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S의 천재 스파이 (5)
미션 모스크바
노태준은 재빨리 총을 상의에 집어넣으며 주변을 살폈다.
그런 다음 고개를 돌려 1층을 내려다봤다.
천천히 게이트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조영국과 김아름.
씨익.
그들을 본 노태준이 작은 미소를 지었다.
* * *
배낭여행객으로 위장한 황민준과 우형광이 공항 내로 들어섰다.
“왔냐?”
이어폰을 통해 들리는 노태준의 목소리에 황민준과 우형광이 미소 지었다.
“네에.”
황민준과 우형광이 동시에 대답하자 노태준이 물었다.
“일은?”
“완료했습니다.”
“지금쯤이면 브뤼셀 경찰들과 한바탕하고 있을 겁니다. 큭큭.”
“곧바로 탑승구로 가. 여권은 챙겼지?”
“네에.”
“서울에서 뵙겠습니다.”
“OK.”
노태준의 말과 함께 전화가 끊겼다.
* * *
공항 스낵 코너.
차은성과 노태준이 나란히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여유 아닌 여유였다.
두 사람이 죽인 CIA 요원들.
공항 이용객들이나 공항 보안 요원들 눈에 띌지 모른다. 그러니 서둘러 퇴출해야 한다.
“민준이와 형광이는 무사히 탑승구로 들어갔어.”
노태준의 말에.
“선배도 가세요.”
차은성이 힐긋 돌아봤다.
“넌?”
“저도 가야죠.”
“뒤에 남아 CIA 놈들 동향을 볼 생각이라면, 그만둬.”
차은성이 시선을 바로 하며 커피 잔을 들었다.
“공항 내에서 우리 모습이 잡힌 영상이 남아 있을 겁니다. 없애야죠.”
“너 혼자서?”
노태준이 말하며 주변을 살폈다.
“팀장이니까요.”
차은성이 그새 몇 모금 마신 커피 잔을 내려놨다.
“너 혼자서는 무리야.”
“걱정하지 마세요. 저, 차은성입니다. 혼자서 할 수 있습니다.”
고집을 피우는 차은성이었다.
노태준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보다 어리면서 팀장을 맡을 정도로 능력 하나는 끝내주는 차은성이다.
“가십시오. 연지가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아닌 게 아니라 이틀 후에 그 녀석 생일인데…… 출장 핑계로…… 유명한 벨기에 초콜릿 하나 못 샀네. 젠장.”
투덜대는 노태준의 말에 차은성이 살며시 미소 지었다.
씩.
이어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이틀 후에 항공 특송으로 배달될 겁니다.”
차은성의 말에 노태준이 깜짝 놀랐다.
“너?”
“…….”
“언제?”
“아무 말씀 마시고, 가십시오. 혹여 발목 잡는 상황이 생기면 연지 생일 때 케이크 불을 못 끄는 수가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망할 자식. 아주 악담을 해라, 악담을.”
“가세요.”
“알았다. 먼저 가마.”
“네에.”
차은성이 말하자 노태준이 천천히 일어났다.
차은성은 돌이보지 않았다. 다시 커피 잔을 들며 앞을 바라보았다.
정면에 있는 작은 일자의 거울에 걸어가는 노태준이 비쳤다.
* * *
차은성은 바빴다.
공항 보안 시스템상에 남아 있는 모든 흔적을 깔끔하게 지워야 했다.
일련의 작업을 서둘러 마친 후 차은성이 막 항공기에 탑승할 때였다.
* * *
공항으로 일단의 이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찾아!”
“모든 항공기의 이륙을 지금 당장 중지시켜!”
“샅샅이 뒤져!”
그들 중 몇 명이 엄청 화난 목소리로 고래고래 소리쳤다.
이내 그들이 황황급급히 공항 곳곳으로 흩어졌다.
* * *
이른 아침의 모스크바 국제공항은 한산했다.
환승 시간에 여유가 있어 차은성은 공항 스낵 코너를 찾았다. 자리에 앉아 아침으로 커피를 마시고 샌드위치를 먹었다.
후룩.
커피를 두어 모금 입에 머금고 잔을 내렸다. 그러곤 왼손으로 태블릿을 쥐고 액정 화면을 보았다.
대번에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CIA를 도와준 셈이 돼 버렸군. 쯧.”
못마땅하다.
―CIA. 경찰에 체포!
―공항 폭발! 테러를 CIA가 막다!
태블릿에 뜬 벨기에 신문 기사들을 검색하며 CIA의 발 빠른 대처에 혀를 내둘렀다.
“역시야. 젠장!”
거칠게 중얼거리는 차은성.
CIA를 생각했다. 세계 최강의 정보기관답다. 이렇게 상황을 빠르게 수습할 줄은 몰랐다.
차은성이 다시 커피 잔을 들려는 찰나.
멈칫.
손을 멈추고 차은성이 우를 흘겨봤다.
어느새 다가와 옆에 앉는 마흔 후반의 남자.
아는 이다.
‘젠장!’
차은성은 마음속으로 짜증 내며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폈다.
‘방심했어.’
정확한 인원수를 알 수는 없지만 자신이 포위 및 감시당하고 있었다.
“아침이 너무 부실한 것 같은데. 은성.”
세르게이의 말에 차은성이 옆으로 손을 뻗었다. 가방을 당겨 태블릿을 넣으며 대꾸했다.
“이른 아침에 어쩐 일로 공항까지…….”
“후후.”
세르게이가 실소했다.
‘빌어먹을! 어쩐지 모스크바를 경유하라고 말하더라니.’
박영광을 생각했다.
모스크바를 경유해서 귀국하라고 말할 때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왜 모스크바를 경유해서 귀국하라고 말하는지 물어보려고 했었는데.
박영광이 말을 돌리는 바람에 미처 물어보지 못했다.
‘능구렁이 같으니라고!’
현 상황이.
박영광의 작품임이 분명하다.
차은성은 무표정한 얼굴로 커피 잔을 들었다.
후룩.
커피를 마시는데.
“벨기에에서 일을 너무 크게 벌였어. 은성.”
세르게이가 말했다.
차은성이 천천히 잔을 내려놨다.
“언제부터 내 일에 관심이 그렇게 많았어요, 세르게이?”
“예전부터.”
“할 일이 없는가 보군요. FSB가 엄청 한가한가 봐요.”
“은성.”
세르게이가 진중하게 말하며 은근 말을 깔았다.
“거두절미하고.”
“…….”
“좀 도와줘야겠어.”
세르게이의 말에 차은성은 어안이 벙벙했다.
“무슨?”
세르게이가 차은성을 보며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 * *
모스크바 시내 모 호텔 스위트룸.
차은성이 3인용 소파에 앉아 러시아 차를 마셨다.
“음……. 간만에 마셔서 그런지 맛이 좋군요.”
차은성이 잔을 내려놓으며 맞은편에 앉은 세르게이를 보았다.
보드카를 잔에 따르는 세르게이.
쪼르르.
차은성이 말했다.
“누가 러시아인 아니라고 할까 봐, 아침부터 보드캅니까? 세르게이.”
단숨에 원샷 한 세르게이였다. 잔을 내려놓으며 차은성을 보았다.
“러시아인에게 보드카는 일상이라고. 은성.”
“그러다 한 방에 훅 가는 수가 있습니다.”
“천만에.”
“예?”
세르게이의 대꾸에 차은성이 어리둥절했다.
“한국 의료 서비스.”
“풋.”
세르게이의 대꾸에 차은성이 가볍게 웃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 서비스!
러시아인들은 한국 의학을 그렇게 높이 평가한다.
‘웬 립 서비스?’
내심 경계하는 차은성이다.
세르게이가 은근 띄울 때는 뭔가 있다고 봐야 한다.
차은성이 소파에 등을 기댔다.
“슬슬. 본론을 꺼내시죠. 세르게이.”
“그럴까?”
차은성을 마주 보며 세르게이가 빙긋 웃었다.
* * *
차은성은 태블릿에 뜬 한 남자의 얼굴을 유심히 보았다.
“이고르 밸라노프.”
세르게이가 설명했다.
“세계 무기 시장에서 알아주는 우리 러시아의 무기상들 중 한 사람이야.”
“…….”
“구 KGB 출신으로 러시아 마피아는 물론이고 정재계를 비롯한 요로에 연줄이 매우 많아.”
“뭔가 문제가 생긴 모양인데.”
차은성이 세르게이를 보았다.
고개를 끄덕이는 세르게이.
“아주 골치 아파!”
“…….”
“거래해서는 안 되는 자들과 거래를 했어. 그 때문에 우리 러시아군이 아주 큰 피해를 보았지. 군 장성들이 알고 열 받아 대통령에게 보고했는데.”
“대통령이 제거 명령을 내렸다?”
“맞아.”
세르게이의 말에 차은성이 의구심의 눈빛을 띠었다.
“이고르 정도의 거물 무기상이라면…….”
말끝을 흐렸다. 러시아 정부가 이고르의 뒤를 봐 준다. 그렇게 봐야 한다.
그런데 대통령이 제거 명령을 내렸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혹시 내게 속이는 것이…….’
차은성은 내심 세르게이를 의심했다.
‘……좋은 친구는 믿을 수 있는 친구라는 말이 통용되는 바닥이 아니지. 훗.’
박영광이 말했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이고.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적이라고.
세르게이가 말했다.
“봐 주는 것도 정도가 있지. 선을 넘어서면 제재가 불가피해. 그래야 다른 무기상이 그 본보기를 보고…….”
차은성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런 건가? 일벌백계?’
대충 그림이 그려진다.
“대통령이 승인했다면 제거하면 되잖습니까? 세르게이.”
차은성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어조로 말했다.
사실상 일인 독재국가나 마찬가지인 러시아다.
“그게 쉬웠다면 자네를 불러들이지 않았겠지.”
차은성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러자 살이 접히며 몇몇 주름이 잡혔다.
박영광이 세르게이와 뭔가 거래를 한 것이 틀림없다. 그 결과, 지금 이렇게 자신이 세르게이와 마주 앉아 있는 것이다.
“거래해서는 안 되는 자들과 거래를 했다?”
“…….”
“거래로 인해 자신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 알고서 거래를 했다는 말이니. 이고르 정도 되는 자가 가만히 앉아서 당할 리는 없고.”
차은성의 말에 세르게이가 답답하다는 어조로 말했다.
“제거 작전에 들어갔는데, 어떻게 정보가 유출되었는지 우리 FSB 팀이 죄다 당했어.”
차은성이 순간 놀랐다.
“맙소사!”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이고르다. 러시아 정부와 한판 하자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게 가능합니까?”
“가능하니 문제지.”
말하는 세르게이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이거 잘못 걸린 거 아니야?’
덜컥.
걱정이 되는 차은성이다.
이고르 같은 자가 러시아 정부와 각을 세우는 것은 뭔가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이고르를 가만히 놔뒀단 말입니까?”
“요로에 연줄이 많다고 말했잖아.”
“아무리 연줄이 많아도 그렇…… 혹시 FSB 내부에도…….”
차은성이 말하다 흠칫했다. 짚이는 것이 있어 세르게이를 보았다. 유심히 세르게이의 안색을 살폈다.
“휴우. 말하기 부끄럽지만, 우리 러시아가 한국에 비하면 부족한 면이 없잖아 있지.”
말하는 세르게이. 답답하다는 감정 외에 다른 감정은 내색하지 않았다.
“그렇긴 하죠. 대통령도 감옥에 보내는 나라가 우리 한국이니깐. 풋.”
차은성이 가볍게 웃었다.
그러자 세르게이가 정색했다.
“우리 러시아를 비웃나?”
그의 물음에 차은성이 재빨리 양손을 가슴 어름으로 들었다.
“천만에요.”
세르게이가 보드카 병을 쥐었다.
그사이, 차은성이 양손을 내렸다.
쪼르르.
세르게이가 잔에 보드카를 따랐다.
차은성이 그에게 물었다.
“내가 뭘 해 주기를 바라는 겁니까? 세르게이.”
세르게이가 잔을 들었다.
“한 사람을 빼내 와 주었으면 해.”
“구조?”
차은성의 물음에 세르게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내부에 이고르에게 매수당한 놈이 있을지 모르니, 우리 요원들은 움직일 수가 없어. 움직였다가는 이고르 귀에 들어갈 테니깐.”
“그래서 외부 전문가가 필요하다?”
차은성의 말에 세르게이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단숨에 잔을 비웠다. 이어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모스크바 동북방에…… 120Km 거리에…… 디미토르프라는…… 인구 30만 정도의 중소 도시가 있어.”
“…….”
“……지역 정가는 물론이고 시청과 경찰을 비롯한 거의 모든 이들이 죄다 이고르에게 매수되어 도시 전체가 이고르의 개인 왕국이나 마찬가지야.”
“…….”
“이고르 정도 되는 무기상은 우리 FSB의 감시 대상자 리스트에…… 오래전부터 이고르 곁에 우리 요원을 붙여 둬서…….”
차은성은 세르게이의 말을 다 믿지 않았다.
‘뭔가 믿는 것이 있어. 그게 뭘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