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S의 천재 스파이 (36)
뒤늦게 해당 해역에 당도한 두 척의 순시선.
승선한 일본 해상 보안청 직원들은 대경실색했다.
설마 요트에 폭발물이 설치되어 있을 줄은 몰랐던 듯 이내 순시선과 해상 보안청을 연결하는 통신망에서 온갖 고성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 * *
부아아아아앙.
바람을 한껏 불어 넣은 고무보트가 물살을 가르며 수면을 질주 중이었다.
한참 동안 내달린 보트가 서서히 멈춰 서고.
황민준이 보트의 엔진을 안쪽으로 건져 올렸다. 그러곤 유유히 보트 안에 앉아 밤하늘을 보았다.
차은성은 양손을 들어 머리를 받치며 보트에 반쯤 드러누웠다. 그러곤 밤하늘을 보며 중얼거렸다.
“별들이 참 밝네.”
브라운백은 어이가 없었다.
그는 한껏 여유를 부르는 차은성과 황민준을 번갈아 보며 언성을 높였다.
“지금 무…….”
말하려는데 수면 아래에 뭔가 큼직한 그림자 같은 것이 나타났다.
브라운백은 말을 멈추며 몸을 움찔했다.
고래를 연상시키는 그림자는 서서히 부상하며 거대한 선체를 드러냈다.
브라운백은 선체에 엄청 놀란 듯 말을 더듬었다.
“해, 핵잠!”
그랬다.
수면 아래에서 DIA의 백업인 핵잠이 부상 중이었다.
“팀장.”
“응?”
“미 해군 핵잠을 타 보는 건 처음인데요.”
“나도 그래.”
차은성이 황민준을 돌아보며 씨익 웃었다.
그러자 황민준이 마주 웃었다.
* * *
나흘 후. 공덕동 중국집.
차은성이 테이블을 보곤 실망한 어조로 말했다.
“애걔.”
“야아!”
맞은편에 앉은 박영광이 언짢은 어조로 차은성을 불렀다.
“아니, 목숨 걸고 임무 수행한 요원에게…… 겨우 탕수육 소짭니까?”
차은성이 항의했다.
“진짜 쪼잔해서.”
“마아! 그럼 돈 많은 네가 시켜. 계산도 하고.”
“뭐라고요?”
“가뜩이나 회사에서 돈 많이 쓴다고 난리구만.”
“정말 이렇게 나오실 거죠?”
차은성이 성난 눈빛을 번득였다. 그 모습이 무언으로 말하고 있었다.
―저, 사고 쳐요!
알아챈 박영광이 급히 화제를 돌렸다.
“너, 도쿄에서 사고 친 거 뒷수습하느라 내가 지금 얼마나 머리가 아픈 줄 알아?”
“갑자기 왜 말을 돌리고 그래요?”
“돌리긴 뭘 돌려!”
“…….”
“조용히 들어갔다 나와야지. 온 동네방네 다 시끄럽게 만들어 버리면 도대체 어쩌자는 거야?”
“누군 안 그러고 싶었겠어요? 어쩔 수 없었다고요. 그리고 작전 성공했으면 됐지, 그깟 소란 갖고 그러시는 거 아니에요. 전 진짜 죽을 뻔했다고요. 네에.”
“어쭈.”
차은성의 하소연에 박영광이 눈 하나 깜짝이지 않았다.
“말 나온 김에 한번 물어보자.”
“…….”
“일급 보안 구역에서 걔네들은 왜 죽여?”
“죽이고 싶어서 죽였어요. 살려 두기에는 걔네들 레벨이 높았다고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살려 둘 수 없는 애들이었단 말이에요.”
차은성이 성난 목소리로 대꾸했다.
내각 조사실 본청 일급 보안 구역의 요원이 평범할 리 없다. 살려 두기에는 너무 위험한 이들이다. 그 때문에 부득불 죽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그건 그렇다 치자. 그런데 로비에서는 왜 폭탄을 집어 던져?”
“아니. 절 알아봤는데 그럼 가만히 있어요?”
“걔네들 교대 시간이었잖아.”
“교대 시간인 걸 제가 몰라요? 안다고요.”
“아는데 그래!”
“그럼 어떻게 하라고요. 내가 브라운백을 데리고 로비에 올라왔을 때…… 교대하지 않은 게 제 탓이에요? 제 탓이냐고요?”
“그래. 그건 또 그렇다 치자. 그런데 왜 온 도쿄 도심을 그렇게 만들어 놔.”
“허어어얼!”
차은성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각 조사실과 경시청이 눈에 불을 켜고 뒤쫓아 오는데, 그럼 그렇게 안 해요?”
“…….”
“도쿄는 걔네들 수도고 안방이라고요.”
차은성이 강하게 반박했다.
그러자 박영광이 미사일로 격추시킨 헬기를 물고 늘어졌다.
그러자 차은성이 이를 바득바득 갈더니.
“CIA 애들일 게 뻔한데. 걔네들 정보망 몰라요?”
“너!”
“…….”
“계속 꼬박꼬박 말대꾸한다. 응!”
“됐고요. 그만하세요. 그리고 돈이나 빨리 입금시켜 주세요.”
“뭔 돈?”
박영광이 반문했다.
“삼촌.”
“…….”
“치사하게 나오실 거예요?”
“뭔 치사?”
“아니. 목숨 걸고 작전을 성공했으면 성공 보수와 들어간 비용 정도는 주셔야 하잖아요.”
“아, 그 돈.”
“네.”
“없어!”
“예?”
박영광의 대꾸에 차은성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뒷수습하는 데 다 들어갔어.”
“허…….”
어이가 없다.
차은성이 그런 표정을 재차 지었다.
“그리고 돈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니들 이제까지 작전하면서 획득한 것들을 지금까지 단 하나도 회사에 입고 안 시켰더라.”
“…….”
“2년 전에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코스텔로 패밀리 애들을 상대로 작전하면서…… 바하마 쪽 몇몇 계좌에 분산 예치되어 있는 코스텔로 패밀리의 마약 판매 대금을…….”
차은성은 순간 당황했다.
‘어, 어떻게 알았지?’
이제까지 작전하며 습득한 돈들을 회사에 보고하지도 넣지도 않았다. 뒤로 빼돌려 활동 자금과 장비 구매 비용 등 기타 다양한 용도로 지금까지 사용했었다.
그중 일부 자금은…… 운용하게 하여 지속적인 금전적 이익을 창출하도록 했다.
한편.
박영광이 입을 다문 차은성을 맹렬하게 몰아붙였다.
“회사가 니들 감시 안 하는 줄 알지?”
박영광의 말에 차은성은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당연히 감시한다. 그런데 이제까지 그것을 미처 신경 쓰지 못했다.
“……아름이 그 녀석에게 주의를 줘라. 응! 그렇게 명품을 마구 사 재끼다가는 언제고 탈이 생긴다고.”
차은성은 뭐라 말할 수 없었다.
백기를 들 수밖에.
박영광이 승자의 기쁨을 한껏 드러내며 차은성을 야단쳤다.
“팀장이라는 녀석이…… 어려운 작전 한번 성공시켰다고…….”
차은성은 급히 화제를 돌리기 위해 젓가락을 집어 들며 너스레를 떨었다.
“와아! 맛있겠네요. 어서 드세요.”
말과 함께 탕수육을 연거푸 입에 밀어 넣었다.
꾸역꾸역.
그러고는 서둘러 씹었다.
차은성을 누를 기회를 잡은 박영광이 계속 말했다.
―주의해라!
박영광의 숨겨진 의도가 엿보이는 잔소리였다.
박영광의 목소리는 의외로 컸다. 그는 전혀 주의하지 않았다.
중국집이 NIS가 운용하는 위장 거점 중 하나이기 때문에 마음 놓고 있었다.
NIS 소속 요원들이 각자의 상관과 만나 임무를 부여받고, 관련 활동을 보고하는 접선 포인트.
해당 포인트는 서울은 물론, 전국 각지에 꽤 흩어져 있다.
* * *
헤어질 때였다.
“고생했다.”
박영광이 녹음기를 슬쩍 거론했다.
“고생한 거 아시면 계좌에 돈 좀 쏴 주세요. 네에? 적어도 위험수당 정도는 빵빵하게 주셔야죠.”
“콱!”
박영광이 입술을 깨물며 눈을 부라렸다.
“관할 세무서로 하여금 라센느를 한번 털어 보라고 할까?”
박영광의 말에 차은성은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
“연 매출이 가볍게 10억이 넘는 놈이 어디서 가난뱅이 흉내야!”
박영광이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차은성은 깨갱할 수밖에 없었다. 곧이곧대로 세금 신고 했다가는 라센느 문을 닫아야 한다.
변종수가 대표를 맡으면 정직하게 과세 신고를 하겠지만.
지금은 곤란하다. 라센느의 자금을 일부 돌려 임무에 사용하기도 하는 터라, 세무조사가 나오면 필히 걸릴 수밖에 없다.
사용처를 추궁당하면 내가 국정원 요원이라서 임무에 썼다!
그렇게 말할 순 없다. 꼼짝없이 탈세로 고발당할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
‘확실히!’
차은성은 가슴이 서늘했다.
회사에서 자신과 팀원들은 감시 중이라는 것을 새삼 상기했다.
‘체!’
박영광이 주의를 돌려 준다는 걸 모를 리 없다.
보나 마나 1차장이 뭔가 꼬투리를 잡으려는 것이리라.
‘애들에게 주의를 줘야겠어. 특히 아름이.’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차은성이 중국집을 나왔다.
* * *
며칠 후, 새벽.
한조 그룹 회장 한필승이 잠에서 깼다. 잠시 침대에 앉아 정신을 가다듬은 한필승 회장이 우를 돌아봤다.
고풍스러운 바로크풍의 탁상시계.
오전 6시.
늘 일어나던 시간이다.
“응?”
한필승 회장이 의아한 눈빛을 띠었다.
카드!
탁상시계 앞에 카드가 놓여 있었다.
한필승 회장은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었다.
잠시 뒤.
카드를 본 한필승 회장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당신은 한 번 죽었습니다!
카드에 그런 글이 적혀 있었다.
한필승 회장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무슨……?”
무시하며 탁상시계로 카드를 휙 던지려 했다.
순간.
한필승 회장이 멈칫하더니 매우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어 크게 놀란 눈빛을 띠었다.
“…….”
한필승 회장이 문을 바라보았다.
“누구 없어!”
방이 떠나가라 고함쳤다.
그의 침실에 누군가가 왔다 갔다. 그렇지 않다면 카드가 있을 리 없다.
아무리 자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누군가 방에 들어왔다 나간 기척을 듣지 못했다니.
카드를 놓고 간 이!
그가 자신을 죽이려고 했다면, 잠자다가 아마 죽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한 한필승 회장은 순간 등골이 서늘해지며 소름이 돋았다. 죽음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에 한필승 회장이 가늘게 몸을 떨었다.
“밖에 누구 없어어어!”
한필승 회장이 거듭 고함쳤다.
목청이 터져라…….
* * *
한필승 회장은 고래고래 소리쳤다.
“누가 내 침실에 들어왔어! 누구야? 누가 내 허락도 없이 맘대로 내가 누워 자는 침실에 들어온 거냐고!”
앞에 서 있는 집안 식구와 고용인들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침실에 들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계속 고래고래 소리치는 한필승 회장의 서슬에 눌려 뭐라 말하지 못했다.
* * *
한필승 회장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집안 식구와 고용인들 중 그 누구도 자신의 침실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을 뿐이다.
아침부터 한필승 회장의 기분은 매우 좋지 않았다. 그 때문에 아침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입맛이 싹 사라져 버린 한필승 회장은 서재에 앉아 조간신문들을 하나씩 펼쳐 읽었다. 그러면서 그윽한 향을 풍기는 커피를 간간이 마셨다.
막 세 번째 조간신문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펼쳤을 때다.
카드!
한필승 회장은 순간 자신도 모르게 흠칫하고 말았다.
―당신은 두 번 죽었습니다!
카드에는 그렇게 쓰여 있었다. 탁상시계 앞에 놓여 있던 카드와 다른 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상단의 독극물 표시였다.
독을 의미했다.
신문에 독이 있었다면?
펼치는 순간.
날리는 분말 독이라면.
손에 묻는 독이라면.
한필승 회장은 가늘게 몸을 떨었다.
“이, 이이!”
누군가 자신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 같다. 언제든지 죽일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