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S의 천재 스파이 (4)
차은성은 조영국을 돌아봤다.
“외우셔야 할 것들입니다.”
조영국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조영국이 받아 들며 씩 소리 없이 웃었다.
“살려면?”
“네.”
차은성이 고개를 까닥였다.
* * *
의자에 앉은 조영국이 여권과 메모지를 들고 정신없이 중얼거렸다.
필히 숙지하고 있어야 하는 다나카 세이치에 관한 기본 정보를 암기하는 조영국이다.
차은성은 가만히 조영국을 지켜보았다.
* * *
얼마 후.
김아름에게 다가선 차은성이 말했다.
“준비는?”
“모두 마쳤습니다.”
“아름이 넌 조영국 요원과 함께 서울로 돌아간다.”
“알겠습니다.”
“다른 팀원들은 별도의 매뉴얼에 따라 움직일 거야.”
“네.”
“일본 여권 갖고 있지?”
“네에.”
“서울로 돌아가는 즉시 다이브에 들어가. 상황이 안정되면 스탠바이 사인이 갈 거야.”
“알겠습니다.”
“이번 일에 대한 보수는 이전처럼 처리될 거야.”
차은성의 말에 김아름이 쌩긋 웃었다.
“팀장님 덕분에 우리 아가가 하나 더 생기겠네요.”
명품 수집광인 김아름이다.
차은성이 살며시 미소 지었다. 그리고 뭐라 말하려고 하는데.
“끝까지!”
김아름이 먼저 말했다.
“…….”
“방심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 마음 놓고 있다가 뒤통수 맞으면 곧바로 골로 가니깐.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지?”
김아름의 장난스러운 말에 차은성이 픽 웃었다.
그동안 같은 말을 너무 반복한 모양이다. 김아름이 이렇게 외우고 있을 줄은 몰랐다.
“절대 방심하지 마!”
“넵!”
김아름이 군인처럼 씩씩하게 대답했다.
은근 주의를 주듯.
차은성이 진중한 어조로 말했다.
“잠시 뒤에 조영국 요원이 공항으로 갈 거야. 그러니 미리 태준 선배와 형광이, 민준이에게 연락해 둬……. 모든 건 계획대로!”
“알겠습니다, 팀장님.”
김아름의 대답에 차은성이 고개를 까닥였다.
* * *
휘이이잉.
찬 바람이 부는 빌딩 옥상 바닥.
두 사람이 엎드려 있었다.
한 사람은 저격용 소총의 렌즈에 눈을 대고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좌측에서 길쭉한 망원렌즈에 눈을 댔다.
“세상 참 좋아졌어. 예전에는 보조 사수가 옆에서 풍향이나 풍속을 봐 주었는데, 이젠 센서가 그 역할을 대신한단 말이야.”
“저격수는 침묵이 생명이라는 거 몰라?”
“짜식이.”
“장난스럽게 처리할 일이 아니야. 상대는 CIA라고. 그것도 대외 작전부!”
긴장한 어조로 말하는 황민준이었다.
“누가 그걸 몰라! 안다고, 알아.”
우형광이 대꾸했다.
“그런데 수다야.”
“말을 말자. 응! 지루한 시간을 어떻게든 잘 좀 보내려는데…….”
우형광이 말하는 도중.
치, 칙.
두 사람의 귀에 낀 이어폰에서 작은 잡음이 들렸다. 이어 노태준의 급박한 목소리가 들렸다.
“왔다!”
순간.
꿀꺽, 꿀꺽.
황민준과 우형광이 마른침을 삼켰다. 두 사람의 얼굴이 긴장으로 경직되었다.
“형광아.”
“네. 선배.”
“확실하게 해야 해.”
“걱정 마십시오. 그런데 경찰은 어떻게 됐습니까? 선배.”
“이미 출발했으니깐 10~15분쯤 걸릴 거야.”
“알겠습니다.”
“작전 종결 후 곧바로 공항으로 이동해.”
“네.”
“민준아.”
“네에. 듣고 있습니다, 선배.”
“놈들. 죽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최대한 소란스럽게 해서, 놈들과 경찰을 함께 엮는 것이 목적이야. 알겠지?”
“네. 잘 알고 있습니다.”
황민준이 긴장한 어조로 대답했다.
“장난치지 말고!”
노태준이 주의를 주었다.
“일! 망치지 마라. 알겠지?”
“예에. 믿고 맡겨 주십시오, 선배. 저 우형광입니다. 우형광이요.”
“자만하지 말고!”
“선배님. 일은 확실하게 합니다.”
우형광의 대답에.
“좋아. 믿어 보마.”
노태준이 대꾸했다.
“그럼 공항에서 뵙겠습니다.”
황민준이 말했다.
“그래.”
노태준의 말을 끝으로 통화가 끝났다.
* * *
잠시 뒤.
끼익, 끼익.
역 앞에 네 대의 승용차가 급정지했다.
덜컥, 덜컥.
급히 문이 열리고 열두 명의 남자가 쏟아져 나왔다.
그들의 연령대는 서른 안팎이었고 인종은 다양했다.
그들은 서로 돌아보며 뭐라 말하더니 이내 역으로 향했다.
그사이.
승용차의 운전석에서 네 명의 남자가 내렸다.
그들은 서둘러 차 문을 닫고 앞선 이들을 따라 역으로 향하려 하였다.
그때.
퍼퍼퍼퍼퍽.
승용차의 주입구를 뚫고 총탄이 연이어 박혔다.
찰나.
콰, 콰…… 콰아앙!
섬광과 함께 폭발이 일어났다.
승용차 밑에서 화염이 솟구치고 폭발 압력으로 승용차들이 허공으로 붕 떴다가 도로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쿠앙…… 쿠우웅.
그러자 도로를 주행하던 차량들이 급정지하기 시작했다.
끼, 끼이이이…… 끽.
운전석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급히 밖으로 뛰어나왔다.
* * *
역 인근을 지나가던 이들이 걸음을 멈추고 돌아봤다.
그들 중 몇 명은 급히 몸을 낮췄고 몇몇 여성이 매우 놀란 표정을 지으며 양손을 들었다.
“꺄아악!”
그러곤 두 눈 아래를 가리며 놀라워했다.
* * *
폭발로 승용차들 가까이에 서 있던 이들이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그들은 곧 바닥에 떨어지더니 떼굴떼굴 구르기 시작했다.
* * *
앞서 역으로 향하던 열두 명의 남자.
그들은 폭발에 급히 몸을 움츠리며 뒤돌아봤다.
퍼퍼퍼퍼퍽.
그 순간, 그들의 왼발과 우측 어깨에 총탄이 날아와 깊이 박혔다.
“악!”
“으악!”
비명을 지르며 총상을 입은 이들이 나동그라졌다.
“저격이야!”
“엎드려!”
“피해!”
동료들이 당하는 것을 본 다른 이들이 서로 돌아봤다.
그들은 바닥에 몸을 엎드리고 급히 엄폐물을 찾았다. 하지만 주변에는 이렇다 할 엄폐물이 없었다.
저격이 계속되었다.
퍼, 퍼, 퍽.
총상을 입은 이들이 계속 나왔고, 그들은 바닥에 몸을 뉘었다.
* * *
오래지 않아 마치 사전에 약속이라도 한 듯이.
삐뽀…… 삐뽀…….
사이렌을 울리며 다수의 경찰차가 나타났다. 경찰차들은 곧장 역으로 향했다.
* * *
황민준이 몸을 일으켰다.
“서둘러!”
우형광이 뒤이어 몸을 일으켰다.
“젠장. 다 죽일 수 있는데.”
아쉬워했다.
황민준이 우형광을 돌아봤다.
“제발 좀!”
“알았어.”
우형광이 대꾸하며 뒤돌았다.
한쪽 무릎을 꿇으며 미리 놔둔 가방을 당겼다. 그러곤 소총을 분해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황민준이 문으로 뛰었다. 퇴출 통로를 사전에 확보하려는 사전 매뉴얼에 따른 행동이었다.
* * *
저녁이라 그런지 공항 내에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다나카 세이치로 위장한 조영국과 김아름이 마치 부부처럼 나란히 걷고 있었다.
멀찍이 떨어진 뒤에서 차은성이 걸었다.
저벅저벅.
차은성이 오른손을 들어 이어폰을 살짝 눌렀다 뗐다.
“선배.”
노태준을 불렀다.
“대기 중.”
“놈들은요?”
“역으로…… 유인작전이 먹혔어. 대부분 이동하고, 공항 내에 남은 놈은 넷이야.”
“위치는요?”
차은성의 물음에 노태준이 말했다.
“……1층에 두 놈. 2층에 두 놈이야. 1층에 있는 놈들은…… 은성아.”
“네.”
“보복은 충분히 하지 않았냐?”
차은성은 걸으며 공항 내부를 천천히 둘러봤다.
“보복 아닙니다. 응징이죠.”
“응징?”
“네. 3팀 요원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응징이요.”
“너.”
“…….”
“때로는 너무 무모하고 과해.”
노태준의 말에 차은성이 살며시 웃었다.
“선배.”
“…….”
“조영국 요원과 아름이가 무사히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놈들이 눈치채기라도 하면 즉각 출국 과정에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노태준이 물었다.
“그래서?”
“먼저 시작한 것은 놈들입니다. 우리를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이참에 아주 확실하게 보여 줘야 합니다. 그래야 차후에라도 마지막 선을 넘지 않을 겁니다.”
“야, 상대는 CIA야. 그중에서도 악질인 대외 작전부라고.”
“압니다.”
“아는데 이래? 조영국 요원이나 아름이는 무사히 출국할 수 있어. 이건 그저 복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야.”
“전, 합니다!”
차은성이 고집을 부렸다.
“은성아. 제발…….”
노태준이 말렸다.
“선배.”
“…….”
“3팀 요원들 중에…… 이제 겨우 어린이집을 다니는 애들입니다. 그 애들, 하루아침에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이제 영영 아버지의 얼굴을 볼 수도 없고 만날 수도 없습니다.”
“…….”
“하루아침에 남편을 잃은 요원들 부인이 앞으로 어린 자식과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차은성의 말에 노태준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 삶이 평탄할 리 없다.
“그저 요원들의 운명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전 놈들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우리 바닥의 금기를 어긴 건 놈들입니다.”
단호한 차은성이었다.
“동맹 중에 동맹이라고 말하는 그들이 우리 한국과의 관계를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그렇게 3팀 요원들을 죽일 순 없는 겁니다.”
“…….”
“CIA와 회사 사이에 있는 비상 라인으로 연락해서 충분히 협의할 수 있는 문제라고요. 그런데 놈들은 그것을 개무시하고 우리 요원들을 죽였습니다.”
차은성의 울분 어린 말에 노태준은 침묵했다.
차은성이 분노의 눈빛을 띠었다.
“공항에 있는 놈들. 단 한 놈도 남김없이!”
“…….”
“받은 만큼 돌려줄 겁니다.”
“휴우우우.”
노태준이 한숨을 쉬더니.
“누가 널 말려. 난 모르겠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팀장은 너니깐.”
노태준의 말에 차은성이 소리 없이 미소 지었다.
씩.
* * *
청소용 수레를 끄는 청소부.
느릿느릿.
천천히 수레를 밀며 쓰레기통을 하나씩 비웠다.
허리를 숙여 쓰레기통을 양손으로 잡는 청소부의 곁을 차은성이 스쳐 지나갔다.
퓻.
알아듣기 어려운 매우 작은 소리가 들렸다.
털썩.
양손에 쓰레기통을 잡은 채 청소부의 몸이 앞으로 숙여졌다. 쓰레기통에 몸을 걸친 듯한 자세였다.
* * *
다수의 의자 중 하나에 앉아 간간이 주변을 힐금거리던 사내.
손에 쥔 신문을 내리며 청소부를 보았다.
“응?”
의아한 눈빛을 띠는 그의 뒤에서 노태준이 총구를 내밀었다.
퓻.
이내.
“……으.”
사내는 나직한 신음을 흘리며 좌로 몸이 기울어졌다.
스르르…… 툭.
노태준이 재빨리 상의에 소음기가 부착된 총을 집어넣었다.
* * *
2층 네 번째 기둥에 몸을 기댄 남자.
“끄으으…….”
신음하며 뒤돌아보려고 했다. 하지만 뒤돌아보지 못했다. 무서운 속도로 전신에 퍼진 맹독 탓에.
스르르.
사내는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차은성이 주변을 살피며 급히 쓰러진 사내의 양팔을 잡았다. 그러곤 기둥 뒤로 질질 끌고 갔다.
* * *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간혹 1층을 내려다보는 중년 사내.
눈에 보이는 동료의 모습에 일순 앉은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났다.
그때.
뒤.
두 개의 테이블 너머에서 노태준이 일어났다.
어느새 빼 든 총으로 그를 겨누더니 일말의 주저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퓻.
그러자 사내의 가슴. 심장 어름에서 무엇인가가 앞으로 튀어 나갔다.
털썩.
사내는 그 자리에 바로 주저앉았다. 그러곤 고개와 상체를 앞으로 푹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