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S의 천재 스파이 (16)
차은성이 테이블에 앉아 건너편의 대형 유리창을 바라보았다.
유리창 너머.
마카오의 야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차은성이 손을 뻗어 콜라를 쥐었다. 이내 고개를 젖히며 입안에 콜라를 들이부었다.
연후.
콜라를 내리며 야경을 바라보았다.
“빌어먹을!”
하마터면 당할 뻔했다. 그야말로 천신만고 끝에 단도회 조직원들을 따돌렸다.
“꼼짝없이 그물에 갇힌 물고기가 될 뻔했어. 제기랄!”
차은성이 신경질적인 어조로 중얼거렸다.
“감이 안 좋더라니.”
어쩜 이렇게 다 맞아떨어질까?
감을 무시할 수가 없다.
“이제까지 필드에서 한 작전들 중에.”
차은성이 중얼거림을 멈췄다.
최악이다!
이런 엉망인 작전은 생전 처음이다.
“처음부터 단추를 잘못 끼웠어.”
짜증 내는 차은성이었다.
그때.
띠띠띡.
작고 낮은 전자음이 연이어 울렸다.
차은성이 흠칫하며 우를 돌아봤다.
* * *
잠깐 후.
차은성은 키보드를 두드렸다. 노트북 모니터에 메신저창이 떠 있었다.
―괜찮으냐?
박영광이 걱정한 모양이다.
―네. 괜찮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더럽게 꼬였습니다.
―상황이 꼬였습니다.
―알아.
―안다고요?
―그래. 여기 지금 난리야.
―…….
―아마 놈들이…… 포인트에서 널 기다렸을 거야.
―그럼?
―네 위장 신분이 아무래도 삼합회에 노출된 것 같다.
―역시!
―…….
―구승찬과 태광 애들이 잡혔다.
―그럼?
―뻔하잖아. 태광 애들이 구승찬이 숨어 있는 곳으로 삼합회 놈들을 안내한 거지.
―이런 개판인 작전은 난생처음입니다.
―휴우. 1차장이 나댈 때부터 잘못된 거야. 지금 1차장이 네 탓을 하며 작전이 엉망이 된 책임을 네게 돌리고 있어…… 최대한 빨리 구승찬을 서울로 데리고 오지 않고 마카오에서 일주일씩 미적대며 접선을 미루는 바람에 현 상황이 엉망으로 틀어졌다고 말이다.
―그 인간 정말!
―1차장도 지금 똥줄이 타. 구승찬 건을 1차장에게 부탁한 이가, 알고 보니 여당 당 대표와 청와대 외교 안보 수석이야. 그러니 구승찬이 잡힌 지금, 1차장이 얼마나 속이 타들어 가겠냐?
―그렇다면 태광 중공업 구대성 사장이 여당 당 대표와 외교 안보 수석을 움직인 거군요.
―그렇지. 아마 못해도 수십억은 꼬라박았을 거야.
―…….
―일단 작전을 중지하고 홍콩으로 이동해.
―작전 중집니까?
―어쩔 수 없어. 삼합회 수중에 구승찬이 떨어진 이상, 구승찬이 죽는 건 기정사실이야. 우리가 어떻게 손을 쓸 여지가 없어.
―죽은 두 요원은 그럼 개죽음한 거잖습니까?
―…….
박영광은 침묵했다.
차은성은 와락 얼굴을 이지러뜨렸다. 화가 치민다. 성난 눈빛을 띠었다.
“1차장!”
정말이지 갈아 마시고 싶은 작자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상황을 개판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애초, 국가기관이 일개인의 일에 끼어든 것부터가 잘못된 것이다.
“일개인이라고 해도 국익과 관련이 있다면 회사가 나서는 것이 맞지만!”
차은성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박영광이 작전 중지와 함께 홍콩으로의 이동을 지시했다.
“홍콩으로 이동한다는 것은 곧바로 서울로 오라는 건데.”
차은성이 중얼거리며 손을 들어 이마를 쓸어 넘겼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력에 큰 오점을 남기게 되었다.
차은성이 노트북 화면을 보았다.
―은성아.
―…….
―…….
―은성아.
생각하는 사이, 박영광이 연이어 메시지를 보냈다.
―말씀하세요.
―엉뚱한 생각 하지 말고 철수해.
―그렇게 되면 작전 실팹니다.
―그 누구도 네게 뭐라 말 안 해. 아니, 말 못 해. 상황 자체가 비비 꼬여 버린 걸 누굴 탓해!
―…….
―오점이 남는다는 생각 따윈 하지 말고 지금 즉시 홍콩으로 이동하도록 해.
박영광은 차은성이 엉뚱한 생각을 할까 봐 홍콩으로의 이동을 종용했다.
―알겠습니다. 일단 2, 3일 정도 돌아가는 상황과 분위기를 살핀 후에 홍콩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자존심!
―…….
―세울 상황이 아니라는 걸 알잖아?
박영광이 화냈다.
―저. 차은성입니다. 차은성이요.
―휴우. 꼭 그래야겠니?
―믿고 맡겨 주십시오.
―알았다. 네가 알아서 하고, 몸조심해라. 삼합회 놈들이 지금쯤이면 널 찾기 위해 마카오 전역을 이 잡듯이 뒤지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네에. 그럼.
―그래. 나중에 서울에서 보자.
차은성이 메신저창을 닫았다.
다시 콜라를 손에 들고 입안 가득 들이부었다. 이어 콜라를 내려놓으며 중얼거렸다.
“딱 담배각인데.”
스트레스 때문에, 예전에 끊은 담배 생각이 간절해진다.
* * *
잠시 뒤.
노트북 화면 우측 상단에서 알림 이모티콘이 깜빡였다.
* * *
경각 후.
차은성이 메일을 열고 눈으로 읽었다. 그사이 차은성의 눈에서 꽤 다양한 감정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 * *
이윽고.
메일을 다 읽은 차은성이 살며시 미소 지었다.
씩.
차은성은 뜻밖이라는 어조로 중얼거렸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더니 이런 행운이 날 찾아올 줄이야. 후후후.”
들뜬 웃음을 흘리며 눈을 반짝였다.
추가 정보가 필요해서 모종의 경로를 통해 관련 정보를 구매했었다. 그 결과에 차은성은 매우 만족했다.
답답하리만치 엉망이 되어 버린 현 상황의 반전을 노려 볼 만한 돌파구를 수중에 넣었다.
“하지만…….”
차은성이 중얼거리며 낯빛을 흐렸다.
* * *
이틀 후.
마카오 교외에 있는 대저택.
한 대의 고급 세단이 정문 대형 창살문 앞에 섰다.
끼익.
그러자 경비로 보이는 이들 중 한 명이 세단의 운전석으로 걸어와 섰다.
스르르.
창이 내려지고 차은성이 경비를 돌아봤다.
“대만 양 대인의 소개로 온 사람입니다.”
경비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까닥였다.
“전달받았습니다.”
말과 함께 경비가 돌아보며 오른손을 머리 높이 들었다.
그러자 창살문이 천천히 안쪽으로 열리기 시작했다.
* * *
원탁에 앉은 예순 초반의 노인, 죽림방주 화용진.
차은성은 양손을 들었다.
왼손바닥을 펴고 오른손은 주먹 쥐었다. 손바닥과 주먹을 착 붙이며 머리를 숙였다.
“차은성이라고 합니다. 화 대인.”
삼합회 특유의 예법으로 인사했다.
* * *
화용진이 천천히 차은성을 돌아보며 의외라는 눈빛을 띠었다.
차은성이 삼합회 특유의 예법을 아는 것이 뜻밖인 모양이다.
화용진이 오른손을 들어 맞은편 의자를 가리켰다.
앉아!
화용진의 무언에 차은성이 양손을 내렸다. 그러곤 완만한 걸음으로 예의 의자로 걸어가 앉았다.
* * *
잠깐이란 시간이 지났다.
차은성이 앞에 놓인 찻잔을 들었다. 이어 살며시 눈을 감으며 코로 스며드는 향을 음미했다.
“보이차군요. 적어도 20년 이상 된 것 같습니다만.”
화용진은 말없이 차은성을 보았다.
감정이 없는 사람인 양, 차를 몇 모금 마시는 차은성을 바라만 보았다.
이윽고.
차은성이 앉은 원탁에 찻잔을 내려놨다.
그러자 화용진이 말하기 시작했다.
“대만의 양승조와 무슨 관계인가?”
화용진의 물음에 차은성이 정중하게 말했다.
“예전에 우연히 그분과 연이 닿았었습니다.”
“양승조는 나와 호형호제하는 의형제와 같은 이인데, 그가 야밤에 전화해서 하는 말이, 아들을 보내니 잘 좀 부탁한다고 말하더군.”
“…….”
“양승조에게 아들이 둘 있었는데, 하나는 영아일 때 죽었고 남은 하나는 몇 해 전에 있었던 항쟁에 휘말려 죽었지. 승조에게 남은 자식이라고는 이제 딸아이 한 명밖에 없어.”
“…….”
“그런 양승조가 내게 아들이라고 말했어.”
화용진이 미심쩍은 눈빛을 띠었다. 차은성을 바라보는 그의 눈초리가 매우 매서웠다.
“양 대인이 절 그렇게 봐 주시고 계실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한국 정부 대리인인가?”
화용진이 거리낌 없이 물었다.
차은성이 화용진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렇습니다.”
꿀릴 것이 없다! 그렇게 무언으로 말하는 것 같은 태도였다.
“흠.”
화용진이 침음을 흘렸다.
“화 대인께 만남을 청하면 만나 주시지 않으실 것 같아, 양 대인에게 부탁을 드렸습니다. 언짢으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차은성이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들었다.
죽림방주 화용진은 만나고 싶다고 해서 만날 수 있는 이가 아니다. 그리고 자신은 지금 사지에 들어와 있다. 안전을 확보하자면 양승조와 같은 이의 소개나 배경이 필요하다.
화용진이 눈을 반짝였다.
“어젠가, 구승찬이란 한국인이 육두시에게 잡혔다는 말을 들었는데. 혹, 그 일 때문에 날 찾아온 건가?”
“거두절미하고 여쭤보겠습니다. 화 대인.”
“응?”
화용진의 이맛살이 살며시 접혔다. 그러자 두어 개의 주름이 나타났다.
심기가 불편한 눈치다. 어쩌면 마음속으로 건방지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의 물음을 차은성이 무시하고 화제를 돌려 버렸으니까.
‘어차피!’
차은성은 손해 볼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이유로 강하게 나갔다. 약하게 보이면, 역으로 잡아먹힌다고나 할까?
직면한 상황이 그와 같다.
‘기선 제압이 필수야.’
차은성이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동안.
화용진이 천천히 입을 뗐다.
“말해 보게.”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차은성이 말했다.
“죽림방이 한국 정부와 전쟁을 하려고 합니까?”
순간, 화용진의 낯빛이 확 급변했다.
당황했다.
아무리 죽림방이 홍방이나 흑사회와 더불어 삼합회의 근간을 이룬다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범죄 조직에 불과하다.
한국 정부와 전쟁을 하려고 할 리가 없다.
차은성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아마 베이징에서 모종의 경로를 통해 화 대인께 연락이 왔을 겁니다.”
화용진이 순간 자신도 모르게 헛바람을 삼켰다.
“흑!”
차은성이 화용진을 뚫어져라 마주 보며 말을 이었다.
“한국과 문제를 일으키지 마라! 한중 사이의 외교 문제로 만들지 마라!”
“…….”
“아마 그런 연락이었을 겁니다.”
차은성은 흔들림이 없었다.
두 요원이 죽었다. 중국 정보기관인 국안부가 그것을 모를 리 없다. 하여 혹 한국 정부가 전격적으로 나설까 우려하며 모종의 경로를 통해 화용진에게 주의를 주었다.
일 크게 만들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