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NIS의 천재 스파이 (38)화 (38/208)

NIS의 천재 스파이 (38)

돈만 있으면 된다!

단순한 돈이 아닌, 엄청난 단위의 돈이.

그 돈이면 대한민국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한필승 회장이 혹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뭐, 그런 생각이, 전혀 근거가 없고 틀린 것은 아니다.

선우종은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한조 그룹을 포함한 재계가 돈으로 현 대통령을 당선시켰다.

어디 그뿐인가?

엄청난 돈과 영향력으로 법원의 판결을 제 맘대로 바꾼다.

검찰을 수족으로 부리는 것은 물론이고, 경찰도 애완견처럼 다룬다.

‘국가권력이 일개인에게 이렇게 이용당해야 하다니!’

선우종은 화가 났다. 하지만 현실을 그가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선우종이 한필승 회장을 보며 뭐라 말하려고 입을 떼려는데.

띠리리리리.

벨이 울렸다.

그러자 한필승 회장이 깜짝 놀랐더니 급히 새로 바꾼 폰을 꺼냈다.

폰은 제멋대로 작용했다. 곧바로 스피커 모드로 전환되어 누군가의 음성이 들렸다.

“회장님. 제 경고를 무시하셨군요.”

한필승 회장이 선우종을 일별한 후 손에 쥔 폰을 내려다보았다.

“네놈이 감히!”

“마지막 카드!”

그 말에 한필승 회장이 움찔했다.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서재 책상에 앉았을 때, 마지막 열 번째 카드가 놓여 있었다.

―해상 테크에서 손을 떼십시오!

혹 해상 테크와 관련이 있나 싶어 지난 일주일 동안 경찰과 검찰을 통해 알아보았으나, 결과는 무혐의였다.

폰에서 음성이 들렸다.

“경고를 무시하시다니. 안타깝습니다.”

“누구야? 너 누구야!”

한필승 회장이 소리쳤다.

그러자 폰에서 예의 음성이 들렸다.

“안녕히 가십시오!”

그 말과 동시에.

퍽!

한필승 회장의 좌측 창. 2미터가 넘는 대형 유리가 무엇인가에 뚫렸다.

퍽!

작은 구멍이 생기고, 주변으로 거미줄처럼 다수의 금이 갔다.

그리고…….

퍽!

한필승 회장의 머리 좌측 관자놀이에 총탄이 박혔다.

한필승 회장은 격노한 표정을 지으며 우로 쓰러졌다.

쿠당탕.

선우종은 직면한 상황에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앉은 몸을 좌로 던져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이어 유리창을 돌아봤다.

“저, 저격!”

기함할 듯이 놀란 선우종이다.

대한민국에서.

자신의 눈앞에서 저격이라는 상황이 일어나다니. 대경실색하고도 남을 일이다.

하지만 NIS 2차장이란 관록이 선우종으로 하여금 즉각 상황에 대응하도록 그를 움직였다.

“누구 없어! 없느냐고!”

선우종이 고래고래 소리치자.

스카이 바 입구에서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우르르 쏟아져 들어왔다.

*    *    *

이틀 후.

차은성은 박영광의 호출을 받았다.

휑한 모 빌딩 옥상.

박영광은 우측 옆에 서 있는 차은성을 돌아보며 크게 화냈다.

“너! 미쳤어?”

차은성은 담담했다.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그리고 왜 그렇게 화를 내세요?”

이해할 수 없다!

차은성이 그런 심정을 나타냈다.

“한조 그룹 회장 한필승!”

박영광이 언성을 높였다.

“아…… 그 사람. 뉴스를 봤습니다. 죽었다죠.”

“은성아!”

박영광이 소리쳐 불렀다.

“진정하세요. 도대체 제게 왜 이렇게 화를 내는 겁니까? 네에에?”

“해상 테크!”

박영광이 말하며 차은성을 쏘아보았다.

“네 짓이지?”

“뭐가요?”

차은성이 태연히 부정했다.

“한필승 회장을 죽인 사람이 너잖아!”

박영광이 소리쳤다.

“무슨 말을 하시는 겁니까? 제가 왜 한필승 회장을 죽여요?”

“너, 이 자식!”

박영광이 격노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모를 줄 알아! 한조 그룹에서 해상 테크에 M&A를 걸자, 네가 한필승 회장에게 열 개의 카드를 보내…… 한필승 회장이 죽을 때, 그 자리에 2차장이 동석했었어!”

“네에? 2차장이요?”

“그래. 지금 회사가 너 때문에 발칵 뒤집혔어. 다들 널 범인으로 여겨. 너어! 회사가 지금…….”

박영광이 NIS를 입에 올렸다.

“바보로 여기는 것도 유분수지. 회사가 모를 것 같으냐?”

박영광의 말에 차은성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어머니 때문에 저를 해상 테크와 연결시키는 것 같은데…….”

“…….”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뭐야? 모르는 일이라고?”

“네. 그날, 저는 팀원들과 회식을 하며 늦게까지 술을 마셨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곯아떨어졌고요.”

차은성의 대답에 박영광이 움찔하며 당황하는 눈빛을 띠었다.

“무조건 제 짓이라고 단정 짓고 제게 화내시는 것은 좀 아니지 않습니까? 국장보님!”

차은성이 서운하다는 어조로 말했다.

“…….”

박영광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설마?’

자신이 잘못 알았나 싶어 잠시 주춤했다. 그러면서도 차은성이 했다는 의심을 완전히 떨쳐 내지는 못했다.

반신반의였다.

“휴우우.”

박영광이 한숨을 쉬더니 상의에서 담뱃갑과 라이터를 꺼냈다.

차은성은 아무 말 없이 박영광을 보았다.

태연했다.

박영광은 담배를 피우며 말했다.

“팀원들에게 거짓말을 하라고 시킨 것은 아니지?”

“삼촌!”

“됐다. 어차피 감찰실에서 너와 팀원들을 조사하기로 했으니 조사에 응해.”

박영광은 팀원들이 차은성의 알리바이를 만들어 주지 않을까, 여전히 의심하고 있었다.

“삼촌!”

차은성이 박영광을 불렀다.

후우우우.

박영광이 하얀 담배 연기를 뿜었다.

“2차장이 직접 너희 팀에 대한 감찰을 감찰실에 요구했어. 잠자코 응해.”

“…….”

차은성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심중 꽤 당혹스러웠다.

한필승 회장이 죽을 때, 그 자리에 2차장 선우종이 있었을 줄이야…….

*    *    *

닷새 후.

노태준, 김아름, 황민준, 우형광이 각기 별도의 장소에서 감찰실의 조사를 받았다.

다들 흥분해서 차은성에게 전화했다.

“진정해. 괜찮아.”

차은성은 팀원들을 다독였다.

“나도 조사받아야 해.”

“팀장.”

“아무래도 나를 조사하기 전에 팀원들을 먼저 조사하여…… 나 때문에 너희들이 조사받은 거니깐 엉뚱한 생각은 하지 말고.”

차은성은 팀원들에게 자신 역시 마찬가지임을 말했다. 그렇게 팀원들을 진정시킨 후 감찰실의 호출에 황학동으로 갔다.

*    *    *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오피스텔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NIS의 위장 건물이자 활동을 위한 일종의 안가였다.

집기나 가구가 일절 없는 텅 빈 사무실.

차은성은 낡은 철제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바로 앞에 있는 테이블 너머의 유리 창문을 바라보며 입에 문 사탕을 쭉쭉 빨았다.

‘긴장에는 당분 공급이 즉효지.’

심중 중얼거리며 픽 실소했다.

그리 오래지 않아.

사무실 우측에 있는 문이 열리고 세 남녀가 들어왔다.

그들 모두 정장 차림이었고, 앞서 걷는 여인의 오른손에는 꽤 두꺼운 서류 파일이 들려 있었다.

여인을 뒤따르는 두 남자, 좌측 상의가 조금 불룩했다. 그로 미루어 보아 총기를 휴대한 것 같았다.

*    *    *

여인.

NIS 감찰실 계장 정가연.

그녀가 유리 창문을 배경으로 차은성의 맞은편 철제 의자에 앉았다.

두 남자는 각기 흩어져 테이블 좌우에 섰다.

차은성을 본 정가연이 눈살을 찡그렸다.

―보기 싫어.

노골적으로 그런 감정을 내색했다.

“꼬옥!”

“…….”

“그렇게 사탕을 쭉쭉 빨며…… 처음부터 비협조적으로 나오려고 작정했다는 티를…….”

차은성이 정가연을 보았다.

“감찰실 계장이라. 와아. 엄청 출세했네. 이럴 줄 알았으면 우리 정 계장님에게 잘 보여 두는 건데 말이야.”

“입사 동기라고 봐줄 생각은 없어.”

“훈련소 동기이기도 하잖아. 가연아.”

“이름!”

“…….”

“그렇게 부르지 말지. 그리고 사탕!”

“아, 예에. 정 계장님.”

차은성이 말하며 입에서 사탕을 떼더니 테이블에 내려놨다.

“야아!”

정가연이 언성을 높였다.

차은성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양손을 바깥으로 젖혔다.

“쓰레기통 없잖아?”

“…….”

정가연이 말없이 차은성을 쏘아보더니 파일을 펼치며 고개를 숙였다.

“한필승 회장이 저격당해 죽던 날…….”

“이미 조사 다 끝내 놨잖아. 굳이 다시 확인해야겠어?”

차은성의 말에 정가연이 숙인 고개를 들었다. 그러곤 차은성을 매섭게 바라보았다.

“난 지금 공무 수행 중이고 넌 감찰 대상자야……. 협조할 생각이 없으면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 ……그러면 24시간 안에 퇴사 처리가 될 거야. 그리고 너에 관한 모든 것이 검찰로 이관될 거고, 넌 살인 용의자로서 검찰의 조사를 받게 될 거야.”

“끄으응. 아주 무섭게 협박하시네. 동기 좋다는 말, 다 거짓말이라니깐.”

“야아아. 차은성!”

정가연이 차은성에게 소리쳤다.

차은성이 몸을 움츠리며 일부러 겁먹은 척했다.

“무서워라.”

“니들! ……필드 요원들이 우리 감찰실을 아주 싫어 한다는 거 잘 알아.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공무라고, 공무! ……회사 내의 부정부패와 권한의 오남용을 막기 위한…….”

“가연아. 너 그거 알아?”

차은성이 화제를 돌리려 했다.

“…….”

“너, 잠수 훈련을 받을 때 몸에 걸친 스킨 스쿠버 가죽옷 말이야. 몸에 착 달라붙어서 네 몸매가 와우우우. 내가 그때 네게 반해서…….”

“차은성!”

더는 못 들어 주겠다!

정가연이 그렇게 무언으로 말하듯 고함치며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차은성이 손을 뻗어 사탕을 쥐더니 입에 쏙 넣었다.

“잘 가. 그리고 이왕 퇴사 처리 해 주는 거, 24시간 말고 1시간 안으로 해 주라. 응? 과연 될지는 모르겠지만.”

차은성이 정가연을 보며 이죽거렸다.

비아냥대는 것을 모를 수 없다. 말이 퇴사 처리지, 차은성처럼 유능한 필드 요원을 퇴사 시킬 정도로 NIS가 멍청하진 않다. 마르고 닳도록 써먹어야 하는 필드 요원인데…….

정가연이 입술을 질끈 깨물더니 다시 철제 의자에 앉았다. 그러곤 좌우에 서 있는 두 남자를 번갈아 봤다.

“나가 있어.”

부하인 듯한 두 남자가 정가연을 돌아봤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나가 있으라고!”

정가연이 소리치자, 어쩔 수 없다는 듯 두 남자가 돌아서더니 정가연에게 머리를 숙였다.

*    *    *

차은성, 정가연.

두 사람이 남아 두런두런 대화를 이어 나갔다.

“……넌 상관없다?”

“내가 관여되어 있다는 증거 있어?”

“팀원들에게 알리바이를 만들어 달라고 말하지 않았고.”

“그랬다는 증거, 제시해 줄래?”

“너, 참 많이 뻔뻔해졌다.”

“뭐, 그만큼 많은 시간이 지났으니깐. 그리고 날 감찰한다고 해서 없는 증거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질질 끌지 말고 최대한 빨리 처리해 줬음 해.”

“넌.”

“…….”

“지금 한조 그룹 한필승 회장의 저격 사건 혐의자로 앉아 있는 거야!”

“증거 있으세요? 정가연 계장님.”

“자꾸 비아냥거리며 비협조적으로 나올래!”

“난 정상적으로 성실히 감찰실의 조사에 응하는 중인데.”

“그놈의 사탕, 그만 좀 쭉쭉 빨아! 네가 어린애야?”

정가연이 소리쳤다.

차은성이 사탕을 쭉쭉 소리 내어 빨아 먹는 것이 여간 눈에 거슬리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감찰실 조사 받으면서 사탕을 빨아 먹으면 안 된다는 규정은 없는 것 같은데.”

“너어!”

차은성이 정가연을 보며 히죽 웃었다. 이어 한쪽 눈을 감으며 윙크를 보냈다.

“내 입에 다른 것을 물려 주면 사탕 안 빨게.”

“죽여 버린다! 차은성!”

정가연이 화냈다.

“아……. 안 되겠구나.”

차은성이 말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어디에 카메라가 있을라나?”

뻔하다.

지금 자신을 촬영하고 있을 것이다. 또한 자신이 한 말을 모두 녹음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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