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리커버리 마도사-61화 (61/308)

61화

선우혁의 머릿속은 혼잡스러웠다.

……아저씨.

익숙하면서도 생소한 호칭이다.

그 말은 평생 회장님이라고 칭송받아 온 그에게 도발이고 모욕이었다.

“어린 게, 시도 때도 없이 건방지군.”

씨익.

건우는 입꼬리를 올리며 선우혁에게만 들리게 조용히 말했다.

“……저희 총성 없는 전쟁 중 아니었습니까?”

울컥!

선우혁은 얼굴이 빨개졌다.

그런 그를 대신해 누군가 입을 열었다.

“거기. S급 신참 나대는 건 자기 마음이지만 선을 좀 넘는 것 같은데?”

건우는 자신을 호명한 이를 쳐다보았다.

마치 성공한 CEO를 보는 것 같았다.

몸에 착 달라붙은 슈트를 입고 있는 게 신사다운 면모가 강해 보였기 때문이다.

S급 서열 6위, 유지호.

아크 길드의 어태커이자, 전투마법사다.

대외적으로는 건우와 같은 계열의 포지션을 맡고 있었다.

건우는 그를 흘깃 바라보았다.

우우우웅.

마나스킨을 통해 느껴진다.

지금 그의 마력이 예리한 바늘처럼 피부를 콕콕 쑤셔왔다.

‘선우유정보다 강하네.’

S급 각성자는 측정불가의 강함을 가지고 있다.

그 때문에 그들의 힘은 훑어보는 것만으로 단정 짓기 어려웠다.

건우는 그를 보며 말했다.

“선을 넘은 건 아크 쪽인 것 같은데요?”

“뭐?!”

유지호는 눈매를 좁히며 싸늘하게 건우를 노려봤다.

그러나 건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선우혁에게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나요?”

“이게 어디서 회장님을 가르치려 들고 있어!”

유지호는 몸을 일으키며 전신의 마력을 개방했다.

우우우웅!

일순간 책상을 비롯해 회의실에 비치된 모든 사물이 떨리기 시작했다.

건우는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주변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그 자리에서 가장 연장자인 마동혁이 둘 사이에 개입했다.

“자자, 두 분 다 그만두세요. 이럴 때가 아니잖습니까.”

“…….”

“…….”

맥이 빠졌는지 두 사람은 동시에 기세를 죽였다.

“협회장님 별것 아니니 계속 하시죠.”

마동혁의 권유에 구자혁이 씁쓸하게 웃으며 건우에게 말했다.

사석이 아닌 만큼 그는 건우에게 존댓말을 사용했다.

“참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데, 파티 구성원은 어떻게 됩니까?”

“없습니다. 혼자 가도 딱히 상관없습니다.”

“…….”

구자혁은 난색을 표했다.

최건우는 국가에서 경계하는 무력 소유자다.

그 말은 반대로 표현하면, 그는 국가에서 아끼는 귀중한 자원이다.

그런 그를 파티 보조 없이 이런 위험한 작전에 보내는 게 어불성설이었다.

이 점을 일찌감치 파악한 선우혁은 비웃듯 중얼거렸다.

“흥 그럼 그렇지. 젊은 놈의 치기 어린 소리를 내뱉어…….”

“얌마, 네가 왜 혼자야?”

바로 그때, 건우의 뒤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건우의 목에 팔을 두른 이는 S급 헌터, 권정아였다.

“누, 누나?”

건우는 조금 당황했다.

권정아는 씨익 웃으며 구자혁에게 말했다.

“저도 참가하겠습니다. 아, 물론 제 보수도 성동구 복원에 전부 기증해 주세요.”

탁.

그러자 서유라가 개입했다.

그녀는 건우를 밀어 권정아에게서 멀찌감치 떼어 놓더니, 무뚝뚝한 표정으로 말했다.

“봉황 길드 2군 파티도 참가할게요. 보수는 마찬가지로 성동구 복원에 전부 기증할게요.”

순식간에 조력자가 늘어나자, 구자혁은 당황했다.

“괘, 괜찮겠습니까?”

서유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표님 대리인으로 참석했으니 결정 권한도 저한테 있는 거 아시잖아요. 신경 쓰실 필요 없어요.”

“흐음.”

권정아가 슬며시 건우의 곁에 서려고 하자, 서유라는 버젓이 둘 사이를 가로막았다.

찌릿.

“……너 일부러 그런 거지?”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네요.”

권정아가 노려보았으나 서유라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선우혁은 혀를 차며 말했다.

“쯧, 충동적인 일로 안 좋은 선례를 만들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지 마동혁이 반문했다.

“안 좋은 선례라니요?”

“젊은 혈기를 주체 못 해 일을 결정짓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다른 길드의 입장도 생각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건…….”

구자혁은 인상을 찡그리며 즉각 해명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보다 일찍 마동혁이 답했다.

“왜 기부도 남의 눈치를 보고 해야 되는 겁니까? 그건 잘못된 견해입니다.”

“말 다 하셨습니까?”

“아직 더 남았습니다.”

마동혁은 으르렁거리며 이야기를 쏟아 냈다.

“그리고 젊은 혈기를 주체하지 못한단 말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말씀하시면 살얼음판에서 저와 저희 길드원들을 구해 주신 최건우 이사님이 뭐가 되겠습니까?”

“이사?”

선우혁은 충혈된 눈빛으로 건우와 마동혁을 훑어봤다.

그 시선이 두렵지는 않았지만, 건우는 여기서 중요한 사실을 지적했다.

“저 최소한 앞에 명예라는 말은 꼭 붙여 주세요.”

얼떨결에 명예이사가 됐지만, 백석의 소속은 아니니 말이다.

마동혁은 무시하고 선우혁을 밀어붙였다.

“요전에도 그렇고 자꾸 그런 식으로 세대 차이를 거론하며 얕잡아보는 말을 하시는데, 제 기준으로 봤을 때, 회장님은 킹 오브 더 꼰대죠.”

“꼬, 꼰대?!”

아저씨 다음으로 충격이 닿은 한 마디였다.

구자혁은 ‘호오.’라고 들리지 않게 감탄하고 말았다.

발언권이 강한 마동혁의 말은 곧 회의장을 떠들썩하게 충분했다.

콰앙!

더 이상 수모를 견딜 수 없었던 유지호는 책상을 강하게 내려치며 말했다.

“이게 지금 뭐하는 짓입니까? 다 같이 작당해서 아크를 엿 먹이려는 수작입니까?!”

“얼씨구, 누가 보면 불쌍한 사람 궁지로 몰고 가는 것처럼 보이겠습니다.”

“뭐요?!”

“흥!”

마동혁은 눈매를 삐죽 올리며 구자혁을 쳐다봤다.

“백석 길드도 당연 레이드에 참여합니다. 보수는 물론 성동구에 전부 기증하겠습니다.”

빠득.

‘야단났군.’

유지호는 이를 갈며 선우혁의 눈치를 살폈다.

여태까지는 아크 길드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지금 같은 사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언제부터일까?

3대 길드의 그 명성에 아주 조금이지만, 균열이 일구어졌다.

파르르르.

선우혁은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구자혁이 그런 그를 보며 말문을 뗐다.

“아크 길드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선우혁은 그대로 자리에 일어섰다.

“이번만큼은 뜻이 맞지 않아 동참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구자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묘하게 히죽이는 그 표정이 선우혁을 약 올리는 것 같았다.

당연했다.

그의 표정은 너희가 빠져도 아쉬울 게 없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빠직!

선우혁은 핏대를 세우며 건우와 눈을 마주쳤다.

‘이 모든 게 네놈이 시작한 일이렷다.’

그는 차분함을 유지한 채, 입을 열었다.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것 같아 가르쳐 주지. 이번 일은 어떻게든 욕을 먹게 돼 있어. 잘 해결되면 협회와 길드는 왜 이번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했냐고 욕을 먹을 거야. 그런데 실패해서 사망자라도 발생하면, 그 원성은 어찌 감당할 심산이지? 길드 입장에서는 이득이라도 많이 취하는 게 당연 순리야.”

건우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한 말이 어처구니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들들이 개또라이짓 해서 길드 전체가 욕먹고 있는 마당에 그런 원성이 뭐가 두려운지 잘 모르겠네요.”

“…….”

거침없는 팩폭에 일순간 선우혁은 할 말을 잃었다.

건우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연신 반박했다.

“그리고 제가 일전에 말씀드리지 않았나요?”

“뭘 말했지?”

건우는 눈매를 좁히며 싸늘한 음성으로 말했다.

“사람 목숨 가지고 갑질하는 거 아닙니다.”

“어린 게 보자 보자 하니까?!”

그 말에 유지호가 흥분해서 앞으로 나서려고 했다.

그런 그를 선우혁이 팔을 들어 가로막았다.

선우혁은 분노에 미쳐 몸이 파르르 떨렸지만 가까스로 입을 뗐다.

“어디까지 뻣뻣하게 고개를 들 수 있는지 지켜보마.”

그러고는 구자혁을 쳐다보며 말했다.

“실례했습니다. 제가 체통에 맞지 않는 짓을 한 것 같습니다. 그럼 다음 기회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협회장님.”

그 얼굴에는 분노 어린 표정은 온데간데없고 훈훈한 미소가 감돌았다.

“…….”

이 자리에서 그를 지켜봤던 모두가 어이를 넘어 감탄하기까지 이르렀다.

‘역시 보통이 아니야.’

구자혁은 쓴웃음을 지었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구자혁의 인사를 받은 그는 유지호와 함께 회의장 바깥으로 나갔다.

***

리무진에 올라탄 선우혁은 팔짱을 낀 채,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의 옆에 올라탄 유지호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괜찮으십니까?”

“당했어. 어린놈의 패기가 호락호락하지 않더군.”

“어떻게 하실 예정입니까?”

“누구한테 기어올랐는지 보여 주어야지.”

“그럼 지금 당장 준비하겠습니다.”

선우혁은 고개를 저었다.

“저 정도 병력이 같이 움직이고 있는데, 서투른 짓을 할 수는 없지. 녀석을 치는 건 던전 브레이크가 끝난 다음이야.”

“아.”

냉철한 그의 판단에 감탄하면서도 유지호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회장님. 이번 안건에 대해 거절을 하신 것에 대해 불이익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럴 일 없다네. 거부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어.”

“어떤 겁니까?”

“생존자가 기껏해야 세 명이야.”

“그게 무슨…….”

“던전 브레이크로 빠져나오는 몬스터는 늘고 있는데, 겨우 세 명을 구조하자고 사태 진압에 딜레이를 겪는다면 여론의 뭇매를 맞겠지. 그런 일은 극구사양이야.”

“그렇군요.”

유지호가 수긍하자, 선우혁은 이야기를 마저 했다.

“게다가 모순되게도 이 세 명은 또 큰 숫자이기도 해. 이목이 집중되기 딱 좋아. 실패해서 시신이라도 들고 오는 날에는 레이드에 참가한 협회와 길드는 무능하다는 낙인을 찍게 되겠지.”

“처음부터 빠질 심산이었군요.”

“뭐 협회가 내민 카드는 살펴보고 싶었지만, 그 건방진 놈 때문에 다 수틀렸어.”

“때가 되면 본때를 보여 주겠습니다.”

“그래야지. 혓바닥을 잘못 놀린 거에 대한 대가는 받아야지.”

선우혁은 조용히 분노를 곱씹었다.

***

두다다다다닥.

프로펠러 소리가 귀에 와 닿았다.

헬기 실내로 항공유 냄새가 풍겨 왔다.

건우는 조용히 눈을 뜨며 바깥을 살폈다.

그곳에는 엉망진창이 된 성동구의 풍경이 엿보였다.

균열이 간 게이트 너머로는 데스 웜이 넘다 들며 민가를 위협하고 있었다.

점진적으로 결계를 뚫고 넘어오는 경우는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저렇게 결계가 허물어진 마당에는 답이 없다.

그저 기하급수적으로 파도처럼 몰아닥치는 거다.

다행히 2성급 게이트의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와 최악의 사태는 면했다. 협회를 비롯해 중소 길드가 연합해 막아 내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심 한복판에 형성된 공동은 예사롭지 않았다.

바로 그레이트 웜이 파헤쳐서 숨어든 굴이다.

저것을 해결하지 않으면 성동구는 계속 위험에 노출될 것이다.

그때, 맞은편에서 권정아가 말을 걸어왔다.

“그나저나 다시 봤어?”

“뭘요?”

건우는 그녀를 쳐다봤다.

그녀는 평소와 달리 제대로 된 전투복장을 갖춰 입었다.

오른손에 착용한 건틀렛은 건우의 것보다 훨씬 높은 등급의 아티팩트였다.

“설마 아크 길드한테 그렇게까지 막 나가는 사람이 있을 줄 몰랐어. 나라고 해도 한 두 세 번 고민하다 깽판 칠 것 같아.”

“……저 깽판은 안 쳤습니다.”

건우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건우의 옆에 있던 서유라가 살포시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오빠는 옳은 일에 서슴없이 나서잖아요. 그 점이 존경스러워요.”

“존경까지야.”

괜스레 분위기가 어색해지자, 건우는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그들을 빤히 바라보고 있던 권정아가 물었다.

“야 그나저나 너희 무슨 관계냐?”

“우린 그냥…….”

“……예사롭지 않은 관계예요.”

“호오.”

서유라가 무뚝뚝하게 답변하자 권정아는 미심쩍다는 표정을 지었다.

“유, 유라야?”

건우는 당혹스런 표정을 지었고 세이비어가 조용히 읊조렸다.

-너가 막장드라마의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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