습니다.”
“안 들키게 미행 잘해라.”
“네.”
“들켰다 싶으면 무리하지 말고 그 즉시 빠져!”
“네, 팀장.”
“다시 말하지만, 놈들은 프로야. 어설프게 상대하다간 역으로 당할 수도 있어.”
“명심하겠습니다. 팀장.”
“절대! 무리하지 마라!”
“네, 팀장.”
차은성은 황민준과의 통화를 끝냈다.
“아름아.”
“예, 팀장.”
“영상은?”
“잘 들어오고 있어요. 메이드 인 이스라엘이라서 그런지 성능 하나는 끝내주는데요.”
“눈치 못 채게 해.”
“예에. 그렇지 않아도 고도를 조금 높였어요. 그런데도 영상이 깨끗하게 잘 나와요.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이스라엘제 정찰 드론 좀 구매해 주세요. 팀장.”
“알았다.”
차은성이 대꾸하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씨익.
스코프 렌즈에 보이는 세 세단. 매우 다급한 듯 빠른 속도로 시야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차은성이 그 모습을 지켜보며 눈웃음쳤다.
* * *
몇 시간 후.
얼핏 보기에 영국 군복이 연상되는 제복을 입은 중년인.
알 카이바 대령.
차렷 자세로 서 있는 그는 내심 매우 긴장했다.
무샤드 왕자를 대상으로, 불과 몇 시간 전에 저격이 있었다. 그 때문에 몇몇 관련 부서가 발칵 뒤집혔다.
* * *
벌컥벌컥.
거칠게 위스키 병을 들이켜는 무샤드 왕자.
카이바 대령은 긴장감이 감도는 눈으로 무샤드 왕자를 바라보았다.
무샤드 왕자가 입에서 위스키 병을 떼며 카이바 대령을 흘겨봤다.
“누군가? 대령.”
“…….”
“누가 날 노린 거야아아!”
무샤드 왕자가 카이바 대령을 돌아보며 냅다 고함쳤다.
“불과 몇 시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왕자님.”
카이바 대령이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래서?”
“…….”
“아직 알아내지 못했단 말이야?”
소리치며 무샤드 왕자가 카이바 대령을 죽일 듯 노려봤다.
“알아보기에는 시간이…….”
카이바 대령이 말하며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대령.”
“네.”
“짐작 가는 놈들이 있지?”
무샤드 왕자의 물음에 카이바 대령이 흠칫했다.
셰일 오일 메이저.
그들을 언급하는 무샤드 왕자였다.
카이바 대령이 침묵하자 무샤드 왕자가 소리쳤다.
“대령!”
자신의 생각이 맞는지 확인하려는 무샤드 왕자였다.
그가 카이바 대령에게 무언으로 물었다.
자신의 짐작이 맞는지, 틀린지.
자신의 생각에 동의하는지.
무샤드 왕자에게 답해야 하는 카이바 대령은 침묵했다. 굳게 입을 다물고 가만히 무샤드 왕자를 바라보았다.
무샤드 왕자가 험악한 눈초리를 번득이며 카이바 대령에게 대답과 동의를 촉구했다.
천천히.
카이바 대령이 입을 열었다.
“혐의는 있지만 그들이 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아직 없습니다. 왕자님.”
카이바 대령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무샤드 왕자가 고함쳤다.
“그놈들이 증거 따위를 남길 정도로 허술해에에에?”
방이 떠나갈 듯이 고함치는 무샤드 왕자였다.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민 눈치다.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 죽을 뻔하다가 그야말로 천우신조로 살아났다. 그런 까닭에 무샤드 왕자는 자신을 죽이려고 한 자들에 대한 분노를 온몸으로 쏟아 냈다.
“그놈들이 틀림없어!”
확신하는 무샤드 왕자였다.
손에 쥔 술병을 들어 다시 입에 물며 고개를 뒤젖혔다.
꿀꺽, 꿀꺽.
입에 위스키를 들이붓는 무샤드 왕자였다. 죽음의 공포를 체험하였다. 그 공포로부터 벗어나고자 폭음 중이다.
보기에 매우 걱정스러운 모습이라 카이바 대령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고정하십시오. 왕자님.”
무샤드 왕자가 입에서 병을 떼더니 카이바 대령을 마주 보았다.
“고정하게 됐어? 하마터면 내가 죽을 뻔했다고오오!”
무샤드 왕자가 고함쳤다. 그의 언행에서 평소의 냉철함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왕자님!”
카이바 대령이 높지도 낮지도 않은 어조로 무샤드 왕자를 불렀다.
무샤드 왕자가 성난 눈으로 카이바 대령을 보았다.
“분명 저격 전에…….”
카이바 대령이 코란 구절을 입에 올렸다.
무샤드 왕자가 그새 다시 입에 병을 물었다.
꿀꺽, 꿀꺽.
이어 거칠게 위스키를 마셨다.
“아무래도 주의를 촉구하거나 경계를 독려하는…….”
카이바 대령이 말끝을 흐르며 의문을 내비쳤다.
무샤드 왕자를 죽이고자 하였다면, 지금 자신의 앞에 무샤드 왕자가 서 있지 못했을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한창 구상이 진행 중일 것이다.
카이바 대령은 매우 조심스럽게 그 점을 입에 올렸다. 행여 무샤드 왕자의 비위에 거슬릴까? 무척 신경 썼다.
이해한 것일까?
위스키 병을 입에서 뗀 무샤드 왕자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왕자님의 전용 차량은 국가원수급 레벨의 방탄찹니다.”
“…….”
“단발의 저격으로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차량이 아닙니다. 아닌 말로, 자동소총을 전자동으로 놓고 갈겨도 절대 뚫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의미심장한 코란 구절을 문자메시지로 보낸 즉시, 통하지도 않을 단발 저격을 하였습니다. 게다가 메시지를 보낸 자가 어떻게 왕자님의 폰 번호를 알았을까요?”
카이바 대령의 말에 무샤드 왕자가 움칫했다.
“대령. 자네 말은 그럼…….”
“누구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제 생각에는 개인이 아닌 모 정보기관에서 왕자님께 주의하라고…….”
무샤드 왕자가 어리둥절해했다.
“내게 그런 호의를 가진 정보기관이 어디 있다고?”
의문을 내보였다.
“분명한 것은 단발 저격으로는 왕자님을 죽일 수 없다는 겁니다. 해당 방탄 차량을 탄 왕자님을 죽이려면, 못해도 대전차미사일 정도의 화력을 동원해야 합니다.”
무샤드 왕자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용 방탄차는 국가원수나 대통령이 탑승하는 B7 레벨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