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S의 천재 스파이 (26)
해 질 녘 무렵 아파트.
철벅철벅.
물이 흥건한 아파트 내로 냉용해와 몇몇 대원이 들어섰다.
눈에 보이는 내부 광경에 냉용해가 눈살을 찌푸렸다.
“아주 작정을 하고 터트린 모양입니다.”
“아파트를 안가로 쓸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데 왜 자폭을 한 걸까요? 대주.”
대원들이 각자의 의견을 말하며 냉용해를 바라보았다.
“뻔하잖아.”
“네?”
“무슨?”
“북한 애들이 안가를 친 거야.”
“그럼.”
“북한 애들이 안가를 알고 있었다는 말입니까?”
“한국 국정원 요원들이 동북 3성에 똬리를 틀고 활동한 지 10년이 넘었어. 북한 애들도 바보가 아니라면, 한국 국정원 요원들 활동을 모를 리 없지.”
“하지만 대주, 저희도 몰랐던 안갑니다.”
“맞습니다. 저희도 몰랐는데 북한 애들이 어떻게 알았을까요?”
“혹 그들 내부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요?”
대원들의 말을 들으며 냉용해가 내부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모르지.”
말과 달리 냉용해는 눈빛을 반짝이며 진중하기 이를 데 없는 표정을 지었다.
‘한국 요원들 사이에 이중 스파이가 있나? 아니면…….’
냉용해는 한 가지 짐작이 가는 것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최악의 경우다.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냉용해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꽈악.
* * *
시야에서 멀어지는 세 대의 승용차.
차은성은 차들을 바라보며 서늘한 눈빛을 띠었다.
* * *
다음 날. 장춘 공안국.
끼익.
한 대의 승용차가 섰다. 승용차에서 차은성, 황민준, 우형광이 내렸다.
* * *
책상에서 마흔 후반의 남자가 일어났다.
“어서 오십시오.”
“처음 뵙겠습니다. 박조윤이라고 합니다.”
“류덕환입니다. 자아, 저리로.”
“네.”
* * *
장춘 공안부장 류덕환이 찻잔을 들었다.
“어제 일로 말들이 많습니다.”
“저희가 한 일이 아닙니다. 남조선 놈들이 자폭한 겁니다.”
“압니다. 하지만 아파트인 점을 감안해 주셨어야 했습니다.”
“…….”
박조윤은 침묵했다.
그새.
류덕환이 차를 마시며 말했다.
“그리고 저희에게 귀띔 정도는 해 주실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류덕환이 은근 서운하다는 감정을 내비쳤다.
“그 점은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송구합니다. 저희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박조윤의 말에 류덕환이 찻잔을 내렸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더는 뭐라 말하지 않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제가 뭘 도와 드리면 되겠습니까?”
류덕환이 좌측에 앉은 박조윤을 바라보았다.
“다른 것이 아니라, 남조선 놈들이…….”
이내 박조윤의 말에.
“흑!”
류덕환이 깜짝 놀랐다.
“합법적으로 잡을 수 있는 다시없을 기횝니다. 공조! 부탁드립니다.”
“무, 물론입니다.”
류덕환이 매우 들뜬 어조로 말했다. 그와 함께 은근 기뻐했다.
류덕환은 자신의 감정을 감추는 데 서툴렀다.
박조윤이 류덕환을 보며 살며시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 * *
얼마 후.
도로를 주행 중인 승용차.
“크크큭!”
조수석에 앉은 우형광이 웃음을 금치 못했다.
“그 자식, 바보 아닙니까? 우리를 철석같이 북한 놈들로 믿던데요. 팀장.”
뒷좌석에 앉은 차은성을 돌아봤다.
씩.
그러자 차은성이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아름이 공이 커.”
“맞습니다. 미리 위조 공문을 보내고 사전 작업을 해 둔 덕을 톡톡히 보았습니다.”
운전하는 황민준이 실내 미러를 힐긋 봤다.
“그래도…….”
우형광이 황민준을 돌아봤다.
“공안국에 쳐들어간 우리들…… 팀장. 제 심장이 얼마나 쪼그라들었는지 아십니까? ……들키는 줄 알았습니다. 얼마나 조마조마했었다고요.”
우형광이 너스레를 떨었다.
“아닌 게 아니라, 팀장. 너무 무모한 거 아닙니까?”
황민준이 미러를 올려다봤다.
그러자 차은성이 담담하게 말했다.
“박조윤이 중국 공안과 접촉했었다면 할 수 없는 도박이었어.”
차은성이 설명하기 시작했다.
“전날 아파트로 공안들이 왔을 때, 박조윤과 그의 팀원들은 공안들과 접촉하지 않았어. 그것은 아직 정식으로 공안과 만나지 않았다는 것을 뜻하지. 곧 중국 공안과 공조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말이야.”
“…….”
“……장춘 공안국을 방문. 공안들의 협조를 받으면…… 우리가 중국 공안을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박조윤이나 그의 팀 활동에 제약을 가할 수 있어.”
“…….”
“박조윤이 바보가 아닌 이상, 공안과의 접촉 및 공조를 하긴 할 거야.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
“차후에 중국 공안과 접촉, 공조하려고 할 거야.”
“…….”
“최후의 선택지처럼 말이야.”
“역시! 팀장입니다.”
“팀장. 이제 어떻게 합니까?”
우형광에 이어 황민준이 말하자 차은성이 등을 기대며 넌지시 말했다.
“어떻게 하긴. 계획대로 하는 거지. 참, 민준아.”
“네.”
“트럭이 오늘 저녁에 오기로 되어 있지?”
“네.”
“현재 우리가 상대해야 하는 이들은 뇌전대, 박조윤 팀, 공안이야.”
“…….”
“그중 가장 만만한 것이 공안이고.”
“팀장.”
우형광이 차은성을 돌아봤다.
“공안을 이용할 생각입니까?”
차은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공안부장 류덕환으로 하여금…… 박조윤 팀과 트러블을 빚게 하고, 뇌전대 역시 그 상황에 얽혀 들게…….”
“…….”
“뭐, 나중에 확인이 되긴 하겠지만…… 류덕환인가 뭔가 하는 작자가 모두 뒤집어쓰겠지. 후후후…… 하지만 적어도 뇌전대와 박조윤 팀을 하루나 이틀 정도는 장춘에 묶어 둘 수 있을 거야.”
차은성의 말에 이어 황민준이 말했다.
“그 틈에 우린 장춘을 빠져나간다?”
“맞아.”
차은성이 황민준을 바라보았다.
“류덕환이 우리를 보증해. 그럼 장춘 외곽을 차단한 무장 공안들의 검문검색을 손쉽게 통과할 수 있겠지.”
“하하하하하.”
차은성의 말에 우형광이 크게 웃었다.
“팀장. 죽이는데요.”
핸들을 잡고 운전 중인 황민준이 살며시 미소 지었다.
씨익.
차은성은 고개를 뒤젖혔다.
“뇌전대나 박조윤 팀이나…… 공안들을 경시하며 적극 활용하려고 하지 않아……. 자신들은 공안과 다르고 공안보다 위에 있으며, 자신들에게 있어 공안들은 거치적거리는 존재라고 여길 거야. 그 마음의 틈을 파고들어야 해.”
차은성은 살며시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씩.
* * *
정보기관이나 필드에서 활동하는 이들 대다수가 의식적으로 경찰을 꺼린다.
그런 이유로 뇌전대나 박조윤의 팀은 공안들과 아직 접촉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공안들과 손을 잡고 함께 움직였다면 방금 전과 같은 도박은 할 수 없다.
띠리리리.
폰이 울렸다. 그러자 우형광과 황민준이 흠칫했다.
그사이.
차은성이 폰을 꺼내 귀에 댔다.
“선배.”
“…….”
“수고하셨습니다.”
“…….”
“네에. 예상대롭니다.”
“…….”
“네에. ……필요합니다.”
“…….”
“위험하다는 거 압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 때문에 방금 전에 장춘 공안국에…….”
“…….”
“하하하하. 저 안 미쳤습니다. 네에.”
“…….”
“일단 물러나세요. 다들 전문가들입니다. 너무 오래 주시하는 건 들킬 위험이 있습니다.”
“…….”
“그들이 회동하였고 회동한 장소를 알아낸 것만도 큰 성괍니다.”
“…….”
“괜찮습니다. 네에에.”
차은성은 노태준과의 통화를 끝내고 폰을 집어넣었다.
그러곤 눈을 내리감으며 생각했다. 이런저런 상황을 머릿속에서 가정하고 해당 상황에 적절히 대응하려 하였다. 그런 한편으로 잡다한 자신의 상념을 정리했다.
* * *
오후 늦은 시간. 장춘 시내 모 레스토랑 3층.
1, 2층과 달리 3층은 매우 한산했다. 손님이 거의 없었다.
덩그러니 중앙에 놓인 원형 테이블.
두 사람이 마주 보며 앉아 있었다.
냉용해. 박조윤.
두 사람의 주변에는 부하인 듯한 네 남자가 거리를 두고 앉아 있었다.
네 남자는 냉용해, 박조윤을 지켜보는 틈틈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에서 경계의 빛이 어른거렸다.
* * *
잠시 뒤.
냉용해가 놓인 젓가락을 들더니 생선살 한 점을 집었다.
쏙.
입에 넣고는 의도적으로 쩝쩝 소리를 내며 씹었다.
맞은편에 앉은 박조윤을 자극하려는 의도적인 행동이 아닐까 의심스럽다.
그런 한편으로, 냉용해가 왼손으로 술잔을 쥐었다.
꿀꺽, 꿀꺽.
거리낌 없이 술잔을 기울였다.
배를 채우고자 온 것인지.
아니면.
대화를 위해 온 것인지.
냉용해의 모습에 박조윤 중위가 혼란스러웠다.
냉용해의 태도가 불명확하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흔한 말로 아리송하다.
박조윤 중위는 침묵했다.
“…….”
입을 꾹 다물고 냉용해를 가만히 지켜봤다.
* * *
냉용해는 맞은편에 앉은 박조윤 중위가 없는 것처럼,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먹고 마시는 데 열중했다.
* * *
그렇게 얼마간 시간이 지나자.
천천히.
박조윤 중위가 입을 뗐다.
“시간 낭비로군.”
의자에서 일어나려는데.
“앉는 게 좋을 겁니다. 박 중위.”
냉용해가 입에서 술잔을 뗐다.
탁.
이어 잔을 내려놓더니 냅킨을 들어 입을 훔쳤다.
* * *
냉용해의 말에 박조윤 중위가 일순 멈칫했다.
말투는 정중했다. 한데 그가 자신에게 명령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박조윤 중위가 눈살을 찌푸리며 불편하다는 감정을 내비쳤다.
앉을까?
말까?
엉거주춤한 자세로 마음속으로 망설이는 박조윤 중위였다.
* * *
냅킨을 내려놓은 냉용해가 의자에 등을 기대며 왼손을 옆으로 뻗었다.
“시가.”
“네.”
두 부하 중 한 사람이 대답과 함께 일어나더니 서둘러 앉은 냉용해에게 다가갔다.
* * *
잠깐이란 시간이 지나고.
냉용해가 입에 시가를 물고.
뻐금뻐금.
피웠다.
박조윤 중위는 다시 의자에 앉아 감정이 없는 눈으로 냉용해를 마주 보았다.
“내가 소싯적에 러시아 영화를 좋아했는데. 어느 날 영화에서…….”
시가를 피우게 된 계기를 냉용해가 말했다.
“냉 대주. 시간이 남아도는가 봅니다.”
“훗.”
“피차 오랫동안 마주 보고 앉아 있을 만큼 막역한 사이도 아닌데.”
“…….”
“용무는 간단하게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직설적이군. 박 중위.”
냉용해의 말에.
박조윤 중위가 얼굴 찡그렸다.
“난.”
“…….”
“그쪽의 아랫사람이 아닌데…….”
불쾌감을 내보였다.
그러자 냉용해가 입에서 시가를 떼더니.
후우우.
연기를 뿜었다.
은연중에 기 싸움을 하는 두 사람이다. 마치 짐승들이 자연의 법에 따라 서열을 정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