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도심 중심에 분수처럼 치솟은 그레이트 웜의 출현으로 모든 것이 쑥대밭이 됐다.
“여긴…… 어디지?”
던전 브레이크의 여파에 휘말린 소녀는 얼굴에 피를 흘리며 주변을 살폈다.
캄캄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공동.
엄마를 비롯한 남동생은 차에서 의식을 잃은 채 쓰러져 있었다.
“어, 엄마, 누, 누리야. 정신 차려.”
소녀는 다급하게 가족을 흔들었다.
다행히 가족들 모두 숨은 미약하게나마 쉬고 있었다.
소녀는 재빨리 엄마 품에서 휴대폰을 꺼내 119를 눌렀다.
덜덜.
무섭고 떨렸다.
죽는 게 아닐까?
머릿속이 혼잡했다.
뚜르르. 띡!
-여보세요.
다행히 통화는 연결됐다.
안도한 소녀는 흐느끼며 말문을 열었다.
“흑흑 사, 살려주세요. 동생이랑 엄마가…….”
치직!
노이즈가 심하게 섞여 통화 음질은 매우 좋지 않았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거기 위치가 더, 던전 브레이크 지역!
GPS 기능을 이용해 소녀들의 위치를 확인한 전화상담자는 기겁했다.
꿈틀!
바로 그 순간, 소녀의 눈앞에 괴이한 광경이 펼쳐졌다.
지네와 애벌레가 섞인 듯한 2미터 크기의 벌레들이 천장과 벽, 땅을 기며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엄청난 어둠이 그늘처럼 차를 뒤덮었다.
“?!”
끔찍하고 흉흉한 광경에 소녀는 전화를 떨어뜨리며 기절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
성동구 던전 브레이크 지역.
임시로 설치해 둔 작전텐트에는 헌터들이 모여 있었다.
현장을 담당하고 있는 협회의 재난대처부 이두리 차장은 이제 막 그들에게 브리핑을 마친 참이었다.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행방불명자 위치는 정확히 파악이 되지 않았지만, 저 공동 속에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브레이크가 발생한 지 약 16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얼마나 험난한 일을 겪었는지 그의 인상은 초췌해 보였다.
지친 그를 대신해 많은 경력을 지니고 있는 마동혁이 나섰다.
“던전 브레이크 사태는 백석 길드에서 책임지고 수습하겠습니다. 보스 퇴치와 공략은 맡겨도 되겠습니까?”
마동혁의 시선은 자연 최건우를 향했다.
‘어라?’
그 모습에 이두리는 의문이 들었다.
레이드 경력으로 치면 마동혁이 훨씬 위일 텐데, 어째서 저렇게 겸손하게 구는 걸까?
거기에 더해 왈가닥이라 불리는 권정아까지 얌전하니 기분이 자연 싱숭생숭했다.
“그렇게 할게요.”
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깔끔하게 역할 분배를 마친 그들은 일제히 해산했다.
이두리는 마동혁에게 허리를 굽혔다.
“그,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는 구조대에 합류하겠습니다.”
‘왜, 왠지 마음에 놓이네.’
구조대에는 건우를 비롯해 권정아와 서유라, 그리고 봉황 길드원들이 합류했다.
어지간하면 보기 어려운 전력을 곁에 두니 이두리는 안심이 됐다.
피식!
공동에 진입하는 건우 일행을 보며 마동혁은 입꼬리를 올리며 발길을 돌렸다.
게이트에서는 아직도 끊임없이 데스 웜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콰드드득!
그때, 아스팔트 도로를 부수고 나온 2미터 크기의 데스 웜이 그를 덮쳤다.
마동혁은 방패를 들어 힘껏 몸을 들이받았다.
콰앙! 콰직!
데스웜은 마동혁이 돌격하며 일어난 풍압을 이기지 못하고 몸이 풍선처럼 터졌다.
“오오오오!”
지금까지 보지 못한 압도적인 힘에, 사람들은 흥분으로 몸에 경련을 일으켰다.
기세를 몰아 마동혁은 힘차게 소리쳤다.
“으아아아아! 가자!”
“우와아아아아!”
마동혁과 함께 백석 길드원들은 일제히 데스웜 퇴치에 나서기 시작했다.
***
뚜벅뚜벅.
공동의 안은 컴컴하고 습한 냄새로 가득했다.
거기에 매캐한 냄새가 풍기는 것으로 보아 아마 땅에 함몰되어 있던 도시가스 배관이 터진 것 같았다.
‘화염계통 마법을 쓰면 안 된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구나.’
건우는 쯧 혀를 차며 마법을 구현했다.
[라이트를 발동했습니다.]
[라이트를 발동했습니다.]
[라이트를 발동했습니다.]
주변이 대낮처럼 밝아지니, 환경 식별이 가능했다.
주변에는 땅을 파고들 때 휘말린 아스팔트 파편의 잔해더미와 고철조각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오오!”
사람들은 일제히 감탄했다.
권정아는 팔꿈치로 툭툭 건우의 팔을 치며 말했다.
“야. 너 진짜 쓸 만하다. 도라X몽 같아.”
“사람을 귀 없는 고양이로봇 취급하지 마세요.”
한창 떠들썩할 때, 서유라는 낯빛을 굳히며 말했다.
“……오빠!”
그 말에 많은 의미가 함축돼 있었다.
물론 주변을 경계하라는 의미도 담겨있었다.
꿈틀꿈틀
전방좌우 가릴 것 없이 주변에서는 데스 웜들이 기어 나왔다.
그 숫자는 무려 백 마리에 가까웠다.
이두리는 고인 침을 삼켰다.
“……벌써 이만큼이나 모여서 둥지를 생성했군요.”
모여 있는 다수가 병장기를 들며 전투를 준비할 때, 건우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레이드의 정석을 무시하는 건우의 돌발행동에 서유라와 권정아가 당황했다.
“……오빠?”
“야. 왜 혼자 설레발쳐?”
건우는 두 여인의 사이를 스쳐지나가며 싱긋 입꼬리를 올렸다.
장난꾸러기 같으면서도 흥분을 주체할 수 없는 미소.
“윽.”
그녀들은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히며 쳐다보고 있었다.
“잠깐 비켜줄 수 있을까? 나 오랜만에 기분이 좋거든.”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모세가 파도를 가르는 것처럼 주변의 인파가 갈라졌다.
건우는 그 사이를 거닐며 마력을 개방했다.
쿠구구구구구구!
공동은 마력의 파장으로 미미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뭐?!”
지금까지 보지 못한 현상에 모두 넋을 잃고 건우를 쳐다봤다.
건우는 흥분을 주체하지 못했다.
비석을 복원하는 동안, 마력을 쓰지 못하던 스트레스에서 해방됐기 때문이다.
꿈틀꿈틀.
몰려든 데스 웜들은 공포를 느낀 것처럼 몸이 경직됐다.
저것은 위험한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위험이 들이닥치기 전에 데스 웜들이 파도처럼 몰려왔다.
이건 아무리 S급이라도 위험했다.
“건우 오빠!”
“야!”
건우는 뒤에서 들려오는 그녀들의 소리를 무시한 채, 손아귀를 뻗었다.
이윽고 건우의 손바닥에 집속한 마력이 바람의 칼날로 변이됐다.
[윈드 커터를 발동했습니다.]
[윈드 커터를 발동했습니다.]
[윈드 커터를 발동했습니다.]
폭풍처럼 몰아치는 칼바람이 단숨에 공동 주변을 휩쓸었다.
콰앙! 서걱! 콰앙! 서걱!
바람의 칼날은 외벽에 금을 남기며 데스 웜들을 난도질했다.
후우우우웅!
마법 시전 시간까지 약 5초.
앞에 빼곡히 들어찬 데스 웜들은 모두 파편과 체액으로 갈려 후두둑 지면에 떨어졌다.
“후아. 완전 후련하네.”
건우는 무척 상쾌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봤다.
“갑시다.”
“…….”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미처 대답하지 못했다.
권정아는 어이가 없단 표정으로 말했다.
“혼자서 다 해 먹지 마라.”
“뭐 어때요? 마법사가 자랑하는 게 화력 빼고 뭐가 있다고.”
“마, 맞아요. 빨리 가요.”
건우를 필두로 일행은 뒤따라 붙었다.
한참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이두리는 건우를 보며 놀람을 금치 못했다.
상정하지 못한 강함, 현대에서는 이를 S급 각성자로 분류한다.
하지만 건우와 같은 계통의 각성자로 알려진 S급 6위, 유지호도 이런 풍경을 연출할 수는 없었다.
‘대체 몇 가지 계통의 마법을 쓰는 거야?’
사건 종결 후 과연 협회에서 이 사실을 믿어줄까?
아마 오버하지 말라며 보고서를 다시 퇴짜를 놓을 것 같다.
왜냐하면?
꼬옥!
이 광경을 직접 목격한 이두리도 그 사실을 믿을 수 없어 자신의 볼을 꼬집을 정도니 말이다.
***
그레이트 웜이 파놓은 공동은 마치 터널 같았다.
게다가 걸어도,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발길을 멈춘 건우의 앞으로는 두 갈래 길이 펼쳐졌다.
마나스킨을 통해 확인해본 결과, 두 갈래 길 끝 전부에서 심상치 않은 마력이 피어올랐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고심하는 건우에게 권정아가 손을 얹었다.
“어렵게 고민하지 마. 난 왼쪽 넌 오른쪽으로 가.”
“누나 진짜 단순하네요.”
“뭐 인마?”
권정아는 버럭 화를 냈다.
건우는 피식 웃었다.
“그래도 그것밖에 방법이 없겠네요. 파티 전원은 권정아 헌터님을 따라가 주세요. 전 혼자 가겠습니다.”
“이놈이.”
권정아가 화를 내려고 하자, 건우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누님이라면 전부 지켜주실 수 있잖아요.”
“어린놈이 S급 존심 뭉개는 것 보소.”
권정아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건우의 제안에 수락한 것이다.
서유라를 비롯한 봉황 길드원들은 별달리 반발하거나 하지 않았다.
그만큼 건우의 실력을 믿고 있는 것이다.
그때, 이두리가 손을 번쩍 들었다.
“저는 최건우 헌터님과 동행하겠습니다.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그렇게 해요.”
잠시 후.
“오빠 몸조심하세요.”
서유라의 애정 어린 시선에 건우는 씨익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도 몸조심해.”
“……네.”
서유라는 얼굴을 발그레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누나 걱정은 안 해주냐?”
권정아는 심통이 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있었다.
그에 건우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걱정이 안 되는데요.”
건우는 진심이었다.
전력을 붙은 적은 없지만, 권정아는 마동혁을 웃도는 실력자였기 때문이다.
솔직히 그녀가 궁지에 몰리는 상황도 상상이 잘되지 않았다.
“쳇, 됐다. 됐어. 내가 뭘 기대해.”
이쯤 되니, 건우도 빈말로라도 한마디를 할 수밖에 없었다.
“삐지지 마요. 그만큼 신뢰하는 거니까.”
“흥, 됐거든.”
그녀는 고개를 홱 돌렸다.
‘아직도 삐졌나?’
건우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귀 끝이 묘하게 붉어 보이는 게, 아무래도 화가 난 것 같았다.
“됐고, 나 출발한다.”
“몸조심하세요.”
“오냐.”
건우와 그들은 서로의 무사를 기원하며 양 갈래로 갈라졌다.
***
공동의 탐사는 계속됐다.
이두리는 건우와 어색한 분위기를 풀 겸 입을 열었다.
“한국 역사상 그레이트 웜이 출현한 건 세 번입니다. 다행히 세 번 다 던전 브레이크를 면했지만, 녀석들은 둥지를 틀고 다니면서 기하급수적으로 번식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프리카 오지에서 출현했을 때, 세계 각지에서 헌터들을 파병해 수습했었죠.”
건우는 인상을 왈칵 찌푸렸다.
“왜 지들 땅 내버려 두고 알을 까는지 모르겠네요.”
“후우, 그러게 말입니다.”
그러다가 눈앞에 전복된 SUV 차량을 발견했다.
-저기서 생명이 느껴지는구나.
“?!”
세이비어의 말에 건우는 즉각 발을 박찼다.
엎드려서 안을 살피니 운전석에는 한 여인이, 뒷좌석에는 두 아이가 타고 있었다.
“?!”
건우는 즉각 힘을 써 자동차를 조심히 뒤집었다.
끼익! 쾅!
문짝이 찌그러져 잘 열리지 않았다.
콰앙!
건우는 차문을 단숨에 박살내고서 생존자들을 밖으로 꺼내 살폈다.
몸 곳곳에 중상을 입기는 했지만 다행히 숨은 붙어있었다.
“응급구조키트가?!”
이두리가 다급히 배낭을 열어젖혔다.
“필요 없어요.”
“네?”
이두리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우웅!
그곳에는 건우가 손에서 황금빛 마나를 뿜어내고 있었다.
[치유의 요람을 발동했습니다.]
세 가족은 마나로 만들어진 요람에 담겼다. 통증에 힘겨워하던 그들은 곧 편안한 모습으로 변했다.
이두리는 자신도 모르게 뜨헉 소리를 냈다.
‘마법에 힐러까지 겸하고 있다고?!’
건우의 실력을 보니 그 가치는 예측하기도 어려웠다.
“으음.”
점차 상처가 아물기 시작하자, 상처가 가장 옅었던 소녀가 눈을 떴다.
“괜찮아?”
건우의 질문에 소녀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아저씨.”
“응.”
“……큰 벌레. 머리가 두 개에요.”
“그게 무슨 말……?”
생뚱맞게 그게 무슨 소리일까?
대답을 들으려는 찰나.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다른 편 공동 쪽에 굉음이 울려 퍼졌다.
63. 돌아가기SSS급 리커버리 마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