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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S의 천재 스파이 (39)화 (39/208)

NIS의 천재 스파이 (39)

차은성이 왼손으로 입에 문 사탕 손잡이를 잡으며 얼굴을 내밀었다. 이어 오른손을 우측 뺨에 대며 그윽한 눈으로 정가연을 보았다.

정가연이 뭐라 말하려는데 차은성이 먼저 말했다.

“가연아.”

“…….”

“우리가 모든 교육과 훈련을 마쳤을 때, 보육관이 그날 한탕 크게 쐈잖아.”

“너어…….”

정가연이 아미를 성큼 치켜뜨며 화내려 했다.

“그날 밤에.”

차은성의 말이 끝나기 전.

정가연이 앉은 철제 의자를 박차고 벌떡 일어나더니 발로 테이블을 걷어찼다.

“이 개애새끼야아아!”

발길질에 테이블이 차은성에게 밀렸다.

끼이이이.

차은성이 급히 왼손으로 테이블을 잡아 멈춰 세우며 말했다.

“……끝내줬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출입문이 열리더니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그사이.

정가연이 테이블을 돌아 차은성에게 달려들었다.

심문 과정에서 모든 대화가 녹음된다.

남에게 결코 밝히고 싶지 않은 치부가 드러날까?

정가연이 흥분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아닌지 유심히 살폈다.

한편.

차은성은 급히 일어나 뒷걸음쳤다. 정가연과 거리를 벌리며 당황한 척했다.

“어, 어어.”

차은성은 실소했다.

“일루 와아아!”

정가연이 더는 참지 못하겠다고 말하듯 차은성에게 고함치며 급히 다가가려 했다. 하지만 들어온 남자들에게 이내 제지당하고 말았다.

“계장님.”

“진정하십시오.”

“놔아아! 이거 안 놔아아!”

정가연이 좌우를 번갈아 보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계장님.”

“나오십시오.”

사내들이 정가연을 밖으로 데리고 갔다.

정가연이 발버둥 치며 차은성을 쳐다봤다.

“야야아! 차은성! 너, 다음에 만나면 죽여 버린다아아!”

차은성이 정가연을 돌아보며 히죽히죽 웃었다.

“잘 가, 가연아. 나중에 보자.”

득의의 눈빛을 띠며 사내들에게 끌려 나가는 정가연을 가만히 지켜봤다.

‘쏘리!’

함께 교육과 훈련을 받은 동기라 잘 안다. 그 때문에 정가연을 자극했다. 정가연은 잘 반응해 주었다.

*    *    *

잠시 뒤.

중년인이 들어왔다. 정가연의 상사 임동일.

차은성은 은연중에 긴장했다. 임동일이 만만한 이가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차은성의 맞은편에 앉은 임동일은 말이 없었다. 침묵으로 차은성을 압박할 의도인지…….

차은성은 입을 다물고 물끄러미 임동일을 마주 보았다.

침묵이 잠깐 이어지고.

임동일이 천천히 입을 뗐다.

“기분이 어떤가?”

“네?”

차은성은 어리둥절했다.

“정 계장을 내보냈으니 하는 말이네.”

“뭔가 오해하시는 것 같습니다만.”

“오해?”

“네.”

차은성의 태연한 대답에 임동일이 살며시 눈가를 찌푸렸다.

“정가연 계장을 자극, 흥분시켜 우리로 하여금 끌어내도록 하지 않았나?”

“저는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런가?”

임동일이 대꾸하며 앉은 철제 의자의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느긋한 자세였다.

임동일은 차은성을 보며 천천히 지나가는 어조로 말하기 시작했다.

“예전에 내가 갓 입사했을 때.”

임동일의 말에 차은성은 의아했다.

‘별안간……?’

느닷없이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

차은성은 마음 한구석으로 경계했다.

임동일의 말에 말려들지 말자!

임동일이 계속 말했다.

“……그 선배는 당시 우리들에게는 우상이자, 회사의 전설이었지. 무모할 정도로 용감하고 과감하여 심장이 쇠로 만들어진 것 아니냐는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였지. 그래서 우리들은 선배를 아이언 하트. 강철 심장이란 별명으로 불렀어.”

임동일의 말에 차은성이 언제부터인가 미미하게 동요하고 있었다.

아이언 하트 차명인!

임동일이 아버지를 말하고 있었다.

차은성은 무표정한 얼굴로 임동일을 보며 굳게 입을 다물었다.

꽈악!

그런 한편으로 부서져라 힘주어 이를 악물었다. 입술 탓에 다문 이는 임동일의 눈에 보이지 않았다.

“그 선배가 그렇게 불운하게 죽었을 때. 우리 모두 안타까워했지.”

“…….”

“그런데 그 선배의 아들이, 너무 뺀질뺀질해. 실망스러울 정도로!”

은근 강조하는 임동일이었다.

“…….”

“박영광 국장보님이 그러시더군.”

“…….”

“은근 능구렁이 같다고 말이야.”

“…….”

임동일은 말하며 차은성의 눈동자와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관찰!

차은성의 눈동자와 얼굴의 변화를 통해 차은성의 심리 상태를 알고자 하였는데, 차은성은 무반응이었다.

임동일의 기대감을 깨트리며 실망감만을 안겨 주었다.

“팀원들이 모두 한목소리로 자네의 알리바이를 말하고 있네. 회식 장소와 인근에 있는 다수의 카메라에 그 시간대의 자네가 찍혀 있고.”

“…….”

“표면적으로 보면…… 자넨 한필승 회장이 죽던 시간대에 그곳 인근에는 없었던 것 같긴 하지만.”

“…….”

“혹시 모르지. 자네는 회식 장소에 있고, 누군가가 자네를 대신해 한필승 회장을 저격한 것인지도 말이야.”

“불쾌한데요. 지금 그러니깐 제가 무슨 살인 청부라도 했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제가 바로 알아들은 겁니까?”

차은성의 물음을 임동일이 무시했다.

“자네의 실력을 감안하면.”

“…….”

“누군가를 자네로 위장시켜 팀원들과 회식하도록 하고, 인근 카메라 영상에 의도적으로 띄게 하는 한편.”

“…….”

“자네가 한필승 회장을 저격했을 수도 있지.”

임동일이 날카로운 눈빛을 띠며 추궁조의 눈초리로 차은성을 보았다.

“지금 소설을 쓰고 계신 것 같습니다만.”

차은성의 말에 임동일이 씩 웃었다.

“위장, 변장 등.”

“…….”

“자네의 특기가 꽤 많잖은가?”

“임동일 과장님.”

차은성이 임동일의 직함을 입에 올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임동일은 말없이 차은성을 마주 보았다.

“들어오시기 전에 이미 저에 관한 기본 사항이나 정보를…… 저에 관한 파일 역시 보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지금 여러모로…… 절 흔들어, 제 반응을 보고 싶어 하시는 것은 잘 알겠습니다만.”

“…….”

“불행히도 제가 너무 잘 교육받아 임동일 과장님의 말씀에…… 그러니 유치한 심문은 이제 그만두시고, 본격적으로 조사를 시작하시죠.”

비아냥거리는 차은성의 말에.

임동일이 살짝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러자 이내 몇몇 주름이 잡혔다.

“감찰실이 언제부터 이렇게 정중했다고. 말로 때우려고 하십니까?”

“…….”

“아닌 말로 감찰실의 조사를 받으면 멘탈이 나가는 것은 기본이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탈탈 다 털리는데…….”

차은성이 필드 요원들 사이에 퍼진 감찰실의 악명을 입에 올렸다.

그러자 임동일이 말없이 씨익 웃었다.

‘역시!’

차은성이 가만히 임동일을 바라보았다.

임동일은 예의 지나가는 어조로 말했다.

“자네가 그렇게 말하는데 실망을 안겨 주면 안 되겠지. 안 그런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시간은 차고 넘칠 정도로 많으니깐 천천히 가자고. 천천히!”

“…….”

“먼저 간단하게 거짓말탐지기부터 시작하지.”

임동일의 말에 차은성이 기다렸다는 듯이 대꾸했다.

“감찰실이 시대에 뒤떨어진 겁니까? 아니면, 예산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겁니까?”

“…….”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댄데, 아직도 거짓말탐지기 같은 구닥다리를 사용하십니까?”

“…….”

“요즘은 동공 반응 검사. 혈류 체크기. 혈관 확장 및 수축 반응기. 심박기를 이용한…… 첨단 장비들이 얼마나 많은데, 거짓말탐지기라니.”

“…….”

“실망스럽습니다. 그리고 저 교육받을 때, 거짓말탐지기 통과는 기본 교육 프로그램 중 하나였습니다만.”

차은성이 은근슬쩍 임동일의 속을 긁었다. 그를 자극하려는 듯…….

“풋.”

임동일이 실소했다.

마르고 닳도록 감찰실에서 요원들을 심문, 조사한 관록이 한눈에 보이는 모습이다.

침착하다!

차은성의 말에 일절 동요하지 않았다.

그 때문일까?

겉으로는 무표정한 차은성이 심중 긴장하고 있었다.

“회사가 자네를 잘 가르쳤다고 말하고 싶은 모양인데.”

임동일이 잠깐 말을 멈췄다가 말했다.

“그 말에는 동의하네. 하지만!”

임동일이 매서운 눈빛을 띠었다.

“자네를 상대하는 우리 감찰실 요원들도 회사의 각별한 교육을 받았다네. 그리 만만하진 않아.”

임동일이 살며시 미소 지었다.

―재미있겠다! 그치?

임동일이 그렇게 무언으로 말하는 것 같았다.

‘젠장!’

차은성이 심중 중얼거리며 긴장이란 줄을 바짝 당겼다.

임동일의 말처럼, 감찰실 요원들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요원들을 조사 및 심문하는 데 있어 다들 베테랑들이다.

작은 허점이라도 보였다가는 줄기차게 해당 허점을 끝까지 물고 늘어질 것이 불 보듯 뻔하다.

*    *    *

다음 날 마닐라.

도심에서 조금 벗어난 외곽에 위치한 고급 주택단지.

타타…… 타타타…… 타탕.

곳곳에서 요란한 총성이 울렸다. 총성은 하나둘이 아니었고, 쉬지 않고 들렸다.

“으악!”

“악!”

“커헉!”

무장 경비원들이 총격에 당해 픽픽 쓰러졌다.

일단의 복면인이 주택단지 사방을 누볐다. 그들은 불문곡직 마구 총격을 가했으며, 사람이건 집이건 가리지 않고 총탄을 퍼부었다.

“꺄아아악!”

“으아악!”

주택단지 곳곳에서 비명과 외침이 들렸다.

“들어가!”

“나오지 마아!”

“숨어! 어서 숨으라고.”

고급 주택단지는 거대한 혼란에 빠진 것처럼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었다.

복면인들은 하나둘이 아니었다. 그들은 각 주택에 난입. 여자와 아이들. 그리고 남녀 청소년들을 마구 밖으로 끌고 나왔다.

연후.

대기해 있던 미니밴과 지프니 등 꽤 다양한 차량에 그들을 태웠다. 미니 밴과 지프니는 그리 오래지 않아 황급히 주택단지 입구로 내달렸다.

그 과정에서 저항하는 이들은 닥치는 대로 사살당했다. 그 때문에 단지 곳곳에는 시체가 널려 있었고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한참 후.

요란한 사이렌을 울리며 다수의 필리핀 경찰 차량이 고급 주택단지에 도착했다. 정차한 각 차량에서 중무장한 경찰들이 우르르 내렸다.

경찰들은 굼뜰 정도로 매우 조심스러웠다. 자신들에게 총격이 가해질까 두려워하는 것이 한눈에 보일 정도였다.

고급 주택단지 곳곳으로 서서히 흩어지는 경찰들의 무전 통신망은 각종 고함과 격한 음성으로 매우 소란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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