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S의 천재 스파이 (37)
하루 동안에 열 번 죽다
턱.
수행 비서가 차 문을 닫았다.
한필승 회장은 눈을 감으며 고개를 뒤젖혔다. 기분이 최악이었다.
‘어느 놈이!’
한필승 회장은 심중 화냈다. 누군가가 자신을 협박하는 것 같아 거센 화가 치밀었다.
‘대체?’
한필승 회장은 그런 한편으로 진한 의문을 느꼈다.
지난밤에 누군가가 자신의 집은 물론이고 침실까지 숨어들었다. 그리고 자신이 아침 식사 후에 조간신문을 읽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휴우.”
한필승 회장이 한숨을 쉬며 젖힌 고개를 바로 했다. 이어 눈을 뜨는데. 그 순간.
“흑!”
한필승 회장은 자신도 모르게 헛바람을 삼키고 말았다.
앞.
앞좌석 뒤에 카드가 꽂혀 있다. 조금 전 차에 탈 때 미처 보지 못했다.
꽈악.
한필승 회장이 이를 악물며 손을 뻗었다.
집, 침실에 이어 이젠 차까지!
―당신은 세 번 죽었습니다!
상단에 ‘꽈앙!’이라는 폭발물이 터지는 것을 상징하는 의성어가 적혀 있었다.
와그작.
한필승 회장이 카드를 뭉개더니 거칠게 바닥에 집어 던졌다.
“이 개자식이!”
그의 중얼거림에, 앞에 앉은 기사와 수행 비서가 움찔하더니 조심스럽게 돌아봤다.
* * *
한조 그룹 본사 회장 전용 엘리베이터.
위이이잉.
최고층 회장실로 직행 중이다.
그런데.
덜컹.
갑자기 엘리베이터가 섰다.
“뭐야?”
한필승 회장이 버럭 소리쳤다.
“그게…….”
수행 비서가 매우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뭐해! 당장 알아보지 않고서!”
한필승 회장이 수행 비서에게 화내자.
“네. 회장님.”
비서가 급히 대답했다. 이어 우측에 있는 패널로 다가섰다.
그때.
삐리리리리.
폰이 울렸다.
한필승 회장은 순간 움찔했다. 가지고 다니는 폰이 세 개다.
하나는 공적인 용도로 사용하고, 다른 하나는 개인 사생활에 쓰며, 또 다른 하나는 가족이나 지인과 통화할 때 사용한다.
그중 하나.
사생활 용도로 쓰이는 폰이 울렸음을 확인한 한필승 회장은 순간 대경했다.
“헉!”
폰 액정.
―당신은 네 번 죽었습니다!
해당 메시지가 떠 있었다.
한필승 회장은 자신도 모르게 혼비백산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누군가 자신을 죽이려고 하였다면, 엘리베이터를 추락시켰을 것이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자신은 죽었을 것이다.
한필승 회장은 그 생각에 전율했다.
부르르.
몸을 떨며 죽음의 공포를 마주하였다.
한필승 회장은 사생활 용도로 사용하는 폰이 해킹당한 것을 미처 신경 쓰지 못했다. 그만큼 경황이 없었다.
* * *
회장실로 들어서는 한필승 회장의 얼굴은 매우 어두웠다.
그런 이유로 인사하는 비서실장 이하 비서실 직원들은 당황했다.
“무슨 일이시지?”
“오늘 회장님 기분이 엄청 안 좋으신 것 같은데.”
“박 비서 어디에 있어?”
비서실장 최재웅이 수행 비서를 찾았다.
* * *
책상에 앉은 한필승 회장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경악한 얼굴이었다.
책상에 놓인 카드.
한필승 회장은 망연한 눈으로 카드를 보았다.
연후.
자신도 모르게 떨리는 손을 뻗었다.
―당신은 다섯 번 죽었습니다!
카드에 적힌 글을 본 한필승 회장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급변했다.
와들와들.
걷잡을 수 없이 몸이 떨렸다.
아직 아침 업무를 시작하기도 전인데, 자신이 무려 다섯 번이나 죽었다.
명백하다!
상대는 자신을 얼마든지 죽일 수 있음을 카드를 통해 말하고 있다. 무서운 것은 카드를 통해 메시지를 보내는 자가 자신의 동선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일거수일투족을 손바닥 손금 보듯이 다 안다!
그것이 주는 또 하나의 공포에 한필승 회장은 질식할 것 같은 공포를 느꼈다.
죽음이 실체화되어 자신에게 성큼 다가온다. 바로 눈앞에 죽음이 서 있는 것 같다.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현실을 목도하게 되자, 한필승 회장은 살고 싶다는 강렬한 삶의 열망을 느꼈다.
* * *
죽음의 공포가 카드와 함께 한필승 회장을 따라붙었다. 그 때문에 한필승 회장은 업무를 일절 보지 못했다.
* * *
한참 후.
1인용 소파에 앉은 근엄한 한필승 회장.
좌우에 있는 3인용 소파에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가장 믿는 측근 중 측근.
비서실장 최재웅.
한조 그룹 보안실장이자 충실한 수족으로서 이제까지 굳은 일을 도맡아 해 온 장호영.
중앙에 있는 테이블에는 카드가 몇 개 놓여 있었다.
최재웅과 장호영의 얼굴은 매우 굳어 있었다. 누구인지 모르나.
한필승 회장에게 언제든지 죽일 수 있다고 협박하는 자가 있다!
천천히.
한필승 회장이 입을 뗐다.
“어떤 놈인지! ……최대한 빨리 알아내! ……그리고 내 앞으로 데려와!”
살기등등한 목소리!
한필승 회장이 얼마나 화가 나 있는지 무언으로 말하고 있다.
최재웅 실장이 카드를 일별한 후 한필승 회장을 돌아봤다.
“회장님.”
“…….”
“카드를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는 없지만, 회장님을 죽일 의사는 없는 것 같습니다.”
순간.
꿈틀.
한필승 회장의 눈가가 밋밋하게 움직였다. 크게 역정 내기 직전이다.
“문제는 그자가 회장님의 일과와 동선을 너무 잘 알고 있다는 겁니다.”
최재웅 실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최 실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회장님.”
장호영 실장이 말하며 한필승 회장을 보았다.
두 사람이 같은 의견임을 알게 된 한필승 회장이 역정을 내리눌렀다.
“데려와!”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자신을 죽이려는 살의가 있고 없고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신의 하루 일과와 동선을 알고 있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가 되는 것은, 자신이 죽음을 목전에 두었다는 것이고 두려움을 느꼈다는 것이다.
차후, 카드를 보낸 자가 정말로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면 자신은 파리 목숨과 같다.
카드를 보낸 자가 자신의 목숨을 쥐고 있다는 생각에 한필승 회장은 견딜 수 없는 분노와 모멸감을 동시에 느꼈다.
애완견처럼.
카드를 보낸 자가 자신의 목에 눈에 보이지 않는 개목걸이를 채운 것 같은 느낌!
한마디로 말해 뭐같이 기분이 더럽다!
* * *
한조 그룹 사옥 인근 도로.
차은성은 도로가에 차를 주차시켜 놓고 시트의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귀에 낀 이어폰에서 한조 그룹 회장실에서 오가는 세 사람의 대화가 들렸다.
한필승 회장, 최재웅 비서실장, 장호영 보안실장.
차은성은 실소했다.
“훗.”
꼴에 죽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리고 최재웅, 장호영. 두 실장의 생각이 너무 단순하고 상식적이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것을 입에 올렸다.
차은성은 천천히 눈을 내리감았다.
세 사람의 대책 아닌 대책을 들으며 심중 고소했다.
* * *
일주일 후.
한조 백화점 스카이 바.
마주 보며 앉은 두 사람 외에 다른 이들은 없었다.
한필승 회장이 좌를 돌아봤다.
눈에 그득 들어오는 눈부신 야경.
“참 보기 좋지요.”
맞은편에 앉은 2차장 선우종은 말없이 앞에 놓인 커피 잔을 들었다.
“사람들은…… 스위치를 켜면 곧바로 형광등에 불이 들어오는 것처럼 생각하지요. 하지만 저 야경을 위해 노심초사하며 불철주야 가리지 않고 헌신한 이들이 있다는 것을 망각하지요.”
한필승 회장은 은근 서운하다는 어조로 말을 이었다.
“하늘에서 별안간 돈이 뚝 떨어지는 일은 세상에 없죠.”
“…….”
“누군가의 헌신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보는 저 아름답고 멋진 야경이 있는 겁니다.”
“…….”
“그런데 사람들은 그 헌신한 이들을 손가락질하고 매도하죠.”
“…….”
“자신들이 가지지 못한 것을, 헌신한 이들이 가진 것을 시기하고 질투합니다. 그리고 너나없이 헌신한 이들을 손가락질하며 그들이 헌신의 결실로 가진 것을 마치 이 세상에서 아주 추악하고 더러운 것처럼 매도하기도 합니다.”
한필승 회장은 억울하다는 심정을 내비쳤다.
한편.
선우종은 말없이 커피를 마시며 한필승 회장이 말을 마치기를 기다렸다.
한필승 회장의 말은 제법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윽고 그의 말이 끝나자, 그새 커피 잔을 내려놓은 선우종이 말했다.
“회장님.”
그러자 한필승 회장이 선우종을 보았다.
“저는 공직잡니다.”
“…….”
“회장님과 이렇게 마주 앉아 있는 것이 공무라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만.”
“…….”
“개인적인 만남이라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
“정식으로 절차를 밟아 공식적이고 공개적인 장소에서 회장님을 만나야 하는 것이 공직자인 제 의뭅니다.”
“…….”
“지금처럼 스카이 바를 통째로 비워 두고 이렇게 단둘이 만나 얘기를 나누는 것은.”
“…….”
“저로서는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선우종은 언짢음을 내색했다.
한필승 회장과 만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중간에서 다리를 놓은 이가 하도 종용을 하는 바람에 어쩔 도리 없이 이렇게 맞은편에 앉아 있다.
씨익.
한필승 회장이 미소 지었다.
“혹, 아실지 모르겠지만.”
“압니다. 그래서 지금 여기 앉아 회장님께서 제게 무엇을 바라시는 건지 들으려고 합니다.”
한필승 회장이 감정이 없는 목소리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카드!
경찰과 검찰에도 말해 두었는데 전혀 성과가 없다. 한마디로 말해 감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해서 NIS에 부탁하려고 한다.
국내를 총괄하는 2차장이라면 카드를 보낸 이를 찾아낼 수 있지 않겠는가?
한필승 회장의 말에 선우종은 어이가 없었다.
‘……허!’
NIS가 무슨 흥신소라도 되는 줄 아는 모양이다.
돈을 휙 던지기만 하면.
애완견처럼.
사람들이 그를 향해 꼬리를 살랑살랑하며 아양을 떨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선우종은 정색하는 어조로 말했다.
“회장님.”
“…….”
“그 일은 경찰이나 검찰의 고유 업무에 해당합니다. 저희 NIS의 소관 업무가 아닙니다. 그리고 NIS는 한 개인을 위해 일하지 않습니다. 국가기관이라는 점을 감안해 주셨으면 합니다.”
한필승 회장은 태연했다.
―니! 그렇게 나올 줄 내! 알고 있었다.
내심 그렇게 생각하는 눈치다.
한필승 회장이 말했다.
“2차장.”
“…….”
“하면, 내 이 길로 청와대에 들어가 대통령을 만나 말하리까?”
순간.
선우종이 몸을 움찔하더니 얼굴을 찌푸렸다.
한조 그룹 회장 한필승.
그라면 언제든지 대통령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어지간한 부탁쯤은 받아 줄 대통령이다.
대선 이전 정치인으로 활동할 때부터 재계. 특히 한조 그룹으로부터 적잖은 정치자금을 수수해 왔다. 그러니 기꺼이 도와줄 것이다.
‘끄응!’
선우종은 심중 앓는 신음을 흘렸다.
보나 마나다.
한필승 회장이 대통령을 통해 원장을 내리누르며 압박할 것이다. 그럼 원장은 자신을 불러 압박할 것이다.
결국 한필승 회장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수 없다.
“원하시는 것이 카드를 보낸 자의 신원입니까?”
한필승 회장은 말없이 고개를 까닥였다.
“누구인지만 알아봐 주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하리다.”
“회장님.”
“…….”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입니다. 일개인이 법을 무시하고, 하고 싶은 대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닙니다.”
선우종은 우려했다.
그러자 한필승 회장이 조소에 가까운 미소를 지었다.
“2차장.”
“…….”
“오래전부터 이런 말이 전해 내려와요.”
“…….”
“돈은! ……귀신도 부린다!”
찰나.
선우종이 격하게 움칫거렸다. 당황하는 것이 한필승 회장의 눈에 훤히 보일 정도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