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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S의 천재 스파이 (35)화 (35/208)

NIS의 천재 스파이 (35)

차은성과 브라운백이 대화하는 동안, 황민준은 뒤에서 기계를 조작 중이었다.

“……결국!”

브라운백은 크게 낙담했다. 힘없이 고개를 숙이는 그의 모습에서 비애가 배어 나왔다.

한때는 알아주는 필드 요원이었지만, 지금은 시먼스 부국장에 의해 한 번 쓰고 폐기하는 1회용 요원이 되어 버렸다.

정보 계통에서 아예 없는 일이 아니다. 특정 목적하에 일종의 버리는 패로 쓰이는 요원들. 그들을 가리켜 흔히 ‘버려진 요원’이라 부른다.

차은성은 월터 부국장을 언급했다.

“브라운백.”

“…….”

“당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알면 시먼스 부국장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당신을 죽이려 할 겁니다.”

“…….”

“당신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월터 부국장에게 보호할 가치가 있는 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브라운백이 고개를 들어 차은성을 보았다.

“나더러 월터 부국장에게 협조하라?”

차은성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

“그쪽이 날 살리느라 목숨을 건 것도 월터 부국장이…….”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

“CIA 요원이라면 아마 다들 알 겁니다. 시먼스 부국장과 월터 부국장이 서로 견원지간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

브라운백은 침묵했다.

“선택은 당신 몫입니다.”

“…….”

“당신을 버린 시먼스 부국장에 대한 의리를 지킬지. 아니면,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지.”

차은성의 말에 브라운백이 다시 고개를 숙였다. 생각하는 눈치다. 하긴 선뜻 결정 내리기 어려울 것이다.

차은성은 브라운백의 결정을 기다렸다.

*    *    *

잠시 뒤.

브라운백이 고개를 들어 차은성을 보더니.

“선택의 여지가 없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시먼스 부국장이 먼저 당신을 배신한 겁니다.”

차은성은 브라운백의 죄책감을 덜어 주려 했다.

브라운백은 처연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어두운 밤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차은성이 브라운백을 불렀다.

“브라운백.”

브라운백이 돌아봤다.

“시먼스 부국장이 당신에게 건넨 정보가 뭡니까? 어떤 정보를 당신에게 주었기에 내각 조사실이 안가와 같은 곳에서 당신을 심문하지 않고 본청에서 심문한 겁니까?”

차은성은 궁금했다.

통상 본청과 같은 곳에서 심문하지 않는다. 본청에서 심문했다면 그만큼 매우 중대한 사안이라는 말이 된다.

차은성의 물음에.

브라운백이 다소 허탈한 미소를 짓더니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일본 국채는 모두 일본 은행에서…… 예를 들면…… 집에 돈을 보관하면 이자 소득이 없지만 은행에 보관하면 이자 소득이 생기는 것처럼, 국채를 해외로 빼돌려 운용하면…….”

현 일본 총리 난베, 자민당 간사장 이소 등이 일본 국채를 해외로 빼돌려 막대한 비자금을 만들었다.

브라운백의 말에 차은성은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설마…….”

“기록상으로는 여전히 국채가 일본 은행에 있지만, 실제로는 해외에서 굴러다니다가 다시 일본 은행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반복하며…… 관련 기록은 일절 남지 않지.”

“…….”

“……해당 자금 중 1/3은 난베와 이소의 뒷주머니로 들어가 정치자금이 되고…… 1/3은 미국으로 보내져 기록이 일절 남지 않는 은밀한 대미 로비 자금으로 전용되었으며 해당 자금의 운용은…….”

“…….”

“1/3은 일본 의회의 견제 및 감시를 받지 않는, 자유로운 현 일본 내각의 비자금으로…….”

브라운백의 말을 들으며 차은성은 왼손을 슬쩍 호주머니에 넣었다.

녹음기.

브라운백의 말이 끝나자 차은성이 말했다.

“당신이 가진 정보가 진짜인지 허위 정보인지 모르겠군요.”

“아마 진짜일 거요.”

“진짜?”

차은성의 반문에 브라운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난 러시아 정보 요원 야코프로 위장하여…… 가짜였다면 내각 조사실 본청에서 심문받지 않았을 거요.”

맞는 말이다.

본청에서 심문 받았다면 내각 조사실에서 브라운백의 정보가 사실이라는 것을 입증한 셈이 된다.

러시아가 자국 정보 요원으로 하여금 해당 정보를 입수하게 했다?

해당 정보로 현 일본 총리 난베와 내각을 압박하여 모종의 양보나 이익을 얻어 내려 한다?

내각 조사실로서는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역공작이다.

브라운백이 차은성에게 물었다.

“월터 부국장에게 정보를 건네주면, 과연 월터 부국장이 날 보호해 주겠소?”

차은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호해 줄 겁니다.”

“…….”

“동맹이자 우방인 일본을 상대로 그와 같은 역공작을 하려면 필히 국장의 승인을 받아야 하지 않습니까?”

브라운백이 흠칫했다.

맞다!

현 CIA 국장 월리엄의 승인 없이 부국장 시먼스가 독단적으로 그와 같은 공작을 한다면, 이는 명백한 월권이며 월리엄 국장에 대한 항명이다.

“아마 월리엄 국장의 승인을 받지 않았을 거요.”

브라운백이 말했다.

“말하지 않았다?”

차은성의 반문에 브라운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월리엄 국장이 해당 정보에 관해 모르고 있을 거요.”

“…….”

“알고 있다고 해도, 핵심 우방이자 동맹인 일본 정부를 상대로 그렇게 역공작하는 것보다 백악관에 보고하여 백악관으로 하여금 해당 정보를 활용하도록 했을 테니깐.”

“하긴!”

CIA 국장이라면 해당 정보를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활용하려고 할 것이다. 시먼스 부국장처럼 공작했다가 상원 정보위에서 알게 되는 날에는 곧바로 목이 날아갈 테니깐.

그리고 시먼스 부국장의 역공작과 같은 일을 통해 월리엄 국장이 취할 만한 마땅한 이익도 없다.

차은성은 이익에 생각이 미쳐 브라운백에게 물었다.

“시먼스 부국장이 일본과 러시아 사이를 악화시키려는 진짜 의도가 뭡니까?”

브라운백이 피식 웃었다.

“뻔하잖소. 국장이 되고 싶은 거지.”

“그럼.”

“상원 정보위나 백악관에서 주목받을 만한 성과가 필요한 거 아니겠소.”

브라운백의 말에 차은성이 수긍의 눈빛을 띠었다.

“하지만…… 내가 말한 정보로는 시먼스 부국장을 날리기에는 부족할 텐데.”

브라운백이 말끝을 흐렸다.

“월터 부국장이 미덥지 않습니까?”

“미덥지 않은 것이 아니라, 시먼스 부국장이 만만하지 않다는 말이오.”

“그 말에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군요.”

차은성이 작은 미소를 지었다.

씩.

그러자 브라운백이 의외의 눈빛을 띠었다.

“유연하군.”

“뭐라고요?”

차은성이 반문하자 브라운백이 말했다.

“대개 필드 요원들은 앞뒤가 꽉 막혀 있는데, 그쪽은 사고가 유연한 것 같아 하는 말이오.”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훗.”

브라운백이 실소하더니 말했다.

“내가 버려진 요원이 된 것이 아마 그 때문인 것 같은데…….”

샘 브라운백이 모종의 정보를 입에 올렸다. 살기 위해 월터 부국장에게 자신을 어필하고 싶은 모양이다.

그의 말은 꽤 충격적이었다.

“내가 그것을 알기 때문에, 혹 내게 역공작 임무가 주어진 것은 아닌지 모르겠소.”

브라운백은 의심하고 있었다. CIA 필드 요원으로 상당한 이력을 가진 그를 버리는 패로 쓴 이유.

차은성은 내심 쾌재를 불렀다.

‘굿!’

뜻하지 않은 정보를 획득하게 되었다.

차은성이 그에 미소를 지으려는데.

“팀장!”

황민준이 돌아봤다. 그 바람에 차은성과 브라운백의 대화가 끊겼다. 두 사람은 황민준을 돌아봤다.

*    *    *

얼마 후.

투투투투투.

에어버스사의 EC 헬기가 빠르게 요트로 접근하더니 이내 원을 그리며 선회하기 시작했다.

요트를 살피는 헬기에는 네 명이 타고 있었다. 두 명은 조종 중이었고, 다른 두 명은 밖으로 총구를 내밀었다.

한데 요트에 사람이 없었다. 이미 요트를 버리고 다른 방편으로 이동한 듯 요트는 자동 항해 장치에 따라 무조건 앞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사격할 목표를 잃은 헬기는 두어 번 추가 선회하더니 천천히 요트를 뒤로하고 온 방향으로 되돌아갔다.

그때.

섬광과 함께 요트에서 빛이 번쩍이더니.

퓨슈우우우.

휴대용 대공미사일이 치솟았다. 표적 탐지기가 정확하게 헬기를 잡은 듯 미사일이 곧장 헬기로 향했다. 그러고는 한순간.

꽈아앙!

헬기가 공중에서 폭발. 파편들이 수면으로 비 오듯 떨어졌다.

*    *    *

“굿!”

차은성이 황민준을 돌아봤다.

국의 백업 덕분에 살았다. 황민준이 발사기를 내리며 차은성을 돌아봤다.

“일본 해상 보안청을 염두에 두고 준비한 건데, 엉뚱한 놈들에게 사용한 것 같은데요. 팀장.”

차은성이 말없이 미소 지으며 브라운백을 돌아봤다.

“시먼스 부국장이 여러모로 무리수를 두는군요.”

브라운백이 탈출한 것을 CIA 도쿄 지부가 알아내고 헬기를 띄운 것 같다. 모습을 감추지 않았다면 아마 헬기에서 사격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하면, 피할 곳이 마땅히 없는 요트에서 온몸이 벌집이 되었을 것이다.

브라운백이 헬기의 파편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일본일 가능성은?”

“없습니다. 일본 쪽이라면 응당 해상 보안청의 순시선이 잡혀야 하는데, 안 잡힙니다.”

차은성은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육상에서 날아오기에는 거리가 꽤 멀다. 그리고 내각 조사실이나 경시청이 보낸 헬기라면 응당 순시선이 뒤따라와야 한다.

그런데 순시선이 뒤따라오지 않았다.

심중 CIA의 정보력에 혀를 내두르는 차은성이었다. 만에 하나, CIA가 뒤통수를 치는 상황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면 아마 꼼짝없이 당했을 것이다.

차은성이 생각하는 동안.

“…….”

브라운백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차은성이 그런 브라운백에게 말했다.

“그쪽이 살아 있고 도주 중이라는 것이 시먼스 부국장에게 보고된 것 같습니다만.”

브라운백이 차은성을 돌아보더니.

“월터 부국장에게 협력하겠소.”

라고 말했다.

그러자 차은성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들었다. 이어 황민준을 돌아봤다.

“민준아.”

“네.”

“발신기 켜고 접속 포인트로 이동 준비 해.”

“알겠습니다, 팀장.”

그새 발사기를 바닥에 내려놓은 황민준이 차은성을 돌아봤다.

“그리고…….”

“네.”

차은성이 추가로 한 말에 황민준이 재차 대답하며 살며시 웃었다.

두 사람의 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라 브라운백이 어리둥절한 눈으로 차은성과 황민준을 번갈아 보았다.

*    *    *

내각 조사실과 경시청은 사력을 다해 차은성, 브라운백, 황민준을 뒤쫓았다.

그들은 차은성이 남긴 흔적을 따라 도쿄만으로 몰려들었다. 때마침 해상에서 폭발한 헬기는 그들에게 중요한 단서가 되었다.

그리 오래지 않아 해당 해역에 해상 보안청 순시선 두 척이 당도하고, 무장 병력이 순시선에 탑재된 헬기에 탑승했다.

두 대의 헬기가 앞서 요트로 이동하고, 두 척의 순시선이 이내 두 헬기를 뒤따랐다.

*    *    *

투투투투투.

공중에서 정지한 두 헬기에서 로프가 내려지고, 로프를 타고 무장 병력들이 요트에 내려섰다.

평소 훈련받은 대로 무장 병력은 공중 강습 하였고, 그들이 요트에 내려서고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콰아아아아앙!

요트가 폭발했다. 공중 높이 불기둥이 치솟고 요트의 파편들이 사방팔방으로 마구 튀었다.

무장 병력들은 비명 한마디 지르지 못하고 요트와 함께 폭사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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