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S의 천재 스파이 (15)
차은성이 오른발을 내리며 혼절한 사내를 보았다.
“후후.”
낮게 웃었다.
마음 놓고 있다가 불시에 일격을 당한 사내다.
“개폼 잡기는.”
차은성이 중얼거렸다.
자신의 상대가 아니었다. 그래서 바라크의 이빨이나 슈팅 나이프를 꺼내지 않았다.
차은성이 뒤돌아섰다. 천천히 걸어가며 주위를 살폈다. 단도회 조직원들이 주위에 잔뜩 깔려 있을지 모른다.
차은성은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 * *
도로가에 주차된 고급 세단.
스르르.
뒷좌석 우측 창이 내려지고 바깥에서 한 사내가 얼굴을 내밀었다.
“당주.”
“어떻게 됐어?”
“놈이 나타나긴 했는데…… 상문과 두 녀석이 놈에게 그만…….”
당주라 불린 마흔 초반의 사내.
장뢰.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놈이 틀림없어?”
장뢰의 물음에.
“예에, 당주. 공항의 그놈이 틀림없습니다. 지금 애들이 흩어져 뒤를 쫓고 있는 중이니 곧 잡힐 겁니다.”
사내가 공손하게 대답했다.
“상문이를 쓰러뜨렸다면 보통 놈은 아니야.”
“…….”
“사람들 눈에 띄어서 좋을 거 없어.”
“그럼.”
“사람들 이목이 없는 곳으로 몰아. 짐승 몰이 하듯이.”
“네.”
“그다음에…… 마지막은…… 그렇게!”
“알겠습니다. 당주.”
“가 봐.”
“네.”
대답과 함께 사내가 뒤로 물러섰다.
스르르.
창이 올라가고 장뢰가 좌석에 몸을 기댔다.
“제법이로군.”
장뢰는 공항에서 송해영과 접촉한 차은성을 생각했다. 차은성이 우려한 대로, 이미 삼합회가 해당 영상을 확보, 차은성을 알고 있었다.
“당주.”
운전석 옆, 조수석에 앉은 사내가 돌아봤다.
“놈은 한국 정부 요원일지도 모릅니다.”
장뢰가 사내 이정을 보았다.
“그래서?”
“지원을 요청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원?”
“네. 저번에 두 한국 요원을 처리할 때도…….”
“됐어.”
장뢰가 툭 던지듯 말했다.
“당주.”
“나 혼자서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어.”
“하지만…… 아, 알겠습니다.”
이정이 급히 말을 바꾸었다.
쏘아보는 장뢰의 눈초리.
불쾌해!
한눈에 장뢰의 심사를 알아챈 이정이다. 돌아보던 시선을 바로 하며 이정이 불안한 눈빛을 띠었다.
‘그래도…….’
상대는 한국 정보 요원이다. 그리 만만하지 않을 것이다. 지원을 요청하는 것이 좋은데.
일전에 죽인 두 한국 정보 요원.
회주 육두시가 통문을 돌려 마카오의 모든 조직에 도움과 협조를 요청했었다. 그 덕분에 두 요원이 단도회 이목에 잡혔고, 철저히 감시당했다. 그리고 육두시의 의뢰를 받은 삼합회의 히트맨들에게 당했다.
그것을 알고 있는 이정은 불안감을 떨치지 못했다.
힐금.
그는 뒷좌석에 앉은 장뢰를 조심스럽게 훔쳐봤다. 공을 세워 위로 올라가고 싶은 공명심이 남다르다.
장뢰가 회주 육두시의 눈에 들기 위해 무리수를 두는 것은 아닌지…….
이정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놓칠 경우, 회주 육두시의 노화가 당주 장뢰에게 떨어질 것이 뻔하다.
* * *
덫이 분명하다.
차은성을 기다린 모양이다. 골목 여기저기에서 단도회 조직원들이 쏟아져 나왔다.
우르르.
죄다 손에 예의 칼을 들었다.
당장이라도 차은성의 피를 보려고 혈안이 된 것 같다.
눈을 까뒤집고 차은성의 전신을 그들의 칼로 난도질하려는 것처럼, 그 기세가 이만저만 흉악한 것이 아니다. 아닌 말로 피에 굶주린 아귀 떼 같았다.
“저기 있다!”
“잡아!”
“죽여!”
조직원들이 내지르는 고함으로 골목이 삽시간에 꽉 찼다.
* * *
차은성은 이리저리 주변을 둘러봤다. 막무가내로 도주하는 것은 아니다. 숙지한 지형을 염두에 두고 도주해야 한다.
만에 하나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미리 도주로를 체크한 것이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젠장.”
차은성이 투덜댔다.
죽이려고 달려드는 조직원들이 많아도 너무 많다.
떼거리에는 답이 없다!
차은성은 서둘러 좌로 돌아섰다.
다다다다다.
그러곤 전력을 다해 뛰기 시작했다.
* * *
잠깐 후.
서너 개의 바라크 이빨이 허공을 스쳤다.
휘, 휘, 휘이익…… 퍼, 퍼, 퍽.
달려들던 단도회 조직원들 중 몇몇의 다리에 바라크의 이빨이 깊이 박혔다.
“악!”
“아악!”
조직원들이 비명을 지르며 나동그라졌다.
꽈당…… 콰당당.
그들을 뒤로하고 차은성이 우로 돌아섰다.
“제기랄! 몇 명이나 푼 거야?”
짜증스러운 어조로 중얼거리며 황급히 뛰었다.
* * *
슈아아아앗.
나이프 날이 쏘아졌다. 삽시간에 허공을 스친 날이 한 조직원의 머리에 박혔다.
퍽!
즉사한 조직원이 뒤로 넘어갔다.
꿍.
차은성은 좌로 돌아서며 수중에 남은 바라크의 이빨을 날렸다.
휘, 휘익…… 퍼퍼퍽.
바라크의 이빨이 가슴에 박힌 세 조직원이 순간 뒤로 벌렁 자빠졌다.
쿠당…… 와당탕.
* * *
잠시 뒤.
후, 후우.
차은성이 벽에 몸을 붙이며 심호흡했다. 긴장이 가득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이대로는 안 돼!’
골목을 벗어나야 한다. 사람들이 많은 대로로 이동. 사람들 사이에 섞여야 한다.
“문제는 놈들도 그걸 알고 있다는 거지. 후, 후우.”
숨을 고르며 차은성이 눈살을 찌푸렸다.
지친다!
자신을 죽이려고 몰려드는 조직원들이 가히 수백 명은 되는 것 같다.
중국 인구가 몇억이라는 것에 생각이 미친다.
“마카오 삼합회가 죄다 몰려온 기분이라니.”
차은성이 중얼거리며 눈을 반짝였다.
단도회.
그들이 지금 자신을 사냥하려고 한다.
특정 한 방향을 터놓고 다른 모든 방향에서 단도회 조직원들이 몰려왔다.
의도가 뻔하다.
사람들 이목을 피하고 자신을 우리라고 할 수 있는 특정 공간에 가두려는 속셈이다.
그 이후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서서히 자신의 숨통을 끊어 놓으려 할 것이다. 더불어 지독한 고통을 안겨 줄 것이다.
“그걸 알면서, 놈들의 의도대로 움직일 수는 없는데.”
차은성이 난감한 기색을 지었다. 가진 바라크의 이빨과 슈팅 나이프를 모두 다 썼다.
“천생 글록을 쓸 수밖에 없는 건가.”
차은성이 중얼거리며 손을 들어 품속에서 글록과 소음기를 꺼냈다.
끼릭, 끼릭.
총구에 소음기를 장착한 후, 벽에서 떨어졌다.
움직여야 한다.
차은성이 좌로 돌아서며 뛰기 시작했다.
그리 오래지 않아.
골목 여기저기에서 총성이 울리기 시작했다.
* * *
1시간 남짓 후.
저벅저벅.
장뢰, 이정이 골목을 지나가고 있었다.
두 사람의 뒤에서 세 명의 남자가 따라붙었다.
장뢰가 걸으며 주변을 쓸어 봤다.
“많이 당했군.”
그의 좌측.
한 걸음 정도 떨어진 거리를 두고 이정이 걷고 있었다.
“일종의 비도와 나이프에다가 총까지 사용하는 바람에…… 계속 몰 경우, 다치는 애들이 많아질 것 같습니다만.”
“그래서?”
“네?”
장뢰의 물음에 이정이 반문하다가 멈칫거렸다.
“설마 이대로 놈을 놔주자. 그 말을 하려는 건 아니겠지, 이정?”
“그럴 리가요, 당주.”
“그럼?”
장뢰가 물으며 이정을 힐긋거렸다. 눈초리가 매서웠다.
이정이 말했다.
“너무 조이지 말고 조금 느슨하게 풀어 주시죠.”
“왜 그래야 하지?”
장뢰가 재차 물었다.
“당주.”
“…….”
“낚시해 보셨습니까?”
이정의 물음에 장뢰가 어안이 벙벙한 기색을 지었다. 알아듣기 어려워하는 눈치다.
“욕심에 미끼를 삼킨 물고기는 바늘에 입이 꿰여…… 물고기가 저항한다고, 무조건 낚싯줄을 당기기만 하면 줄은 결국 툭! 끊기고 맙니다. 그렇게 되면 애써 잡은 물고기를 놓치게 되죠.”
“…….”
“줄을 풀어 주었다가 당겼다가…… 반복하여 물고기의 힘을 충분히 뺀 다음!”
“…….”
“단숨에 줄을 당겨 지친 물고기를 끌어 올려야 합니다. 당주.”
이정이 말을 마치자 장뢰가 씩 웃었다.
“나쁘지 않아.”
“죄송합니다.”
이정이 살짝 머리를 숙였다.
“아니야.”
장뢰가 입가에 작은 미소를 지으며 시선을 바로 하는 동안 이정이 머리를 들었다.
‘불안해.’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이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 살며시 스며 나왔다.
* * *
한참 후.
포위망이란 그물이 느슨해진 틈을 타, 차은성이란 빅 피시가 가까스로 골목을 빠져나왔다. 그 과정에서 탄창 하나를 다 비워 버렸다.
총기의 사용에 단도회 조직원들이 섣불리 차은성에게 달려들지 못했다.
* * *
저벅저벅.
오가는 행인들 사이에서 차은성이 인도를 걷고 있었다. 그런 한편으로 주변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오가는 이들이 적잖아 조직원들이 떼로 달려들진 않았지만, 적당한 거리를 두고 차은성을 뒤쫓고 있었다.
앞뒤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포위망을 재형성하는 조직원들.
‘어쩐다.’
차은성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계속 이렇게 인도를 걸을 순 없다. 지금 당장이야 사람들 때문에 섣불리 자신을 죽이려고 달려들진 않지만. 결국에는 어떻게 하든 자신을 죽이려고 무리수를 둘 것이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완만한 걸음을 디디며 차은성이 좌측을 힐긋거렸다.
각종 차량이 오가는 도로.
‘방법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차은성이 알아보기 어려운 매우 작은 눈빛을 띠었다.
* * *
그리 오래지 않아.
빈 택시 하나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차은성은 재빨리 차로로 돌아서며 택시를 잡았다.
덜컥.
신속하게.
문을 열고는 택시 뒷좌석에 몸을 실었다. 그러곤 이내 문을 닫았다.
그 모습을 본 조직원들이 급히 고함치며 달려들었다.
“거기 서!”
“잡아!”
“놓치지 마!”
그들이 택시를 향해 뛰는 동안.
부우웅.
택시는 출발하고 말았다.
그러자 조직원들이 폰을 꺼내더니 전화하기 시작했다.
일부 조직원은 택시를 잡으려 하였고, 또 다른 일부 조직원들은 어딘가로 뛰었다.
* * *
카지노.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이 밤을 대낮같이 밝혔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카지노로 이동한 차은성은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곧바로 카지노 안으로 들어갔다.
* * *
얼마 후.
일단의 차들이 카지노에 도착했다.
덜컥, 덜컥.
수십여 명의 건장한 사내들이 급히 차에서 내렸다. 그들 중에는 장뢰와 이정 또한 있었다.
“당주.”
이정이 장뢰를 돌아봤다.
“중문회가 운영하는 카지놉니다. 섣불리 들어갔다가는…… 놈과 안에서 난투극이라도 벌어지면…… 중문회와 충돌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이정은 염려했다.
카지노는 삼합회 각 조직의 주요 자금원이다. 또한 각 조직의 구역을 상징한다.
“구역 침범으로 비쳐 보일 수 있다. 그 말이냐, 이정?”
장뢰가 이정에게 말했다.
“중문회와의 충돌이 걱정된다고 이대로 놈을 그냥 둘까? 이정!”
장뢰가 이정을 돌아봤다.
추궁의 눈초리다.
이정의 말대로 했다가 차은성이 도주했다. 그 때문에 장뢰가 은근 이정에게 무언의 책임을 물었다.
“…….”
이정은 침묵하며 머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행동으로 마음을 나타냈다.
그러자 장뢰가 부하들을 돌아봤다.
“들어가.”
“네!”
부하들이 대답하더니 빠른 걸음으로 카지노로 걸어갔다.
* * *
카지노 내부는 도박을 하려는 이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붐볐다.
그 사람들 사이에서 차은성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장뢰의 부하들이 카지노 여기저기를 돌아다니자, 카지노 내부 곳곳에 설치된 다수의 카메라에 그들이 잡혔다.
그에 카지노 보안 팀이 움직였다.
한데.
콰앙…… 콰아앙.
느닷없이 여기저기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슬롯머신, 쓰레기 통, 카드를 돌리는 테이블 등.
동시다발로 일어난 폭발에 큰 소란이 일어났다.
“뭐, 뭐야?”
“꺄아아악!”
“허억!”
“테, 테러다!”
카지노에 있던 이들이 엄청 놀랐다. 그들은 황황급급히 입구로 몰렸고, 카지노 내부가 아수라장이 되는 것은 삽시였다.
와당탕…… 우당탕탕.
곳곳에서 의자와 테이블들이 넘어졌다.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며 기를 쓰고 카지노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 누구도 어떻게 할 수 없는 혼란에, 카지노에 들어와 있던 장뢰와 이정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
장뢰가 잇몸을 드러내며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는 차은성을 놓친다. 아수라장이 되어 버린 상황에서, 사람들이 죄다 입구로 몰린 터라 차은성을 찾기란 매우 어렵다.
게다가.
“장 당주!”
카지노 보안 책임자인 듯한 이들이 일단의 보안 요원들을 대동하고는, 서 있는 장뢰에게 걸어갔다.
이정은 어이없었다.
‘이런 식으로!’
차은성의 수작이 훤히 보인다. 자신들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일부러 카지노로 숨어든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