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타닷!
적과의 교전을 선택한 건우는 숲 사이를 질주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뒤로 빠르게 적의 인기척이 달라붙었다.
건우는 속도를 줄이며 상황파악에 주력했다.
‘대략 4명인가. 이제 대놓고 노리네.’
삐리리
그때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려 퍼졌다.
발신자가 누군지 확인한 건우는 피식 웃으며 전화를 받았다.
-오빠 괜찮아요? 어떻게 된 일이기에 차랑 운전기사분이…….
수화기 건너편에서 서유라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골치 아픈 일이 생겼어.”
쇄액!
대답하기 무섭게 뒤편으로 투척용 단검이 날아왔다.
카앙! 카앙!
건우는 검으로 단검 두 자루를 가볍게 쳐냈다.
수화기 건너편에서 당황하는 음색이 흘러나왔다.
-무슨 소리에요?! 혹시 지금…….
“별거 아니니까 좀 있다 통화하자.”
-벼, 별거 아니라니 그, 그럼 언제쯤 연락이 가능한데요?
“글쎄 좀 늦은 저녁이 될 것 같네. 끊는다.”
-잠깐…….
띡!
스팟!
전화를 끊자, 곧바로 가면을 쓴 두 각성자가 단검을 들고 습격했다.
일찌감치 그들의 움직임을 간파한 건우 역시 응수에 나섰다.
카카카카카카캉!
순식간에 검들이 난잡하게 얽히고설키며 난전이 펼쳐졌다.
숙달된 연계에 건우는 피식 입꼬리를 올렸다.
“신촌 브라더스가 있는 걸 보면 역시 아크 길드 소행이 맞나보네.”
그러나 강성민과 강하민은 부정할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멍청이.”
“이번에는 지난번처럼 나댈 수 없을걸.”
뭐지? 이 자신만만한 웃음은?
그 순간, 건우의 귀걸이가 정신없이 흔들렸다.
[니제르의 귀걸이가 현 상황에 위험을 경고합니다.]
“?!”
깜짝 놀란 건우는 빠르게 발을 튕겨 자리를 이탈했다.
푸욱! 푸욱! 푸욱!
발을 내빼기가 무섭게 그 자리에는 네 자루의 비수가 박혔다.
치이이이익!
비수에는 독이 깃들었는지 땅이 보랏빛으로 변질되며 연기가 피어올랐다.
쌍둥이들은 다시 건우를 몰아붙이며 같은 패턴을 유지했다.
회피 이후 반격.
그리고 쌍둥이들이 위기에 빠질 때면, 어김없이 비수가 건우의 사각을 노리고 날아왔다.
그야말로 사냥감을 농락하는 전술이었다.
짜증이 날 법도 했지만 건우는 냉정하게 전황을 분석해 나갔다.
지금 드는 의문은 하나였다.
‘남은 두 명은 어디 있는 거지?’
카앙! 카앙!
스스스스스.
그 대답은 바로 옆에서 튀어나왔다.
언제 숨어든 건지, 거목의 그림자에서 습격자가 튀어나왔다.
‘은신 스킬?!’
모습을 드러낸 그는 건우를 향해 곧장 주먹을 내질렀다.
깜짝 놀란 건우는 팔을 교차해 충격에 대비했다.
콰아아아아앙!
예상외의 완력에 건우는 속수무책 날아가 비탈길을 굴렀다.
타앗!
그 기회를 틈타 선우유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손아귀에서 피어오르는 기운이 대기를 잔잔히 요동쳤다.
콰앙! 콰드득!
이윽고 그의 손에서 피어오른 충격파가 건우를 덮쳤다.
콰르릉.
건우가 있던 지대는 처참하게 지반이 부서지며 가라앉았다.
주변에는 충격의 여파로 흙먼지가 비산했다.
히죽!
선우유정은 가면 속에서 입꼬리를 올렸다.
‘꼴좋다.’
무려 S급이 날린 필살의 공격이었다.
살아남을 리가 만무했다.
그렇게 생각할 때.
흙먼지를 뚫고 건우의 검이 휘리릭 날아들었다.
푸욱!
그 검은 정확히 강성민의 복부를 꿰뚫었다.
“크아아아아악! 시발!”
가면이 벗겨진 강성민은 각혈하며 통증을 호소했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검을 뽑으려고 했지만.
파직!
검에 실려 있는 결계 때문에 쥘 수조차 없었다.
“혀, 형! 괜찮아?!”
당황한 강하민이 검을 뽑으려고 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빠직!
그 광경을 목격한 선우유정이 이빨을 갈며 소리쳤다.
“이게 어디서 개수작이야!”
콰아아아아앙!
선우유정은 이번에는 양손으로 쇼크 웨이브를 쏟아냈다.
콰콰콰콰콰콰쾅!
지면은 토사와 수목이 뒤엉키며 붕괴됐다.
스팟!
그러나 충격파가 닿기도 직전에 이미 건우는 흙먼지를 뚫고 튀어나왔다.
어느새 양팔에는 트윈 헤드 오우거 건틀렛을 착용하고 있었다.
‘빠, 빨라?!’
깜짝 놀란 선우유정이 부릅떴다.
타닷!
이번에 건우가 노리는 대상은 바로 강하민이었다.
“히익! 오, 오지 마!”
그걸 눈치 챈 강하민이 쓰러진 강성민을 내팽개치고 줄행랑쳤다.
파앙!
허나, 거리는 멀어지기는커녕 점차 좁혀졌다.
건우는 어느덧 강하민을 그늘처럼 뒤덮고 있었다.
인스파이어로 심어둔 페르세의 레그가드 효과로 민첩이 극도로 상승했기 때문이다.
꽈악!
건우는 오른손을 꽉 쥐며 서늘하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
“내가 두 번은 없다고 했지? 망할 꼬맹아!”
자비는 한 번만 베풀면 된다.
“으아아아악! 오지 마!”
콰직! 콰앙!
건우의 일권에 강하민은 온몸이 짓눌려 죽음을 맞이했다.
일순간 주변에 정적이 흘렀다.
“…….”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순식간에 아군 전력이 두 명이나 줄어들었다.
콰르르르 콰아아앙!
“너 이 자식!”
분노한 선우유정이 신속히 발을 박차며 주먹을 내질렀다.
건우 역시 주먹을 내질러 응수했다.
콰앙!
두 사람이 충돌했다.
빠직! 콰콰콰콰쾅!
건우의 건틀렛은 균열이 가 완전히 박살 나기 직전이 되었다.
선우유정은 비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내가 말했지. 화끈하게 놀아준다고 새꺄!”
건우는 혀를 차면서도 동시에 입꼬리를 올렸다.
“야. 안 어울리니까 가면은 벗어.”
“뭐?!”
빠각!
반문하기가 무섭게 선우유정의 가면이 부서졌다.
그리고 부서진 가면 조각이 흩날리며 얼굴이 드러났다.
‘젠장! 머리가?!’
지끈.
순간에 턱을 얻어맞으니 뇌가 흔들렸다.
“으아아아악!”
이 차 공격을 경계한 선우유정은 곧장 온몸에서 쇼크웨이브를 발산했다.
콰콰콰콰콰콰쾅!
주변에 있던 모든 게 충격파로 우그러졌다.
스팟!
하지만 건우는 그를 무시하고 다른 곳으로 발을 튕겼다.
‘설마?!’
건우의 꿍꿍이를 눈치챈 선우유정이 몸을 돌렸으나 이미 늦었다.
건우가 도약한 곳은 근처 절벽이었다.
그곳에는 비수를 들고 있는 킬더스크 멤버가 있었다.
“어, 어떻게 여기 있는 걸?!”
갑작스런 건우의 등장에 킬더스크 멤버는 단검을 휘두르려고 했다.
퍼석! 콰앙!
그러나 미처 반격을 해보기도 전에 건우의 주먹에 육신이 짓뭉개졌다.
선우유정은 짜증이 서린 표정으로 일갈을 내뱉었다.
“뭐해! 그 새끼! 죽여!”
스스스스스스.
그러자 주변 지형과 동화되어 은신하고 있던 마지막 멤버가 건우의 등 뒤에서 튀어나왔다.
그의 양손이 건우의 목을 옥죄려는 순간.
우드득!
건틀렛을 벗은 건우가 먼저 맨손으로 그의 목을 비틀어 꺾어버렸다.
그의 숨이 끊어지기 직전, 건우가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은신을 할 거면 향수는 쓰지 말았어야지. 멍청아.”
“…….”
물론 대답은 듣지 못했다.
씨익.
“다음은 우리 불쌍한 선우가 도련님 차례겠네.”
건우는 음산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뒤를 살폈다.
아래에서는 선우유정이 빠득 이를 갈고 있었다. 입은 열지 않았지만 둘은 시선만으로도 대화가 가능했다.
건우는 명백하게 선우유정을 조롱하고 있었다.
반면, 의기양양했던 선우유정은 처참하게 뭉개졌다.
하지만 아직까지 믿을 구석이 있는지 그는 어딘가를 손으로 가리켰다.
그곳은 태양광 패널이 잔뜩 깔려있는 컨테이너 건물이었다.
선우유정은 그곳으로 발을 옮겼다.
건우가 그를 뒤따르려는 찰나, 세이비어가 말을 걸어왔다.
-함정일 텐데. 갈 생각인 것이냐?
“그래서 가는 거예요.”
-무슨 말이냐?
“함정이면, 외부인을 끌어들이지 않겠다는 거잖아요.”
-이유가 그것뿐이냐?
“반대로 누가 저기서 사라지든 알 사람이 없다는 거기도 하고요.”
-확실히 종지부는 찍겠다는 의미구나.
“대략 그런 느낌이죠.”
건우는 그대로 발을 옮겼다.
***
대체 뭘까?
묘하게 찝찝한 이 마음은?
‘마법사 계열이라는데, 육탄전으로 쓸어버렸어.’
선우유정은 혼란스러웠다.
순식간에 킬더스크가 몰살됐다.
S급인 그 자신이 연계된 팀이기 때문에 보통의 S급 헌터라면 곤란에 처하다 죽기 마련이다.
실제로 선우유정은 S급 헌터를 죽인 경력도 있다.
물론 이건 세상에 공표되지 않은 사실이지만.
뚜벅뚜벅.
그때 컨테이너 안으로 건우가 들어왔다.
씨익.
그 입가는 여전히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오싹!
그 웃음이 선우유정에게는 다르게 와 닿았다.
일순간 공포로 인해 손아귀에 땀이 가득 찼다.
“너 뭐 하는 새끼야?”
“습격한 놈이 그걸 왜 묻는 건지 모르겠네. 어차피 우리 목적은 같지 않나?”
그들의 목적은 하나.
바로 상대의 괴멸이다.
그 뜻을 이해한 선우유정이 이빨을 빠득 갈았다.
‘그 녀석이 준 거라 더럽게 찝찝하지만 효과는 확실하니까 마신다.’
선우유정은 품속에서 약물이 든 병을 꺼내들어 마셨다.
이를 본 건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포션은 아니야.’
콰아앙!
변화는 곧바로 찾아왔다.
선우유정의 주변으로 거대한 마력이 밀집했다.
‘어디서 많이 본 효력인데?’
“죽어!!”
선우유정은 전기톱처럼 예리한 충격파를 건우에게 쏟아냈다.
카앙! 카앙!
서걱! 서걱! 서걱!
충격파에 닿은 것들은 나무, 철 가릴 것 없이 썰려나갔다.
카앙! 카앙!
건우는 검으로 침착하게 충격파를 맞받아쳤다.
콰앙!
이윽고 두 남자가 격돌했다.
끼리릿!
선우유정은 팔에 쇼크웨이브를 둘러 건우의 검을 막아냈다.
한순간 둘 사이에서 힘겨루기가 펼쳐졌다.
쿠직!
순간 지반이 부서지며 건우는 선우유정의 힘에 압도당했다.
‘내가 근력에서 밀린다고?!’
콰앙!
선우유정은 발끝으로 건우의 복부를 걷어찼다.
충격파로 인해 몸 곳곳의 내장이 뒤틀리고 갈비뼈에 빗금이 서렸다.
맨몸이었으면 분명 즉사인 데미지였다.
쩌적.
그나마 무사했던 건, 데미지를 입을 시 경화되는 오리엔트의 미늘갑옷 특성이 코트에 부여되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눈치 챈 선우유정이 건우를 비웃었다.
“이 새끼 완전 아티팩트 빨이었네.”
“아, 안 되겠다.”
“왜 이제 죽을 생각하니까 서럽냐?”
선우유정의 도발에 건우는 머리칼을 이마 뒤로 넘겼다.
“그쪽이 도핑을 했는데, 이쪽이라고 못 할 이유도 없지.”
“뭐?”
건우는 곧장 발전장치 시설의 문을 박살 낸 뒤, 전선을 뽑아들었다.
파지지직!
그 끝에는 강렬한 전기가 분출되고 있었다.
건우는 얼마 안 남은 마력을 이용해 마법을 완성했다.
[트랜스 마법을 발동했습니다.]
그것은 자연의 힘을 마력으로 전환하는 마법이었다.
지금까지 이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던 건, 전화된 마력이 곧바로 원래 성질로 돌아가는 미완성 마법이었기 때문이다.
“뭐 하는 거냐? 진짜 실성했냐?”
“실성했으면 어쩌게?”
건우는 피식 웃으며 그대로 전선을 말아 쥐었다.
파지지지직!
아주 잠깐 그의 몸이 심하게 경련을 일으켰지만, 곧 체내에 마력이 충만하게 돌기 시작했다.
파직!
건우는 전환된 마력을 곧장 손에 전달했다.
콰르르르릉.
몰려드는 마력은 다시 전기로 변질되며 확산됐다.
파직!
눈앞에 일렁이는 전격의 양을 보며 선우유정은 경악했다.
“너, 너, 너 뭐 하려는 짓이야! 미친 새꺄!”
건우는 권태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전에 질문 하나. 그 약물 어디서 난 거냐? 내가 많이 봤던 건데?”
파직!
정전기로 인해 머리칼 일부가 삐죽삐죽 올라갔다.
선우유정이 다급하게 조건을 내걸었다.
“자, 잠깐 다 이야기할게. 잠시 휴전.”
“아, 그런 조건이라면 됐어. 내가 알아내면 되지.”
“뭐?”
건우는 상큼하게 웃으며 말했다.
“난 이미 너 저승으로 보내기로 했거든.”
“이 미친 새끼가!!!!”
선우유정은 전심전력으로 쇼크웨이브를 발산했다.
콰콰콰콰콰콰쾅!
그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위에 설치된 태양광 패널들이 모조리 깨져나갔다.
보스를 죽일 때, 사용하는 선우유정의 회심의 일격.
하지만 건우는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손아귀를 펼쳤다
[기가 라이트닝을 발동했습니다.]
콰르르르릉!
손아귀에서 분출된 전격은 삽시간에 쇼크웨이브를 집어삼키고 선우유정에게 도달했다.
그의 눈앞을 뒤덮은 것은 아홉 갈래로 갈라진 거대한 벼락 줄기였다.
“오, 오지 마! 으아아악!!!!”
콰쾅!
선우유정은 번개에 묻혀 세상에서 그 자취를 감췄다.
54. 돌아가기SSS급 리커버리 마도사